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다른 사람’의 흡입력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하나....조금은 친절했던 ‘다른 사람’의 전개와는 다르게 살짝 난해하거나 두 번 읽어봐야 숨어있는 은유적인 장치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편은 좀 어려웠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빠져들다가도 해결하지 못한 결말을 섬뜩하게 마주하면 뒤의 친절한 작품해설을 보며 이해하려는 노력도 들여야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남성독자들에겐 (폭력과 무능함의 단계를 넘어서는)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캐릭터는 비중도 없거너 이미 너무 쉽게 결론이 나와 버리는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여성의 서사를 위해 깔아버리는 배경이 아니라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뤄 주길 바라면 작가의 개성을 포기하라는 요구인가...

사인본을 예약 구매해서 받아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목차를 펼쳐보니 이미 읽은 단편이 3개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독서를 그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었다. 7편 중 거의 절반이 봤던 작품이라니.

얼마 전 씨네21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컬럼을 기고한 걸 본적이 있어 테일러의 팬이라는 짐작은 했는데, 표제작 화이트호스가 그렇게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소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백마라니, 대체 강화길작가의 ‘백마’는 어떤 모습의 ‘백마’일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그 ‘백마’라는 인상이 좀 더 깊게 남았다.(다시 읽어야 겠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아티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의 타이틀을 두 번이나 거머쥔 아티스트. 실패하지 않는 장기간의 음악 커리어와 같은 규모의 수많은 남성편력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헐리우드의 셀러브리티. 그런 점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존재감은 ‘화이트 호스’뿐만 아니라 ‘오물자의 출현’에서도 안착한 느낌이다. 김미진이 좀 지적으로 모자란 이미지였다면 테일러는 항상 도덕적으로 모자란 대중의 평이 따라다녔으니까.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강화길작가는 여성이 혐오하는 것을 쓰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바치고 있다는 느낌도, 테일러와 비추어 보면 테일러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의 여성들이 혐오하는 ‘짓’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깎아내는 데 헌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리뷰에 테일러 스위프트이야기를 길게 남기는 건 이 소설 전반에 흡수된 그 미국가수의 분위기 때문이자 작가가 다시는 그렇게 길게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에도 차지하는 분량이 커서인데,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빨리 강화길작가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늪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난 케이티 페리의 팬이라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피상적인 페미니즘운 그냥 본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편파적인 당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 P73

오래전, 이 길 양쪽으로 폐가가 늘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점집이 있었다. 늙은 점쟁이들은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액운을 점쳤다. 그들이 진심을 감추는 순간은 돈을 들고 찾아오는 파리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뿐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마음에 품은 희망을 누군가에게 들켜야만 하는 사람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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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기호작가 마니아로서 지금은 서점에서 구입 할 수 없는 책을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하고 탐독하였다. 이 시대의 최고의 묵직한 유머리스트답게 짧고 굵은 메시지나 유쾌한 웃음이 만선하여 정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에세이답게 몇가지 반론하거나 대변해 주고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은’으로 불리는 원로 작가의 설화는 풀지 않겠지만, 장애체험의 의의와 목적이 체험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인식의 변화, 인권감수성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이기호작가의 의도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인 것 같다.

2천5백 원담배 한갑에 세금이 천백 원,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나는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보건복지가족부 에선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담배 피우면 일찍 죽는다고, 건강 해친다고 잔뜩 겁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담배를 팔아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는 것은, 마치 흡연자들로 하여금 어떤 부당한 식민 통치를 당하고 있다라는 자괴감을 갖게 해준다. - P23

모두 흡족한 얼굴들이다. 통과를 허락받은 자의 얼굴엔 남모를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보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주차차단기라는 것은, 타인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드러내주기 위한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대기업사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목에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을 자랑스럽게내걸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원증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백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원증이 명함이 되고, 주차차단기가 아파트 시세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 P33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5

