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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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죽음본능>에서도 열광 할 수밖에 없다. 제드 러벤펠드는 <살인의 해석>으로 독자들 뿐만 아니라 언론까지도 그의 작품 속에 베여 있는 놀라운 흡입력에 대하여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그 놀라운 흡입력에 다시 빠져들 수 있는 기회가 <죽음본능>을 통하여 다시 제공되었다. 만약 당신이 <살인의 해석>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상관없다. 전작에 등장한 스트래섬 영거와 제임스 리틀모어 형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살인의 해석>으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사건을 만나기 때문이다. 단지 <살인의 해석>에서는 누군가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원했던 것을 살인을 통해 획득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번 <죽음본능>에서는 많은 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본능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제드 러벤펠드의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제목들이 자극적이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목은 책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본능>, 죽음이 본능이 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죽음은 본능이 될 수 없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그것은 본능이 아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 당장 죽음을 맞이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책은 본능적으로 죽어야 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어야만 하는 상황은 아주 극한 상황이 아니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자연재해 라든지 테러 혹은 전쟁과 같은.

이쯤 되면 누구라도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마지막으로 완성시킨 학설 '죽음본능'을 바탕으로 월 가 폭탄 테러 사건과 그에 얽힌 정치적. 과학적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다.

1920년 9월 16일 낮 12시, 마차에 실려 있던 폭탄 하나가 월 가를 초토화시킨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중심인물은 전작에서도 등장한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을 지닌 스트래섬 영거 박사와 반듯하고 꼼꼼한 리틀모어 형사와 마리 퀴리 부인의 여 제자 콜레트 루소이다. 이 들은 폭발사건과 관련하여 사건을 조사해가던 도중 주위에서 미스터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뒤에 숨은 배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사람은 어는 덧 진실을 향해 모험을 하기 시작했고 이 모험이 매우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다소 심플한 구성 같지만,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가장 먼저 프로이트나 퀴리 부인과 같은 실존 인물들을 책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단순히 재미의 소설, 그 이상으로 전쟁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부분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만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중심 사건으로 방사능을 맞춰 두어 과학의 발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 숙지시킨다.

다음으로 콜레트와 영거의 러브라인도 빼놓을 수 없다. 콜레트는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전쟁으로 부모를 잃게 되는 상처를 안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주위에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그녀는 매번 사건들에 위협을 받는다. 영거는 그녀의 순수함에 반하여 그녀가 위협을 받을 때 마다 그녀를 구해주고,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콜레트의 동생 치료에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 막 사랑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연인의 모습을 하는 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를 가미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죽음본능>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긴장감 뿐만 아니라 스펙타클하게 이루어지는 상황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에 한참을 흡입되어져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드문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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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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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라는 제목만 읽어도 죽어가는 사람의 눈에서 무언가가 조명되고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데 심지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다.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추리소설로써 최고의 찬사를 몇 번이나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다잉 아이>마저도 열광 할 수밖에 없다. 게이고의 글은 특이하게 흘러간다. 일반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순서와 구조를 역행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글을 더 긴박하게 만들고,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책에 흠뻑빠져 집중해서 읽게 만든다. 단지 게이고의 글이 독특한 진행방식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다. 현재 일어나는 사회문제점을 가지고 결국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끌어내 독자의 심리를 이용한다. <다잉 아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의 시작은 평범하고 지극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달리는데, 그날 밤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쌓여있었다. 여성은 불안감 속에서 자전거를 계속 타고 있었고, 곧 그녀는 갑자기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차와 부딪히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지 모르는 체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를 쳐다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이야기는 새로운 남성의 등장으로 환기 된다. 1년 전 교통사고를 낸 남자는 어떠한 충격에 의하여 기억의 일부를 잃었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서 주위를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어딘가 다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고 말하기를 꺼려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지만 그 내용들은 충격적이고 놀랍기만 하다.

 

<다잉 아이>는 이렇게 빠져들게 된다. 사건의 큰 재목들은 이미 앍고 있지만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균열이 생긴다. 작은 균열이지만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라도 던진 듯이 호기심이 일어난다. 주인공과 함께 그 과정을 쫓다보면 어느 새 책에 빠져들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어긋났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나가는 남자의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지독히도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만든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힘들게 하였으며 숨겨져 있던 비밀들은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쫓아 갈 수밖에 없다.
 

