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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환한 나무 꼭대기>
혜원은 같은 대학 시절을 보낸 동기 강희의 병간호를 받다 죽는다. 혜원은 이혼 후 연락이 두절된 미국에 있는 아들이 있었고 강희에게 자신이 교직 생활을 할 때 거주했던 홍천의 아파트를 관리하며 아들이 미국에서 돌아오면 아들에게 돌려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강희는 졸업 후 절에 들어갔던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절에서 밭을 캐다 자신의 힘이 닿지 않아도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보며 한 줌의 흙과 같은 인간의 구도에 무의미함을 느껴 하산하였다. 혜원이 죽기 전 홍천의 아파트 거주권을 주는 조건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매일같이 보내던 이메일을 강희가 계속 써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수신자가 볼 수 없는 이메일을 보내는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는 강희가 대학을 졸업하고 느꼈던 허무한 인간의 삶과 겹쳐진다.
홍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강희는 기도원에 올랐다 탈영한 병사를 마주하였고, 먹을 걸 달라는탈영병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다. 식당에서 군인의 탈영뉴스를 접한 것이 떠올랐던 강희는 혜원의 아들이 얼핏 탈영병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기도원 숲에서 마주친 탈영병 이혜원의 아들일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탈영병을 다신 만날 수 없었다.
‘노트에 꾹꾹 눌러썼던 시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언어의 쓰레기로 보였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얄팍한 재능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여겨졌다. 날마다 그녀의 일부가 하수구로, 하수구의 구정물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녀의 모든 것이 그리될 거라는 비관적인 허무에서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던 시절이었다. 절에 들어간 이유라면, 오직 그뿐이었다.‘(28p.)
비관적인 허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강희의 욕구는 무엇인가의 갈망으로 이어져 젊은 시절 절에 들어가는 행위로 빚어졌다. 강희는 탈영병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예상을 했음에도 다시 음식을 싸서 수도원으로 향한다. 자신의 젊은 시절, 불가능할 것이라 깨달았던 인간의 구도를 한 차례 경험했음에도, 비관적인 허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하는 행동은 때로는 좌절감을 주지만 충만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하지만 실패만 주는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이 책의 제목은 <환한 숨>인데 아무래도 <환한 나무의 꼭대기>와 <하나의 숨>의 앞뒤 단어를 하나씩 차용해서 지은듯하다. 아무래도 하나의 숨은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인 ‘노동‘에 대한 참담한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런 듯하다.
<하나의 숨>에서는 노동의 참담함이 연속된 사슬같이 이어지는데, 기현의 어머니가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강박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편직물공장에서의 경험과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는 하나의 평택공장 환경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해결되지 못한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하나의 공장 직원들이나 계약직 담임인 화자와 하나의 어머니의 갈등, 계약직 담임 화자와 하나의 고2 때 정규직교사인 담임의 대화는 노동자들이 투쟁의 대상을 잡는 데 방향을 놓치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 MBC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의 논란이 모티브가 된 듯한 <경계선 사이로>는 투쟁과 분노의 방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에 특히 집중된 소설이다. 윤희는 어린시절 뇌졸중으로 쓰러진 청소노동자 엄마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였던 기자이다. 그런 기자가 정권에 맞서는 언론사의 파업에 동참하다 사직을 하였고, 연진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조건으로 입사한 신입 기자인데, 정권이 교체된 후 복직한 선배 기자들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낙인에 찍혀 변방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연진은 입사 전부터 동경했던 윤희선배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기존 기자들과 신입 기자들 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특히나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했던 선배 기자들은 복직 후 투쟁의 대상을 신입 기자들로 방향 전환하며 투쟁의 본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추구하던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닌 편을 가르고 자신의 이익들만 챙기려하는 집단 이기주의와 다르지 않은 모양새를 띄는 것이다. 정작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구조를 파악하여 개혁하지는 못하고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의 이익 위에 그럴싸한 정치적, 도덕적 프레임만 씌운 채 이기주의, 편파주의에 편승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그리고 있다.
