Modern Juice (모던 쥬스) - A Kiss At The End Of Rainbow
Modern Juice (모던 쥬스)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모던쥬스를 처음 만난건..아리랑tv에서 쇼탱을 해주는데..거기서 버스 정류장이란 음악으로 만날수 있었다..처음 들어서 그런지 와닿지 않은 낯설음이 느껴진게 사실이다..그리고 두번째로 만난건 윤종신의 2시의 데이트를 듣다 모던쥬스의 사랑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란 음악을 들었던게 그들과의 두번째 대면이었다..이 음악을 들을때 난 러브홀릭의 러브홀릭을 들었을때처럼 이 음악에 중독되었다..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고,,그 이후엔 말할것도 없이 모던쥬스의 음악을 찾아 듣고 있고,,그들이 나왔었던 방송자료를 뒤지고 있다..그래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나왔던 모습도 찾아서 볼수 있었다..모던쥬스의 모습을 보면서 감히 제 2의 러브홀릭이란 호칭을 붙이고 싶은건..그들의 음악이 뭔가 자꾸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여성의 목소리로 이끌어 나가는점도 마친가지인데..여성 보컬 목소리를 듣다 보면 보보의 강성연도 생각나고,고호경의 음성도 느껴지는게 신기할뿐이다..모던 쥬스의 곡중 제일 좋아하는건 사랑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이다..이 곡은 제니주노의 뮤직비디오로도 만날수 있으니..뮤비를 봐도 좋을 것이다..그 외에 버스정류장도 여자보컬의 목소리가 귀에 감기면서..자꾸 찾아 듣게 만든다..이 외에도 우울병..생일축하송을 겨냥했는지..추카송1,2가 있다..일단 이 몇몇 음악으로도 모던쥬스의 진면목을 알수 있다..그들이 얼른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들의 무궁한 실력을 펼칠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이잘코군 > [영화] 클로져



 

 

 

 


 사진출처 : http://www.empas.com

 사실 난 이런 영화인줄은 몰랐다. 대략 내가 예상한 바는 영화 <비포선셋>이나 <비포선라이즈> 정도의 단촐한 대화형식의 로맨스인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는 전적으로 내가 사전에 영화 줄거리를 검색해보지 않은 탓, 광고를 미리 접해보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마음에 안들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대체로 흡족했다. 하지만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아마도 실망하는 부류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이 영화는 흥행에 있어서는 그다지 성공적일 것 같지도 않다.

 미국영화이지만 미국식 사랑 영화라기보다는 프랑스식의 사랑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확실히 사랑에 있어서 조차도 비주류 영화-주류와 비주류가 뭐냐고 묻는다는 건 우습지만-로 분류되는 영화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주류 영화들이 소수의 관객만을 만족시키듯이 이 영화 또한 그 공식을 벗어나지는 않을 터이고 다수의 관객을 만족시킨다는 전제가 깔려야하는 흥행성적에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는 말이다.

 단지 이 영화가 혹시라도 관객을 좀더 끌어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영화가 재밌다는 입소문 때문이 아니라 쥬드 로를 보러 오는 여성관객과 줄리아 로버츠나 나탈리 포트만을 보러오는 남성관객 때문이리라. 즉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보러오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이다.

 영화는 "안녕! 낯선 사람" (헬로우! 스트레인져) 라는 대사로 급속한 스토리 전개가 이어진다. 저마다 제 갈길을 가는 도심의 복잡한 거리에서 두 남녀가 반대방향에서 마주보고 걷다 서로를 쳐다본다. 여자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깨자 그를 향해 "안녕! 낯선사람"이라는 대사를 날려준다. 물론 현실에서 그럴 여자는 찾아보기 힘들 듯.

 둘의 사랑이 이어지고, 남자의 외도, 그리고 여자의 이별선언, 또 다른 여자의 외도, 그의 남편의 이별선언. 네 사람이 엮고 엮이는 스토리는 영화 <콘스탄틴>의 유행어(?) "또 엮였군요"를 연상시킨다. 아 이런 또 엮여버렸다. 엮이면 언젠가 꼬이게 마련이다. 두 남자와 두 여자는 서로 엮여 꼬여버렸고 결국 꼬임의 결과는 이별이다.

