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박현희, 뜨인돌, 2011.06.30.) 

  그간 신간평가단에서 읽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거운 책들을 다루게 되다보니, 독서가 즐거운 유희이거나, 혹은 삶을 깨우는 경이로 다가오기보다는 마치 숙제 같아진 점이 있었다. 물론 즐거움과 경이로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독서와 서평 쓰기를 힘겨워한 것은 순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라는 다소 가벼운 제목의 이 책은 제목 만큼이나 발랄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익숙한 전설, 민담, 동화들을 구성하는 비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그 의문은 동화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문을 제기한 바로 우리들 자신을 향한다. 우리의 삶이, 사회가, 현실이 어떤 곳인가? 라는 질문.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간 동화가 비합리적이고, (해리포터 같은 최신 저작에 비해)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온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제 전래동화라고 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 새롭게, 비판적으로 독해되면서 진정 공통적인 것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다. 

 

아렌트 읽기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서유경 옮김, 산책자, 2011.06.03.)

  아렌트가 현대 사유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들 한다. 우리 나라에도 아렌트에 대한 연구가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렌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서 초보자로서는 전념하여 읽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렌트의 뛰어난 제자인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해설서가 번역 소개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확신의 함정 (금태섭, 한겨레출판사, 2011.06.28.)

  이번달 신간평가단 도서로 꼭 선정되었으면 하는 책 중 하나이다. 지금은 그 동안 근대 민주주의 정체를 떠받쳐왔던 삼권분립의 이상이 흔들리는 시대이다. 과거 신자유주의 개혁 몇년간 행정부의 팽창과 의회의 과소화 등이 이야기되며 민주주의의 원칙이 근본부터 의심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이 흔들리면서 사소한 문제부터 결정적인 쟁점까지 정치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적 판단에 의지해 왔다. 미네르바 사건 같은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 세력 간의 논쟁과 시민 사회에서의 합의를 통해 결론을 냈어야 할 문제였다. 언론법 개정 역시도 정치권은 스스로 정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최종 판단을 헌재에 맡겼다.  

  그런데 문제는 법정 역시도 그리 확실한 진리의 담지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종 현안 재판에서 정치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더 나아가 법정은 과학도 인격도 양심도 모든 걸 다룬다. 그것도 확실성이란 범주로. 최근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 피해보상 재판을 보면 사법부는 불확실한 것에 대해 확실성을 요구하는 근대적 지평에 머물러 있다. 현실은 근대성을 초과하는데 정작 첨예한 사안을 다루어야 하는 법정은 현실을 못따라잡고 있다. 당시 그 재판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이 부분은 확실하진 않습니다) 금태섭 변호사의 이번 책이 무척 기대된다. 

 

휴버먼의 자본론 (리오 휴버먼, 김영배 옮김, 어바웃어북, 2011.06.24.)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비판은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 보수적인 정치세력 역시 자본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보스 포럼에 모인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지도자들과 거대 초민족적 기업의 CEO들 역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크게 두 흐름으로 분류된다. 경제학 내에서의 비판이다. 스티글리츠 등 주류 내에서 자본의 비윤리성, 파괴성, 난폭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한 흐름은 경제학 자체에 대한 비판, 즉 맑스의 경제학 비판을 잇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따라 맑스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많은 해설서들이 나왔다.  

  그 와중에 약간 뒷북으로도 보이는 <휴버먼의 자본론>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저자가 바로 리오 휴버먼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대학생 새내기 시절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해하기 쉽고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치밀한 구성과 다양한 사례를 구성하는 성실성에 새삼 놀랐고, 후배 등에게 선물할 일이 생겼는데 마땅한 선물을 못 고르면 그 책을 선물하곤 했다.  

  이번엔 아예 제목에 '자본론'이 들어가 있다. 지난 저작에 비추어 봤을 때 단순히 <자본론>을 쉽게 해설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현실의 다양한 사례를 접목시키고, 더 나아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그의 장점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자본주의와 생명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 그린비, 2011.06.02) 

  맑스코뮤날레는 한국 맑스주의 연구와 실천의 성과이자 치열한 현장이다. 이곳에서 무슨 논의들이 오갔는지를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세계 정세와 한국의 현실이 어떠한지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맑스코뮤날레 논의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알았지만, 언제부터 이렇게 정식으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코뮤날레 후의 결과물들을 종합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특히 이번 코뮤날레의 핵심 키워드는 '생명'인 것 같다. 과거는 자본주의에서 '생태'의 문제에 많이 관심을 기울였었는데, 이제는 생태를 초과하여 그 근원적인 원리인 '생명'으로 논점이 진행된 듯하다. 들뢰즈에 대한 인기로 한때 생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때는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몰랐었는데, 이제는 가치, 정치, 존재, 여성주의 등 다양한 토픽들과 어우러져 '생명'의 문제를 더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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