<파종하는 밤> 수은 공장에서 괴로워하며 죽어갔던 소년과 그 공장을 모티브로 작품을 진행하던 화자에게 전시를 의뢰한 큐레이터 역시 작품과 전시의 의미보다는 화자의 결혼, 예술가의 결혼이 결국 작가 생활의 무덤이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 개개인의 이기심은 사회의 바른 방향과는 무관하고, 결국 그 의미가 도태되어 버리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은 철거되고 작품은 결국 미완성이 되는 것이 보여지는 것처럼, 화자와 남편은 자신들의 목표를 생활과 양육에 매달려 작품, 사회와는 계속해서 괴리되어 살아갈 것이고 이건 너무나 보편적인 우리의 현실이다.
<경계선 사이로>에사 복직한 기자들이 신입 기자들을 새로운 적으로 삼는 것은, 투쟁의 대상을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돌려버리는 약육강식의 습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파종하는 밤>에서 아동 성추행을 범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진 왼팔 청년에게 주민들의 비합리적인 의심이 집중되는 것과도 닮아있다.
<흩어지는 구름>과 <눈 속의 사람>에서는 연인이거나 연인이 될 뻔한 사람들이 결국 이어지지 못한다.(<하나의 숨>에서도 자연스런 파혼의 과정이 나오긴 하지만)
<흩어지는 구름>에서는 계약직으로 일하다 곧 계약이 만료될 위기에 처한 화자의 상황, 자신들의 꿈(영화)을 끝내 이어갈 수 없는 화자와 호재의 현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시댁으로 보내진 동생과 단절된 채 어색해져 버린 관계가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눈 속의 사람>의 여진은 지도교수를 성추행범으로 신고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여진을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로 몰아간다. 정찰병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데 일조했던 영어 교사 출신의 최길남이 시체 속에서 꿈틀대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정찰견을 막아 생명 하나를 구했다는 점마저도 위안삼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머리로는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살아남은 자는 강한 것이 아니라 뻔뻔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았다.
......
“그래도 지금껏 괴로워하며 사시는 분이잖아요. 설마 그마저 뻔뻔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
“무의미한 일 같을 때가 있긴 해요, 나도.”
그녀가 테이블 구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세상은 믿고 싶은 것만 믿잖아요, 편한 게 진실이 되기도 하니까.”(181-182p.)
우리의 삶은 이상향과의 모순, 괴리로 결국 뻔뻔하게 살아가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자신의 위선을 적절한 추상적 개념으로 덧씌워 위안 삼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버린다. 하지만 <흩어지는 구름>에서도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은 있는 듯하다.
’그중 누군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해줄지 몰랐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69p.)
최길남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난 둘은 버스 터미널에서 헤어진다. <흩어지는 구름>에서 동거생활을 하던 화자도 호재와 버스 터미널에서 이별을 고한다.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목적이 모였다 흩어지는 버스 터미널처럼 다양한 생존 욕구와 이해관계가 얽힌 인생에서도 또 각자의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인연이 되었다 흩어진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높고 느린 용서>에서는 가해자의 서사가 아닌 가해자 가족의 서사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삶에 누릴 수 있는 의미가 어디까지인지 상상해보게 한다.