작가란 마치적십자 회원과도 같은 것이어서, 언어에는 국경이 있지만, 세계관에는 국경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날것의 인간을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문학에서 국경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상품과 정치의 시각으로 예단하려는 분들뿐이다. - P53

자식 낳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게 뭔지 알아? 자식핑계로 욕심 늘리는 거래. 그게 바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첫걸음이래. - P135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모든 렌즈들은 관찰이 아닌, 감시로 그 역할들을 바꿔나갔다. 사실, 그건 렌즈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눈이 관찰이 아닌 감시 쪽으로 변해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렌즈 또한그 시선을 따라온 것이다. - P155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의 세계이자, 결정론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이미 태어날 때 결정되어 있다는 인식.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유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고, 그것들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라 할지라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 그것은 나름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웬일인지 그리 위로가 되진 않는다.
자꾸 우리 환경 또한 필연적으로, 결정론적으로 굳어져만 가고 있다는 생각, 재단사 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 어려워졌다는, 조금 씁쓸한 생각. - P223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몸담았던 조직은 노동의 질보다는, 노동의 충성심을 더 높이 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조직들 또한 그것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거대한 병영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 P226

내 청춘의 대부분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등록금과 세월을 바친 만큼, 내 지식이, 내 의식이 한 뼘쯤이라도 성장했는가, 자문해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만다. 내 공부라는 것이, 학문에 온전히 바쳐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둔한 머리로 대학원에 진학한 것 역시 돌아보니,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두려움과, 사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길 바라는 욕망, 그 마음이 늘 학문보다앞섰다. 그러니 근래 말이 많이 나오는 학력 위조에 대해서도 나는그리 할 말이 없다. 졸업장을 갖는다 해서 학력 위조에서 자유로운가? 너는 그래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얼마나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행동했는가? 대학에선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해나는 묵묵부답,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결과의 위조 못지않게, 과정의 위조 역시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사항이다. - P228

독서는 하나의 읽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또한 누군가와의 대화 행위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16세기 사람이든, 19세기인물이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밀담을 나누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작자와 나 사이의 차이와 합일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 경험이다. 한데, 그 책들을 누군가 골라주면,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아닌, 강요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 또한 하나의 대화이니, 그것이 타인의 강요보다는 훨씬 낫다. 실패들 많이 하시길. - P268

장애인 체험 학습이란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안대와 지팡이를 주고 몇백 미터쯤 걸어보게 하거나, 짝을 이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것이 주종을 이루는 프로그램이다(때가 되면 정치인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함께 체험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는, 이런 체험 학습을통해 현재 장애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열악한지, 일깨워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그들 자유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실제 장애인들이 그런 행사를 어떤 기분으로 바라볼까, 한번쯤 깊이 생각해봤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몇백 미터나, 반나절로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의 고통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뿐이다. 체험의 속성이란 것이 그렇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듯한 포즈이지만, 최종 기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고 마는 것. 아이들에게안대를 주고, 결국 자기 두 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체험학습. 이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농활 한번 다녀와서 농민의 현실을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 체험 학습이란, 어쩌면 포즈 학습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즘 시대에 그것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 또한없으니. - P286

내가 저 영화 원작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영활 보고 내가 상상한 거하고 다르면 어떡해. 친구의 반응은 좀 예민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활자를 보면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상상과 전혀판이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
사실, 그것은 영화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어찌 보면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상상이, 시각화라는 편협하고 왜소화된 감각으로 재편될 때 벌어지는, 별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 P87

