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헤르만 헤세 선집 6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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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다는 책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서]의 저자, '헤르만 헤세'

그는 어릴 때부터 몽상적이고 예술가적 기질이 뛰어난 아이였고, 황야의 은둔자이자, 방랑 시인, 자연철학자이자, 고독한 방랑자의 삶을 살았던 자신 같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구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데미안'처럼, '크눌프'도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크눌프]는 [데미안] 발표 이전까지 가장 인기가 높았던 책이라고 한다.

1890년 대 초, 2주간 병원에 입원했던 '크눌프]가 방랑길에 나선다. 고약한 날씨 탓에 머물 거처를 찾고 있는 중, 무두장이 친구를 만나고,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크눌프'는 의지할 친구들이 많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방랑하지만, 재주가 많고 게다가 잘생기고 예의도 발라서, 사람들은 그와의 대화를 즐거워한다.

여행자 수첩에 부랑자의 삶과 허구의 삶을 기록하며 떠도는 그는, 유쾌하고, 진지한, 정신적인 우월감을 가진 사람이다.

주간지에서 오려낸 여배우의 사진과 강풍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에 떠있는 범선의 사진을 간직하고 사는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귀여운 고양이다. 부지런하고 암울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근심 걱정 없이 우아하고 화려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로 무위 도식하는 삶을 사는..

[크눌프]의 세편의 이야기는 「초봄」과 「크눌프에 대한 나의 추억」과 「종말」로 이루어진다.

「초봄」 편은 그가 약해진 몸을 이끌고 신혼인 무두장이 친구의 집에서 지내며 그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는 방랑하며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기인 같은 친구로 고상하거나 한심할 수 있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모두에게 말을 걸고 친구로 삼는 하루하루를 일요일처럼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친구의 아내가 그에게 자꾸만 작업을 걸어온다.

이웃집에 새로 온 하녀와 멋진 데이트를 하고, 그 불편한 집을 나와버린다

「크눌프에 대한 나의 추억」 편은 나라는 화자가 등장해서 자신이 조금 젊은 시절, '크눌프'는 중년의 나이쯤 된 시절에 만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 또는 두려움까지도 항상 느끼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는 '크눌프.'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 '크눌프'는 어느 날 말없이 나를 떠나 버린다.

모든 사람은 고독한 가운데 살고 있다던 '크눌프'를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그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 이후로 '크눌프'가 말한 고독의 쓰라림과 그것을 느끼게 된 나와, 계속 내게 머물러 있는 고독

「종말」편은

몸이 더 쇠약해져서 고향을 향한 '크눌프'가 의사 친구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간병을 받게 되지만,

무조건 고향으로 가겠다는 고집이 이루어진다.

그의 여인들

첫사랑 '프란치스카'의 배신과

'헨리에테',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낳고 죽은 '리자베트'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종말을 향해 걸어가면서 신의 음성을 듣고 그와 대화를 나눈다.

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두고도 무엇도 되지 않은 사람 '크놀프'

신은 그런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필요했다고 한다.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고되고 가난한 삶의 굴레에서 때로 '크눌프'를 조롱하기도 했지만, 그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들, 그리고 그를 부러워하고 동경했지만,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끝까지 다했던 사람들에게 '크눌프'의 방랑과, 무위도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느냐고 묻는 '크눌프'에게 신은 답변하고 위무한다. 그리고 '크놀프'에게 어떤 욕망보다도 잠들고 싶은 욕망이 강렬해진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얘기쯤 되겠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신에게는 사랑스러운 자녀라고..존재자체가 소중한것이라는..

그래서 아등바등 노력하고 관리해서 직업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살 사람들은 그리 살더라도

'크눌프'와 같이 직업도 가정도 없이 방랑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을 보면서, 조롱을 하게 되면, 자신 삶에서의 세속적인 성취와 비교할 것이고,

부러워하고 동경한다면, 일상이라는 삶 위에 있는 것에 대한 경건함을 갖게 된다는 것?