그녀는 혜원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지만 혜원 쪽에서는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혜원뿐 아니라 독문과의 다른 동기들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절에 들어가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일 테니까.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처럼 부풀려진 그녀의 삶은 입술과 전화선과 커피와 맥주가 놓인 테이블을 통해 여기저기로 퍼져나갔을 것이고, 그중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기울 수밖에 없는 고뇌의 시소 한쪽에 그녀를 올려놓고는 전에 없이겸허한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출가했다는 것만 알 뿐, 정식 승려가 되기도 전에 환속했다는 것이나 그녀 역시 그들처럼 직장과 연애라는 트랙을 돌며한 시절을 살아왔다는 건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동미의 말에 따르면, 대학 동창 중 일부는 그녀가 지금도 승려이거나 승려와 다를 것 없이 산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이해했다. 재산이나 가족, 심지어 욕망도 없이 산속 은둔자로 사는 지인이란 속세의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패배했을 때 그 쓰라린 마음을 되비춰볼 만한 거울로 퍽 쓸모가 있을 테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을 위로받을 수 있는 영원한 타자…. - P12
저마다 비슷한 무게로 절박했을 그들의 염원을 고유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 염원의 안쪽에 펼쳐진 개개인의 고통을 절대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전체와 영원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 사람의 염원이란 퀼트의 한 조각처럼 평균적인 일부이자 보편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절에서 나올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여느 날처럼 점심 공양을 마친 뒤 텃밭에서 작물을 캐는데, 작물은 계속 자라고 그녀가 아닌 누구라도 감자를 캐고 풋고추를 딸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대단한 깨달음인 듯 다가왔다. 흙 한 줌을 보면서도 구도를 생각하라고 은사 스님은말하곤 했지만,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 앞에서 인간의 구도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생각은 그때껏 그녀가 절에서 찾아낸 유일한 진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호미와 바구니를 텃밭에 내버려둔 채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왔다.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으며 소지품을 챙기지도 않았다. - P26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였지만 올해의 귀뚜라미들은 모두 일생을 마친 건지, 아니면 서울에는 원래 귀뚜라미가 살지 않는 건지, 본능에순종하는 생명체가 노동하듯 날개를 비비며 내는 그 마찰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는 18년을 살았다. 도로 창문을 닫으면서 나는 문득 그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의식이 돌아오지않는다면 하나가 아는 세상이란 18년의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그 범위가 제한된다는 것을, 마치 가을 한철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귀뚜라미처럼……… - P90
그녀는 평소와 달리 존댓말을 섞어가며 그렇게 말을 이었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쉬운 단념에 사나워졌던 마음이풀리는 걸 느꼈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공평하게 비정하다면한 사람의 비정은 모두의 비정으로 희석된다고, 세상 어디에도 더 비정한 비정은 없다고, 그렇게 번역되어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뒤편에 유리창이 있었고 유리창너머로는 초겨울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는 학생들이보였다. 학교를 빠져나간 학생들이 어디로 갈지, 아니 갈 곳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 P96
증언은 객관적일 수 없다. 증언은 증언자의 기억 속에서선택된 언어이고 증언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구경꾼의 위치에 있으려 할 뿐, 자신의 과오나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의식하지 못하며 때로는 완전히 망각하기도 한다. 철원과 진주와 함양과 여수 등에서 만난 역사의 증언자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혼란이었다. 말해도 되는것과 말해선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니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 P180
머리로는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살아남은 자는 강한것이 아니라 뻔뻔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았다. 한번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무심결에 말로 내뱉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앞에는 여진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전에도 종종 그랬듯 직원들이 퇴근한 텅 빈 출판사의 접대용 테이블에마주 앉아 받아온 구술 녹음을 각자의 노트북에 입력하던 중이었다. 정신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그녀가 언뜻 고개를 들어 나를 건너다봤다. 틀어놓은 녹음기에서는 정찰병으로 처음 수색을 나갔던 날을 묘사하는 최길남 님의 목소리가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손을 뻗어 녹음기를 껐다. "그래도 지금껏 괴로워하며 사시는 분이잖아요. 설마 그마저 뻔뻔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고, 나는 식은 차를 연거푸 마시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는 과거의 영토에 발이묶인 채 최소한의 힘으로만 현재를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시절에 대학 교육까지 받았지만 교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뿐더러, 평생 뚜렷한 직업 없이 가난하게 살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결혼했고 자식은 낳지 않았으며 20여 년 전 아내와사별한 뒤부터는 고향인 태백으로 돌아와 쭉 혼자 지냈다. - P180
그런 질문이 있다. 답을 찾게 하기보다 그 질문 안에 머물게 하는. - P203
귀하는 모든 것을 잃은 그 사람을 용서해줄 수 없겠느냐고, 용서가 힘들다면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용기의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귀하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용서는그 사람이 저만큼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표현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고통에는 저에 대한 미안함뿐 아니라 그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이 포함되어야 하고요. - P214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스물다섯 살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바로 우 감독의 그 다큐멘터리영화 속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결국그 장면이 내 발걸음을 로프웨이 승차장 쪽으로 돌아서게 했다는 걸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감독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한 명씩 왕년의 선장에게 다가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죽는다면 그렇게 죽고 싶다고, 눈 쌓인 평원을 걸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열망했었다. 그중 누군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해줄지 몰랐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수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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