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다른 청소년들처럼, 나 역시 '영화=악'이라는 세뇌를 오랫동안 당했다. 극장 앞에는 완장을 찬 선도부 선생이 진을 치고 있을 것 같아 극장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벌벌 떨었고.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교를 졸업한 뒤부터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난 영화 이외에 여자랑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도 있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밀어를 속삭이는 것도 한 방법인데 말이다. 그저 난 아침 일찍 극장에 가서 길고 긴 줄을 기다려 가며 예매를 했고, 약속시간에 맞춰 영화를 봤을 뿐이다. 이여자, 저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는 두번, 세번 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세월을 겪으면서 난 '여자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본다'는 단계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여자를 만난다'는 단계로 옮겨갔고, 정말 봐야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혼자 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전사'로 거듭났다.

그런 와중에 많은 일이 있었다. <블루 시걸>인가를 보러 가자고 했다가 같이 간 세명에게 밥과 디저트를 사야 했고, <결혼이야기2>를 보고 난 뒤에는 여자친구에게 싹싹 빌었다. 반면 <옥보단>과 <트루 라이즈>를 보고난 뒤에는 서로 "내가 보자고 했잖아!"라며 공을 다퉜다. <백투더 퓨처>를 보고 나서는 보름이 넘도록 영화 속 장면들을 되씹어보기도 했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봤다. 알고 지내던 여자분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줘서였는데, 그녀는 참고로 <패스워드>와...그 뭐드라... 비행기 사고를 모면한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영환데... 아무튼 그런 류의 재미있는 영화들을 내게 추천해 준,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 친구다.  그래서 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도 별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시네코어 8층은 의외로 관객들로 붐볐다. 표에 쓰인 좌석번호를 못찾겠어서 "몇번이냐"고 물어봤더니, 영화를 같이 본 파트너가 이런다. "여기 있잖아요. F에 8번"  짐작하다시피 그녀가 말했던 건 8F,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난 몸을 떨었다. 그럼..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좌석이냐?

영화는 프랑스 영화로, 스페인에 1년 유학을 간 프랑스 청년이 겪은 일들을 담담히 그린 거였다. 요란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헐리우드 영화와 달리, 이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예컨대 주인공이 집을 구하는 장면이다. 먼저 집을 같이 쓰던 여섯명이 식탁에 앉아서 질문을 한다.

그중 하나: 전공은?

주인공; 에라스무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중 다른 하나: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말해 보시오.(무슨 회사 취직하냐?)

그들은 애인을 데리고 와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우리 같으면 나머지가 집을 나가거나 그럴텐데 말이다. 그 중 매우 쿨한 척하는 여자애가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주인공: 뭐했어?

여자애: 응. 그녀와 잤어.

주인공: 잤어?

여자애: 응, 나 레즈비언이야.

놀라는 주인공에게 여자애는 덧붙인다.

"니 여자친구는 언제와?" (오면..뭐하려고?)

그 여자는 주인공에게 여자와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여기를 이렇게 만지고... 그 다음에 가슴을 두드려 주는거야"

그 방법을 터득한 주인공은 자기에게 잘해준 남자의 부인-거기 나온 인물 중 가장 괜찮았다-과 잔다.

주인공: 고마워. 여자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여자애: 남자애들은 삽입밖에 몰라. 하지만 여자는 그것보다 전희를 더 좋아한단다

삽입만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알아온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하숙집에 사는 여덟명 중 같은 국적은 거의 없다. 문화적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대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똘레랑스고, 여러 인종이 모여사는 프랑스에서 똘레랑스의 문화가 정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예컨대 이런 경우,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인: 너희 독일인은 시계처럼 정확하고 합리적이잖아? 그래서 히틀러가 나온 거 아니겠니?

삐져서 나가는 독일인에게 영국인은 따라가면서 말한다. "하이! 히틀러!"

단일민족의 신화에 사로잡혀 온 우리나라, 그래서인지 우리는 외국인을 친구로 대하지를 못하는 것 같다. 백인은 숭배하고 동남아나 흑인은 무시하는, 한마디로 숭배 혹은 경멸이다. 외국인과의 접촉이 더 빈번해지면 나아지겠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소감이다.

1) 아무리 믿어도, 자기 배우자를 맡기면 안된다.