 이들의 사랑방식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아닌가? 정상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비정상성을 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것이 비정상적인 사랑방식으로 보이는걸까? 진실은 스스로만 알 수 있다. 이상한 사랑이기는 하지만 가능한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감상. 그렇다고 내가 저들의 사랑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난 27살 먹는 동안 사랑이라고는 그다지 경험이 없는 초짜이니 말이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두 떠나서. 사랑 그 자체로서.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모른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단 한번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강하게 왔다 가면 쓰라린 법이다. 사랑은 서서히 갑작스레 왔고 서서히 진행되다 갑작스레 떠났다. 원래 사랑은 그런 거다. 어제까지 사랑했던 이들이 다음 날 "헤어져"라고 말하는 건 그땐 충격이지만, 그리고 그 상황을 경험하는 당시에도 충격이겠지만, 그리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충격으로 남아있겠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애써 준비하지 않을 뿐이다.

 상당한 수위의 상당한 시간 동안의 노출씬. 역시 영화는 18금이었다. 난 몰랐다.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 이 영화가 18금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알았더라도 18금이 뭐 오늘날 대수로운 정돈가. 같은 18금이라하더라도 영화마다 천차만별인 것을. 하지만 단체로 관람하기에는 다소 야했다. 하핫. 이 영화를 보며 8명의 남녀가 단체 관람을 한 팀은 우리 밖에 없을 터. 뻘쭘.

 그들을 비정상이라 말하지 마라. 당신의 마음 속에도 그들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있으니. 다만 표출되지 않았을 뿐.

 아웃사이더, 비정상, 변태, 괴짜, 우울, 사랑 이라는 키워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이잘코군 > [영화] 콘스탄틴



 

 

 

 


 사진출처 : http://www.empas.com

 <콘스탄틴>이라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영화광고문구에는 항상 '<매트릭스> 그 이후'라는 문구가 따라붙었었다. 그리고 유독 매트릭스와 함께 영화의 주인공이 키아누 리브스임을 강조했다. 이 영화는 어쩌면 '매트릭스'와 '키아누 리브스'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덜 관심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를 홍보하는데 있어서 그 둘을 이용해먹었다 하더라도 영화의 품질은 결코 기대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작품이다. 한 마디로 인상 깊었다.

 영화는 <매트릭스>에 버금가는 현란한 개인기(?)와 액션을 선보이지는 않지만 고독한 한 영웅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트릭스>와 공통적이다. 그런데 그 고독한 영웅은 두 영화 모두에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영웅은 탄생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라는 말은 두 영화 모두에 적용시킬 수 있다.

 태어날때부터 천사와 악마를 구분하는 능력을 지닌 존 콘스탄틴.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마 혼혈족과 천사 혼혈족을 볼 수 있고, 악마 혼혈족을 퇴치하는 퇴마사다. 한때 자신의 이와 같은 능력을 저주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시 살아남았고 결국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며 혼혈 악마를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악마의 아들이 이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콘스탄틴은 지상의 선악의 균등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악마의 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다.

 결국 예상했던대로 승리는 그의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영화의 중간중간 공포영화인지 사람 놀래키는 여러 장면들과 특수효과, 그리고 영화의 진행에 있어 전제되어있는 내용들로 인해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전해주고 있다. <매트릭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수많은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이 영화 역시 여러 가지 생각거리와 볼거리를 던져놓고 간다는 점에서 영화관람 후의 파장이 크다.
 
 이 영화는 기독교 홍보영화인가? 영화를 보고있자면 마치 교회 다니세요, 교회 안다니면 지옥가요. 아까 지옥불 보셨죠? 라고 관객에게 말하는 듯 하다. 시나리오를 만든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신자인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천국과 지옥을 전제하고 천사와 악마의 대결구도를 만듦으로써 천국과 지옥의 존재는 당연시된다. 물론 영화 속의 가정이지만 함께 영화를 본 다른 이가 "우리 교회다니자"라는 말을 꺼낼 정도면-물론 우스개소리지만- 영화는 대단한 기독교 홍보효과를 뽑아내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야말로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엄청난 지옥불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어야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한다라는 메세지를 보이지 않게 흘려놓는다.

