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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다.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에서 태어난 작가의 자전적인 이 소설은 그녀가 노년에 집필했다고 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 베트남과 프랑스를 오가며 나른한 독백처럼 전개되지만 간결하고, 담백해서 몰입도가 높다. 그리고 섬세하다.
재혼가정을 이룬 엄마는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에 있는 여학교의 프랑스어 교사인데, 남편의 죽음으로 아들 둘과 딸을 키우며 개간지를 사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무리한 빚에 쪼들리면서 안간힘으로 버틴다.
맹목적인 장남에 대한 편애로 작은 아들과 딸은 상처를 받고, 기이한 광기를 부리는 엄마 밑에서 아이들은 기괴하게 성장한다. 그리고 딸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어도 여전히 깡마르고 빈약한 아이티가 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넘나들면서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타고난 몸의 기질의 흐름을 느끼고 욕망에 눈뜨게 된다. 그 욕망은 방학 동안 엄마가 있는 여학교의 사택에서 머물다가 사이공에 있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기숙사로 향하는 나룻배 안에서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온,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중국인 남자에게 향한다.
남성용 펠트 모자를 쓰고 금박 장식이 있는 하이힐을 신고, 묘한 분위기로 서있는 열다섯 살 그녀의 관능은 백만장자의 상속인 중국 남자를 사로잡는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삶에 이런 일들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기이한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했던 그녀는 그렇게 따라나선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 남자와의 사랑에 미래가 없음을, 기대하지 않음을.. 스스로 눌러 자신을 그가 돈을 주고 샀던 다른 여자들처럼, 즉 창녀처럼 대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중국인 마을의 독신자 아파트에 살면서 그녀를 통학시켜 주고 비싼 음식을 사주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식사도 접대한다. 그녀의 가족들은 자신의 딸을 창녀라고 여기며 절망에 빠졌다가도 그에게 감사할 줄도, 안부를 물을 줄도 모르면서 비싼 식사와 술을 즐긴다.
그녀의 두 오빠들은 건달이며 특히나 큰 오빠는 아편과 노름과 도둑질도 일삼는 작자이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광기를 부리면서 큰 아들에게 잘못된 모성애와 집착을 보인 다. 삼십 대의 엄마에게는 청년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가족과 교사의 신분 때문에 결별 통보를 한끝에 청년이 권총 자살을 하게 되는데, 지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제 과부가 된 엄마는 따돌림과 가난을 극복해 보려 하지만 점차 식민지에서의 삶에 지치고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족 중 가장 사랑했던 작은 오빠마저 죽는다.
열두 살 연상의 백만장자 중국인을 애인으로 둔 이 백인 소녀는 서로를 욕망하며 탐닉하지만 미래를 공유하지 않고, 그를 한낱 바람둥이 취급을 하려 한다. 그의 열렬한 고백에도 헛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 그녀의 가족처럼 동양인, 중국인을 무시하지만 그의 돈에 힘에는 굴복한다.
처음부터 그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창녀가 되고자 한 그녀의 예감대로 그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녀는 프랑스로 떠나오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 몇 번의 결혼과 이혼 중 아이들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 중국인 애인, 그남자는 집안에서 정해준 부유한 중국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 오게 된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자신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고, 결코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한다.
이 소설은 1984년의 작가가 회고하는 1930년대의 사랑이다. 그리고 여류작가인 그녀는, 1996년에 40년 연하의 애인 품에 안겨 죽는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 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10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57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 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이 마을과 저 마을에서 서로 화답하며 짖어 댔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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