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
롭 헨더슨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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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민이 200명이 내외인 시절, 원시인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알아야했고 배운 것을 후대에 계승했다. 능력의 차이는 특별하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생존이 보장되었고 평화가 유지되었다. 아이들은 평등했다. 부모의 위치와 지위가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았다. 또한 공동육아를 통해 미래의 자원을 보호했다. 각자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갔다. 국가가 탄생했다. 공동체가 가족으로 분화되며 계층, 지위가 확산되었다. 수십만 년 인류 공동체가 단위로 해체되는 순간, 하층으로 구분된 아이들은 가장 큰 손실과 피해를 맞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누구도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류와 하류,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슷한 외모와 학벌, 직업이 다르지 않다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은 보는 순간 확연이 구분된다. 품성과 태도가 외적인 변수라면 부모의 위치와 지위는 내적변수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부모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하의 뚜렷한 구분을 증명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이 아니다. 상류와 하류층에서 바라본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상류층은 1%를 유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상상하지만 하류층은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틴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환경이 같지 않다. 그런데 세상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왜, 라는 논제는 상류층의 무지와 하류층의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둘은 같은 세상을 살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태어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된다. 덕분에 세상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반면에 사회는 가파르게 양극화되었다.

 

문제는 상류층이 일으키지만 피해는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한다. 우수한 대학교를 나와 공공기관과 정부요직에 앉는 이들은 대부분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부여한 당위적 생각이 국민에게 이롭다는 맹목적인 사고에 집착한다. 대부분의 정책이 성공보다 실패를 반복하며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소수자들의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하류층을 파고든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본인들은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스스로에게 지위를 부여하거나 부여받는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거친 말을 통해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면에 하류계급의 의견과 아이디어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로버트 킴 핸더슨, 한국인 어머니와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를 통해 태어났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통해 그가 느꼈던 위탁가정의 한계와 가족의 부재, 교육환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문제가 있다’는 설정을 만들고 대부분의 위탁아를 문제아로 취급하는 사회복지시스템과 장부정책의 미숙함을 토로한다.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상처를 감추고 내면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환경은 또 다른 변수다. 하층계급의 대부분은 마약에 노출되어 있으며 음주와 폭력을 통해 그들의 고통을 희석한다. 문제는 축적되고 결국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반복된다. 저자는 10대를 거치면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사라지는지,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각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세상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로버트를 변화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군대는 로버트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질서가 잡혔고 자신에 갇혔던 생각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로버트는 스스로의 인생을 바로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인간적 갈등과 삶의 조건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가 가야할 최선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다. 그에게 자수성가란 말이 어울릴까? 세간의 평가보다 세상을 직시하는 그만의 생각과 신념이 로버트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로버트는 사치신념을 꺼낸다. 대학캠퍼스는 낭만이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미래의 계급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대학과정을 통해 만난 부유한 젊은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부모가 존재했다. 부모는 보호막이자 지위를 유지해줄 든든한 디딤돌이었다. 부모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로버트의 시각은 기존의 생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20%가 80%의 이익을 차지하는 팔레토의 법칙은 1%가 99%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뛰어난 지식과 품성,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면 세상을 비관하고 자신에 가혹한 이들도 쉽게 변하기 어렵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공정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속내가 의심스럽다. 정부 또한 불공정한 시스템을 인정하고 활용하길 원한다. 결국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을 건질 수 있다. 로버트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상반된 생각에 젖는다. 자신이 힘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을까? 반면에 부모가 자신을 케어하고 최선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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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리더십 - 심리적 안전감을 넘어 책임 안전감을 만드는 ‘AI 시대 리더’의 조건
김유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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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디지털화 되어가는데 마음은 아날로그에 묶여있다. 아직은 AI가 개인에 직접적으로 침투하지 않았지만 AI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엄습한다. 기업과 정부는 AI가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 확신한다. 하이퍼스케일러라 불리는 빅테크기업들 역시 AI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AI시대는 돌이킬 수 없다. AI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산업구조를 개편할 것이다. 산업혁명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인간성에 대한 본질이 재확인되었고 기업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게 된다. AI는 산업혁명과 다를까? 아니면 더욱 가혹하게 삶의 본질을 무너뜨릴까?

