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만 따듯하다. 읽는 중간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설을 보다가 헨리제임스가 나와서 아 그렇구나 했다. 인생의 덧없는 아이러니.....


그런 저런 소소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건네는 위로로 책장을 넘기다 <문상>, <새 보러 간다>, <모리와 무라>에서는 뜻밖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요동쳤다. <문상>의 희극배우를 위로하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서 위로를 하는건지, 가족관계의 아픔을 위로하는건지 모호해지다가, 송이 지난 이별에 대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 '물론 배우는 안 웃어요. 배우가 안 웃어야 더 웃기죠'라는 희극배우의 아이러니를 통해 헨리제임스와의 연결고리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인생 참 덧없다.

<새 보러 간다>에서 눈이 점점 멀어 글이 보이지 않는 현석경작가가 윤의 자신의 아카이브에 대한 방대함만을 보고 윤을 인정하며 같이 작업하려는 모습에서도 아이러니함은 극치를 보여준다. 윤의 상처와, 김수정의 허무한 단념, 그리고 최고의 갑의 위치에 있는 현석경 작가의 여유넘쳐 가증스럽기 까지한 자만감은 진정한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모리와 무라>에서 화자는 숙부의 유산으로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해경을 통해 지난 가족의 가정사를 알게되며 숙부의 트라우마와 자살한 사촌의 몫까지 챙기게 되는 화자는 자신의 가정이 숙부의 트라우마에 빚을 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에겐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가족을 생각하면 어딘가 하소연해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 나에게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을 억누르며 책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작가의 처방을 받아도 박멸 되지 않는 바이러스와 같기 때문이 아닐까. 


따듯하다고 시작했지만 나에겐 따듯함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무던히 흘러가는 강에 흘려보내는 나의 상처로 접은 종이배가 나뭇가지에 걸려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 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27p)

어떠냐고……… 은수가 어떻긴 뭐가 어떤가. 그냥 잘생기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뭔가 일이 안 풀리고 불안정하고 종종 죽고 싶고 그런데도 일은 나와야 하고 꿈은 멀고 다 귀찮고 때론 내 몸이라느 것 자체가 귀찮아서 버리고 싶고 길바닥에 버리고 줄줄 새어나오게 심장이랑 머리랑 손톱이랑 발목이랑 벗어두고 홀가분해지고싶지, 그렇게 젊은 게 좋으면 니들이나 가져라, 하면서 젊다고 할수 있는 것들은 다 버리고 눕고 싶지. 아무데나 누워서 구름이나 세고 싶지.(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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