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중 처음으로 읽는 소설이었다. 인물 재등장 등의 기법으로 파리를 배경으로한 하나의 세계관을 집필한 발자크의 소설 중 얼마나 읽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 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사교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는 등장인물의 수가 많고 초반부에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후반부에 큰 변수를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등 전체적인 큰 맥락 이외에 집중해야 할 부분적인 요소들이 많다. 나는 단순한 인물가계도를 선호하는 만큼 사교계의 배경은 소설을 읽는데 큰 부담을 준다.
또 고전소설인 만큼 문체는 현대의 일상적인 문체와는 다르고, 심지어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의 격차도 있어 익숙하지 않다. 고전은 시대적인 사고도 차이가 나며, 지명, 장소에 대한 구도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는 특히나 소설을 상상하는 힘이 발동하지 못해 나 자신의 이해력을 의심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재미를 놓칠 수는 없다. 상황이 다르고 생각은 다르지만 인물들의 감정(마음)은 현시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성애라던지, 욕망이라던지, 이기심이라던지 인간의 보편적인 감수성은 비슷하니까....

출세에 대한 욕망은 비판받을 일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갈망은 비판을 받을 일이 주변에서 생기기 마련인 것 같다. 순수한 목적이라도 의도치 않게 안좋은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게 일상 다반사인데 맹목적인 갈망은 얼마나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가.
으젠의 출세에 대한 욕망은 다른 발자크의 소설에서 큰 성공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보트랭씨의 말대로 출세는 노력보다는 기회와 운이라고 했는데 으젠이 고리오영감의 후원과 델핀의 정부가 된 것을 발판삼아 어떤 야망을 펼치며 성공가도를 누릴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만 으젠이 고향집에서 부모나 누이들로부터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그도 고리오영감의 두 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고리오영감은 으젠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헌신을 비참함 보다는 숭고함으로 표현을 하며, 으젠은 그러한 대화를 통해 고향의 부모와 누이에게 받는 지원에 대한 정당함을 가져갔다는 느낌이랄까.
소설의 분량은 으젠의 몫이 더 많지만 작품을 리드하는 입체성이 강한 캐릭터는 고리오 영감이고 이 또한 이 소설의 제목이 고리오 영감이어야 함을 설명해주고 있다. 고리오 영감과 으젠의 연결고리는 고리오의 두 딸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그의 출세를 위한 부모나 누이의 지원을 받는 모습 등이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모습을 통해 현시대의 모습을 같이 비교해 봤을 때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부모의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성공의 모습을 자식을 통해 그리고서 열성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점에서 대단히 섬뜩한 일이다.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기 보다는 본인 욕망에 대한 투자에 가깝다.
고리오 영감도 사교계에 화려한 삶의 대한 욕망을 딸들 통해 실현시키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순수했던 레스토부인, 뉘싱겐부인은 고리오영감의 욕망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일깨웠을 것이고 결국 사교계의 향락에 깊숙이 빠져버렸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라면 고리오 영감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으젠에게 파티준비로 관심을 주지 않는 뉘싱겐 부인에 대한 으젠의 생각(아버지 시체를 밟고서라도 무도회에 갈 여자라는 문장)이 인상깊었다. 소설을 한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그리고 고리오 영감이 사망하고 나서 보케르부인 하숙집에서 영감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밥맛 떨어지는 일, 혹은 다행한 일이라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 허망한 부성애와 사교계는 물론 평민들의 인간관계까지 이기적이고 고독한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다음 발자크의 소설을 또 기대해 본다.