 

기업은 AI를 가장 선두에서 맞이하고 있다. AI를 대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보조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차이가 없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최적 안을 추천한다. 실시간으로 크레임를 처리하고 응답지연, 처리속도를 예측한다. 기존인원이 며칠 걸려 하는 일을 단 몇십 분만에 추적하여 통합하고 분석하여 보고한다. 대부분 기존 리더의 일과 겹친다. AI와 함께 리더의 역할도 사라질까? 팀원은 AI의 보고를 신뢰하고 AI의 결정을 따를 수 있을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이 부드럽지 않다. 코로나 이후 기업문화는 빠르게 디지털화되었다. AI는 이를 더욱 확산시키며 조직의 문화를 새롭게 형성할 것이다. 리더의 역할도 예외가 아니다. 리더의 존재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카톡이 팀원의 사기를 올려주지 않는다. 잦은 보고가 업무의 효율성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기술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빠른 효과를 기대하나 심리적 저항성이 강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누구나 편리하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무속도가 빨라진 대신 불안이 가중되고 마음이 흔들린다. AI가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일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팀원의 마음을 읽고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이 증가한다. AI시대,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속도가 빠를수록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아줄 리더의 존재가 요구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대부분 리더의 눈치를 살핀다. 팀원은 리더의 표정, 말의 내용, 시선, 태도를 보며 신호를 읽는다. 그날의 일정이 결정된다. 리더의 변화에 태도를 확정짓는 것이다. AI는 합리적인 결과를 제공한다. 또한 최적의 계산을 통해 최대효율을 측정한다. 비용대비효율, 시간대비 성과, 리스크의 최소화, 리더는 AI의 판단을 인간의 언어로 해석한다. 반면에 팀원은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듣고 싶어 한다. 리더는 데이터 전달자가 아닌 의미역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며 정답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 주여야 한다. 즉, 정보의 명확성과 정서적 존재감을 확인하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리더십은 무엇을 결정하는 가가 아닌 어떤 감각으로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심리적 안전감이 기존 리더십의 조건이었다면 AI시대 리더의 조건은 존재감이다. 존재감은 말이 아닌 태도의 신호로 전달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책임의 위치에 서있는가를 확인할 때 책임 안전감이 형성된다. 조금만 지켜보자. 맞는 것 같다.적당한 회피는 피로감을 가중한다. AI의 보고를 의미화하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책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최종결정권자가 누구인지. 결과와 관계없이 책임의 소재가 분명한지, 실패하더라도 학습으로 연결되는지. 위험요소가 많아지면 발언이 줄어들고 조직은 침묵한다. 리더의 책임회피는 혼란과 함께 조직의 신뢰가 붕괴한다. AI시대 리더의 존재감은 결정의 앞에서 책임을 구조적으로 안고 가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AI와 인간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감각이 다르다. AI가 아무리 빠른 계산과 결정을 하더라도 개인의 독특한 특성과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수십만 년동안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왔다. 조직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팀원은 리더의 태도와 시선, 말의 뉘앙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말보다 비언어적 표현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언의 메시지가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AI시대, 리더의 역할이 결정에서 신호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팀원들은 리더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통해 리더십을 해석한다. 4 Role은 보이는 리더십의 전환포인트를 나타낸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 시선의 일관성, 표정의 안정감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고 짧은 비언언 신호는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팀원들은 나의 표정과 태도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었을까? AI시대,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차이를 이해하고 해법에 다가갈 때 보다 나은 조직문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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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한다는 착각
신재용 지음 / 반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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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불안의 역설이 풍요다.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한 삶을 살지만 상대적 갈망에 휩싸여있다. 희망이란 단어는 현재를 부정한다. 미래는 걱정과 불안에 갇혀있다. 미래와 함께 가장 현실적인 불안이 건강이다. 굶지도 아프지도 않은데 지나칠 정도로 건강에 집착한다. 건강하다는 의미와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실질적 답변이 궁금하다. 덕분에 언론과 미디어는 실시간으로 건강식품 광고를 쏟아 붓는다. 유튜브는 물론 sns도 건강관련 정보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불안이 가중된다. 병원과 약국은 이미 건강 염려증환자로 가득하다. 의사가 직업 1순위인 이유가 불안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3분 내외의 진료는 환자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남긴다. 다행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안도감이다.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건강은 문제가 아니다. 아프다는 것은 극히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짧은 광고와 후기, 안심을 채워줄 소비, 막연한 불안의 덧셈이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건강을 더하기 프로젝트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영양을 더하고, 근육을 더하고, 검사 항목을 더하고, 수치를 더한다.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낫다는 과유불급은 과잉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건강이 프로젝트로 바뀌면서 계획하고 실천해야할 의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계획엔 모순이 가득하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칼로리는 넘치는데 오히려 피곤하고 무기력이 몸을 지배한다. 검사항목을 늘렸지만 질병 발생확률은 줄어들지 않았다. 과할수록 불안해진다는 역설은 건강관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왜 덧셈 회로를 멈추기 어려운 것일까? 단순히 개인의지로 이해해야할까? 주변에 초고열량 음식이 많아질수록 몸은 건강 솔루션을 활성화한다. 매순간 마주치는 건강관련식품들의 유혹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구조적 모순이라면?