2) 레즈비언은 여자 다루는 법을 잘 안다. 그 여자애가 주인공 가슴을 만지면서 "니가 여자애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

3) 소문안난 영화 중에도 보석이 있다. <낭만자객>처럼 선전 요란하게 하는 영화는 한번쯤 의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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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러브 액츄얼리

휴 그랜트가 나오는 영화는 뻔하지 않을까? 별점순위에서 <올드보이>와 더불어 수위를 다투고,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강추를 해대는 이 영화를 안본 이유는 그런 거였다. <노팅힐>은 봐줄 수 있어도,

아류작은 보기 싫다! 아무리 달콤한 사탕이라도 자꾸 먹으면 질린다!

내가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어느 분의 적극적인 설득 때문이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꼭 보세요!"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전하는 입소문은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달려가게 한다.

자신이 받은 즐거움을 남과 공유하고픈 마음은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그 자신에게 손톱만큼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을텐데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의하면 이렇게 입소문을 내주는 소비자를 알파 소비자라고

한단다. 흥행 전망이 어두웠던 영화 <타이타닉>이 성공한 게 10대 소녀들의 바람몰이 때문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을 재난영화가 아닌 러브스토리로 만든

것도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러브 액츄얼리>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반지의 제왕 3>을

볼 때는 "언제 끝나나"는 심정으로 시계를 몇 번이나 봤지만-재미없어서는 결코 아니다-이 영화를

보는 도중 거푸 시계를 본 건 "우 씨, 벌써 이렇게 지났어?"라며 안타까워하기 위해서였다.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얽힌 십여명의 등장인물들이 동시에 사랑을 시작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해결을 하는 과정이 너무도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그려져, 시종일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느끼하게 생각했던 휴 그랜트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특히나 그가 수상 관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만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그리다 보니 그 해결이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봐줄 용의가 있다.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빈곤하기 짝이 없는 내 철학이니까.

 

어제가 천안 멀티플렉스에서 <러브 액츄얼리>가 상영되는 마지막 날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극장에서 영화의 간판을 내렸을 테니, 못본 분들은 비디오가 출시되기를 기다려야 할 듯하다.

나 역시 약간의 이타심을 가지고 있는지라 내가 본 재미있는 장면들을 몇 개만 적어본다. 못본

분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고.

 

1) 수상인 휴 그랜트가 눈독을 들이는 여자가 있다.
휴: 남자친구는 있어?
여자: 헤어졌어요. 내 허벅지가 굵다고 했어요 (내가 봐도 굵은 건 맞다).
휴: 나쁜 놈 같으니... 내 권력 이용해서 놈을 암살해줄까? 전화만 하면 공수부대가 떠.

 

2) 마약으로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한 원로가수가 희한한 노래로 뜬다. 그 사람이 나올 때마다 난

배꼽을 잡았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던 장면이다.
생방송에 나온 그 가수: 어린이 여러분들! 마약하지 마세요!(처음으로 바른말 하네 싶었다)
팝스타되면 공짜로 얻을 수 있거든요!
방송MC: (당황하며) 광고듣죠!

 

3) 시종 무례한 요구만 하던 미국 대통령이 휴 그랜트가 좋아하는 여자를 건드린다. 열이 받은

그랜트 왈,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입니다. 세익스피어, 처칠...어쩌고....그리고 베컴의 나라....

위협만 하는 자는 친구가 아닙니다!"
이 말과 동시에 휴 그랜트는 영웅으로 떠오른다. 어떤 가수는 "나의 영웅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라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그랜트가 춤을 추는 건 바로 이장면이다. 블레어 총리가 시종일관

부시의 푸들 노릇만 하는 게 영국인들로서도 자존심이 상할테니, 영화 속에서나마 이런 한풀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 된서리를 맞더라도,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살아생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노무현 자식.... 그런데 우리나라의

위대성은 어떻게 설명할까? "광개토대왕, 안중근.유관순, 서태지의 나라" 이렇게?

우리야 다 알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위대하다는 게 공감을 얻으려면

그런 사람이 필요한데....

 

4) 목걸이
목걸이 판매상으로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안 왓킨슨이 깜짝출연한다. 얼굴만 봐도 어찌나

웃긴지. 하여간 영화 속의 사장은 젊고 아름다운 부하직원으로부터 구애를 받는데, 그녀를 위해

잠깐 짬을 내서 비싼 목걸이를 산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그 목걸이를 본 아내, "올해도 스카프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이야?"라며 감동한다. "여보, 앞으로 툴툴거리지 않을게요"라는 카드도

쓰고. 하지만 그녀가 받은 선물은 고작 CD 한 장. 인간은 그럴 때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법이다.

