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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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이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이 남자의 서정성 가득한 이 책을 통해, 각인하겠노라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작가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위시리스트에 담아본다.

읽는 내내 '헤밍웨이'와 비교가 되는 것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반전 메시지를 남기는 면에서 미국과 독일의 이 걸쭉한 남자 작가들을 비교하게 되더라는..

두 작가 모두 내게는 의외의 발견이지만 귀한 존재이다.

'라비크'는 독일에서 큰 병원의 외과부장을 지냈으나, 게슈타포에 쫓기는 두 친구(생명의 은인, 유대인 작가)를 자신의 집에 숨겨둔 죄로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되고 고문을 받는다. 강제수용소에 보내지고, 병원을 거쳐 도망쳐 나온후 여러 나라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오게 된다. 그에게는 여권도 증명서도 없으므로 경관에게 체포되면 국경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한 몇 번의 이력이 있다.

'베버'라는 사람의 병원에서 '뒤랑'이라는 늙고 무능한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하고 받은 약간의 대가로,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리의 거리 센 강에서 낯선 여자와 마주치면서 이야기기 시작된다. 그녀 '조앙 마두'는 이탈리아 출신의 3류 배우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그녀의 동거남의 죽음을 피해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이 남자 '라비크'는 전쟁과 불법 체류자의 삶을 통해서 또 의사로서 죽어갈 사람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당하고 고문 받은 끝에 강제수용소에서 저항하다가 목을 맨, 그의 연인 '시빌'을 아프게, 힘들게 간직하고 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파리는 절망적인 가운데서 술집과 매춘 사업이 번창한다. 외국의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증명서 없이 유령 의사생활을 하지만 그는 꽤나 능력 있고 인간적인 의사이다. 그가 주로 하는 수술은 홍등가 매춘부들이 '부쉐부인'이라고 불리는 늙은 산파가 엉터리로 해놓은 낙태수술의 실패로 인해 위태롭게 된 여인들의 재수술이다. 그런 사례는 대부분 자궁을 드러내고 평생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또한 그녀들의 매독을 검사하기도 하면서 마담 '롤랑드'를 비롯하여, 어린 나이의 매춘부 들과 인간적인 우정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의 도어맨 '모르소프'와 체스를 두며 지내기도 하는데, '모르소프'는 러시아 피난민 출신으로 '라비크'에게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라비크'가 지내는 싸구려 호텔에는 대부분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역시 불법체류자 들이다.

 - 중간 생략-

 

장면 장면의 전환이 매우 세련되었다. 주옥같은 문장들과 고독한 한 남자의 서정에 빠져 줄거리를 자꾸 놓치며 읽게 된다.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훌륭한 소설이다. 전쟁과 전쟁으로 점철된 그 시절에도 사랑은 필요했고 청춘은 소중했으며, 인간은 사랑받아 마땅했음을..

이 소설을 십 대 때 읽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노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의 프랑스 파리, 불안과 절망 속에서 라비크의 시선에 종종 등장하는 개선문, 그리고 그와 그의 연인, 그의 우정을 위로하던 '칼바도스', 주인공들의 이름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사과주의 일종인 이 술에 대한 어느 분의 회상 때문에 읽게 된 개선문은,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가, 아름다운 작품에 눈뜨게 하였다.

 

"사랑이란 언제나 자신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연못은 아닐 거야, 조앙. 사랑엔 썰물과 밀물이 있어. 난파선과 침몰한 도시, 낙지와 폭풍우, 그리고 황금상자와 진주도 있는 법이야. 하지만 진주는 깊이 박혀 있어." 287

엷은 장갑을 통해 강철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감촉이 좋았다. 흔들거리는 불확실성을 벗어나, 다시 명석한 정확성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메스로 찔렀다. 가늘고 붉은 핏자국이 메스를 따라왔다. 모든 것이 갑자기 단순해졌다.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느꼈다. 소리도 없이 이글거리는 불빛. 이제 집으로 온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마침내!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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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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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면서 내가 아는 '고도'란, '수준이나 정도 따위가 매우 높거나 뛰어난 그런 정도'라는 사전적인 뜻으로 해석했더랬다. 이 짧은 책을 읽으며 이것이 희곡이었구나, '고도'는 사람의 이름인듯한데, 그들이 기다리는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알게 되면서 나도 함께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언제 올는지? 오면 그 둘, 방랑자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할 건지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상한 나무(버드나무인 듯) 한 그루만 서있는 황량한 언덕 밑에 늙은 '블라디 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며,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습관이 되어버렸고,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도 헷갈리며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는지도, 누구를 기다리는 거였는지도 헷갈리는, 기억력과 판단력이 쇠해진 두 노인은 몸동작과 말로 실랑이를 벌인다. '에스트라공'의 악몽에서 매번 깨워주는 이가 '블라디 미르'이지만, 그의 꿈 얘기는 듣지 않겠다고 한다. 서로 함께 함이 지긋지긋하다고 헤어지자면서도 다시 함께 만나서 기다리는 일을 하고, 기다림에 지쳐 목을 매서 끝내자고 하면서도 시도하지는 못한다.

