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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중력 - 생의 1/4 승강장에 도착한 어린 어른을 위한 심리학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세상은 내게 어른이 되라고 말했다
책 앞날개
주로 20~30대와 만나온 심리학자이자 상담가인 저자는, 그들의 고민을 마주하면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다. 졸업, 취직, 결혼 등
사회가 원하는 어딘가에 다다랐지만, 그다음의 방향을 완전히 잃고 방황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
모두 한 방향으로만 달리던 정규교육 이후, 마치 낯선 세상에 홀로 방출된 듯한 시기. 어른이라는 무게가 거대한 우주처럼 막연하게 눈앞을 가로막는 시기.
어린 시절 품었던 무한한 가능성은 현실과 함께 볼품 없어지는 걸 인정해야 하는 시기.
질문은 수없이 이어지지만 답은 찾을 수 없다. 미래는 두렵고 과거는 아프다.
그럼에도 2030세대의 이름은 마케팅 용어로 대상화된 채, 그들의 뜻 모를 방황과 고민은 그저 '좋은 때'와 '청춘'이라는 말로 덧칠된다.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상담을 해온 저자는 내담자들이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시기의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들을 쓸모 있는 성장의 시기로 바꾸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쿼터 라이프란?
p.31
사람들은 16세에서 20세 사이에 청소년기를 지나 쿼터 라이프에 진입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36세에서 40세 사이에 쿼터 라이프를 지나 중년기에 진입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쿼터 라이프는 청소년과 중년 사이의 어른이다. 쿼터 라이프는 첫 번째 성인기다.
쿼터 라이프는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이 시기에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새롭고 혼란스러운 체험이 필요하다. 복잡한 관계와 실패, 위험, 갈망, 모험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완전한 심리적 발달을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이 책은 저자인 상담자가 4명의 내담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그들의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해두었다. 우선 4명의 내담자는 각각 2명씩 의미형과 안정형에 해당한다.
의미형이란 외부의 기대보다는 자기 내면에 집중한다. 돈이나 계획 같은 것을 '허구적'이고 '인공적'이라고 인식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의미형은 고대 그리스에서 '카이로스'라고 부르던 비선형적인 시간이나 시간 감각이 없는 상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형은 종종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보통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안정형의 삶은 꽤나 기능적이다. 부러움을 살 때도 많다. 인생의 숙제를 전부 해치웠으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쿼터 라이프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은 4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어 간다. 책에서는 네 기둥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분리, 경청, 구축, 통합이다. 분리와 경청, 구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에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4명의 내담자 중에서 안정형에 해당하는 코너의 예를 들어보겠다. 코너의 문제점은 부모의 기대였다. 부모의 기대는 쿼터 라이프 시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 중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고 한다. 부모의 의견에 동조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보니 부모의 관점이 자신의 본능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 쓰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방학숙제도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매일 책을 읽고 독후감 쓰는 걸로 대체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께서는 초등학생인 내가 대견했던지 당돌했던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더운 여름 방학 내내 버스를 타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지금 생각하니 참 나 자신이 기특해서 칭찬해 주고 싶다. 그때부터 계속 내가 읽고 쓰는 습관을 유지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단칼에 반대하셨다. 절대 작가는 안된다고. 그러다가 굶어죽는다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작가가 되면 진짜 돈 한 푼 못 벌고 굶어 죽는 줄 알았다. 부모님의 말씀에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코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부모의 기대에 맞게 살지도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림보나 연옥 같은 곳에 갇혀 있는 신세이다. 코너는 용기를 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야 하고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자식이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자유나 신뢰를 주지 않는 부모라면, 일단 자기 자신을 깊이 돌아봄으로써 온 가족을 이롭게 할 수 있다.
p.113
쿼터 라이프의 두 번째 성장 기둥은 '경청'이다. 경청은 쿼터 라이프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한다. 더는 유익하지 않은 관계에서 분리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길렀다면 경청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내면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기 내면을 경청하는 행위는 방향 감각을 얻고 직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지식은 지배적인 문화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작동한다.
중년인 나도 쿼터 라이프를 겪고 현재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정해 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모든 학생들이 향하는 대학을 갔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경쟁적으로 달려온 것이다. 거기에 나는 없다.
다행히 책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무난히 겪어왔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글쎄? 나는 과연 같은 길을 따라갈까?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책이 있어 다행이었다. 스스로 위로하고 버틸 수 있는 이런 대상물이 없이 쿼터 라이프를 겪는 친구들은 아주 많은 내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수년간 아직도 머리에서 맴돈다.
의사 : "엄마, 나 이제 의사 그만해도 돼? 힘들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
그냥 들으면 큰 임팩트는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 의사의 나이는 60대이다. 60대까지 부모의 말만을 따랐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하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쿼터 라이프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런 삶이 올바른 삶이며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누가 봐도 사회에서 성공한 케이스이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삶에서 실패했고 불행하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이 이 의사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 번째 기둥은 '구축'이다. 코너는 자신의 내면을 경청하고 대학에서 농구팀을 떠나고 지속해서 의지해 온 약을 버리기로 한다. 새로 일어나기로 한다. 자신을 새로 쌓아 공부하고 싶던 의예과를 알아본다. 분리, 경청, 구축의 단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드디어 통합의 단계로 나아간다.
마지막 기둥이다. 코너의 부모님도 더 이상 코너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면서 간섭하지 않는다. 처음 상담자를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삶에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 쿼터 라이프를 겪고 있는 2030세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책을 접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완전히 쿼터 라이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책을 읽고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