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평을 두 번 나누어서 써야겠다. 서평의 기준이 있다면 초반부터 완전 '땡' 이겠으나, 책에 밑줄을 너무 많이 긋고 너무 많이 접어서 서평이 길어져도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내가 소장해야 할 책이 한 권 더 늘었다. 살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오래간만에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이라 하여 바로 구매해서 읽었더니 과연 그렇다. 그 서평가분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그래서 서평의 역할이 꽤나 중요한가 보다. 책의 구매에 큰 길라잡이가 된다. 나의 서평들도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구매 망설임에 굵은 발자국이 되길 바란다. 헤르만 헤세의 책들은 완독한 것도 꽤 있지만 읽다가 읽히지 않아서 그냥 덮어 둔 것도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다시 다른 번역판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싯다르타도 3~4개의 출판사 책을 구매해서 읽었던 터다.이 책은 문학이 아니라 헤세의 글들을 몇 개 모아 묶어 놓은 형태다. 헤세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생각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꽤 귀한 자료처럼 간직하고 싶고 그래서인지 가독성이 아주아주 좋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헤세의 문학을 읽다가 이 글들을 읽노라니 헤세의 이중적인 면을 훔쳐보는 듯하다. 문학작품들을 만년필로 써 내려갔다면 이 책은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연필로 써 내려간 느낌인데 오히려 독자와 작가를 향해 펜촉보다 더 날카로운 일침을 쏘는 것 같다.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사업을 하듯이 해야 하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지 말라. 책을 읽는 내내 반성을 하게 되는 책들은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스승이다.이제 혼나기 시작인데 벌써부터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쉽게 책장이 안 넘어간다. 나의 시력만 저하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자꾸 되뇌어본다. 책을 읽는 내내 애서가의 향기가 진동을 한다p.31나는 괴테의 《친화력》 을 지금까지 네 번쯤 읽었는데, 만약 지금 그 책을 또 한 번 읽는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엄벙덤벙 읽었던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 아니겠는가!진정한 장서가의 향기도 진동을 한다.p.40우리의 원칙은 '가치가 없는 건 가급적 장서로 들여놓지 말고 일단 검증된 것은 내버리지 않기! 다.소설을 읽다가 11호에서 12호로 바뀐 사소한 실수를 보고 헤세는 자전거나 난로가 고장 나서 기술자에게 수리를 맡길 때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인류애도 애국심도 아닌 확실한 일 처리일 것이고 오로지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작가라면 이런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이 안되는 거다. 뜨끔하지 않은가. 그의 생각은 이렇다.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다. 인류를 존중한다면서 자기가 부리는 하인은 괴롭히는 것,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신성하게 받들면서 그날그날 자기 할 일은 엉터리로 대충 해치우는 데서 모든 타락이 시작된다.인도와 중국 문학에도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주역은 우리도 읽기 힘든데 곁에 두고 마치 신탁에게 묻듯 읽곤 했다 한다. 작가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글 속에서 종종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업이란 침잠하고 눈을 밝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그럴 때에 우리의 일은 때로 불면의 밤과 구슬땀이 따를지라도 '노동'이 아닌 소중한 '천직'인 것이다.책의 중반부를 향해가면 <세계문학 도서관>이라는 목차가 나온다. 이 목차는 전체 다 밑줄 긋고 귀퉁이 접기를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책을 한 권 더 주문했다. 이 목차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부분이다. 출판사의 의도일까? 딱 중간에 배치한 보석 같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이는 유물을 숨기려는?난 발견했다!!이 책으로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책'이 아닌'헤르만 헤세'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