결국 이 하숙집이 그녀의 전부를 상징하듯이, 그녀의 모 든 모습이 이 하숙집을 설명해 준다. 간수 없는 감옥이란 있을 수 없듯이, 독자들은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빼놓고 다른 하나를 상상할 수 없다.(15p)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26p)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힘을 증 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27p)

그녀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까운 사람은 못 믿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여는 그런 여자였다. 이상하지만 사실인 이 정신 상태의원인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 면서도 자신들의 허점을 그들에게 보인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당연히 받을 벌을 받는다고 남몰래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느낀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지니지 못한 장점을 지닌 듯이 보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자기들과 관계가 없는 존경과 사 랑을 불시에 얻고 싶어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위험조차 무릅쓰고 말이다. 결국 친구나이웃 사람들에게 아무런 선행을 베풀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이익에 골똘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사람들도 있다. 즉 애정의 원(圓)이 자기들과 가까워지면 가까 워질수록 덜 사랑하게 되고, 멀어질수록 더욱 친절해진다. 보 케르 부인은 근본적으로 치사하고 잘못된, 밉살스러운 이 두 가지 성격을 함께 지녔다.(33p)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34p)

이러한 고리오 씨의 변화는 그의 재산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다 주인인 자기를 괴롭히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고 그녀는 짐작했다.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째째하니까 남도 째째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35p)

출세하기 위해서 자네가 해야 할 노력과 필사적 싸움이 어떤가를 판단해 보게. 항아리 속에 들어 있는 거미들처럼 자네들은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네. 왜냐하면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기 때문이야.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떨치든지 아니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 집단 속으로 대포알처럼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 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에 굴복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비방하려고 들지. 왜냐하면 천재는 분배하지 않고 독점하니까 말일세. (148p)

불안정한 처지 때문에 받은 괴로운 타격 아래에서도 그는 이런 생활이 주는 지나친 향락을 단념할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계속해 가려고 마음먹었다. 일확천금의 요행수도 이젠 거품처럼 사라졌고 현실적 장애가 늘어갔다. 뉘싱겐 부부의 가정 비밀을 잘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연애를 출세의 방편으로 삼으려면 온갖 수치를 무시하고 청춘의 과오를 속죄하는 고상한 관념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지만 속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온통 좀먹어 있었으며, 그러한 삶의 덧없는 쾌락에 대한 죄과는 끝없는 고뇌로써 치러지는 것이었다. 자신이 택한 이 인생 속에서 그는 라 브뤼에르의 「방심자」처럼 진흙 속에 잠자리를 만들어서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방심자」처럼 아직은 자기 의복만을 망치고 있었다.(212p)

보케르 부인은 식탁 주위에 열여덟 명 대신에 열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마디도 얘기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 만 모두들 이 여주인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식사만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보트랭과 그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곧 그들은 이런저런 대화에 끌려들어서 결투와 도형장과 재판소와 개정해야 할 법률과 감옥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크 콜랭이나 빅토린이나 그녀 오빠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열 명뿐이었는데도 마치 스무 명이나 되는 듯이 떠들어댔다. 그 때문에 보통 때보다 더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식사 와 전날 식사 사이에 있었던 차이점의 전부였다. 파리에서 매일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또 다른 먹이를 구하는 이 이기적인 사회의 습관적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보케르 부인 자신도 뚱뚱보 실비의 얘기를 듣고서야 희망에 가득 차서 마음을 가라앉혔다.(287p)

나도 모르겠어요. 나의 모든 생명은 당신에게 있어요. 아버지는 나에게 심장을 주셨지만 당신은 내 심장을 뛰게 했지요.
세상 전부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죠! 어쩔 수없는 이 사랑 때문에 내가 죄를 저지를 때 당신은 나를 받아주시기만 하면 돼요. 나를 원망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나를 불효자식으로 생각하시겠지요? 오,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처럼 훌륭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지요. 우리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말미암아 어떻게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왜 우리들의 결혼을 막지 않았을까요? 우리들에대해 깊이 생각하셨어야 했을 텐데? 이제 와서야 알았어요. 아버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괴로워하고 계세요. 그렇지만 우린들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아버지를 위로하라고 하시겠지요! 결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없을 거예요. 우리들의 비난이나하소연이 아버지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체념은 아버지에게 고통을 줄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이쓰라린 경우가 있어요(338p)

