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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계가 전하는 안부

 

흔들려야 자란다는, 말은

이웃 세상의 슬픈 루머

나처럼

설레임 없는 아침이 또 있을까

 

길모퉁이 행복건강원에서 졸여지는 염려들

, 잊기 위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당신

 

무언가를 담아내기 위해

안팎으로 자라야 하는 강박증의 당신

당신의 가방 속에서 흔들거리는 나

 

당신의 근심은

잔설 덮인 마지막 감보다

붉은 노을을 탐하는

철새의 날갯짓

 

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자라지 못했다는 말의 부제(副題)

 

당신도, 나처럼

셈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지나고 있는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알람이 울린다. 똑같은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하루, 음미하는 수준보다는 때우는 의미의 아침식사.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쁜 발걸음만 있을 .

 

3~4분을 간격으로 수많은 문이 열리고 닫힌다.

무가지 신문이 사라진 공간에서 스마트폰의 세상이 열린다.

누군가는 만화를 보며 웃고,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흔든다.

가볍지 않은 제목의 책을 든 이가 드문 세상이라, 두 번씩이나 쳐다본다.

 

어제와 같은 인스턴트커피를 입에 머금고, 개인용 PC를 켜고, 또 낯익은 일과가 반복된다.

메뉴만 다른 점심식사가 어제 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있다.

인터넷 뉴스에서 바라본 익숙한 구태들, 특히 정치하는 인간들, 이들을 버려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그들을 버리지 못했다.

 

퇴근을 알리는 알람은 없다.

아침과 동일한 풍경이 다시 배경이 된다.

누군가에겐 저녁식사를 위한 시장보기와 어린이집에서 아이 데려오기가 아직 남아있다.

오늘 저녁은 어제와 달리 무얼 먹을 수 있을까?

 

직장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어린이집에서 가족이 모두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평범함이, 일상이 행복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런 반복되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걸?  나만, 그런가?

 

어느 교수의 책제목처럼 청춘만 흔들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자그마한 자극이나 변화를 통해서 조금씩 흔들릴 필요가 있다.

그 것은 성장을 가져오기도 하거니와 삶의 성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여, 매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만보계는 슬픈 것이다.

성숙은 고사하고 자라지 못하는 숙명을 가진 만보계.

설레임이 있을 턱이 없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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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 토요일

 

무거운 외투는 금요일 오후 6시에 걸어두었다

직립의 일상은 수평으로 풍화되고, 나는

헐거워진 파자마 속으로 해체된다

 

하루를 살기 위해 날카로워지지 않아도 되는

삶의 경계를 놓아버린 시간. 빠져드는 꿈조차 뭉툭해진다

달콤한 무장해제, 흐트러짐은 또 하나의 법칙이다

 

늦잠은 관성의 영역을 넓히고 향기로운 발효를 거친다

지난밤의 잔상은 이기심 가득한 기호의 세계에 쌓여있다

뿌리를 내려 생목(生木)이 된 나는, 상투적 식탁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지 않는다.

 

멀리, 햇살을 쥐고 흔드는 가로수 따라

느릿느릿 초보운전자와 아이의 웃음이 동승하고 있다

흑백 화소가 점점이 살아나, 살빛 풍경을 채운다

 

오늘은 더 이상 빚어낼게 없다. 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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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처음 들은 나는 '불곰'을 잘못 발음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했지만, 곧 맥락이 주는 의미를 이해했다. 어찌되었건 피곤한 일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은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커다란 안식으로 다가온다. 하여, 금요일 저녁은 하염없이 풀어지고, 흐트러지고 늘어진다. 한권의 책과, 여러잔의 술과, 침묵이 편한 가족과 친구, 세상의 모든 편안함과 더불어 금요일의 밤은 깊어간다.

 

토요일 아침, 알람은 출근길과 등굣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놀이터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즈막히 들려오는 라디오의 음악소리만이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간.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고, 무언가를 예비하지 않아도 되는 비움의 시간. 토요일이다.

 

여행이 준비되었다면 모자를, 계획한 여행이 없다면 커피잔과 라디오 볼륨을 친구로 삼자. 진정한 아점(아침과 점심식사의 준말), (좀 아는척하자면) 브런치를 즐기고 멀리 창밖을 바라보자. 파자마 차림으로 아이들과 오목과 장기를 두고, 온 종일 그들과 부대끼며 꽉 차게 하루를 보내자.