크눌프를 보면서 조르바( 카잔차 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스트릭랜드(서머싯 몸, 달과6펜스), 래리(서머싯 몸, 면도날), 싱클레어( 헤르만 헤세, 데미안)가 떠올랐다. 구도하는 모든 인간, 신과 인간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짠하고도, 사랑스럽다

 

 

크눌프, 헤르만 헤세, 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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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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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부닌'은 러시아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해 프랑스로 망명을 했고, 이 책은 그의 망명 시기에 쓰여진 책이다. 러시아 고전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그는 '체호프', '고리키' 등과 함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평가되지만, 정작 그는 자서전이라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일종의 회고록같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20세까지 그의 주변을 둘러싼, 자연과 가족에 관한 묘사들이다.

실제로 많은 부분이 주인공 '아르세니 예프'의 인생과 작가의 삶이 중첩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일지 상상해 보게 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며, 에세이 형식의 성장 소설쯤 된다고 본다.

러 나라를 여행하고 프랑스에 정착해서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를 회고하는 부분이 나온다.

주인공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어린 시절부터 세월이 한참 흘러 그때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 이야기가 1권에서 4권까지의 이야기로 1930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5권은, 그의 연인 [리카]라는 제목으로 1939년에 역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나, 그 후로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1952년에 미국에서 완전한 판본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나, '아르세니 예프'는 중부 러시아 시골의 영지에서 아버지, 어머니, 두 형과, 두 여동생과 함께 지낸다. 그의 가문은 몰락해가고 있지만, 고귀한 가문이었다.

그들이 사는 영지는 인적이 드문 벽지이지만, 시내로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최초로 선물 받은, 부츠와 가죽 채찍, 그리고 어린 목동과 노는 일이 그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최초의 기억이다.

그의 유년은 다양한 모험이 가득 찬, 모든 신비함에 눈뜨던 시절이다.

그의 집안은 크림 전쟁 중에 거액을 탕진한 아버지가 도박에서까지 많은 돈을 날리자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천하태평으로 지내고, 그럼에도 '아르세니예프'는 만족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리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목동 '센카'와 말의 죽음..

그는 유년시절부터 죽음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 죽음에 귀 기울이면서, 신에 대한 믿음과 개념이 죽음에 대한 개념과 함께 찾아왔다고 한다.

남다른 감수성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어머니는 슬픔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그녀의 기도와 눈물이 '모든 것은 흘러가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고, 세상에는 이별, 질병, 슬픔, 실현 불가능한 꿈과 희망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아르세니예프'는 김나지움에 입학하기 전까지 3년간 자신을 돌보던 가정교사도 떠올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세상을 떠돌며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린 '아르세니예프'의 무익한 꿈과 열정을 이해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록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옛 가문의 영광과 빈약한 찌꺼기만 상속받았지만, 소년 시절, 유럽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탁 트인 들판에서 태어나 자라난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찬미한다.

술을 점점 많이 마시게 된 아버지는 여전히 천하태평이고, '니콜라이' 형은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여동생 '나쟈'가 병을 앓다 죽는다.

그리고 그는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시내의 남루한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긴 '아르세니예프'는 거칠고 투박한 하숙집 주인을 보면서 그의 러시아인으로서의 자부심, 생활은 소박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민족보다 풍요롭고 어떤 나라보다 부유하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러시아에 대해 새로이 눈뜬다. 그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자기 나라 러시아에 대한 자부심과 러시아의 방식이 무엇이던가를 찾던 일이었다고 한다.

바투리노에 살던 할머니가 죽자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은 그의 가족들은 할머니의 영지로 이사를 오고, '아르세니예프'는 예민한 감수성만이 그대로인 채 아이에서 소년으로 변해갈 즈음, '게오르기' 형의 체포 소식이 날아든다.

형은 민중 속으로 운동, 지하활동을 하던 사회주의자였고, 1년 후 풀려나, 경찰의 감시하에 3년간 집에서만 지내게 된다.

시인 또는 작가가 되려고 김나지움을 그만둔, '아르세니예프'에게도 모든 사람에게 경이로운 시기인 청년 시절이 시작되고, 집안의 남자들 중 가장 건실한, '니콜라이' 형이 결혼을 한다.