리멸렬한 기다림을 메우려고 욕도 하고, 질문도 하고, 운동을 하고 춤도 추지만 시간을 보내기는 여전히 지루하고, 기다림은 포기하지도 못하면서 주머니에서 당근 대신 꺼낸 더러운 순무를 먹으며 '고도'가 오면 살수 있다는 희망에 꽁꽁 묶여있다. 마치 '포조'의 끈에 묶인 늙은 노예 '럭키'처럼..

그리고 어제도 만났으면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이 와서는 '고도'가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내일은 온다고.. 그렇게 만 전한다. '고도'는 오지 않고, 이 둘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도'가 누구지? 그가 오는 건가? 왜 안 오는 거지? 어리둥절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말장난 같은 말들과 서로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예상되는 모자 돌리기 같은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뭔가 어둡고 참담하다.

실제 연극에서는 웃음의 포인트가 훨씬 많다고 하는데 아직 연극은 보지 못했으므로..

제 이 작품을 통해서 주목을 받게 된 작가 '베케트'는 '고도'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자신도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독자의 몫이 되겠다...

'베케트'는 유쾌한 허무주의자이고,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정수라고 한다. '부조리극'이란 프랑스를 중심으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서유럽을 풍미한 흐름으로 '반연극', 혹은 '전위 드라마'라고도 한다. '부조리극'의 주제는 불합리 속에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드러내 인간에게 존재의 부조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통속극이 유행하던 시대에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과 끝맺음을 하는 특이한 연극이 먹혔음은 '실존주의'와 '세계대전'이었을 것이다.

제 '베케트'는 아일랜드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한 농가에 숨어 살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했다고 한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결국엔 기다리는 일은 아닌지?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닌지? 기다리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으로 버티는 삶은 아닌지? 하는 생각.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 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 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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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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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의 역사 속 위대한 작가 '쿤데라'는 현존 하고 있는 현재 나이 90의 사람이다.심오한 제목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는, 젊음을 사유하게 하고 철학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15년 앞선 이 책은 나의 초창기 블로그님의 추천작이다.

총 7부로 나누어진 이 장편 소설은 '시인의 탄생', '자비에르', '수음을 하는 시인', '도망치는 시인', '질투하는 시인', '중년 남자', '시인의 죽음'으로 구성된다.

인공인, 시인 '야로밀'의 탄생과, 어른이 되는 과정, 시인이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랑과 죽음을 일직선상에 놓고 거기에 어머니와 몇 명의 여인, '자비에르'라고 하는 '야로밀'의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제2의 자아, 그리고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 한번 나오지 않는 '야로밀'의 어머니는 젊은날 기사와 사랑에 빠지고, 임신을 하게 된다. 그는 쾌활하고, 자유분방하며 매혹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그녀의 마음과 몸을 얻었지만, 사랑의 모험은 탐욕한데 비해, 인생의 모험은 두려워하였기에 그녀가 잉태한 생명을 제거해 주길 바란다.

유한 상인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혼전임신을 환영했고, 그래서 그 기사와 결혼을 한다. 그녀의 집에 트렁크 두 개만으로 입성한 남편은 그녀의 세계를 거부하는 암시로 '아폴로 입상'을 가져다 놓았는데, 반감을 품었던 그녀는 어느새 '아폴로 입상'을 좋아 하게 되고, 뱃속의 아이가 '아폴로'를 닮기를 소망한다.

그녀의 언니는 무희이고, 프라하의 일류 양장점 에서 일을 하고, 테니스를 치면서 사람들의 관심 을 받는 존재이다. 그런 언니의 속물스러움에 반발심을 가진 그녀는 음악, 문학이 가진 감상 적인 진지성을 사랑하게 되고, 의학도와 사귀었으나 자신의 육체에 대한 우울함만을 얻게 되어 철학과를 지망하게된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인 활달한 젊은 기사와의 육체적 사랑에 눈을 뜬다.