기민한 그는 델핀의 본성을 꿰뚫어보았다. 심지어 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 시체라도 밟고 무도회에 갈 수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에 대해서 이치를 따져주는 역할을 할 힘과 그녀 마음을 언짢게 할 용기와그녀와 헤어질 만한 덕성도 없었다.(350p)

「밥맛 떨어지겠소. 한 시간 전부터 영감에 대해서 온갖 얘기를 다하지 않았소?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 오늘도죽은 사람이 육십 명이나 되는데, 파리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애도의 뜻을 표하겠다는 말이오? 고리오 영감이 뻗었다면, 본인으로서는 차라리 다행한 일이지! 영감을 좋아한다면 가서 보살피시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나 하 게 해주시오」
「오! 맞았어요. 영감이 죽은 것은 본인에게는 참 다행한 일이에요! 불쌍한 영감은 일생 동안 줄곧 불행했을 테니까요.」과부가 말했다.
으젠이 보기에는 부성애의 상징이었던 이 영감에 대한 유일 한 추도사란 이런 것이었다. 열다섯 명의 하숙인들은 보통 때처념 잡담을 시작했다. 으젠과 비앙숑이 식사를 끝냈을 때 포크와손가락 소리, 대화하다가 웃는 소리, 무관심하고 식충이들인 이들 얼굴에 나타난 가지가지 표정들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두 사람은 소름이 끼쳤다.(3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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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따듯하다. 읽는 중간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설을 보다가 헨리제임스가 나와서 아 그렇구나 했다. 인생의 덧없는 아이러니.....


그런 저런 소소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건네는 위로로 책장을 넘기다 <문상>, <새 보러 간다>, <모리와 무라>에서는 뜻밖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요동쳤다. <문상>의 희극배우를 위로하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서 위로를 하는건지, 가족관계의 아픔을 위로하는건지 모호해지다가, 송이 지난 이별에 대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 '물론 배우는 안 웃어요. 배우가 안 웃어야 더 웃기죠'라는 희극배우의 아이러니를 통해 헨리제임스와의 연결고리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인생 참 덧없다.

<새 보러 간다>에서 눈이 점점 멀어 글이 보이지 않는 현석경작가가 윤의 자신의 아카이브에 대한 방대함만을 보고 윤을 인정하며 같이 작업하려는 모습에서도 아이러니함은 극치를 보여준다. 윤의 상처와, 김수정의 허무한 단념, 그리고 최고의 갑의 위치에 있는 현석경 작가의 여유넘쳐 가증스럽기 까지한 자만감은 진정한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모리와 무라>에서 화자는 숙부의 유산으로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해경을 통해 지난 가족의 가정사를 알게되며 숙부의 트라우마와 자살한 사촌의 몫까지 챙기게 되는 화자는 자신의 가정이 숙부의 트라우마에 빚을 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에겐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가족을 생각하면 어딘가 하소연해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 나에게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을 억누르며 책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작가의 처방을 받아도 박멸 되지 않는 바이러스와 같기 때문이 아닐까. 


따듯하다고 시작했지만 나에겐 따듯함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무던히 흘러가는 강에 흘려보내는 나의 상처로 접은 종이배가 나뭇가지에 걸려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 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27p)