촌누나의 결혼으로 맺게 된 독일인의 집에서 알게 된 '안헨'이라는 여인, 가난한 먼 친척이며 병약한 '리자' 그리고 '니콜라이' 형의 집에서 일하는 유부녀 하녀 '톤카'.. 그녀들과의 어설픈 인연과 결별은 '아르세니예프'에게 통렬하고 쓰라린 기쁨을 맛보게 한다.

아버지는 그가 가진 마지막 귀중품이던 총을 '아르세니예프'에게 주고, 사냥을 떠났던 '아르세니예프'는 취업을 하고자 오욜로 떠난다. 청년이 된 그의 감수성은 필연적으로 그를 방랑길에 나서게 한다.

그 후 일생이 지나갔다 하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장까지가 4권이라지만, 4장인 셈인, 이야기이고, 5장은 장성한 그가, '리카'라는 여인과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면서, 글 쓰는 일에 대한 고충도 드러나는 장章이다.

조국 러시아의 어두운 역사와 몰락하는 귀족의 삶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고향의 풍경과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시적으로 묘사한 글을 읽어내려가면 아득하게 그리운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가 밀려온다.

'아르세니예프'에게는 사랑도 자연의 일부로 묘사되는 듯하다.

게 우수와 절망에 빠지는 청년 '아르세니예프'는 '리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평범한 밥벌이에 대한 생각이 없음에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말다툼과 질투로 점철된 그들의 사랑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지만, 꿈과 현실의 완전한 부조화와 완전하고 온전한 사랑은 절대 실현될 수 없다는 진리만 깨닫게 된다.

'리카'는 '아르세니예프' 더러 왜 계속 '자연만 묘사하느냐' 묻고

아르세니예프는 '사람과 자연은 결코 분리되어서 살수 없다'고 하고

그는 그녀에게 공감을 바라지만, 그 기대는 다툼으로 끝나고

사랑과 창작의 고통으로 방랑하는 그는, 무도회에서의 멋진 그녀를 질투한다.

마침내 '게오르기' 형이 살고 있는 소러시아 (우크라이나)로 함께 떠난 이 연인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하는데,

집과 아이를 원치 않는 '아르세니예프'는 그녀더러 '오직 날 위해서, 날 보며 살아라, 다만 내게서 자유와 고집은 빼앗아 가지 말라, 그러면 난 널 사랑하고 이로 인해 더욱더 널 사랑할거라'고 주입을 한다.

극히 예술적이고 시적인 '아르세니예프'의 방랑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찬미와 탐미가 되어, 문득 떠나고 문득 되돌아옴을 반복한다. '리카'는 이를 질투한다. 어느 날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져버린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준비한다.

그의 나이 20세이다.

산문의 형식을 빌려 쓴 소설의 형태는 호불호가 갈릴 터, 서사 위주의 작품을 즐기는 이들은 선호할 수가 없는 장르일 것이다. 한편의 시집을 읽고 있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정말로 감각적이고 열렬히 삶에 도취되기를 갈망한다. 말하자면 단순히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삶에 도취되고자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술에 취하거나 발작적인 음주벽에 빠지고 싶어 하고, 일상과 계획에 따른 노동을 정말로 따분해한다! 내가 살던 시대에 러시아인들은 이상하리만치 넉넉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러시아에는 건강하고 굳센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젖이 흐르는 강, 억압 없는 자유, 축제에 대한 오래된 꿈이 러시아혁명의 가장 주요한 이유들 중 하나였을까? 대체로 러시아의 이단아, 폭도, 혁명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항상 현실을 경멸하면서 어리석을 정도로 현실과 단절되어 있고, 이성적인 판단이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시급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활동은 전혀 하려 들지 않았다. 126

