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퀴어판 소설쯤 되는 것 같다. 닉 게스트는 개츠비처럼 상류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편입되고 싶었던 그 사회의 추잡하고 이중적인 면모를 경험하면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씁쓸한 캐릭터라는 점이 겹쳐진다.
개츠비는 닉 캐러웨이의 시선에서 개츠비의 몰락을 그렸다면 아름다움의 선에서는 닉 게스트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특히나 남성 동성애자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끼는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점에서 흥미롭다. 도한 개츠비는 데이지 뷰캐넌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주된 사건의 발단이었다면 닉 게스트는 이성애자인 토비 패든을 짝사랑하면서 그 주변의 성적 관계들을 맴도는 모습이 동성애자로서의 주변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닉 게스트보다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 찰스가의 가족들에 비해, 옥스퍼드 출신의 평민 닉 게스트는 상류사회를 동경하고, 토비 페든을 짝사랑 하는 등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품으며 주변을 방황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더 비극적인 듯 하다.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닉 게스트가 순수하게 보호하고자 했던 제럴드의 불륜, 캐서린의 정신병력, 와니의 이중생활은 상류층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닉 게스트를 희생양으로 써버리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 닉 게스트가 상류층의 명암 중 밝은 면만 바라보고, 순수한 소신으로 그들이 가진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면을 체화해 내는 것에 실패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부분은 양심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상기시키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의 선은 윌리엄 호가스가 ‘미의 분석’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라는데, 닉은 화려한 고가구나 남자의 등과 허리, 엉덩이 라인을 보며 아름다움의 선을 느낀다. 다만 정작 부를 소유한 제럴드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이 소유한 고가구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다. 되려 닉에게 가구나 예술작품에 대한 조언을 듣지만, 심지어 이마저도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소설 초반에 인용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와 닉 게스트가 연구하는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상류층의 이중적인 아이러니한 모습, 특히 폴리와 같은 인물들이 선거에 당선되는 모습 등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아이러니컬하고 모순된 모습들이 냉철하게 그려진다. (요즘엔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고 허탈함, 박탈감을 일반 시민들에게 안겨준다.)

퀴어 소설 답게 동성애에 대한 논점도 빠질 수 없는데, 닉 게스트의 성에서도 나타나듯이 작가는 동성애가 우리 사회의 완전히 포용 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떠도는 모습을 페든가의 주변인으로 겉도는 닉의 모습과 중첩 시키며 ‘게스트’, 즉 손님(주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으로써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닉 게스트는 옥스퍼드 출신으로 페든가와의 우연한 인연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얻었지만, 동성애자이고, 귀족이 아니며, 그의 전공은 정치학이나 경영학 등 성공과는 거리가 먼 문체, 헨리 제임스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닉 게스트에게 주변부적인 대상을 이입하면서 작가는 동성애에 대한 따스한 연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80-90년대 에이즈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불치병이던 시절 퀴어요소가 가미된 예술작품에는 기승전-에이즈라는 공통된 문법이 있었는데, 이제는 주기적인 약물치료로 정상수치를 유지하며 전염력도 낮출 수 있는 만성질병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에선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는 불편한 내용이긴 하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초, 중반부에서 늘어지는 심리묘사가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며, 사건이 발생하는 후반부에서는 되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심도있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영국 상류층 사교계가 배경인 소설답게 등장인물의 수가 만만치 않고, 잠깐 스쳐가는 인물인 듯 했는데 한참 지나서 사건을 전복시키는 주요 인물들(로브메리 찰스, 페니 켄트, 제니 그룸)이 있는 등 집중력을 상당히 요하는 소설이다.

"그래, 내 조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케슬러 경이 미소를띠고 물었다. 그가 어떤 경쟁에 대해 묻는 것인지 어떤 예측불허의사건에 대해 묻는 것인지 닉에게는 분명치 않았다.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를 돌려주며, 그는 친구 사이에 용인될 만한 아이러니의 테두리 안에서 우정 어린 긍정을 내비 치는 이 미묘한 일을 스스로 잘해냈다고 느꼈다.(81p)

"자네도 이 집에 머무나?" 레이디 파트리지가 물었다.
"예, 꼭대기층의 아주 작은 방을 쓰고 있습니다."
"호크스우드에 작은 방이 있는 줄은 몰랐군. 하긴 꼭대기층에 올라가본 적이 없으니." 그의 겸손함을 가져다가 그를 더욱 바닥까지끌어내린 그녀의 솜씨에 닉은 반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이 그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였다.(113p)

"베르트랑? 아, 위대한 인물입니다!" 제럴드는 그 말이 자신에게도 쉽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듯 무척 자주 그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382p)

"맞아요, 참 끔찍한 일이었지 요." 닉이 말했다. 그에게는 전혀 새롭고도 놀라운 정보였다. 그에 게 떠오른 첫 생각은 자신이 와니와 아주 가깝다고 자족적으로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족의비밀, 그와 와니 사이의 하찮은 성적 음모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어두운, 들여다보기 힘든 비밀이었다. 그리고 와니는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었다..…. 즉시 와니가 더 감동적이고 더 매력 넘치 며 더 용서받아 마땅한 사람인 듯 느껴졌다.(383p)

그리고 아마도 매번 무심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욱 소중해지고 또한 아파지던 기억, 리오에 대한 은밀한 찬사이기도 했으리라. (567p)

제럴드는 정원을 바라보았지만 실은자신의 불만만 들여다보고 있었다.(6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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