그녀는 임신으로 인해 여인의 육체에서 어머니의 육체로 변모되는 기쁨과 성스러움에 눈뜨고, 사랑을 쫓는 육체가 아닌 헌신하는 육체로 거듭남에 따라 자존심을 찾고 자부심까지 갖게 된다.

그녀의 아들 '야로밀'이란 이름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뜻으로 봄철에 탄생한다. 말이 터지자 주위의 어른들에게 그 아이의 말이 운율로 들리고, 칭찬 반응에 힘입은 아이는 어휘를 연구하게 되고, 재능 있고, 감수성이 강하고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다고 여겨진게 된다. 지나친 모성애에 감싸진 아이는 2학년으로 바로 입학하고 학교 행사에서 시 낭송을 하기도 하지만 어른의 관심을 의식하고 유발하려고 애쓰는 잘난체하는 아이가 된다.

'야로밀'의 친구는 약국과 향수가게를 소유한 부자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알리코'라는 개, 그리고 관리인의 아들인 학교 친구 하나 뿐이다.

 

-중간 생략-​

 

 

 

한 여인이 더 이상 여자, 사랑의 객체가 아닌, 어머니가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랑을 포기한 대신 얻게 된 책임과 의무와 희생하는 사랑에 대해, 한 소년이 어머니의 품 안을 떠나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 속에 깃든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한 사람이 시인이 되는 과정, 체코의 근대화 속 젊은이들의 방황과 '쿤데라'의 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소설, ' 쿤데라'는 이 소설의 제목을 '서정 시대'라고 하려다가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기도 했던 '쿤데라'는 이 소설속에 여러 시인들의 이름과 삶을 등장시킨다. '생은 다른 곳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 의 주제이다. 그리고 오해와 진실, 착각과 현실의 대조를 팽팽하게 전개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 위대한 밀란 쿤데라ᆢ한 소녀에 내재 된 여성성, 그리하여 눈뜬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그가 잉태한 아들은 역시 소년속에 내재된 남성성을 추구하게 되는 수레바퀴 같은 인간의 생ᆢ내게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었다

서정시는 어떤 진술도 당장 진리가 되는 그런 영역이다. 시인이 어제는 ‘인생은 눈물의 골짜 기‘라고 하고, 오늘은 ‘인생은 미소의 땅‘이라고 하더라도, 두 경우 모두 그는 옳다. 모순은 없다. 서정시인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증거는 시인 자신이 가진 감정의 강렬함뿐이다. 서정 시인의 천재성은 경험 부족의 천재성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어휘들을 수정(水晶)처럼 조형 있는 구조로 배열한다. 시인 자신은 성숙 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가가 경탄하며 마주 보 고 서 있는 예언의 궁극성을 가진다. 243

- 인간의 몸으로부터 슬픔이나 기쁨이 눈에 보이 지 않게 발산되는 하나의 방식으로, 순수하고 소박한 눈물이 스스로를 위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눈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 눈물의 순진성에 대한 방패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영혼 깊숙이 감동을 받았다. 324



- 그리고 이제는 꿈과 현실, 시와 인생, 행동과 사고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제거할 때가 온 것이다. 자비에르와 야로밀 사이의 균열을 막기 위해서는 둘이 단 하나의 존재로 결합해야만 했다. 환상의 인간은 행동의 인간이 되고, 꿈의 모험은 삶의 모험이 되어야 한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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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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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만 강렬한 소설이다.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에서 태어난 작가의 자전적인 이 소설은 그녀가 노년에 집필했다고 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 베트남과 프랑스를 오가며 나른한 독백처럼 전개되지만 간결하고, 담백해서 몰입도가 높다. 그리고 섬세하다.

혼가정을 이룬 엄마는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에 있는 여학교의 프랑스어 교사인데, 남편의 죽음으로 아들 둘과 딸을 키우며 개간지를 사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무리한 빚에 쪼들리면서 안간힘으로 버틴다.

맹목적인 장남에 대한 편애로 작은 아들과 딸은 상처를 받고, 기이한 광기를 부리는 엄마 밑에서 아이들은 기괴하게 성장한다. 그리고 딸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어도 여전히 깡마르고 빈약한 아이티가 있지만,

족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넘나들면서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타고난 몸의 기질의 흐름을 느끼고 욕망에 눈뜨게 된다. 그 욕망은 방학 동안 엄마가 있는 여학교의 사택에서 머물다가 사이공에 있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기숙사로 향하는 나룻배 안에서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온,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중국인 남자에게 향한다.

