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계가 전하는 안부
흔들려야 자란다는, 말은
이웃 세상의 슬픈 루머
나처럼
설레임 없는 아침이 또 있을까
길모퉁이 행복건강원에서 졸여지는 염려들
을, 잊기 위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당신
무언가를 담아내기 위해
안팎으로 자라야 하는 강박증의 당신
당신의 가방 속에서 흔들거리는 나
당신의 근심은
잔설 덮인 마지막 감보다
붉은 노을을 탐하는
철새의 날갯짓
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자라지 못했다는 말의 부제(副題)
당신도, 나처럼
셈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지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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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린다. 똑같은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하루, 음미하는 수준보다는 때우는 의미의 아침식사.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쁜 발걸음만 있을 뿐.
3~4분을 간격으로 수많은 문이 열리고 닫힌다.
무가지 신문이 사라진 공간에서 스마트폰의 세상이 열린다.
누군가는 만화를 보며 웃고,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흔든다.
가볍지 않은 제목의 책을 든 이가 드문 세상이라, 두 번씩이나 쳐다본다.
어제와 같은 인스턴트커피를 입에 머금고, 개인용 PC를 켜고, 또 낯익은 일과가 반복된다.
메뉴만 다른 점심식사가 어제 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있다.
인터넷 뉴스에서 바라본 익숙한 구태들, 특히 정치하는 인간들, 이들을 버려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그들을 버리지 못했다.
퇴근을 알리는 알람은 없다.
아침과 동일한 풍경이 다시 배경이 된다.
누군가에겐 저녁식사를 위한 시장보기와 어린이집에서 아이 데려오기가 아직 남아있다.
오늘 저녁은 어제와 달리 무얼 먹을 수 있을까?
직장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어린이집에서 가족이 모두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평범함이, 일상이 행복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런 반복되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걸까? 나만, 그런가?
어느 교수의 책제목처럼 청춘만 흔들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자그마한 자극이나 변화를 통해서 조금씩 흔들릴 필요가 있다.
그 것은 성장을 가져오기도 하거니와 삶의 성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여, 매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만보계는 슬픈 것이다.
성숙은 고사하고 자라지 못하는 숙명을 가진 만보계.
설레임이 있을 턱이 없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