아버님은 입이 짧은 탓에 어머님이 하신 음식외엔 결코 수저를 대지 않는 분이시다. 어머님이 주말마다 내려가서국이다 찌개다 이것저것 해놓고 온다지만 여름이다 보니 채 이틀도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후엔 주로 라면을 끓여 어머니가 담근치와 함께 드신다고 했다. 글쎄 큰일이구나, 식당에 나가 이것저것사드시라고 해도 맛없다는 말만 하니, 어머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그건 다 어머니 잘못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 식성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이 싫진 않았는지 어머니는 내게 이런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거야. 나 죽으면 그저 먼저처럼 끝날 거 같고, 그래, 내 한사람만은 나를 기억하게 해야지, 한 사람만은 내가 해준 밥을 기억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더니, 그게 그렇게 됐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조금 울컥해졌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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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작가는 무거운 작가이다. 주제도, 문체도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무겁게 다가온다. 소설도 그러하니 에세이를 집어들었을 때도 기분을 가볍게 날아가게 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 무게의 중량이 우울과 절망에 빠지게 하진 않는다.
그래서 차분하게 작가의 감성에 잠시 들어가보려 했는데 한 문장이 평소 내 독서의 기질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김애란작가의 문장이라면 평생 살 내 집은 아니더라도 조금 오래 내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전세 정도로 환영이다:) 내 삶은 누구에게나 비극이지만 남의 인생은 희극이라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따듯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작가이니까. 위로를 딛고 내 삶을 찾아 나서게 해줄 수 있을테니까.

‘맛나당‘은 내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판가게다. 우리 가족은 그 국숫집에서 8년 넘게 살았다. 머문 기간에 비해 ‘맛나당‘이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곳에서 내 정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론 교육이나 교양으로 대체 못 하는, 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가. 그 시절, 뭘 특별히 배운다거나 경험한단 의식 없이 그 장소가 내게 주는 것들을 나는 공기처럼 들이마셨다. - P10

파라솔 모양의 아니 불不 자가 완전完全함 앞에 붙어, 완전함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풍경을 그려본다. - P99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 - P124

그날, Y에게 준 엽서 속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
Y의 이름과 더불어 서명을 부탁한 내게, K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구를 직접 써준 거였다. 언젠가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 P250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있다. - P252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이라는 뜻이 먼저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262

이 경사傾瀉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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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PD를 형이라 부르고, 회계 팀 신유리 대리를 누나라고 부르는 조연출의 태도만은 나날이 더욱 거슬렸다. 친구처럼 지내라는 PD의 말에도 불구하고 호재가 꾸준히 조연출을연출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이제 겨우 입사 1년 차 새내기인 탓도 적지 않았다. 호재는 자꾸 일이 꼬이는 게 조연출 탓인 것 같아 그를 앉혀 두고 조직의 말단으로 사는 데 유용한 충고와 유의미한 지적을 조목조목 일러주고 싶었다.
알량한 인정에 기댔다가 배신당하고 상처 입는 쪽은 계약직인 너일 거라고, 월말에 메일로 지출 경비 내역을 주고받는게 고작인 신유리 대리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건 공적 영역을무시하는 자만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고, 아니면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고. - P57

호재가 그들의 처지를 몰라서 빈정거리는 건 아니었다. 정규직 전환으로 통하는 기회는 요원하고 기회의 유무조차 회사의 대내외적 사정에 따라 임의로 주어졌다. 인내와 끈기를장점으로 부각하는 이력보다 임기응변과 변통에 능한 이력이훨씬 나았다. 정규직에게 바라는 게 충성을 드러내는 인내라면 계약직에게 바라는 건 야망 없는 열정이었다. 회사는 그들이 남아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 자란 아들처럼 마땅히 떠나 주길 바랐다. - P58

호재는 자신이 혼자나 다름없고, 누구나 어른이 되면 다 혼자가 될 텐데, 그렇게 보자면 나는 미래를 앞당겨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 P27

"재수 없는 날에는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재가 말머리를 돌렸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본 적도있었는데 거듭 이유를 찾아봐도 답은 명백했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 P69