봄 나무의 개화는 경이롭다! 봄이 화목하고 행복하다면 그 개화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때 나무의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뭔가가 지칠 줄 모르게 진행되다가 정말로 기적처럼 눈에 보이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나무를 힐끗 쳐다보다가 밤새 나무를 온통 뒤덮은 꽃봉오리들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며칠 더 지나면 꽃봉오리들이 갑자기 터져버린다. 그러면 나뭇가지의 까만 무늬는 갑자기 헤아릴 수없이 많은 연녹색 반점으로 뒤덮인다. 첫 구름이 다가오고, 첫 천둥이 치고, 따스한 첫 폭우가 내리면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난다. 나무는 어제의 벌거벗은 모습에 비해 아주 짙고 화려해지며, 크고 빛나는 초록빛을 아주 짙고 넓게 펼쳐서 아름답고 힘차고 단단한 어린잎을 보여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당시 내게도 그와 비슷한 뭔가가 일어났다. 매혹적인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1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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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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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필요 없는 원문을 읽고 그 문장을 곱씹는 일, 메타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작가의 감성을 음미하는 일, 그리고 90년대의 감수성을 읽는 일이란 때로는 충만한 기쁨이 된다. 지금의 이십대는 이런 류를 지루하다 할 수 있을까? 요즘의 소설 속 입체적인 플롯과 캐릭터들에 지칠 때, 나는 90년대의 여류작가들을 찾게 된다.

어느 한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김하진'이란 여자의 이야기이다.

사이좋던 아내와 사별한 이후 가평에 있는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겠다는 아버지, 그는 두 딸들에게 새집을 남겨주고 싶은듯하다.

마는 아버지와 정구를 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날, 언니의 전화를 받는다. 언니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미란'이 손목 동맥을 칼로 그어버렸다고..

그리고 또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서른다섯의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트렁크를 정리하지 못한다.

슬픈 일을 미리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남다른 예감은 한때 사라졌었는데

중국 여행에서 '미란'에게 닥친 불길한 일이 미리 떠올랐었다.

'미란'은 남자친구의 사과도, 친구의 사과도 받지 않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듯하다. 잊고자 애쓰거나..

'미란'이 잊고자 하는 지금의 아픈 시간을 보며

'하진'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인생의 한 토막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퇴원한 '미란'이 자신의 집에 머물겠다고 한다.

'미란'의 나이 스물

딱 그 시절의 '하진'을 그녀는 잃어버렸다.

'하진'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았는데, 겁부터 났다. 그리고 떠난 여행길이었고, 그에게 쓴 편지도 부치지 못했다.

방송국에 당분간 일을 쉬겠다 해놓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미란'과 함께 나서는데,

'하진'에게는 '윤'이란 친구가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윤'은, '하진'과 라디오 일을 하는 '현 피디'와 이혼을 했고,

언제든 힘들 때 찾아가면 따뜻한 음식과 휴식을 마련해 준다.

'윤'은 남편 '현 피디'와 결혼 중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현 피디'는 그런 그녀를 놓아주었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그런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든 시간을 보내면서, '윤'에게는 '하진'과 '현 피디'가, '하진'에게는 '윤'과 그가 그런 '내 편인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진'이 통째로 잃어버렸던,

그녀 '하진'이 '오선주'란 이름으로 살던 시절,

'은기'라는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찾던 노을 다방..

그곳에서 '은기' 혹은 '선주'가 뮤직박스 안 디제이에게 신청하던 노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그리고 그녀는 '김용선'이라는 이름을 찾아 제주도로 떠난다.

'윤'이 이혼을 하고 한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미란'과 함께..

리고 알 수 없는 기억 속의 그를 만난다.

그를 따라 노동 운동의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던 '하진',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그녀가 늘 기다렸던, '은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리스 민요였고

그들이 금요일에 이 노래를 ['기차는 7시에 떠나네']로 신청한 주의 일요일은

그들이 모여서 구호문을 만들고 플래카드를 제작하던 암호였음을..

그들의 청춘이 그렇게 스러지고

그 고통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하진'과

'하진'을 기다리던 '은기'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 노래의 선율처럼,

가사처럼 쓸쓸하고 스산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진'은 문득 스치곤 하던 연결되지 않는 한 토막, 한 토막의 언어들과, 기억들을 되찾고

비로소 검은 트렁크를 풀고

비로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향노루와 새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하진'은 아버지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전화를 걸어오던 여자에게 '하진'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은기'는 그곳에서 그녀와 '정수'와 함께 살아가고

그는 '하진'과 결혼을 할 것이고

'미란'은 드디어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윤'과 '현'은, '현'의 주머니 속, 아무 때고 꺼내마시던 스카치처럼,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무엇인지.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것으로부터 남겨지는 것은? 언젠가는, 당신이 내게 존재했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게 될 그 언젠가에도 무의식의 심연에 찍혀 있을 사랑의 자취는?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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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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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끌린 것은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한 동유럽,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작가를 처음 접하는 소설 때문이기도 했다.