여인은 혼자 방으로 올라가 오열하는데, 그때 의기양양하게 그 목걸이를 건 젊은 여직원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오죽하면 보는 내가 그 여인이 불쌍할까. 남자들이여, 바람을 피우려면 들키지나

마라. 들키는 건 아내를 두 번 죽이는 결과다.

 

5)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왔던 멋진 남자-사실 휴 그랜트의 반도 안되는-는 포루투칼 여자를

좋아한다. 그녀를 위해 포루투칼어를 열심히 배우고,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가서 청혼을 한다.

물론 포루투칼어로. 그러자 여자는 유창한 영어로 대답을-예스!라고-하는데, 그 남자가 묻는다.
남자: 영어 배웠어?
여자: 혹시 몰라서요.

 

아이, 응큼해요 둘다!

 

6) 샘이라는 애도 가끔 사람을 웃기는데, 드럼을 치는 그는 보컬을 맡은 여자애를 좋아한다.

여자가 노래한다. "사랑해요, 그대!" 그러면서 여자는 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그때 샘의

표정은 의기양양 그 자체. 하지만 노래 가사에는 '그대(and you!)'가 무지 여러번 나온다.

그때마다 손가락을 바꿔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보컬 여자. 그때 배신감에 젖은 샘의 표정은

휴 그랜트의 춤과 더불어 <러브액츄얼리>의 3대 유머 안에 들만하다. 깜찍한 녀석...

 

7) 마지막 교훈. 남녀가 잘 때는 휴대폰을 끄자! 무슨 소리인지는 보면 안다.
8) 의문점. 휴 그랜트에 관해 쓰다가 느낀 건데, 걔는 누가 옆에서 "휴-" 하고 한숨쉬면

"나 불렀어?"라고 말하지 않을까?
9) 의문점 2. 샘의 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아내를 잃은 걸로 나온다. 샘이 왜 재혼하지 않냐고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클라우디아 쉬퍼가 아니면 재혼 안할거야" 그런데, 아버지는

학예회에서 다른 학부형의 어머니를 만나는데, 첫눈에 전기가 통한다. 샘이 말한다.

"어서 고백하세요!" 그 여자, 클라우디아 쉬퍼를 닮았던데, 맞는지 모르겠다. 유명한 사람이 워낙

많이 나오긴 했지만, 쉬퍼도 나온 걸까?  나중에 알아보니 쉬퍼 맞단다. 카퍼필드의 애인인 그 쉬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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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영화 '천군'을 보고

 

요즘은 시사회가 있어서 김이 새지만, 개봉날 영화를 보는 사람에겐 특별한 사명이 덧씌워진다. 영화가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전령이 되어야 하니까. 영화의 재미 여부를 모르니 그만큼 위험도 크다. 워낙 보수 지향이라 개봉날 영화를 본 적은 별로 없지만, 오늘 본 <천군>은 개봉 날짜가 오늘이었다.

공효진이 이 영화에서 박사로 나온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예쁜 박사는 없다^^


 

이 영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 두가지. 하나는 박중훈이 나오니까 웃길 것이라는 편견이고, 두 번째로 <할렐루야>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스토리는 없이 개인기에만 의존한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이었다. 하지만 두가지 다 사실이 아니다. 시네시티의 드넓은 객석에 서른명 정도의 관객만 앉아있는 걸 볼 때는 “괜히 들어왔나” 싶었는데,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수준높은 관객이라면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겠지만, 뭐 나한테는 딱이다.


영화 초반에 내가 쪽지에다 써놓은 말들.

-김승우의 말, “600만 이스라엘을 10억 아랍이 왜 무서워하는지 알아? 핵이 있기 때문이라고”--> 뭐야 이거. 우리가 핵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려는 거 아니야? <무궁화꽃>의 아류?

-왜 이 시점에서 이순신일까. 박정희가 그를 이용했던 것처럼, 독도 문제 등으로 극우가 발호할 토양이 마련되니까 상업적으로 이순신을 이용하려는 거 아니야?

 

제법 진보적인 냄새를 풍기려는 내 수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 다음에 적은 말들.

-아이디어 좋고, 스토리도 그럴싸하고.

-막판의 비장미, 남한테는 유치할지 몰라도 난 저 정도면 감동받는다.

-근데 좀 잔인하다.

-보기 잘했다. 기대 안하고 봐서 그런지 겁나게 재미있다.

