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해안 도로를 끊임없이 걷는다. 숲속을 헤매기도 하고 경사진 곳을 올라야 할 때도 있고 비탈길에서 미끄러져야 할 때도 있다. 강박적으로 걷는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걷고 또 걷는다.그날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끝까지 걷지 못하면 반드시 그 전날 멈추었던 그곳에서 다시 걷기 시작해야 한다. 남편은 그녀가 걷기 시작해야 하는 곳까지 태워주고 아들 버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그녀가 걷기를 끝내는 지점에서 차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일을 묵묵히 해 주는 남편과 아이도 그녀 못지않게 힘들지 않았었나 싶다. 지도를 보면서 걸어나가는 그녀도 한 번씩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러면 약속 시간까지 도착 장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남편에게 문자로 알려야 하고 숲속에서는 수신이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어떨 때는 반대로 컨디션이 너무 저조해서 목표한 장소까지 못 가고 현재의 위치로 데리러 올 수 있는지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반복적이고도 쉽지 않은 일을 남편 H는 인내한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몰랐을 뿐 남편도 아내의 특이한 점을 알아채고는 있었다. 사람마다 성격과 성질이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짜증을 받아들였으리라. 어쩌면, 철인 3종 경기와 심야 사이클링이 그렇듯, 이걸 하는 목적은 우리의 삶에서 관리할 수 있을 만한 작은 위기의 순간들을 일부러 겪어보기 위함인지 모른다. 언젠가 주체할 수 없는 일들이 밀려와도 대처할 수 있게 말이다.p.65자폐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려 한다고 한다. 저자도 아들이 태어나서 안고 다녀야 할 때조차도 전기가 찌릿함을 느껴 아들을 제대로 안고 다니지 못했다. 타인의 접촉은 당연히 금기시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거의 하루 종일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있게 된다. 아이와 엄마의 몸은 거의 한 몸이 되다시피 되는데 그런 과정을 겪어보지 못하고 너무나 힘들어한다. 자폐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소리에도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파티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사회생활도 아주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파티를 가서도 즐기지 못하고 가능하면 어떤 핑계를 둘러대서라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파티가 조용하고 고요할 리가 없다. 소음으로 발작적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저자는 모임 자체를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어머니들의 모임조차도 힘들어하니, 파티가 웬 말인가. 게다가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의 말로 받아들이나 보다. 감정을 파악하는 게 힘들어서 어리둥절한 상황도 많았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 않은가.매일 반복되는 걷기 프로젝트에 나는 살아가고 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남편 H와 아들 버트는 저자의 리듬에 따라줘야 한다. 그렇게 걷기가 반복되자, 남편과 아들 버트는 자신들 나름대로의 시간 보내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내가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들이 그들만의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우리 가족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들은 안도하고 있었다.p.186저자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 즈음, 즉 가족이 자신 때문에 희생된다고 느끼자 하루는 걷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한다. 버트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온 것이다.그러자 남편 H가 더 당황스러워한다. 자신은 버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했고 저자가 함께 하면 아들 버트 때문에 또 짜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가 날 때에는 뇌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느낌이라고 표현을 한다.걷기에 집착을 하던 저자는 차츰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해석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아들과의 접촉도 이젠 제법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파고들어도 아이를 바라볼 줄 안다."너 변했다. 6개월 전만 해도 전날 멈춘 바로 그 장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더니."p.268그래, 서서히 변화하고 한 걸음씩 나아지고 있다. 이젠 걷기로부터 자아를 인정하면서 한곳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란다. 저자에게는 이제 시작일지 모르지만 곁에서 항상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기에 함께 걸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동물들을 싫어하지만 유독 새는 좋아하는 저자. 어쩌면 자신이 새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혹은 새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저자는 전문의에게 최종적으로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 '일지도 모른다'가 '이다'가 되었다. 의사:"완치가 어렵다는 건 아시겠죠."저자:"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