역사상 빛났던 서유럽의 작가들 아닌, 역사상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후진했던 동유럽의 음악과 소설, 아니 그들의 예술과 문화에 응원 같은 관심을 갖게 되니, 더 빛나 보이고, 더 안타까이 여겨지는 것이 내게 있어서의 동유럽 애정 이다.

이 이야기는 몰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간의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동구의 공산권이 해체되기 이전, 다시 말해 헝가리의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가던 1980년대, 해체된 집단 농장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짐을 꾸려 떠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떠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세상의 끝, 가망 없는 지역에서 한때 멋진 아이디어들과 계획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10월의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괴이한 종소리에 놀라 깨어난, '후터키'의 불안한 기시감.

마을에 있던 소성당도 폐가가 된지 오래전, 종소리가 들려올 곳은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저는 그는 저녁에 따뜻한 물 한 대야에 발을 담글 수만 있다면 개 같은 자신의 인생이 어찌 지나가는지 구경만 하겠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이웃 '슈미트 부인'의 침대에서 잠이 깨었다.

결단을 내려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

간밤 그와 잠들었던 '슈미트 부인'은 동네의 아무 남자들과도 잠자리를 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남편 '슈미트'와 또 다른 이웃 '크라네르'는 마을 주민들이 8개월간 일했던 집단 농장의 삯을 받으러 나섰다가 돌아온다. 둘은 그 돈을 꿀꺽 삼켜보려 했지만, 눈치챈 '후터키'가 자신의 몫을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헐리치 부인'이 찾아와 '슈미트 부인'에게 엄청난 소식을 전한다.

1년 6개월가량 죽었다고 여겨졌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돌아온다고..

그래서, 유령의 종소리와 폐허가 된 마을의 정경과, 가난과 고난에서 희망의 끈마저 모두 놓아버린 남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10월의 추위 속에서 이야기의 1장 [그들이 돌아온다]는 장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들, 특히 '이리미아시'의 출현에 '후터키'는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그에게 있어 '이리미아시'는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을 지을 수도 있는 위대한 마법사쯤으로 여겨진다. 이 마을이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이들의 이웃 중, 의사는, 집단농장의 해체 이후 정직 처분이 내려져서 자신의 집에 은거하는 노인으로, 농장의 사망선고와 형편없는 몰락을 지켜보면서, 무력감과 기억력 쇠퇴에 맞서고자 살아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한다.

마을 사람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해 공책에 써 내려가는 그는 술과 담배 중독자이기도 하다.

과부가 된 '호르고시의 부인'에게는 술집과 연계하여 방앗간에서 매춘을 하는 두 딸과 상점 털이를 하는 잡범인 아들 '서니', 그리고 열 살의 막내딸 '에슈티케'가 있다. 맨날 술만 퍼먹는 엄마와 거짓말과 협박으로 자신의 돈을 빼앗아가는 오빠에게서 늘 소외되어 있는 '에슈티케'는 박약한 정신의 소유자로, 가족들에게 방치되어 있다.

오빠에게 사기를 당하고, 외면당하자 상심 끝에 고양이를 죽이고, 죽은 고양이를 안고 집을 나서, 쥐약을 삼킨다. 천사들이 자기를 데리러 오는 중일 거라고, 그래서 걱정이 없었다.

한때 그 아이는 오빠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은 오직 신의 뜻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녀는 물었다. '어떻게?' 오빠는 말했다. '쥐약을 먹는 방법도 있다'라고..