 

* 여고괴담 4 보고싶었는데, 꼭 보려고 했는데 맥스무비 평점이 3.71이다. 봤으면 큰일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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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하고 나서 난 만화책만 계속 읽었더랬다..내가 스트레스 풀때 주로 만화책을 찾는데,,이번엔 그 목적과는 달리,,그냥 만화가 땡겨서 본것이다..그런데 팝콘심리학을 기점으로,,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있어,,이제 만화책과는 잠시 이별해야 할듯 하다..이번에 빌린 책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생방송 퀴즈가 좋다,19세,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다..먼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이 책은 한젬마의 두번째 책이다..미술을 전공한 그녀..tv에서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을 접했을때,,이렇게 미술도 감상할수 있구나..라는걸 느꼈다..일단적으로 한젬마의 미술감상법을 듣게 된 계기는 물론 그녀의 미모가 뛰어나서이기도 하다..그녀의 첫번째 책..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흥미롭게 봤기에,,두번째 책도 망설임없이 집어들수 있었다..역시나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과,,한젬마의 설명,,내지는 에세이 형식의 글들이 흥미를 유도했다..미술 dj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멋들어진 설명이었다..그렇게 다 읽고,,생방송 퀴즈가 좋다를 읽었다..한동안 mbc는 주말에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바로 이 퀴즈가 좋다라는 프로때문이다..나도 이 프로를 즐겨봤었는데,,종영되서 아쉬움이 크다..임성훈의 재치있는 말투와 실력있는 퀴즈 출연자들과 풀어보는 퀴즈..지우개 찬스,ARS찬스,인터넷 검색,전화 찬스,,등 그 찬스들때문에 더욱 재밌었던 시간이었다..학교에서도 퀴즈가 좋다 식으로 퀴즈도 펼쳤고,,특히 전화 찬스의 위력은 대단했었다..도전 골든벨이 학교 홍보용이라면,,퀴즈가 좋다는 전국민들의 퀴즈 흥미를 유도한 제대로 된 프로였다고 보여진다.난 지금도 퀴즈를 좋아한다..그래서 요새 퀴즈 대한민국도 매주 보려 노력한다..그렇지만 늦잠을 잘때도 있어,,스타 골든벨을 볼때가 많다..이렇게 퀴즈는 퀴즈가 좋다를 기점으로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물론 퀴즈가 좋다의 아성을 무너뜨릴만한 프로가 없었다는게 문제지만,,,여전히 그리운 퀴즈가 좋다의 세계를 이제 책에서나마 볼수 있어 기분이 새삼스러웠다..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상금이 올라가는 적립형식..6단계까지는 무조건 도전해야 하고,,7단계 부터는 제시어를 보고 도전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그런 형식이다..퀴즈를 하나하나 풀면서 내가 모르는 상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금 깨달았다..특히 플라시보 효과가 인상적이었다..주사 성분이 없는 주사를 맞았는데도,,주사의 효과가 나타나는 그런 효과가 바로 플라시보 효과였던것..알라딘에서 활약하시는 플라시보님 서재에서도 얼핏 보았던것 같은데..퀴즈로도 나왔었다니,,역시 아는게 힘이라는걸 느끼고 있다..그 다음 어제와 오늘에 걸쳐 읽고 있는 19세란 책..성장 소설이다..이순원의 자서전 비슷한,,그의 과도기,,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써내려간 책이었다..이 글을 지금 반절정도 읽으며,,이 책 역시 이전에 읽었던 성장 소설과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었다..역시 재미란건 무시못하는 법..동정없는 세상과 비슷한(갠적으로 동정없는 세상이 더 웃기다고 봄..) 그런 책이다..아직 다 읽지 못했기에 뭐라고 잘 표현 못하겠지만,,어른이 되기 위해 농사를 하고 싶었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으면서,,자신의 진로 과정의 선택으로,,어떤 길이 펼쳐지는지 그걸 보여주고 있다..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뭐 그리 자세히 나왔다고 할순 없지만,,그래도 고민을 덜어주는데 보탬은 될것이다..이렇게 오늘 19세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내가 줄거리 쓸만한 그런 글 실력이 없어 아쉬울뿐이다..여전히 부족한 나의 책내공..그걸 키우려면 얼마나 더 책을 읽어내려야 할지,,아직도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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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가 너무 좋다. 길 가다가도 개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개띠다.

  

 니콘 FM2

 처음으로 산 수동 카메라. 36∼72mm 렌즈가 장착되어 있고 모터 드라이브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수동이다. 이 카메라는 빛이 들어오는 구멍, 그것을 조절하는 조리개, 그리고 셔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기능은 하나도 없다. 간혹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사진을 뽑아낸다. 나와 함께 유럽과 터키,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를 여행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카메라를 통해 본 것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눈의 기계적 확장태라 할 수 있겠다.