어떠냐고……… 은수가 어떻긴 뭐가 어떤가. 그냥 잘생기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뭔가 일이 안 풀리고 불안정하고 종종 죽고 싶고 그런데도 일은 나와야 하고 꿈은 멀고 다 귀찮고 때론 내 몸이라느 것 자체가 귀찮아서 버리고 싶고 길바닥에 버리고 줄줄 새어나오게 심장이랑 머리랑 손톱이랑 발목이랑 벗어두고 홀가분해지고싶지, 그렇게 젊은 게 좋으면 니들이나 가져라, 하면서 젊다고 할수 있는 것들은 다 버리고 눕고 싶지. 아무데나 누워서 구름이나 세고 싶지.(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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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퀴어판 소설쯤 되는 것 같다. 닉 게스트는 개츠비처럼 상류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편입되고 싶었던 그 사회의 추잡하고 이중적인 면모를 경험하면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씁쓸한 캐릭터라는 점이 겹쳐진다.
개츠비는 닉 캐러웨이의 시선에서 개츠비의 몰락을 그렸다면 아름다움의 선에서는 닉 게스트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특히나 남성 동성애자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끼는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점에서 흥미롭다. 도한 개츠비는 데이지 뷰캐넌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주된 사건의 발단이었다면 닉 게스트는 이성애자인 토비 패든을 짝사랑하면서 그 주변의 성적 관계들을 맴도는 모습이 동성애자로서의 주변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닉 게스트보다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 찰스가의 가족들에 비해, 옥스퍼드 출신의 평민 닉 게스트는 상류사회를 동경하고, 토비 페든을 짝사랑 하는 등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품으며 주변을 방황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더 비극적인 듯 하다.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닉 게스트가 순수하게 보호하고자 했던 제럴드의 불륜, 캐서린의 정신병력, 와니의 이중생활은 상류층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닉 게스트를 희생양으로 써버리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 닉 게스트가 상류층의 명암 중 밝은 면만 바라보고, 순수한 소신으로 그들이 가진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면을 체화해 내는 것에 실패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부분은 양심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상기시키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의 선은 윌리엄 호가스가 ‘미의 분석’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라는데, 닉은 화려한 고가구나 남자의 등과 허리, 엉덩이 라인을 보며 아름다움의 선을 느낀다. 다만 정작 부를 소유한 제럴드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이 소유한 고가구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다. 되려 닉에게 가구나 예술작품에 대한 조언을 듣지만, 심지어 이마저도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소설 초반에 인용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와 닉 게스트가 연구하는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상류층의 이중적인 아이러니한 모습, 특히 폴리와 같은 인물들이 선거에 당선되는 모습 등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아이러니컬하고 모순된 모습들이 냉철하게 그려진다. (요즘엔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고 허탈함, 박탈감을 일반 시민들에게 안겨준다.)

퀴어 소설 답게 동성애에 대한 논점도 빠질 수 없는데, 닉 게스트의 성에서도 나타나듯이 작가는 동성애가 우리 사회의 완전히 포용 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떠도는 모습을 페든가의 주변인으로 겉도는 닉의 모습과 중첩 시키며 ‘게스트’, 즉 손님(주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으로써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닉 게스트는 옥스퍼드 출신으로 페든가와의 우연한 인연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얻었지만, 동성애자이고, 귀족이 아니며, 그의 전공은 정치학이나 경영학 등 성공과는 거리가 먼 문체, 헨리 제임스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닉 게스트에게 주변부적인 대상을 이입하면서 작가는 동성애에 대한 따스한 연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80-90년대 에이즈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불치병이던 시절 퀴어요소가 가미된 예술작품에는 기승전-에이즈라는 공통된 문법이 있었는데, 이제는 주기적인 약물치료로 정상수치를 유지하며 전염력도 낮출 수 있는 만성질병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에선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는 불편한 내용이긴 하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초, 중반부에서 늘어지는 심리묘사가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며, 사건이 발생하는 후반부에서는 되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심도있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영국 상류층 사교계가 배경인 소설답게 등장인물의 수가 만만치 않고, 잠깐 스쳐가는 인물인 듯 했는데 한참 지나서 사건을 전복시키는 주요 인물들(로브메리 찰스, 페니 켄트, 제니 그룸)이 있는 등 집중력을 상당히 요하는 소설이다.