게이고의 책의 결말에는 깨달음과 뉘우침이 있다. 이는 이번 <다잉 아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죄 없는 여성과 돈으로 자신의 잘 못을 덮고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남성을 등장시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이 남성으로 인해 여성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이 책의 결말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현재 우리 시대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이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뉴스로 보도 되기도 한다. 이들도 주인공 남성처럼 돈으로 일을 무마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한다. 이에 대하여 게이고는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지라도 책을 통하여 돈으로 죄를 용서받고 다시 삶을 살아가려는 인물의 결말의 비참하게 그린다.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결말이지만, 이 결말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비현실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정립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일을 현실적인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가는 과정의 결말이 예측하기 쉽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껏 히가시노 게이고는 많은 미스터리 장르에 관한 글을 선보였고, 기존의 방식에 이미 독자들은 익숙해져있다. 이러한 방식 뒤에는 어떠한 방식들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반전을 제공해주었다.
작가 스스로가 스스로의 틀을 깨버리려고 노력하고 발전을 부여해버리니 독자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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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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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친숙해진 작가이고,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하나쯤은 읽어보았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상실의 시대>와 <1Q84>와 같은 굵직한 책들을 통해 그를 재미있게 생각했었다. 무라카미 히루키의 글에는 묘한 분위기와 톡톡 튀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마찬가지로 <빵가게 재습격>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묘한 분위기와 톡톡 튀는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이 책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다.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고 흐름이 스펙타클하게 진행되는 법도 없다. 시종일관 물 속을 헤엄치는 듯한 분위기고 책을 읽다보면 몽롱한 기분만저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톡톡 튀는 상상력과 철학들은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빵가게 재습격>의 표제작은 주인공과 그 친구가 빵가게를 습격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둘은 단지 허기를 채울 만큼의 빵이 필요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그 빵집 주인은 주인공과 친구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끝까지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주인공은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옛날 빵가게를 습격했던 것과 달리 아내가 생겼다. 새로운 사람이 생겼고, 음식도 풍족히 먹는데도 공복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는 주인공에게 새로운 빵집은 습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주인공의 새로운 파트너는 아내 자신인데, 주인공의 저주에 자신도 옮았다는 것이다. 아내의 '빵가게 재습격' 주장을 바탕으로 둘은 새로운 빵가게를 습격하기 시작한다.

이어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ㆍ1881년의 인디언봉기ㆍ히틀러의 폴란드 침입ㆍ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 차례로 실린다.





짧은 단편이지만, 이야기들이 묶여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언가 공통되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상실과 소멸'





무라카미 히루키는 지독한 상실과 소멸에 따라오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미 이야기 했던 표제작 '빵가게 재습격'을 통해 이야기를 하자면, 더 쉽게 이해된다.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은 친구와 틀어진 것은 빵가게를 습격할 당시 들었던 바그너의 음악이 저주가 되었다고 했지만, 둘은 그 이유에서만 틀어지지 않았을것이다. 미묘하게 둘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있던 찰나에 그것을 계기로 둘은 완전히 틀어졌을 뿐이다. 주인공은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을 느낀다. 그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람인 아내와 있어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공복감이 찾아오고 행복하지 않다. 아내는 주인공이 빵가게 습격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재습격을 주장한다.

이어 <코끼리의 소멸>.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을 읽으면서 무라카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확실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히루키의 글을 자칫하면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냥 활자들만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라카미에게 이끌려 몽한 분위기로 따라가지 않고 조금만 가볍게 읽는다면 그의 진짜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딘가 음침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와타나베 노보루. 그가 재미있는 이유는 아마 책을 읽을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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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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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헤드헌터>. 작가의 이름이 이 책을 시작하려는 내 눈을 이끌었다.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오는 이름인데 이미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문구일수록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유심히 책을 살펴보게 만든다. 요 네스뵈는 ‘자존심’ 이라고 일컬어 질 만큼 잘나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록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기도 하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화려한 이력과 멋들어진 사진을 보니 절로 헤드헌터를 펼쳐들게 끔 만들었다. <헤드헌터>에서 눈에 띄는 문구를 꼽으라면 바로 ‘직업 사냥꾼, 그림 사냥꾼, 사람 사냥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단박에 고르고 싶다. 이 책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헤드 헌터>는 사냥꾼들의 술래잡기와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그만큼 숨 막히고 긴박하며 초조하게 만드는 책이다. 과연 어떤 책이 길래 이렇게 흥분하여 떠드는가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므로 간략하게 소개를 할까 한다.