술집 주인 '야노시'는 한때 '이리마아시'의 권유대로 붉은 양파를 심어서 돈을 벌어 이 마을 술집을 사게 되었는데 '이리마아시'는 그 대가로 술집에서 14일 동안 공짜 술을 마셔버렸던 기억이 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리미아시' 일행이 도착하면 몇 년 동안 계속되어온 비참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고

우왕좌왕하던 삶을 그가 모두 감당해 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희망을 가지지만, 술집 주인의 생각은 미심쩍기만 하다.

그의 술집에는 거미들이 꼬인다. 돌아서면 거미줄이 쳐져 있다. 치우고 또 치워도 거미줄은 계속 생겨나지만, 정작 거미는 목격할 수 없었다.

'슈미트'가 자신의 부인에게 그들이 어디쯤 왔는지 술집에 가보라 했고, 마을 사람들이 점점 그 술집으로 모여든다.

문 닫은 학교의 교장선생, '크라네르' 부부 '헐리치' 부부 '켈레맨'노인 , '슈미트' 부부, '후터키', '케레케시' 농부까지..

그들 중 남자들, 술집 주인을 비롯한 교장선생, '크라네르', '헐리치' 등은 '슈미트 부인'을 향한 정욕을 품고,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감상하면서 술에 젖어든다. 그러나 그녀 '슈미트 부인'은 오직 '이리미아시'생각 뿐이다.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주지만, 그녀에게 있어 남자는 '이리미아시'뿐이었던 것이다.

[중간 생략]

탱고의 스텝이 앞으로 여섯, 뒤로 여섯이라고 한다.

이 책의 총 12장이 이 탱고의 스텝처럼 이루어지고, 마지막 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이런 순환적인 구성을 통해 절망의 악순환을 드러냈다고 한다.

2장 부분에서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 있어, 지나치게 열성적인 공무원 덕분에 기막힌 오해로 인해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공산당 관공서 관련 일을 하다가 배척되었고, 다시 대위의 부름을 받아 그의 요청에 따른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마을 사람들을 각자 흩어놓고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관공서에 제출한다는것과 어떤관련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냥 세기말, 각종 수많은 갈등과 전쟁의 계기가 되었던 사상이, 그 거룩한 명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헤매는, 헝가리10월의 찬비 같은 그런 몰락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끝까지 늙고 망상에 사로잡힌 의사의 끝맺음 없는 글일 뿐인 걸까?

실은 글 자체가 너무 모호해서 많이 헤매야 했다.

정치적인 암시를 알아차리기엔, 헝가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은 나의 한계이다

 

난, 예전에 잘못 생각했어, 얼마전에야 깨달았다네. 나와 벌레, 벌레와 강물, 강물과 강을 넘어가는 고함소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건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거야. 뿌리칠 수 없는 구속과 시간을 뛰어넘은 대담한 도약 사이에서, 영원히 실패하는 감각이 아닌 오로지 환상만이 우리로 하여금 비참한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있다는 믿음을 갖게끔 유혹하지. 하지만 도망칠 길은 없어. 3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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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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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하루키'의 소설 중, 진입장벽은 제일 낮은 듯하다. 무난하게 읽어갈 수 있다.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메타포의 혼선에 한번 빠져 봤기 때문에, [1q84]의 달과 리틀 피플에 한번 놀라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생각해 봤지만,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 애써도 '하루키' 소설치고는 난해 하지 않다.

물론 그의 초기작들은 아직 못 봐서 완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36세, 결혼 6년 차의 나에게, 찬비가 내리는 3월의 중순 일요일, 아내 '유즈'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면서 더이상 함께 살기가 힘들것 같다고 말한다.

출근하는 아내 대신 집안 살림을 돌보며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던 나는 미술대학을 다닐 때는 추상화를 그렸었다.

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능력은 대상의 핵심으로 곧장 파고들어 그 안의 것을 집어내는 직관적인 능력을 갖춘 특별함으로 나름 업계에서 인정받는 입지를 갖추었다.

생활의 안정을 위해 선택한 장르이지만 화가로서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려는 의욕도 사라졌다.

나 보다 3세 연하의 아내 '유즈'는 원래 사귀던 여자친구의 고교 동창이었는데 내가 한눈에 반해서 사귀되고, 결혼까지 이어진 인연이었다.