남성용 펠트 모자를 쓰고 금박 장식이 있는 하이힐을 신고, 묘한 분위기로 서있는 열다섯 살 그녀의 관능은 백만장자의 상속인 중국 남자를 사로잡는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삶에 이런 일들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기이한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했던 그녀는 그렇게 따라나선다.

리고 처음부터 그 남자와의 사랑에 미래가 없음을, 기대하지 않음을.. 스스로 눌러 자신을 그가 돈을 주고 샀던 다른 여자들처럼, 즉 창녀처럼 대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중국인 마을의 독신자 아파트에 살면서 그녀를 통학시켜 주고 비싼 음식을 사주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식사도 접대한다. 그녀의 가족들은 자신의 딸을 창녀라고 여기며 절망에 빠졌다가도 그에게 감사할 줄도, 안부를 물을 줄도 모르면서 비싼 식사와 술을 즐긴다.

녀의 두 오빠들은 건달이며 특히나 큰 오빠는 아편과 노름과 도둑질도 일삼는 작자이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광기를 부리면서 큰 아들에게 잘못된 모성애와 집착을 보인 다. 삼십 대의 엄마에게는 청년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가족과 교사의 신분 때문에 결별 통보를 한끝에 청년이 권총 자살을 하게 되는데, 지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제 과부가 된 엄마는 따돌림과 가난을 극복해 보려 하지만 점차 식민지에서의 삶에 지치고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족 중 가장 사랑했던 작은 오빠마저 죽는다.

열두 살 연상의 백만장자 중국인을 애인으로 둔 이 백인 소녀는 서로를 욕망하며 탐닉하지만 미래를 공유하지 않고, 그를 한낱 바람둥이 취급을 하려 한다. 그의 열렬한 고백에도 헛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 그녀의 가족처럼 동양인, 중국인을 무시하지만 그의 돈에 힘에는 굴복한다.

음부터 그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창녀가 되고자 한 그녀의 예감대로 그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녀는 프랑스로 떠나오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 몇 번의 결혼과 이혼 중 아이들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 중국인 애인, 그남자는 집안에서 정해준 부유한 중국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 오게 된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자신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고, 결코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한다.

이 소설은 1984년의 작가가 회고하는 1930년대의 사랑이다. 그리고 여류작가인 그녀는, 1996년에 40년 연하의 애인 품에 안겨 죽는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 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10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57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 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이 마을과 저 마을에서 서로 화답하며 짖어 댔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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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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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단 노엘은 쉰몇 해를 넘기는 동안 내적인 균형을 깨트리거나 외적인 일상의 질서를 뒤섞는 일을 혐오하면서 정확하게 고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비둘기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2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그는 사실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그의 내적 균형을 깨고, 외적 질서를 깨는 엄청난 일들을 겪은 사람이었다.

 

 

년 시절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 한차례 천둥과 소나기 탓에 신을 벗고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를 신나게 첨벙거리며 집으로 왔는데 어머니가 없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마저 사라졌다. 누이동생과 친척 집에서 전쟁을 피해 숨어 지내며 아저씨의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는데, 그 친척 아저씨가 조나단을 군대에 입대 시켰다. 3년 동안 성실하게 의무를 다했으나 이듬해 인도차이나에 파견되어 2년을 보내다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이질에도 걸려 군 병원생활도 하게 된다. 그 후 제대를 하여 친척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누이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고 하고, 아저씨는 그를 이웃 마을의 여자와 혼인을 시킨다. 그는 결혼생활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 드디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뿐이었는데 그의 아내는 결혼 4개월 만에 사내아이를 낳고는 같은 해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결론을 내리고,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과 따가운 시선을 피해 파리로 떠난다.

 

곳에서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고 7층에 있는 작은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되었다. 공중 화장실을 쓰는 등, 좁고 불편하지만 그간 모인 돈으로 좀 더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있음에도 지난 20년간 지내온 안전한 섬이자 확실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인 그 방을 떠나지 못하고 집주인에게 잔금만 치르면 자신의 소유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성실하게 평화롭게 지내는 것만이 그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아침, 그 집에 오래 살면서도 사람들과의 교제는커녕 대면조차도 꺼리는 그가 화장실 앞에서 이웃과 마주치는 상황에 대한 면구함 때문에 발자국 소리 나 이웃들의 생활 패턴까지 분석하여 이른 아침 화장실로 향하는데, 그의 문 앞에 비둘기가 앉아 있음을 보게 된다.