 영화 줄거리에서 특이할 점 또 하나는, 현실세계에도 천사와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이는 현실에도 천국와 지옥이 있다는 말이다.
현실은 선과 악이 대결하고 있으며 혼혈 천사와 악마는 인간의 행위에 전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매개를 통해 이들을 조종할 수는 있다. 천국과 지옥은 기독교에서 말하듯 죽음 뒤의 세계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 속에도 존재하며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의 결과로 그것은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본 후에도 마찬가지로 천국과 지옥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의 존재여부를 내게 묻는다고 해서 이에 대한 마당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세지에는 공감한다. 그것의 목적이 구원이든 아니든 간에 현실 세계에서 바른 행위를 하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구원을 제외하고는 이는 모든 종교가 말하는 현실의 삶의 태도이다. 기독교라는 영화 속 배경은 내게 있어선 그저 하나의 영화 속 장치일 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영화의 메시지다.

 우리네 현실 삶 속에서 혼혈 악마와 혼혈 천사가 존재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에 따라 좀더 선한 본성을 키운 사람과 악한 본성을 키운 사람은 존재한다고 본다. 본래 인간은 백지상태라고 생각하며(중국의 고자의 성무성악설) 선과 악의 본성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자라나면서 어떤 본성을 키워내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본다.

 어찌되었건 "착하게 살자"가 영화가 주는 메세지인 듯하다. 더불어 영화는 금연광고와 금주광고도 함께 하고 있다. 연신 담배만 피워대는 존 콘스탄틴은 결국 폐암으로 두달에서 일년정도밖에 못산다는 경고를 받고, 그의 친구이자 신부는 알콜 중독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적시에 알콜을 섭취하지 못함으로써 사망한다. 담배피지 맙시다. 과음하지 맙시다. 공익광고가 따로 필요없다.

 키아누 리브스는 이 영화를 통해 <매트릭스>에 이어 확실한 인류의 구원자 역할을 굳히게 되었다. 고독한 사색하는 어딘가 좀 어설퍼보이는 영웅의 이미지. 인류는 어쩌면 이런저런 갈등과 분쟁 속에서 구원자를 희망하며 영화 속에서 그 갈증을 해소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서양식의 성장중시, 물질중시의 풍조로 인한 여러 폐해의 속출이 동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매트릭스>에서도 그러했고, <콘스탄틴>에서도 그러하다. 레바논 태생이며 중국계 하와이인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가 그 구원자 역할을 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원자로서 성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이잘코군 > [영화] 말아톤




 

 

 

 


 사진출처 : http://www.empas.com
 
 영화 <말아톤>을 알기 전에 TV의 어느 아침 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그와 그의 어머니를 접했다. 내가 그를 본 것은 잠깐이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그동안의 사연은 정말이지 인간 승리였다. 그렇게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말아톤>은 그와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히 화제거리가 되었고 그 감동의 세월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았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기대할 것은 실화의 내용과 감동뿐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서 대강의 줄거리는 접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실제모델 배형진, 영화 속 인물 윤초원. 그는 5살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진 20살 청년이다. 외관상 보기에는 괜찮은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초코파이와 얼룩말,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가 실제로 달리기를 좋아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만이 알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을 바쳐가며 아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엄마 경숙은 아들을 온전히 바꿔놓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보상하려고 한다. 그녀는 이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지나치게 강요한 나머지, 엄마로부터 버림받을 것이 두려운 초원은 그저 엄마가 원하는 일이면 좋단다. 결코 싫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달리기는 그저 엄마가 아이에게 강요한 한 가지 일에 불과했던 것일까? 엄마는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면서 나중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아이에게 주입시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말 초원이가 원했던 것도 달리기였다. 초원이는 달리기 위해 홀로 춘천까지 갔다.

