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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처음 만난 다섯 사람이 한방에 모여 과제를 시작했다. 지위도 직급도 없다. 회의를 이끌 사람도 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5분쯤 지나자 서열이 정해졌다. 몇몇은 말을 먼저 꺼낸 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규정도, 규칙도, 조건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5분 만에 서열이 정해진 것일까? 스탠퍼드 사회학자 리지웨이는 서열의 탄생이 궁금했다. 그는 뜻이 없는 차이와 자원의 차이를 조건으로 실험을 반복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뜻이 없지만 자원(돈)이라는 차이가 겹치자 유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동일 집단내의 자원의 차이는 능력의 표기로 여겨졌다. 누가 먼저 말하는가, 먼저 말하는 사람이 상황을 리드한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서열은 이미 완성되어진다. 믿으면, 없던 서열도 만들어진다.
비슷한 품질의 옷이다. 하나는 만원, 다른 것은 오십 만원이다. 차이는 로고뿐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오십만 원 티셔츠를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비싼 티셔츠를 사는 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면 사지 않는다. 그들은 옷에 부착된 로고에 집작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봐주기를 기대한다. 분명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다. 베블런은 소비의 다른 기능, 즉 보여주는 기능에 집중했다. 그는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을 활용해 필요하지 않는 소비에 집착하는 현상을 연구했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유럽귀족의 허례를 낭비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시문화가 럭셔리, 보석과 같은 명품브랜드를 탄생시키며 새로운 지위와 위치를 탄생시켰다. 베블런 효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스포츠스타와 배우등 특별한 이익을 추구하는 공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고급화전략은 희소할수록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중화되는 순간 과시 욕구는 빠르게 식어버린다. 과시적 여가는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부의 증거다. 베블런은 유럽귀족의 잔디문화, 여성의 코르셋, 하인들의 대리소비를 통해 인간이 지닌 욕망의 서열을 읽었다. 유한계급론은 비싸면 좋다는 인식과 부의 편중, 고가명품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실체적으로 증명한다.
서열은 당위적인가? 인위적인가? 리지웨이의 지위방식에 서열은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인간은 타인에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반면 상대를 따라하고 좆고 싶은 의지적 욕구도 함께 있다. 서열은 당위적이자 인위적이다. 또한 본능적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능적 서열 구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작품이 드발의 침팬지 정치학이다. 정치학도들의 필독서이자 미 의회가 반드시 읽어야할 정치학 책으로 추천할 만큼 권력과 서열구도, 조직의 본능을 실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드발은 수십 년 동안 침팬지의 권력서열구도를 연구하며 힘만으로 조작을 장악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또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닐수록 생명이 짧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부분 수정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권력은 독점적일 수 없으며 공동체의 안위와 안정을 벗어나면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될 수 있다는 경고를 알려준다. 또한 하위계층일수록 가장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력이 떨어져 조직으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드발의 연구는 본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권력구도에도 상당이 잘 들어맞는다. 팬트그런트는 어디로 흐르는가? 등 뒤에 선자들은 왜 그곳에 있는가? 화해의 조건은 무엇인가? 왕은 결코 혼자 왕이 될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권력에 다가설수록 권력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다.
서열은 무엇을 조장하는가? 루소는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아무르 드 수아(자연적인 자기애)다. 다른 하나는 아무르 프로프프(허영, 이기심)와 같은 타인의 눈길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자기애다. 둘은 조건이 다르다. 아무르 드수아는 내 안에서 채워지며 아무르 프로프르는 내 밖에서 채워진다. 불평등의 조건은 자연 상태를 벗어날 때 시작되었다. 공동체는 평판이 중요했고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이 불가피했다. 춤과 노래, 사냥이 비교되면서 개인의 역량은 타인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했다. 존중과 인정이 값어치를 가지기 시작하자 불평등이 빠르게 다가왔다. 타인의 길들여진 서열은 타인에 의해 무너진다. 루소의 예감은 현대사회를 짓누른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결국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남의 눈을 기준으로 삼는 욕망은 끝이 없다. 불평등은 인간이 만든 조건이다. 또한 사회의 시스템이자 구속력이기도 하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뤈론을 통해 정치의 구도를 바꾸어놓았다.
서열이 없는 조직은 없다. 어디에서는 크고 작은 서열이 존재한다. 문제는 서열이 권력화 되면 계급이나 지위, 위치의 이동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수천년 이어온 문명의 흐름이 이를 증명한다. 권력의 서열화는 뜻대로 이루어진 적도 영원히 유지된 적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끝없이 서열을 요구한다. 침팬지 정치학은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권력의 역사엔 수많은 전쟁과 폭력, 다툼이 존재했다. 서열의 핵심은 안정적 생존이었다. 권력은 이익보다 폐해가 많다. 하지만 권력이 무너지면 혼란이 가중된다. 서열의 진행과정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서열이 아닌 곳이 없으며 서열의 중심에 힘과 권력에 내포되어있다. 개인의 의지든, 조직의 시스템이든, 서열은 끊임없이 작동하며 개인과 공동체를 움직인다. 서열의 교양은 세상을 읽는 뛰어난 감각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서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재평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논제를 제공한다. 서열에 대한 공동체적 시각이 돋보이는 서열의 교양, 교양을 넘어선 내용이 가득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