  달과 6펜스

  중학교 3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소풍 전날이어서 오후가 되자 학교는 묘지처럼 텅 비어버렸다. 나는 혼자 도서실에 가서 소설을 읽었다. 그러자 뿔테안경을 쓴 국어선생이 다가와 나를 귀순용사 보듯 들여다보았다. “소설 좋아하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게 한 권의 소설을 건네주었다. 『달과 6펜스』. 증권거래인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직장을 버리고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고갱을 모델로 한 이 소설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리고 계시처럼 어떤 예감에 휩싸였다. 그건 내 삶의 행로가 스트릭랜드의 그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바뀌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경영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멀쩡히 졸업하고 갑자기 소설가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 전환의 1퍼센트쯤은 서머셋 몸, 혹은 그 국어선생의 탓이다.

  

  대금

 1986년 3월 2일. 신입생 수강신청 날이었다. 나는 학생회관 1층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열린 국악기 전시회를 보러 갔다.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악기들 중에서 대금을 발견했다.대나무에 구멍을 몇 개 뚫은 지극히 단순한 그 악기를 불어보고 싶어서 국악연구회라는 동아리 가입원서에 이름을 적었다. 가입번호 2번이었다.대금불기는 쉽지 않았다. 손가락은 구멍을 막지 못하고 아무리 거센 숨을 불어도 소리가 나질 않았다. 5월이 돼서야 내 대금에선 소리가 났다. 공강시간마다 달려가 그 대나무 막대기를 어깨에 얹었지만 모든 음을 낼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나서였다.그로부터 삼 년간을 대금과 함께 살았다.2학년 때 어느 젊은 장인으로부터 산 내 대금은 동아리에선 명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맵짠 소리를 내질렀다. 청의 떨림도 경쾌했고 음의 파장도 깊고 길었다. 그 대금이 지금은 방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말라가고 있다. 입김을 받지 못하는 대금은 버림받은 후궁과 같다. 갈대의 단면을 잘라보면 얇은 막 한 겹이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잘 발라내어 말리면 대금의 청공을 막는 청이 된다. 청을 청공에 붙여 대금을 불면 저음과 고음에서 음이 떨린다. 풀피리의 원리와 비슷하다. 입김의 수증기가 청에 젖어들어 평상시의 소리에 파동을 얹어준다. 그 청은 너무도 약해서 오로지 입김만을 견딘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조금만 힘을 주어 누르면 힘없이 파열되고 만다. 또한 청은 아주 낮은 음과 아주 높은 음에서만 운다. 내가 알던 어떤 여자를 닮았다. 그녀도 청처럼 자기 삶의 아주 낮은 곳, 그리고 아주 높은 곳에서 울었다. 내게 대금을 배웠던 여자였는데, 어느 날 내게 황동규의 시를 적어주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면은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갈대의 속으로 만들어진 청이었고 나는 음습한 곳에서만 자라나는 굵디굵은 쌍골죽이었다. 나는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도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내 대금의 청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모든 음에서 떨린다. 모든 음에서 떨린다면 그건 더이상 청으로서 가치가 없다. 하지만 그건 다 내 탓이다. 내 무심함과 게으름 때문.미안하다.

  

  도마뱀

   98년 11월 4일, ‘보고서/보고서’ 팀과의 채팅 인터뷰 중에서

   안:작업실. 풍경을. 그려주십시오.

  김영하:책상 놓고 책꽂이 놓으면 한 사람 드러누울 자리도 안 되구요.

  금:멋진. 작업실…….

  김영하:위에는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한 팬이 걸려 있구요.

  금:꽉 찬. 작업실…….

  유:밀도 있는 작업실…….

  김영하:옆에는 프린터,

  김영하:후안 미로 포스터가 액자에 든 채로 놓여 있구요.

  김영하:발리에서 산, 도마뱀왕이 양각된 방패가 걸려 있습니다.

  안:…….

  김영하:그리고 아프리카 산 여자 목각 가면이 반대편에 있습니다.

  김영하:좀 혼란스럽죠.

  유:‘좁은 방’ 그 방에서 「바람이 분다」가 나왔나요?

  김영하:예.

  금:안전한. 방패. 작업실…….

  김영하:방패인데 저를 보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유:빛이 적은 작은 방.