"그래, 내 조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케슬러 경이 미소를띠고 물었다. 그가 어떤 경쟁에 대해 묻는 것인지 어떤 예측불허의사건에 대해 묻는 것인지 닉에게는 분명치 않았다.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를 돌려주며, 그는 친구 사이에 용인될 만한 아이러니의 테두리 안에서 우정 어린 긍정을 내비 치는 이 미묘한 일을 스스로 잘해냈다고 느꼈다.(81p)

"자네도 이 집에 머무나?" 레이디 파트리지가 물었다.
"예, 꼭대기층의 아주 작은 방을 쓰고 있습니다."
"호크스우드에 작은 방이 있는 줄은 몰랐군. 하긴 꼭대기층에 올라가본 적이 없으니." 그의 겸손함을 가져다가 그를 더욱 바닥까지끌어내린 그녀의 솜씨에 닉은 반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이 그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였다.(113p)

"베르트랑? 아, 위대한 인물입니다!" 제럴드는 그 말이 자신에게도 쉽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듯 무척 자주 그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382p)

"맞아요, 참 끔찍한 일이었지 요." 닉이 말했다. 그에게는 전혀 새롭고도 놀라운 정보였다. 그에 게 떠오른 첫 생각은 자신이 와니와 아주 가깝다고 자족적으로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족의비밀, 그와 와니 사이의 하찮은 성적 음모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어두운, 들여다보기 힘든 비밀이었다. 그리고 와니는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었다..…. 즉시 와니가 더 감동적이고 더 매력 넘치 며 더 용서받아 마땅한 사람인 듯 느껴졌다.(383p)

그리고 아마도 매번 무심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욱 소중해지고 또한 아파지던 기억, 리오에 대한 은밀한 찬사이기도 했으리라. (567p)

제럴드는 정원을 바라보았지만 실은자신의 불만만 들여다보고 있었다.(6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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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지음 / 마카롱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큰 기대없이, 특히 생각도 없이 주문을 해버리고 뜻밖의 수확을 거두는 경우가 좀 많았다. 그래서 이 책도 그렇게 주문을 했다면 이건 큰 기대가 없이 주문했다는 말에 모순이려나. 그래서 이건 내심 기대를 하고 주문을 했던 게 맞나보다. 책이 재밌겠지보단 행운이 또 따라줄거라는.
아무튼 책을 진지하게 까보려는 의도를 주려 하였으나 그건 실패한 듯 하다....
영화화 됐다는데, 역시나 출생의 비밀, 애증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비현실적인 로맨스, 조폭과 비리경찰, 가정사를 써먹는 한국적 신파까지 잊지 않고 꺼내 뒤범벅 해놓은 한국적인 장르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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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회사다니면서 쓴 소설이라니, 선입견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문장이 조금 거슬리면 나도 직장인인데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어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인지 착각인지도 모를,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가 섞인 감정까지 들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꼭 보고 싶었다. 어느 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뻤다. 왠지 박상영작가가 성공하는 모습에 내가 뿌듯하듯이, 그냥 그런 직장인이 뻔한 직장인의 감정을 글로 담아주고 베스트 셀러로 올라가는 것이 기뻤다.
누구나 다 이러고 살지만 나 만큼은 그러고 살지 않는다는 믿음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그런 삶을 들여다 보며 비웃는 느낌.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남의 배아픈 성공을 인정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감상을 쓰기엔 너무 어려운 젠더 감수성은 생략해야겠다.)

물론 휴대폰으로 듣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럴 때에도 장우는 무조건 앨범 전체를 다운받아들었다. 그게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디지털싱글은 책을 원하는 장만 찢어서 가지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겨졌다.(110p)

그녀가 나쁜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세대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치일 테니까.(142p)

여자는 이 무난하다‘는 평균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희소한 것인지를 해가 지날수록 체감하고 있었다. (171p)

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193p)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방송국이고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면서 회사에서 가족 의료비도 지원해주었다. 아빠는 그 돈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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