저마다 감내해야 하는 부당함과감수해야 하는 위기가 달랐다. PD는 그 부당함을 호재를 통해서 실감했고, 조연출을 통해서 위기감을 잊었다. 조연출은그 모든 불안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잠재우는 듯했다. 미래에 거는 기대가 없는 호재는 그 모든 불안과 부당함과 위태로움을 무심하게 견뎠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 P62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호재는 고모부에 대해선 몇 가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의 호의를 부끄러워서 거절하고 두 번째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 거절은 겸허한 자세에서 비롯하는 예의이니 그에 대한 치하로 주어지는두 번째 기회는 사뭇 거창할 거라는 기대 때문에 스스로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삶의 호시절을 꿈꾸다가 주말마다 로또에 낙첨하길 반복하면서 첫 번째 기회가 언제였는지 울분에 차서 되짚는 사람, 절망과 비관에 빠진 자신이 부끄러워 술에 취해 낙관과 호언을 내지르다 지쳐 잠드는 사람.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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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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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다. 주인공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든 작가의 사상에 비추어 판단하고 평가되는것이고, 그것이 글의 뉘앙스에 담긴다. 소설보다 그런면이 더욱 두드러지는 문학장르는 에세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에세이는 쉽게 읽히지만 쉽게 다가가기 두려운 장르일 수도 있다. 이 작가의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데 그 가치관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실망감을 마주하기 두렵다.

이름없는 신문사의 기자라며 특정직업군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언어적 표현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작가의 일기가 다소 심기 불편했다. 소설을 보면서 냉철한 비판의식이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남의 험담을 들추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는 작자였다. 알랭 드 보통을 대놓고 깠으니 나도 그냥 대놓고 까버리고 싶은 작가이다. 너도 알겠지만 너 참 뭐 대단한거 없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선악과(善惡果)의 정체다.
생각은 현실을 넘어선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생각 덕분에 우리는 애국이니 박애니, 살을 비비며 온기를 느낄 수 있는사랑을 넘어선 거대한 사랑을 상상한다. 구원이니 해탈이니, 근육의 나른함과 위장의 포만감을 넘어선 거대한 행복을 상상한다. 계급이니 국가니, 내가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넘어선 거대한 집단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허구를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가 거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거대한 행복을얻지 못했으며, 거대한 집단 속에서 소외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 P123

인간은 가치를 좇는 존재다. 그리고 가치를 좇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폭력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제멋대로 세계를 가치 있는 것, 가치가 덜한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서는 필연적으로 구속과 억압을 만들어낸다. 모든 광명은반드시 그림자를 만든다. 아니, 이건 적절치 않은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이에 데생을 할 때 펜으로 어둠을 그려서 빛을표현하듯, 그림자가 광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옳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상대에게 충실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열정을 금방 잃고, 섹스의 가능성이 있는 타인을 향해 수시로 한눈을 팔며, 오래도록 한 가지 대상에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이 해방된 상태의 인간이다. 결혼은 그런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압해서 허구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운명적 사랑, 백년해로라는 개념을 우리는 운명을 구속함으로써 운명을 만든다. - P187

이것이 허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사제의 삶이 왜 고귀한가? 하느님이 그 삶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인가?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사제들의 삶에 가치를부여한 것은 사제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구속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사제 서품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사제복을 입고 자신이 선언자임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 P188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냥 난센스일 뿐이다. 물론 미신적이고 비본질적인 억압, 예단은 얼마를 해 가야 한다는 따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그러나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가치를 찾는 여정의 한 수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인위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면, 인간은 유인원이 된다. 일단 외출할 때에는 옷을 걸쳐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에 반대해 여름에는 홀랑 다 벗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
그래서 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 같은 개념을 우습게 본다.
왜냐하면, 낭만적 사랑이라는 가치는 독점성과 배타성이라는 구속이 있어야 겨우 발생하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에서 ‘연애‘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기껏 해봐야 호혜 평등한 섹스 서비스 교환에 지나지 않는다. 곧장 말해 섹스, 얄팍한 섹스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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