  김영하:저를 적대하는 방향으로 걸려 있습니다.

  금:태풍 있는. 작업실…….

  유:ㅎㅎㅎ

  김영하:서북향 방이어서 오후 늦어야 햇빛이 들어옵니다.

  금:서쪽에서. 해가 뜨는. 작업실…….

  

  레너드 코헨

 당신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한 독자가 내게 말했다.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를 들으면서는 자살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물었다. 왜죠? 그 다음 곡이 〈Take This Waltz〉이기 때문이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 그래서요? 왈츠를 들으면서는 팔목을 그을 수가 없습니다. 왈츠는 삼박자니까요.

  

  맥주

  내 사주를 보면 나무가 나온다고 한다. 나무, 그런데 그 나무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었다. 점쟁이는 덧붙이기를, 바위가 짓누르고 있으니 세상에 대해 원한이 많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게 마련이니, 서른이 넘으면 부드러워지겠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나이 스물셋이었다. 점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어깨가 무거웠다. 하늘을 보았다. 달리의 그림처럼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 그 무게를 느꼈다고 하면 좀 심한가? 어쨌든 그날부터 난 내가 나무라는 걸 한시도 의심하지 않았다. 달리기보다 수영을 좋아하고 소주보다 맥주를 즐기는 것도 다 내가 나무인 탓이었다.

  

  묵주

  로사리오. 묵주. 성모송을 반복 암송하기 위한 구슬꿰미.한때 나는 프란체스코 회의 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씩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수도원의 모든 것이 좋았다. 둥글고 커다란 식탁. 짙은 밤색의 수사복. 식사는 일제히 시작해 마지막 사람이 끝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단촐하지만 장엄한 미사. 단선율로 깔리는 그레고리안 성가. 저녁식사 후부터 아침까지 이어지는 대침묵. 적막. 고요.왜 그렇게 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유는, 글쎄, 공포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가장이, 아버지가 된다는 일의 두려움. 수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가장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저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했다. 그때 내 나이 열여섯이었으니까.어쨌든 나는 수사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없지만 결혼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 생활도 수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고. 나는 소설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을 모시는 문단이라는 수도원에 살고 있다고. 수사들은 식사시간 이외에는 말을 나누지 않고 각자 자기의 방으로 흩어져 대침묵에 들어간다. 그들 개개인의 신앙의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자기의 골방에서 신을 의심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묵주기도를 바친다. 여전히 신은 응답이 없다.

  

  번호

 155-19-332852-5 681111-1244787 384-1809 012-26-04750-8 197-18-01319-2 226-18-0002-103 155-70-022283-2 017-222-1809 015-394-3688 경기1수5508 내가 늘 외우고 다니는 번호. 내 몸의 제5원소. 나는 번호에 강한 편이다. 이름보다는.

  

  삐삐

   “삐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세상에 대해 변명할 여지는 점점 궁색해지고 은거할 비트는 사라져간다. 세상과 격리될 자유를 잃음으로써 우리는 좀더 외로워진다.스스로의 얼굴을 대면할 기회는 사라져가고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기대게 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이 된다.” 단편 「호출」을 어딘가에 재수록했을 때, 얼떨결에 쓴 창작노트의 일부다. 그 소설을 쓴 지 삼 년밖에 안 지났는데, 그때의 삐삐는 미래에서 날아온 터미네이터 같았는데, 어느새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의 속도가 소설의 속도를 앞질러 간다.

  

  산울림

  소년기의 나를 지배하던 뮤지션. 독백, 청춘, 더더더, 회상, 웃는 모습으로 그냥 간직하고 싶어. 그 노래들을 무수히 들으며 또 권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의 나를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그가 여자라면, 아마 자동적으로 산울림을 떠올릴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여자친구도 그중 하나일 텐데, 난 그녀를 생각하면 김수영이 떠오른다. 그녀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내게 선물했다. 그러나 나는 한자가 어려워 읽지 못했다. 한자를 다 해독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절망했다. 그녀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고등학생치고는 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황석영 원작의 연극, 〈한씨연대기〉의 표를 끊어와 연우무대로 나를 끌고 간 것도 그녀였다. 늘 밝고 명랑했던 그녀는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일정하게 삶의 톤을 유지할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그런 그녀와의 만남은 고3 내내 이어졌다. 모범생들이 으레 그렇듯, 모의고사 시험지를 교환하고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만남의 빈도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요일 아침 일곱시였다.대학 입학시험을 보고 나서, 미안하다, 나는 돌연 그녀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한 달 후, 그녀가 내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촛농으로 밀봉한 편지 안에는 달랑 김수영의 시 한 수만 적혀 있었다.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내 평생 최초로 시적 에피파니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도 어렵던 김수영의 시가 단박에 이해되었고 동시에 소름이 저르르 끼쳤다. 나는 시는 아름다운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몇 줄의 시가 저렇게 한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니! 그러니까 그날 나는비로소 시의 현대성에 눈을 뜬 셈이었다. 나는 김수영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그 시집을 들춰본다. 그러면서 그때 그 친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엉뚱하게 소설가가 되어버린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 궁금해한다.

