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 - 정치와 음악 사이에서 길을 잃다
배리 셀즈 지음, 함규진 옮김 / 심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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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후 유럽 출신 지휘자들이 미국의 교향악단들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음악 교육을 받은 순수 미국 지휘자인 번스타인의 등장은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괴롭혀온 문화적 열등감을 일거에 해소시켜준 쾌거였다. 2차 대전 이후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 체제의 대표로 올라선 미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존재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번스타인이 왜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겨 뉴욕 필이 아닌 빈 필과 생애의 후반부를 함께 했는지가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마침내 그 의문을 해소시켜줄 책이 나왔다.



번스타인의 진보적인 성향은 30년대 그가 하버드를 다닐 때 형성되었다. 젊고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미트로풀로스, 코플랜드를 만나 영향을 받고, 진보주의자들과 어울리던 30년대는 미국이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에 대항해 싸우던 시기였던 만큼 진보주의가 공산주의와 연계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매카시주의자들이 진보에 공산주의의 딱지를 붙여서 탄압하기 시작했고, 번스타인도 FBI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사실 번스타인의 진보성은 정치적으로 심각하거나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수준은 전혀 아니었는데, 헐리우드와 문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 광풍은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사회적으로 파멸시켰고, 번스타인도 미국 내에서 지휘대에 서거나 해외로 지휘 여행을 가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당했다.



번스타인의 친구인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으로 진보세력들은 희망을 가졌지만, 연이은 암살은 진보세력의 희망을 꺾어버리고 만다. 거기에다가 6~70년대의 급격한 경제 발전은 노동계급과 흑인까지 보수화시키고, 진보적인 지식인 계층을 유약한 소시민으로 전락시켰다. 


 

이 책에서는 30년대부터 90년까지 번스타인과 진보세력들이 미국에서 겪었던 짧았던 자유기와 긴 탄압기를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함께 상세하게 해설하고, 그 과정에서 번스타인이 받았던 탄압과 규제, 그리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모티브가 된 번스타인의 작품들을 연결시켜 설명한다. 번스타인이 살았던 시기 미국 문화예술계의 격동적이었던 분위기와 그것이 그의 음악과 작품에 미친 영향 간의 관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귀중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조성과 무조성이 진보-보수 테제와 맺고있는 연관성, 번스타인이 평생동안 꿈꿨던 ‘미국 오페라’에 대한 열망 등을 다루고 있다.



지휘자 번스타인에 대한 찬사가 아닌 지식인이자 작곡가인 번스타인이 미국에서 받았던 탄압과 미국 음악계의 총아였던 그가 결국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 그리고 30~90년대에 걸쳐 미국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졌던 진보-보수 갈등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지만, 슈먼, 문쉬, 멩겔버그, 코플런드, 발란친, 로즈버드(로즈바우트), 제나크시스(크세나키스), 전쟁의 역사(병사의 이야기) 등 숱한 고유명사의 오역들은 음악서적 출판에서 감수의 필요성을 또다시 지적하게 만든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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