 

모든 경보는 뇌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도파민은 보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경보를 울린다. 또한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판단은 더 단기적이고 충동적으로 좁아진다. 보상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결합하면 덧셈이 이루어진다. 뭔가를 더한다는 생각은 순간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덧셈은 심리적 위안일 뿐이다. 불안을 급히 덮으려는 마음의 위로다.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하는 건강기능식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광고는 반복적으로 건강을 자극하며 알약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믿음을 심어준다. 결국 과잉건강에 대한 신호가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접속시키며 덧셈에 집착하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은 뇌의 원시구조와 관련이 있다. 수십만 년, 수렵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설계된 몸이 낯선 환경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건강을 위한다는 착각은 1부에서 불안의 증후와 뇌의 편집증적 낙관주의를 다룬다. 뇌는 가벼운 두통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면 심각한 병이 있을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미세한 변화에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이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검사나 주사, 영양제를 맞으면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된다. 위험신호 앞에선 예민하나 해결 가능성에선 맹목적 희망을 거는 모순이 반복된다. 또한 뇌는 쉽게 떠오르는 생각에 빈도와 위험을 가늠하는 가용성 휴리스틱에 약하다. 광고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자극적이고 강한 문구를 중심으로 병의 대표적 증상을 강하게 드러낸다.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최적화된 화면구성과 플롯, 호스트의 언어를 벗어나기 쉽지않다. 상상의 질병이 알고리즘에 종속되어 불안을 증폭시키고 결국 필요하지 않은 덧셈을 추가하게 된다.

 

덧셈은 필요하지 않은 소비뿐만이 아니라 건강관리에도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건강을 위한다는 착각은 더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시작된다. 저자는 불편함, 불안을 마주하는 덜어내기를 강조한다. 덜어내기는 금욕이나 무소유가 아닌 생존의 덧셈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건강을 대하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사와 약사의 처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부, 막연한 불안의 실체를 대면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처방을 자제하고 건강기능식품의 실체를 공부하고 건강앱과 실시간 쏟아지는 SNS의 무분별한 광고에 침묵하는 것이다. 덜어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남겨두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배제해 몸과 마음의 치유에 자신을 허락하는 것이다. 불안 징후는 곳곳에 펼쳐져있다. 그런데 불안을 누가 조장하고 있는가? 인간은 유기적인 존재다.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안을 상품화하는 시대다. 건강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는 것을 덜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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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
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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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열풍이다. 영화의 성공은 물론 다양한 판본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수천 년이 지난 오디세이의 방황이 왜 이토록 강렬하게 21세기를 휘젓는 것일까? 전쟁, 음모, 방황,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을 안고 현재를 살아간다. 경계와 범위를 규정짓고 영역을 확장하며 표면적인 안정을 추구한다. 불안은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생존을 답보할 수 없기에 제거되어야했고 사라져야했다. 이는 외부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시작되었다. 자신과 다르다는 느낌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시선을 벗어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규정과 범위, 차이와 구별을 통해 집단을 유지해야만 했다. 오디세이아엔 다양한 괴물이 등장한다. 인간이 괴물이고 괴물이 인간으로 변신한다. 호메로스는 인간과 괴물의 연속성을 이해했다. 그렇다고 결론이 바뀌지는 않았다. 서사는 끝없이 반복되었다. 역사는 인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왔는가?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

 

인류 역사엔 수많은 괴물이 등장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괴물이 등장했던 가장 오래된 장편문학이다. 길가메시엔 태곳적 신들의 행위와 우주의 태동을 알려주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길가메시 역시 1/3이 인간이었고 2/3이 신이었다. 길가메시는 수세기후 그리스와 로마, 중앙아시아에 광범위한 신화적 소재를 제공하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길가메시 시대의 신은 인간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반면에 잔인하기도 했다. 길가메시는 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와 불안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시대적 갈망은 수많은 괴물과 함께 문명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그리스 시대, 신의 존재와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신은 더 이상 인간의 존재와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다. 신은 만물을 통제하는 전지 전능자였다. 인간과의 뚜렷한 경계가 그어졌다. 신과 인간은 서로에게 괴물이 되었다. 반면에 반인반신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신들의 존재를 괴물이라 정의했다.