  

  성서

  어린 시절 나의 독서경향은 전 세계인의 경향과 일치했다. 가장 많이 본 책, 성서, 그 다음으로 많이 본 책, 삼국지였다. 성서 독서는 강제된 것이었고 삼국지는 성서가 싫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성당에 가라고 내몰린 날이면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삼국지를 읽었다.성서를 자발적으로 읽은 건 대학교 3학년 때, ROTC 전방입소훈련 때문이었다. 입소시에 허용된 책은 성서와 불경밖에 없었기에 나는 성서라도 집어들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교육대에서 진행됐던 그 혹독한 훈련이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플래시에 빨간 셀로판지를 끼워 광도를 줄이고 성서를 읽었다. 그러니 그 시절은 나의 중세였다.

  

  세제

  나는 결벽증은 아니지만 닦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키보드 글자쇠와 글자쇠 사이의 빈틈은 칫솔로, 전등 스위치에 묻은 손때는 지프(찌든 때 전문 세제다)로, TV처럼 정전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에는 정전기 방지제로, 옷을 헹굴 때는 피존으로, 드레스 셔츠 깃에 묻은 때는 부분 세척제로, 세면대는 락스로, 구두는 구두약으로(물론 굽과 가죽 사이는 칫솔로, 구두코는 1차 양말, 2차는 융으로, 구두 옆구리는 구둣솔로), 스티커 자국은 라이터 기름으로, 거울과 유리창은 신문지로, 잘 닦이지 않는 나무무늬 장판의 틈새에 낀 때는 바닥용 지프로 닦는다.그래서인지 나는 불필요한 기억도 잘 지운다. 컴퓨터에 널려 있는 쓸데없는 파일들을 찾아 삭제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잘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일테면 벽지에 침착된 담배 연기, 허리의 튼살, 야멸차게 떠나간 이들의 기억 따위. 내 소설쓰기가 그런 것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세제였으면, 때와 한몸이 되어, 스스로 더러워져서 더 더러운 것들과 엉겨, 후루룩, 씻겨 내려가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꿈을, 가끔 꾼다.

  

  스텔라 GX

  내가 처음으로 운전했던 백만원짜리 중고차. 모델명 스텔라 GX. 그 고물차를 몰고 새벽이면 중부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차는 또한 처음으로 완벽하게 주어진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그런 차가 너무 좋아서 자동차동호회에 가입했고 용돈을 모두 털어 켄우드 카스테레오를 장만했다. 어느 날, 그 차가 멈춰버렸다. 운행거리 18만 킬로미터였다. 고치러 온 카센터 주인은 고치는 값이 차값보다 비쌀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 차를 그냥 그 주인에게 넘겨버렸다.  지금도 가끔 그 차를 처음 운전하던 때의 순정한 설레임이 그립다. 어떤 동창, 어떤 친척 못지않게 그 청색 스텔라 GX가 그립다. 그래서 나는 교통사고로 아끼던 차가 폐차되는 장면을 보며 엉엉 울던 중년의 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액세서리