주인공은 헤드헌터, 즉 기업 임원직에 적합한 인물을 추천하고 이들이 각기 위치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이름은 로게르 브론으로 사람을 보고 최고의 능력을 가진 인물을 뽑아내는 것에 으뜸으로 인정받는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가 있다. 그는 여러면으로 아내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비치며 아내를 위해 물질적인 측면만큼은 완벽하게 보상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아내 디아나에게 화랑을 주기도 하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만큼의 여유로운 돈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직업 외에도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그것이 바로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헌터’로 생활하는 것이 었다.
어느 날 그는 최고의 행운이 두 가지나 찾아오는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행운은 바로 최고의 인재 그레베와 다른 하나, 최고의 미술품 루벤스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로게르 브론은 행운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레베를 속이고 미술품을 훔치게 된다. 순조롭게 진행될 줄알았던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책이 더 흥미롭게 진행될수록 호흡이 가빠져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책과 비교하면 <헤드헌터>는 문장이 간결하고 짧다.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가쁘게 쫓기는 기분을 느끼도록 한다. 길고 화려한 수식어는 잘 찾아보기 어렵고 짧고 간결하게 끝난다. ‘헌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요 네스뵈가 문장, 단어 하나까지 얼마나 간결하게 다듬으면서 의미를 담아 넣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헤드헌터>의 옮긴이는 이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빠르고 급격하고 간결하다. 사건이 꼬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빠르며 이 모든 것은 쾌속선을 탄 것 마냥 빠르게 진행된다. 숨가쁘게 쫓아 가다보면 어느 덧 책이 끝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헤드헌터>를 계속 ‘빠르고 간결하고 짧다’라는 강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요 네스뵈의 철저함이 한층 더 책을 흥미롭게 만든다. 결코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요 네스뵈는 한 번 풀었다가 다시 트릭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농락한다. 그리고 가볍게 다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리한 주인공 로게르 브론 보다 뛰어 나는 것이 자신이라고 과시하듯이 독자들을 우롱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내가 요 네스뵈에게 마지막장까지 끌려 다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글을 처음 시작할 때 요 네스뵈는 북유럽의 자존심으로 불린다고 언급했었고 이런 문구일수록 유심히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심히 읽은 <헤드헌터>는 요 네스뵈를 북유럽의 자존심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보인 첫 스릴러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다양한 스릴러를 많이 봐왔고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봤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접해보았다. 그러나 요 네스뵈 만큼 빠르고 재미있게 진행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어렵다. 사건들을 진지하고 무겁게 그리고 진중하게 다루는 스릴러에 질렸다면 <헤드헌터>를 읽을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당신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의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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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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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 산자의 고리’ 책 표지를 받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이다. 이 문구만 읽어보면 <츠나구>는 미스터리물이나 공포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츠나구>는 가슴 한켠을 울리는 사연이 담긴 책이라는 반전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아 잃는 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잘 모른다. 내 주위 누군가의 부재(不在)를 맞이하고 나서야 ‘죽음’을 처음 인정하게 되고 죽음이 두려워 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번 맞이한 죽음은 내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많이 와 닿게 되고 더 많은 부재(不在)를 겪게 된다. 비로소 이미 죽은 누군가를 딱 한번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 것이 조부모 일수도 있고, 형제 일수도 있으며 자식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죽음을 깨닫고 난 뒤, 체념을 맞본 우리가 하는 일은 눈물을 흘리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고 추억한다고 해도 내 일상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마저도 가슴에 묻어 두고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죽음을 다시 외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츠나구>는 죽은자와 산자의 고리를 연결하는 사람으로서 생전에 한 번, 죽어서 한 번 인간의 생사를 뛰어 넘어 만남을 이루어 준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운이 좋으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가 이미 다른 이와 만났더라면 나와의 만남이 파기 되며, 이는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도박을 걸고 하는 셈이다. 또, 만약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가 나와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거절 한다면 마찬가지로 나의 기회가 박탈 당하는 것이다. 츠나구가 이런 조건을 제시한다고 할 지라도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그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몇 가지 사연을 담고 있는 <츠나구>에서는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또 그에 대한 이유도 제 각각 다르다. 그 중 몇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는 돌연사한 연예인과 팬이라고 말하기도 모호한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 여성은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결국 자기애마저 사라져 버린 소심하고 움츠러드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만이 기억하는 돌연사한 연예인과의 단 한번의 부딪힘으로 많은 용기를 얻어서 만남을 청했다. 처음에는 굳이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을 선택할 만큼 많이 주어진 기회도 아닌데 꼭 만남을 청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머지 세 사연 보다 더 생각을 많이 하게한 첫 번째 사연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여성이 아니던가. 심지어 자기애 마저 사라져 버린 여성에게 유일하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 연예인이다. 단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지 여성에게는 연예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가장 가슴깊이 울컥하였던 이야기는 죽은 어머니와 장남의 만남이었다. 흔히 장남, 장녀들이 짐을 많이 떠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서운한 점도 자식들 중에 제일 많을 것 이다. 두 번째 사연의 장남도 마찬가지이다. 장남은 어머니에게 서운했고 그 동안 묻어 두었던 말을 꺼내면서 위로 받게 된다. 장남, 장녀는 아니지만 ‘어머니’와의 만남에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가장 슬프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위에서 간략히 이야기 했던 만남 외에도 다른 만남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모두 공통되는 점은 ‘츠나구’라 불리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계속 이야기 했듯이 ‘츠나구’는 생사와 관계없이 만남을 연결해주는 인물인데, 어딘가 모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 ‘츠나구’에 관한 비밀은 마지막에 이야기로 실린다. 어떻게 생사를 뛰어 넘는 만남을 성사 시킬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죽은 자가 되는 것인지, 그의 가족사는 어떠한지 까지도.
‘츠나구’의 존재 까지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츠나구>를 완벽히 끝까지 읽게 되는 순간이다.





현실에서는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존재 하게 된다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직은 없지만 누가 될까? 사실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까지 나는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사람이며 내 옆의 소중한 이의 부재를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게 된다면 츠나구를 통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죽음이 떠올랐거나 내가 죽게 된다면……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날 다시 <츠나구>를 읽으면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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