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체통

 

누가 마르지 않을 시간을 보냈을까

누가 담지도 못할 그리움을 보냈을까

가끔은 난청의 운명을 원하지만

허공을 향해 열려진 귀는

늘 허기를 견디지 못해 듣고, 또 듣고

검고 푸른 속삭임, 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섬진강변 버들치의 물오름 소리가

모래언덕을 넘는 낙타의 울음소리가

동부전선에 내려앉은 반쪽 달빛의 미소가

또박또박 맞춤법이 길을 잃은 서투른 안부가

길을 묻고, 또 묻고

 

전상서(前上書)와 전사서(戰死書)가 함께 머물렀던 옛이야기는

마른 상처로 남아 퇴역군인의 노래가 되고

김 한 톳, 햇살 한 속은 늘 노란 옷을 입어

영원히 품을 수 없는 향수가 되는

 

바램과 버림을 견디어 낸, 색 바래 늙은 얼굴

젖어있거나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검고 푸른 소란들

때문에, 늘 붉어져 있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수줍은 오후

 

다시

당신이라 부르는 2인칭의 뜨거운 연서가

, 그녀를 호명하는 3인칭의 멀어진 눈길이

자작시를 투고하는 늙은 시인의 1인칭 독백이

한데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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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만큼이나 찾기 어려운 것이 우체통이다. 휴대전화나 이메일이 나타나기 전에는 손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에 우체통에, 사랑한다 보고싶다 기다린다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도 했었는데  ...밤새워 편지를 쓰고 아침에 후회하는...그때가 그사람이 그립다. 말을 할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개인pc로 다양한 소식이 전해진다. 업무용 연락이나 친구나 직원들의 애경사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하나의 메일에 머무르는 시선의 양과 질은 얼마나 될까?

커피 한잔의 시간 속에 모든 메일이나 소식을 확인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 짧아진 시간만큼 인간관계의 농도가 묽어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까?

 

군대간 아들이 2주만에 부쳐오는 첫번째 편지를 기억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눈물없이 쓸수 없었고,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얼룩진 편지지를....내가 그랬다. 훈련소 입소 2주만에 보낸 편지지에 그저 무거운 침묵과 표현하기 어려운 서러움을 잔뜩 보냈다. 해병 1사단 훈련소의 내무실에서는 고개숙여 흐느끼는 스무살의 검게 그을린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 편지를 여러번 읽어보았을 부모님에게 아직까지 그때의 심정을 묻지 못했다.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다정한 손편지를 써야겠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나는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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