  98년 10월 28일, ‘보고서/보고서’ 팀과의 인터뷰 중에서

  안:동그라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김영하:링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반지는 전통적으로 구속을 뜻하지만 한때 내게 있어 링은 해방이라   든지 퇴폐의 의미가 강했다. 귀를 뚫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취직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인생을 퇴폐해보자는 느낌이었다. ‘오늘예감’이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펑키한 잡지를 만들던 친구들이었다. 환각의 자유라든지, 게으를 권리를 특집으로 잡아서 했는데 그 특집 중 하나가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나중에 내 소설 제목이 되었는데 그 특집은 이른바 환각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기획이었다. 이를테면 환각을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대원사에서 나온 『환각제와 마약』이라는 책에서는 왜 똑같은 마약 성분이 인디언들에게는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고 다른 세상을 보게 해주는데 현대의 미국인에게는 총질을 충동하는 물질이 되는가, 다시 말하면 약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그러니까 ‘오늘예감’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집에서 광선총을 쏘는 것은 나라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차량을 탈취하거나 하는 경우엔 형법으로 다스리면 될 일을 단순히 환각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았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 정치에 무관심할 권리, 그런 것을 내세웠다. 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 내게 있어 귀걸이나 액세서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표징이었다. 취직을 하면서 귀걸이를 뺐는데 그때 ‘귀걸이는 뺐지만 보이지 않는 더 큰 코뚜레가 생기고 그것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수만 개의 코뚜레구나, 링을 뺐기 때문에 더 큰 링에 걸린다’라는 역설에 관하여 생각했다. 반면 링에 관한 또다른 생각은 해방과 관련된 것이다. 동기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학생운동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던 날 귀를 뚫었다. 같이 가서 보았는데 그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화장을 하거나 귀를 뚫는다는 것은 그 대열에서 빠지겠다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귀를 뚫을 때 귀에서 피 한 방울,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배경은 그냥 액세서리 가게였지만 그 장면만큼은 프랑스 영화처럼 인상이 깊었다. 그 친구는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집에 나만의 액세서리함이 있다.

  안:주로 어떤 액세서리가 있는가.

  김영하:은제 액세서리가 많다.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는 짐승의 뿔로 만든 큰 목걸이다. 흉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대 앞 인도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서 샀다. 일종의 페티시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에곤 쉴레

  이제는 그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다.

  

  지포 라이터

  칠 년째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가 있다. 앞면에 이렇게 써 있다. “Limited Edition No.0339” 이건 뚜껑 부분이고 몸통 부분엔 “Pteranodon The Cretaceous Period(익룡, 백악기)”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양각되어 있다. 그리고 뚜껑과 몸통에 걸쳐 날개를 펼친 익룡 한 마리가 아래를 굽어보며 날고 있다. 그 아래에는 “Length(길이) 8m”라고 친절하게 부연해놓았다.불을 붙이려 뚜껑을 열 때마다 목이 잘리는 이 괴수의 몸을 장식한 금박은 이제 귀퉁이가 하나 둘 떨어져나가 그야말로 화석처럼 보인다. 이 라이터를 선물한 친구가 그랬다. 널 닮아서 샀어. 칠 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 익룡이 날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백악기라는 낯선 시대에도 관심이 없다. 단지, 이 라이터는 잃어버리기엔 너무 오래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없어진다면, 무척 마음이 아플 것만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나는 불만 붙이고 나면 그걸 신속하게 오른쪽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버릇을 들였다. 야, 안 가져간다 안 가져가. 테이블에다 좀 올려놔라. 애타게 불을 찾는 술친구들의 성화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꿋꿋이 라이터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가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꺼내어 라이터를 건네준다. 주머니 속의 익룡, No.0339. 아직은 멀쩡하다.

  

  키보드

  내가 생각해낸 말인지 아니면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내게 너무 적절한 말이어서 늘 내 말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있다. 내 뇌는 (머리를 두드리며) 여기가 아니라 손가락 끝에 있어. 키보드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하거든. 나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타자기로 일기와 편지를 썼다. 타고난 악필을 감춰보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뇌의 위치까지 바꿔버렸다.

  

  트래블 가이드

  

  가장 선뜻, 대담하게 사는 책. 나를 가장 오랫동안 행복한 무념무상의 경지로 이끌어준다.

  

  포스트잇

 아무 흔적 없이 떨어졌다 별 저항 없이 다시 붙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들. 여태 이루지 못한,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 

  한영애

  그제, 한영애의 새 앨범을 샀다. 그녀는 여전히, 멋지다. 이번에 그녀는 〈봄날은 간다〉를 재해석했다. 무슨 노래든 그녀가 부르면 원작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한영애의 노래가 돼버린다. 88년 내 생일에 그녀의 테이프를 선물했던 친구는 이 년 후,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가버렸다. 지금은 돌아와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가 아직도 한영애를 듣는지 궁금하다. 아마, 내 짐작이 맞다면, 그는 이제 더이상 한영애를 듣지 않을 것만 같다.

  

  OLD SPICE

  아까 소년기에 나를 알았던 이들이 산울림으로 나를 떠올릴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청년기의 나는 아마 올드 스파이스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그걸 처음 발랐을 때는 뺨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래 사용하면 그것처럼 부드러운 애프터셰이브가 없다. 건, 아직,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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