 이 영화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 청년의 인간승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 어머니라는 존재의 강한 모성애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모성애는 때로는 지나친 집착으로 내몰리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영화 속 초원의 동생 중원이와 같이 반항심이 가득해지기도 하지만 사랑이 지나치면 아이에게 지나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줄 수도 있다. 단지 초원이는 이를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영화의 감독 정윤철은 <말아톤>이 그의 첫 장편데뷔작일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도 처음 들었다. 그의 이름을.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실제 인물 배형진과 함께 마라톤 클럽에 가입해 일년여동안 함께 뛰었다고 한다. 뛰면서 그의 마음을 읽으려 했고 느끼려 했다. 영화 <말아톤>의 감동적인 장면 하나하나는 온전히 그의 이러한 기나긴 노력의 산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는 쉽다. 왜냐면 줄거리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화를 실화만큼이나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어렵다. 실화가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실화여서가 아니라 실화에 담긴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 3자가 그 사연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엮여내 감동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감독은 그것을 느끼고자 실제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체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이 영화를 통해 증명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이잘코군 > [영화] 공공의 적 2



 

 

 

 


 사진출처 : http://www.empas.com

 강철중이 돌아왔다. 그런데 강력계 꼴통 형사가 아니라 강력계 꼴통 검사로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그가 꼴통인건 사실이지만 예전과 같이 마냥 계획없는 꼴통이 아니라 너무나 정직하고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쳐서 '원칙'만을 고수하는 꼴통이다. 검사도 너무 원칙주의자면 주위 사람이 피곤하다.

 <공공의 적 2>를 보고난 감상은 전편만큼의 톡쏘는 듯한 유머감각은 없고 범죄단위는 더 커지고 대범해졌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적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만큼은 아니었다. 죄목만으로 치자면야 정준호가 이성재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성재만큼의 악독한 면은 없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정준호라는 배우자체가 지금껏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고 다정한 역할만을 해왔기에 그리고 그의 외모에서 풍겨지는 푸근함이 악독한 범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감으로 믿고 기획수사를 하는 강철중 검사와 느낌으로 수사하는 그의 수사관들은 밤낮 할 것 없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면서 수사를 강행한다. 이들에겐 오로지 나쁜 놈 때려잡는 것만이 다른 욕심을 대신하는 길이다. 그것도 '그냥 나쁜 놈'은 안된다. '공공의 적'을 잡아야한다. 겉으로는 사회 저명인사이면서 항상 웃고 다정한 사람이 속으로는 그만큼 독할 수가 없다. 아버지 살해 교사, 형 살해 교사, 청소부 살해, 거래자 폭행, 현직 검사 살인 미수, 검사 대신 수사관 살해 교사, 환치기 등 그의 범죄목록은 끝이 어디인지 안보인다. 순박한 검사 강철중은 오로지 그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영화 <공공의 적 2>의 또다른 매력은 <공공의 적 1>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고스란히 화면 속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상관이었던 형사반장은 부장검사로 태어났고, 1편에서 그를 졸졸 따라다녔던 두 양아치는 영화 마지막에 '그냥 나쁜놈'으로 다시 등장한다. 1편을 봤던 사람이라면 2편을 보면서 내가 아는 이들이 다시 나오는 재미 또한 느꼈을 것이다. 2편에서 부장검사로 태어난 강신일씨는 그의 본명을 따 영화 속에서도 김신일로 불리우며 전편보다 더 비중있는 역할을 한다.
 
 또 한가지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이 정준호의 수행비서로 나오는 것도 볼거리다. 그다지 대사도 별로 없는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톡톡히 관객에게 얼굴도장을 찍은 셈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악독재벌과 정치권의 결탁을 보여주고, 부패에 찌든 검사와 함께 정의가 살아있는 검사를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아직 우리에겐 약자를 위한 '법'과 '정의'라는 것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의 약자들에겐 힘이다. 이 영화가 짜릿한 쾌감을 전해주는 것은 바로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사법고시를 볼 나의 친한 친구 재성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는 검사를 꿈꾸고 있다. 바로 강철중과 같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검사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