 

여행길에서도 목적지만 바라보지 말고 지나가는 낯선 풍경을 제대로 바라보자. 푸른 녹음이 우거지고 짙어지고,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천상의 화음이다. 이 보다 달콤할 수는 없다.

 

토요일을 맘껏 즐시기라. 오롯이 나와 가족을 위해 토요일 하루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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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체통

 

누가 마르지 않을 시간을 보냈을까

누가 담지도 못할 그리움을 보냈을까

가끔은 난청의 운명을 원하지만

허공을 향해 열려진 귀는

늘 허기를 견디지 못해 듣고, 또 듣고

검고 푸른 속삭임, 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섬진강변 버들치의 물오름 소리가

모래언덕을 넘는 낙타의 울음소리가

동부전선에 내려앉은 반쪽 달빛의 미소가

또박또박 맞춤법이 길을 잃은 서투른 안부가

길을 묻고, 또 묻고

 

전상서(前上書)와 전사서(戰死書)가 함께 머물렀던 옛이야기는

마른 상처로 남아 퇴역군인의 노래가 되고

김 한 톳, 햇살 한 속은 늘 노란 옷을 입어

영원히 품을 수 없는 향수가 되는

 

바램과 버림을 견디어 낸, 색 바래 늙은 얼굴

젖어있거나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검고 푸른 소란들

때문에, 늘 붉어져 있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수줍은 오후

 

다시

당신이라 부르는 2인칭의 뜨거운 연서가

, 그녀를 호명하는 3인칭의 멀어진 눈길이

자작시를 투고하는 늙은 시인의 1인칭 독백이

한데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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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만큼이나 찾기 어려운 것이 우체통이다. 휴대전화나 이메일이 나타나기 전에는 손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에 우체통에, 사랑한다 보고싶다 기다린다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도 했었는데  ...밤새워 편지를 쓰고 아침에 후회하는...그때가 그사람이 그립다. 말을 할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개인pc로 다양한 소식이 전해진다. 업무용 연락이나 친구나 직원들의 애경사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하나의 메일에 머무르는 시선의 양과 질은 얼마나 될까?

커피 한잔의 시간 속에 모든 메일이나 소식을 확인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 짧아진 시간만큼 인간관계의 농도가 묽어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까?

 

군대간 아들이 2주만에 부쳐오는 첫번째 편지를 기억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눈물없이 쓸수 없었고,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얼룩진 편지지를....내가 그랬다. 훈련소 입소 2주만에 보낸 편지지에 그저 무거운 침묵과 표현하기 어려운 서러움을 잔뜩 보냈다. 해병 1사단 훈련소의 내무실에서는 고개숙여 흐느끼는 스무살의 검게 그을린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 편지를 여러번 읽어보았을 부모님에게 아직까지 그때의 심정을 묻지 못했다.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다정한 손편지를 써야겠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나는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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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허둥지둥 살지 않으리라

빨랫줄에 아기기저귀 펼쳐 널고

나의 하루도 맑은 햇빛에 비춰보리라

 

바쁘게 살지 않으리라

거미줄 너머 세상을 보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거미의 생각을 읽어보리라

 

지나치듯 살지 않으리라

한 올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스치는 아이의 미소에 눈을 맞춰보리라

 

버리듯 살지 않으리라

행복과 불행 사이에 무심히 버려지는

시간을 한 땀 한 땀 수선하며 살아보리라

 

앞만 보고 쫓기듯 살지 않으리라

꿈의 일부도 담지 못하는 신분증보다는

꺾임의 지혜를 따스한 저녁밥상에서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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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면, pc를 켜고 커피잔을 든 후 첫 행동은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다.  

출근할땐 초2인 셋째이자 큰아들 손을 잡고 꿈얘기를 하면서 느리게 걷는다. 하늘이 파랗다.  

퇴근할땐 우리집 막내인 네살배기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토성길을 지나며 고추잠자리를  본다. 반짝이는 개밥바라기와 먼저나온 반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지하철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휴대전화는 최대한 진동으로...때론 명상할 것.

친구와의 통화는 따뜻하고 진지하게,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를 분명하게. 때론 과감하게 "NO"라고 사양할것.

저녁식탁은 단촐하지만 이야기거리는 풍부하게 아이들과 웃으며...그리고

늘 여유를 가지고 여운을 남길것. 하루를 마감하며 마음을 청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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