 

과물은 무엇인가? 우리는 괴물을 악마로 상상한다. 하지만 고대 괴물은 악마라기보다 인간의 경계에 위치한 회색지대의 생명체에 가까웠다. 종교의 축이 지배하던 시대, 괴물은 신의 형상을 한 인간과 동일한 영역을 공유할 수 없었다. 인간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졌고 다르다는 이유는 혐오와 차별의 신호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라지거나 처형되었다. 외적인 범주를 넘어 정서적 이상까지, 경계와 범위를 넘어선 이질적인 존재는 혐오와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괴물화과정은 타민족과 외부로 시선을 돌리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되었다. 서유럽의 침략 전 대부분 고대문명은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동물, 몸과 영혼이라는 주제를 삶의 영속성과 존재의 유무, 내세에 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미지의 종은 유럽인들에게 괴물과 다름없었다. 자신과 다르다는 낙인찍기가 문명을 파괴하는 시대였다.

 

인간은 왜 괴물을 만들었을까? 가장 깊은 의문은 괴물의 탄생이유다. 신과 히어로의 등장이 고단한 현실과 내세를 책임져줄 희망을 의도했다면 괴물의 등장은 두려움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인간에 내재된 수많은 불안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괴물로 바꿔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괴물스토리를 듣고 자랐다. 말하는 동물, 움직이는 나무, 영혼의 교체, 신과의 대화, 수많은 문명과 문화는 괴물이야기를 통해 형성되었다. 베스트셀러 역시 괴물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괴물이 등장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무료할 정도다. 그런데 왜 현실에선 괴물과의 경계를 확정짓고자 했을까? 가장 친밀해야할 주인공이 적이 되고 악마가 되었을 때, 인간의 범주는 더욱 왜소해지고 불안전해진다. 괴물화과정은 인류를 극한으로 몰아세웠다. 차이와 구별이 일상이 되었고 경계가 마음을 구분 지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괴물이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괴물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본 책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을 괴물의 생태학을 통해 되짚어본다. 특히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구분하는 방식이 어떻게 타인을 배제하고 인류학을 후퇴시켰는지를 문명적 관점을 통해 소개한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이해부족, 젠더갈등, 노예제도, 다름의 문명이 세상을 지배해왔던 방식이 괴물화과정을 통해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었는지, 구체적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괴물의 조건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환경이 변화하면 상상의 조건도 달라진다. 현대는 과거와 같은 괴물을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문명에 대한 과도한 이질감이 괴물화를 일으킨다. AI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까? 괴물을 고찰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미를 고찰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규정하고 범주 지으며 한계를 규정해왔다. 괴물의 탄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괴물을 이해하면 인간이 지닌 수많은 가능성과 잠재된 욕망,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의 탄생은 인류사의 반복이자 문명의 재탄생이다.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면 상상의 원동력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인간 역시 누군가에겐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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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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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다섯 사람이 한방에 모여 과제를 시작했다. 지위도 직급도 없다. 회의를 이끌 사람도 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5분쯤 지나자 서열이 정해졌다. 몇몇은 말을 먼저 꺼낸 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규정도, 규칙도, 조건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5분 만에 서열이 정해진 것일까? 스탠퍼드 사회학자 리지웨이는 서열의 탄생이 궁금했다. 그는 뜻이 없는 차이와 자원의 차이를 조건으로 실험을 반복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뜻이 없지만 자원(돈)이라는 차이가 겹치자 유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동일 집단내의 자원의 차이는 능력의 표기로 여겨졌다. 누가 먼저 말하는가, 먼저 말하는 사람이 상황을 리드한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서열은 이미 완성되어진다. 믿으면, 없던 서열도 만들어진다.