 

쩍도 않고 앉아있는 비둘기와의 기싸움에서 진 조나단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혼란과 무질서에 휩싸여 다시는 방을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세면기에 소변을 본다. 자신의 질서를 깨트린 상황에 분노하면서 좌절한다.

 

출근을 해야 하지만 비둘기와 마주칠 걱정, 그리고 퇴근 후에도 자신의 집에 진을 치고 있을 비둘기를 상상하며 옷가지를 가방에 싸고 한여름, 겨울 외투에 털목도리까지 꺼내 두르고 자신의 방에서 나온다.

방을 나오자 비둘기는 이미 없어졌지만 사방에 비둘기의 똥들이 지천이다. 그리고 복도 맨 끝에 웅크리고 있는 비둘기를 보고는 덜덜덜 떨면서 우산까지 쓰고 달음박질을 쳐 집에서 탈출을 한다.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되기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집을 관리해 주는 아주머니를 만나 자신의 문 앞에 비둘기가 왔으며 오물로 더럽혀져 있다는 말을 가까스로 전하고는 출근을 한다. 지각을 면하기는 했으나 얼이 빠진 그는 그만 지점장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몰라보는 실수에 또 상심을 한다.

친구도 없고 은행의 부속품쯤으로 여겨지는 조나단은 쥐꼬리 월급의 대부분을 세금, 임대료, 사회보장 보험 분담금으로 내면서 휴가도 조금밖에 없이 지내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자신만의 질서를 지키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근 후 머물 싸구려 호텔에 짐을 맡기러 점심시간을 이용한 조나단은 그간엔 집으로 가서 점심으로 간단식을 만들어 먹고 돌아오곤 하였는데, 호텔에 짐을 맡기고 공원 벤치에서 빵을 먹게 된다. 그곳에서 거지를 본다. 먹고 마시고 벤치에서 당당히 낮잠을 즐기는 거지가 평생을 착실하고 단정하고 욕심 없고 금욕주의에 깨끗하고 시간 엄수도 잘하고 복종하고 예의 바르게 살아왔던 조나단을 회의하게 만든다. 잠시 거지를 질투하기도 한다.

 

 

회사로 돌아가려다가 벤치에 우유팩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난 조나단은 다시 돌아가 우유팩을 집어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들다가 그만 벤치의 나사에 걸려 바지가 찢어진다. 흉한 모양에 재봉사를 찾아가서 남은 시간 안에 꿰매줄 수 있냐고 물으나 3주는 더 걸린다고 하는 통에 하는 수 없이 테이프로 바지를 부치고 회사로 돌아온다.

이미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삶의 균형을 잃고 일이 꼬여가는 상황에 조나단은 분노로 가득하고, 피해 망상에 젖어 걱정과 노여움에 사로잡힌다.

호텔방에서 자살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악천후로 천둥과 번개 끝 고요함에 괴로워하다가 자신이 이렇게 힘든데. '왜 사람 들이 오지 않느냐고, 왜 구출해 내지 않으냐고 다들 어디로 간 거냐고,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고' 외치고 싶어 한다.

남들로부터 늘 버림을 당했다고 여겨온 그가 무섭고 절망적인 버림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 빛과 빗소리가 그를 비로소 자유 속으로 걸어나가게 한다.

비에 젖은 물웅덩이를 신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조나단은 비둘기도 비둘기의 오물도 없어진 집을 바라보며 어느새 활기차고 행복해하고 있다.

어떤 균형이 깨진다는 것, 어떤 이의 평화, 어떤 이의 질서,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상처 받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좀머 씨가 그러하고 조나단이 그러하고 또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그런 부류의 사람, 그리고 이런 세상에 던져진 사람 가운데 유독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 어쩌면 우리도ᆢ

자꾸 강자의 입장에서, 현 세계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조나단을, 좀머씨를 바라보게 되더라는... 사실 알고 보면 우리의 모습이 거기서 멀지도 않을 거면서 ..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수상 조차도 거부하고 은둔하다시피 하면서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인간 내면의 균열을 묘사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함을 인정한다.

짧은 글이지만, 또 한 번 작가를 상기하게 되는 소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 작가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사람들을 피해 사는 조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이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도 주는..

 

 

 

 

보행은 마음을 달래 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놓고 ,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퓌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대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 그런 모든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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