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이다. 현자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죽음의 대한 근심을 갖지 말기를 경고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이 우리의 뜻대로 되었던가? 마치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어딘가 뱀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우리의 하루를 지배한다. 엄습해오는 불안감의 실체는 분명치 않지만, 공기와 같이 우리 주위를 부유하는 것은 명백하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베크 교수는 이와 같이 위험이 일상화된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 규정한다.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따른 불안감을 늘 품고 사는 사회를 말한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을까? 오히려 우리의 상황은 ‘재앙사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울리히 베크에 의하면 위험사회는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재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찰하고 재발을 막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재앙사회’는 위험한 경고나 재앙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재앙이 반복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2014년의 대한민국은 전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사건부터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른바 ‘재앙사회’에 가깝다.
#2.
지난 4.16 이후에 우리 사회에 깊은 반성과 진정성 있는 성찰이 있었던가? 책임과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알 수 있겠지만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성찰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책임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책임규명이라는 이유로 몇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기소하고, 관련 조직을 해체하는 법률을 입안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의욕부족으로 지지부진하다. 분노의 4. 16 이후에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있다.
꽃피우지 못한 어린 생명들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무엇을 보았던가? 국가시스템의 부재, 지도력의 부재, 위기관리시스템의 부재를 비롯한 무정부상태와 무능하고 무력한 몇 사람의 직업정치인들을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위험에 노출된 대한민국의 여린 속살을 보았다. 몇 번의 고통스런 기억을 통해 이제 국민은 무책임한 정부와 전문가 집단을 믿지 않는다.
책임은 말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한번 무너진 신뢰는 하루아침에 회복할 수 없다. 민방위복장을 착용하고, 사건발생 후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정운영자들의 인식은 여기에 머물러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한사람의 말은 책임 없는 자리에 있는 백사람의 말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리더십과 더불어 책임감이 강한 지도자가 필요한 까닭이다. 또한 체험적 지식이 결여된 학위만을 가진 전문가는 탁상공론의 전형적인 폐해를 가져온다.
우리사회는 6.25이후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와 고도성장시기를 거친 세계사에 흔치 않는 이력을 갖고 있다. 역동성 있고 빠른 성공신화는 한강의 기적으로 과대 포장돼 현재 우리 사회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제대로 된 성장통을 겪지 못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흔들리는 청춘을 거치지 않은 허약한 성인이 되어버린 경우와 같다.
모든 사회변동에는 각각의 위험요소가 따른다. 따라서 바람직한 사회라면 다소 늦더라도 예상되는 위험과 그에 대한 극복의 경험을 거치고 가야하는 것이다.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리는 KTX에서 경관을 세밀하게 조망할 수 없듯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각 단계마다 발생하는 위험요소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사회는 빠른 변화를 소망했던 탓에 타산지석의 경험이 없고, 그 경험과 성찰의 부재가 우리사회의 현재를 더욱 위험하게 하고 있다.
#3.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발생하는 각종의 사건들은 하나의 복잡계를 이룬다. 하나의 복잡계는 더 커다란 체계의 하위체계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연관성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니 그 상관관계를 모른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복잡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 하나의 법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작은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대형사고를 만든다는 ‘하인리히 법칙’도 이러한 법칙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라고 한다.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세상이 운용되는 원리가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수학적, 물리학적 논리에 따르면 복잡한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의 틀이 명확하면 원인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변수를 통제하고, 변수들 간의 네트워크의 상관성을 분석할 수 있다면 그 동일한 사건의 재발은 물론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변수들도 각 사회마다 다르고, 그 변수로 인한 각종의 사건 사고의 양상과 그 해법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사회마다 발생 가능한 사건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실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경험적 사실을 체득하지 못함으로 인해 사회구성원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현재시점의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미진한 과거로부터 오고 있다.
#4.
울리히 베크 교수는 한국을 ‘특별한 위험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의 이면에는 한국이 실질적으로는 재앙사회에 가깝지만 한국사회가 가진 변화가능성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다소 우호적인 시선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능성이 있을까? 과연 우리는 재앙사회를 탈피하여 위험사회에 머무르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첫째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력의 가장 큰 힘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력은 무정부상태의 지폐와 같다. 책임을 다하는 정부는 국민을 저버리지 않는다. 또한 전문가 집단은 관련분야에 관한 전문적 식견뿐만이 아니라 체험적 통찰을 하여야 한다. 국민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자가 책임의 진중함을 통감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적재적소에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진 전문가를 두고, 양자가 머리를 맞대어 위기를 풀어나갈 해법을 강구하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여야 한다. 국민의 믿음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둘째는 정교한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뒤흔드는 사건에서 사후약방문과 우왕좌왕은 눈물과 절망을 낳는다. 안전에 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예방이다. 문제는 어떤 시스템에서 고도의 예측능력을 갖추더라도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정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한 정확한 매뉴얼과 행동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성수대교 붕괴, 삼품백화점 붕괴, 씨랜드화재 등 국민을 절망케 했던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에서도 크게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경험했던 사건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우리사회에 적용 가능한 선진시스템을 접목하여 한국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셋째는 원칙과 규범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다. 사회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는 서로 지켜야 할 원칙과 규범을 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각 구성원들이 이러한 원칙과 규범을 준수할 것이 요구된다. 누군가 원칙을 무시하고 규범을 사소하게 위반할 때 나비효과는 발생한다. 온정주의와 조급증에 빠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원칙의 수립과 규범정립에 소홀했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각 분야의 원칙과 규범을 바로 세우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넷째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직분에서 책임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사명감을 갖는 것이다. 한 개인이 스스로의 책임을 다했다면 세월호의 눈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업무에 성심을 다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구차한 변명은 없다. 사회체계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이며 복잡계이다. 시계 속의 작은 부품 하나의 오작동이나 고장 때문에 시계는 멈출 수밖에 없다. 우리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직분에서 성실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