 

비슷한 품질의 옷이다. 하나는 만원, 다른 것은 오십 만원이다. 차이는 로고뿐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오십만 원 티셔츠를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비싼 티셔츠를 사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면 사지 않는다. 그들은 옷에 부착된 로고에 집작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봐주기를 기대한다. 분명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다. 베블런은 소비의 다른 기능, 즉 보여주는 기능에 집중했다. 그는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을 활용해 필요하지 않는 소비에 집착하는 현상을 연구했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유럽귀족의 허례를 낭비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시문화가 럭셔리, 보석과 같은 명품브랜드를 탄생시키며 새로운 지위와 위치를 탄생시켰다. 베블런 효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스포츠스타와 배우등 특별한 이익을 추구하는 공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고급화전략은 희소할수록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중화되는 순간 과시 욕구는 빠르게 식어버린다. 과시적 여가는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부의 증거다. 베블런은 유럽귀족의 잔디문화, 여성의 코르셋, 하인들의 대리소비를 통해 인간이 지닌 욕망의 서열을 읽었다. 유한계급론은 비싸면 좋다는 인식과 부의 편중, 고가명품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실체적으로 증명한다.

 

서열은 당위적인가? 인위적인가? 리지웨이의 지위방식에 서열은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인간은 타인에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반면 상대를 따라하고 좆고 싶은 의지적 욕구도 함께 있다. 서열은 당위적이자 인위적이다. 또한 본능적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능적 서열 구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작품이 드발의 침팬지 정치학이다. 정치학도들의 필독서이자 미 의회가 반드시 읽어야할 정치학 책으로 추천할 만큼 권력과 서열구도, 조직의 본능을 실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드발은 수십 년 동안 침팬지의 권력서열구도를 연구하며 힘만으로 조작을 장악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또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닐수록 생명이 짧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부분 수정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권력은 독점적일 수 없으며 공동체의 안위와 안정을 벗어나면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될 수 있다는 경고를 알려준다. 또한 하위계층일수록 가장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력이 떨어져 조직으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드발의 연구는 본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권력구도에도 상당이 잘 들어맞는다. 팬트그런트는 어디로 흐르는가? 등 뒤에 선자들은 왜 그곳에 있는가? 화해의 조건은 무엇인가? 왕은 결코 혼자 왕이 될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권력에 다가설수록 권력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다.

 

서열은 무엇을 조장하는가? 루소는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아무르 드 수아(자연적인 자기애)다. 다른 하나는 아무르 프로프프(허영, 이기심)와 같은 타인의 눈길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자기애다. 둘은 조건이 다르다. 아무르 드수아는 내 안에서 채워지며 아무르 프로프르는 내 밖에서 채워진다. 불평등의 조건은 자연 상태를 벗어날 때 시작되었다. 공동체는 평판이 중요했고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이 불가피했다. 춤과 노래, 사냥이 비교되면서 개인의 역량은 타인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했다. 존중과 인정이 값어치를 가지기 시작하자 불평등이 빠르게 다가왔다. 타인의 길들여진 서열은 타인에 의해 무너진다. 루소의 예감은 현대사회를 짓누른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결국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남의 눈을 기준으로 삼는 욕망은 끝이 없다. 불평등은 인간이 만든 조건이다. 또한 사회의 시스템이자 구속력이기도 하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뤈론을 통해 정치의 구도를 바꾸어놓았다.

 

서열이 없는 조직은 없다. 어디에서는 크고 작은 서열이 존재한다. 문제는 서열이 권력화 되면 계급이나 지위, 위치의 이동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수천년 이어온 문명의 흐름이 이를 증명한다. 권력의 서열화는 뜻대로 이루어진 적도 영원히 유지된 적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끝없이 서열을 요구한다. 침팬지 정치학은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권력의 역사엔 수많은 전쟁과 폭력, 다툼이 존재했다. 서열의 핵심은 안정적 생존이었다. 권력은 이익보다 폐해가 많다. 하지만 권력이 무너지면 혼란이 가중된다. 서열의 진행과정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서열이 아닌 곳이 없으며 서열의 중심에 힘과 권력에 내포되어있다. 개인의 의지든, 조직의 시스템이든, 서열은 끊임없이 작동하며 개인과 공동체를 움직인다. 서열의 교양은 세상을 읽는 뛰어난 감각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서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재평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논제를 제공한다. 서열에 대한 공동체적 시각이 돋보이는 서열의 교양, 교양을 넘어선 내용이 가득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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