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른 탓일까. 아니면 서투른 탓일까. 처음 가보는 낯선 길. 지하철 하나가 방금 지나갔다. 줄지어 걷는 이들의 걸음걸이엔 조바심의 꽃이 피었고, 어떤 이들의 얼굴엔 아쉬운 한숨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시간은 늘 정해져있기 나름이다. 오늘도 9시 30분까지는 도달해야한다. 조금만 빨리 걸었더라면 하는 작은 후회가 파동을 일으켰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쉬움을 머금은 동지가 많았다. 일단은 안심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눈길은 온갖 색으로 꾸며진 수험용 책을 놓지 않았고, 내손에도 그동안 정성들여 정리한 노트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어젯밤은 잠들기 힘들었다. 머릿속은 온통 시험관련 지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른 봄기운이 창문으로 배꼼 고개를 내밀었지만 상응할 여유가 없었다. 이른 봄꽃 향기에 취해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안 될 일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어렴풋한 꿈속에서 알람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소풍가는 날 아침과는 다른 기분, 그 당혹스러움이 세수하는 순간까지도 어깨위에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어쨌든 언덕 위를 오르는 경쟁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지만 희미한 미소만 서로 교환했을 뿐이다. 고시학원에서 제공하는 공짜 커피를 서둘러 입안에 흘려 넣고는 시험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빈자리가 적었다. 먹고살기 힘든 까닭이리라. 신성한 밥벌이를 위한 첫발걸음이 이리 어려울 줄 몰랐다. 부모님이나 선배들이 갔던 길은 왠지 순탄해 보였는데 시대를 잘못만난 것 일까. 심란한 마음에 변명이 제 구실을 찾고 있었다.
손에 쥔 컵을 내려놓고 오전 과목을 정리한 노트를 펴고 빠르게 넘겼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시험 직전의 강박감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냉정해 보이는 시험감독관이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과민성 방광의 또 다른 압박이 있었다. 화장실에는 줄이 길에 늘어서 있었고,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책장은 넘어가고 있었다. 경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지. 알지 못할 짜릿함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그래 반드시, 언젠가는 거쳐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피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래 오늘 마지막 시험이 되게 하자. 거울속의 얼굴이 비장하게 웃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은 가능성의 시간이다. 무언가를 위한 종도 늘 울리기 마련이다. 다만 그 의미를 알고 가능성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가는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전자벨이 경쾌했다. 기분 좋은 시작이다. 네 과목 중 첫 과목 첫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지문이었고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어젯밤에 슬쩍 지나간 부분이긴 했지만 습관처럼 답을 골라낼 수 있었다. 아! 이런 통쾌함이란!!
국어 과목은 예시문이 무척 길었지만, 평소 다양한 책을 섭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법정스님의 ‘무소유’, 그리고 김사인의 시까지 출발이 순조로웠다. 문제에서 출제위원의 속내가 들여다보였고 답이 손을 들고 있었다. 날카롭게 보이던 시험감독관의 눈초리가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 기분때문이리라. 조용히 웃고 있는 나를 창문 밖 토요일의 봄이 바라보고 있었다.
헌법은 예상했던 대로 판례와 헌법 및 각종 법조문을 아는지를 시험하는 듯 했다. 내가 출제위원이라도 이러한 문제를 출제했으리라. 문제는 영어시험이었다. 과연 무슨 의도로 이렇게 긴 지문을 본문으로 만들었을까. 번민은 짧았다. 재빨리 문제부터 훑어보고는 다시 본문으로 다시 문제로 의외로 답을 골라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영어시험의 가장 큰 난관인 문법문제가 이번에도 여러 개 눈에 보였다. 개탄스러운 대한민국 영어시험의 현주소를 또 한 번 체험했다.
종료 20분전을 알리는 방송이 정적을 깨트렸다. 누군가는 잠에서 깬 듯 화들짝 놀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순조롭게 문제지를 넘기고 있었다. 시험 종료 10분 전의 태도가 다른 것은 서로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계획하고 안배한 그 차이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오직 수험생에게는.
시험 종료 5분전에 답안지 기재까지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몇 문제 아리송하기는 했지만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백점을 목표로 시험장에 오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지 않았던가. 단지 커트라인 안에 내 점수가 들어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전은 수험전략과 선택, 시험시간의 집중이 모두 조화로웠다. 욕심을 버리니 타깃이 분명해보였다.
집에서 정성껏 챙겨준 죽이 무슨 맛인지 모르게 점심시간이 흘러가고, 캔 커피의 달콤함이 100년만의 따뜻한 봄 날씨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막아주었다.
오후 과목은 모두 법과목이었다. 평소 자신만만한 과목들이어서 시험시간 백분이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매 과목 지문이 거의 판례 위주로 출제되었고 대부분이 아는 판례의 결론이었다. 슬쩍 옆에서 열심인 수험생들의 눈길을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나와 같은 느낌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옆자리 수험생의 안경테가 유난히 빛나보였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나보다 더했겠지. 경쟁심과 동정심, 서로 어울리지 않은 궁합이지만 시험장에서는 서로 어울릴 수 있었다. 삶의 현장이 누군가의 말처럼 정글은 아니지 않은가. 짧은 한숨이 창문가를 맴돌고 있었다.
시험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니 창문 밖 햇살이 손짓을 했다. 후련함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그리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의 얼굴이 맥주잔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래 오늘이 토요일이지. 누군가에게는 토요일은 행복한 주말이었지만 그동안 밥벌이를 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주중의 하루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평범한, 지극히 일상적인 토요일을 즐겨보리라. 나중에 이런 수험생활이 그리울 날이 있겠지. 후회는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 잠이 오지 않는 불면의 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긴 시간 함께 했지만 오늘 같은 하루를 위해 그 날들을 잘 참고 즐겨왔기 때문이다.
시험장을 나서면서 핸드폰 전원을 켰다. 문자메시지가 여러 개 도착해있었다. 부모님, 사랑하는 친구들로부터 고생했다는 격려의 문자였다. 아름답고 따뜻한 3월 오후 3시의 태양이 나를 위해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햇살 하나하나에 솜사탕을 매달고 나를 반기고 있었다. 흐뭇한 정적이 머무른 순간, 푸른 하늘 어디에선가 맑은 물방울이 비쳤고, 지하철역 입구가 흐려보였다. 혼자만의 여행, 내가 선택한 삶의 길, 카타르시스란 진정 이런 것이었던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첫 계단에서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