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묻고 고전이 답했다 -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한 삶을 이기는 68가지 고전문답
김헌.김월회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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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운명, 성공, 정의, 생존, 삶엔 수많은 질문이 공존한다. 예측하기도 어렵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질문들, 어쩌면 인간은 질문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질문은 삶의 방향을 묻는 행위다. 세상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 마음을 바로잡고 올바른 길이라 믿는 삶, 변하지 않는 진리라 믿는 삶의 방정식, 수많은 질문엔 현재의 모습이 담겨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정, 감각이 곧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로부터 근대 사상가들까지, 우린 그들의 사상과 자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삶의 철학은 거대한 바다를 이루며 여전히 우리 곁에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인류 곁에 머물 수 있었을까? 삶의 방정식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분리될수록 공허와 무료함이 삶을 지배한다. AI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은 계산할 수 있어도 마음을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잠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소비와 다르지 않다. 인간은 보다 깊은 차원의 인지와 인식을 요구한다. 무의식을 잠재우고 삶의 정의를 이해해줄 의식의 세계, 세상에 대한 편견과 공정, 상식을 뛰어넘을 저마다의 스토리텔링, 고전은 삶의 방식을 수없이 반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북돋는다. 한마디 말을 통해 삶을 해석한다. 타인의 세계를 만나면서 메타인지를 구성한다. 고전은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었다.

 

삶이 묻고 고전이 답했다. 우린 무엇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저마다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문제의 방향은 거의 일정하다. 나와, 타인, 세상, 미래가 중심이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두 저자는 내면강화, 자존, 성장, 배움등과 같은 자기성장에 필요한 고전을 선정해 나에 대한 의미부여와 삶의 방향을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즐기라는 의미를 지닌 이 문장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영웅 오디세우스는 승리의 영광을 안았지만 10년 동안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매혹적인 칼립소는 젊음으로 유혹하며 자신과 영원히 살 것을 강요하지만 그는 영원한 삶보단 유한한 삶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끝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순간의 가치를 새롭게 한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까마귀 깃털이 금색을 띠기도 하고 진한 녹색으로 빛나기도 한다며 저서 능양시집서를 통해 까맣다는 세간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까마귀는 본디 까만 것인데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튀어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비췻빛으로 바뀐다고 증언한다. 원래 정해진 빛깔이 없는데 내 눈이 먼저 정해버렸다고 고백한 것이다. 우린 반복적인 관습을 통해 이럴것이다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순환하며 차이를 빚어낸다. 차이는 관계를 통해 알던 사고를 뒤집고 새로운 감각과 해석을 펼쳐놓는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인 것이다. 소동파는 적벽부를 통해 변하지 않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변한 것이 없고, 변한다는 관점에 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란 명문을 기록했다. 세상에 반복되는 것은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나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야누스의 두 얼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이거나 변덕스럽다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야누스는 1월의 January를 의미하며 문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야누아(Isnus)에서 유래되었다. 모든 문은 이중으로 되어있으니 바깥문은 사회나 공동체를 바라보고 안쪽문은 가정을 돌본다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야누스는 공간적으로 나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살피면서 균형 있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뜻을 지닌다. 때 묻은 과거의 감정을 닫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야누스는 나는 옛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 본다는 오비디우스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나를 새롭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의 희망을 눈앞에 놓는 것, 예로부터 일신은 자기성장과정의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였다.

 

고전은 사라지지 않는다. , 자신을 필요로 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린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평화가 지속되리라 믿는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하는가? 왜 끊이지 않고 독재자들이 출현하는가? 권력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담고 가야하는가? 세상이 불완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아니 세상이 평화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우린 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이제 미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모든 것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의 환경과 요구에 가능성에 대한 근사치를 이야기 할뿐이다. 인간은 본원적인 의심과 질문을 통해 삶의 방향을 규정해왔다. 철학과 사상이 발전한 이유도 불완전한 미래에 대한 정체성의 불안 때문이다. 고전은 우리에게 과거의 흔적과 미래의 모습을 투영한다. 하지만 고전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순간은 현재 뿐이다. 불안한 미래도 음습한 과거도 결국 이 순간으로 인해 유지될 수 있다. 삶은 당신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삶의 나침반은 변하지 않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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