나에게는 3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다. 선천적 심장판막증으로 대수술도 성공리에 마쳤지만, 열두 살의 나이에 갑자기 죽게 된다. '유즈'는 그 죽은 누이동생을 떠올리게 했다. 외모보다는 그녀의 표정, 특히 눈의 움직임과 반짝이는 무언가, 빛나고, 생명력이 가득한, 그것은 긍정적으로 반짝이는 의지, 즉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었으며,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다.

아내의 통보 이후, 집을 나와 한 달 반 동안 낡은 자동차와 함께 동일본 지역을 돌아다닌다.

자동차도 망가지고, 지쳐갈 무렵 문득 나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대학 동기였던 절친, '야마다 마사히코'의 도움으로, 그의 아버지 '야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바다가 조금 보이는 산위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았던 9개월가량, 정체불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나는 생각이 좀 더 커지고, 여전히 그리운 아내와 다시 합치게 된다.

그리로부터 3년 후 나는 그 산 위에서의 삶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소설은 그 이야기이다.

집주인이었던 '야마다 도모히코'는 저명한 일본화 화가이다.

90세가 넘어 요양원에서 지내지만 그가 남겨둔 집에서 그의 물건들을 사용하며 지내는 동안, 시내의 문화센터 그림 교실에서 강사일도 하게 된다.

어린이와 성인반을 지도하면서 두 명의 유부녀들과 교제를 하기도 한다.

집주인이 남겨둔 작업실을 쓰면서 소리 없는 욱신거림 같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림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집주인이 남긴 오래된 책들을 꺼내 읽고, 그가 수집했던 레코드 컬렉션, 클래식, 오페라, 실내악 LP 판을 들으면서 소일하던 중

소음을 들었고 정체를 알려고 기웃거리던 중, 다락방에 있는 수리부엉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철저히 포장된 채로 감춰졌던 '야마다 도모히코'의 미발표작 그림을 발견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메모지가 붙어있다.

기이하고 신비한 이 그림은 너무도 인상적여서 나를 사로잡는다.

이 그림은, 사실적인 피가 흐르는 꽤 폭력적인 그림이었다.

그는 주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아스카 시대의 복식 남녀 네 명이 등장하는데,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심장을 칼로 베었고 피가 낭자했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놀라운 표정의 여인과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땅속에서 뚜껑을 열고 이 광경을 올려다보는 또한 명의 기묘한 목격자가 마치 본문의 각주처럼 왼쪽 아래에 그려져있다.

메모지에 적힌 [기사단장 죽이기], 기사는 일본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 또는 근대 유럽의 직함이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그 첫머리에 기사단장 죽이기 장면을 떠올린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가 꼬시려고 하던 '돈나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단장과 결투 끝에 죽이는 장면, 지켜보던 여인은 '돈나안나'이고, 또 한 명의 남자는 돈 조반니의 하인, '레프렐로'로 연상되지만, 또 다른 목격자는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공개되지 않은 그림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종류의 힘이 넘쳐나는데, 그 암시를, '야마다 도모히코'의 흔적을 찾고 싶어진다.

'야마다 도모히코'는 일본 화단의 중진으로 세간의 명성은 자자하지만, 공식 석상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이 집에 틀어박혀 괴팍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한때 모더니즘 회화를 지향했던 그가 1936-1939년 빈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일본화 화가로 전향을 했는데 일본의 고대 풍경, 특히 아스카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려왔다. 그리고 그의 전향 결심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네 달 동안, 그림 하나 그리지 못하던 중, 에이전시에게서 연락이 온다. 초상화의 의뢰이다.

아내가 떠난 시점을 계기로 인생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나는 더 이상 상업용 초상화를 그리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의뢰인은 나를 지명해서 거액의 금액을 제시해왔다고 한다.

'와타루 멘시키'는 54세의 남자로 내가 사는 산위 저택에서 보이는 근사한 저택에 사는 남자이다.

그는 나의 초상화가 보는 이의 마음을 예사롭지 않은 각도에서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며, 나의 집에 며칠에 한 번씩 방문하여 직접 모델을 서겠다고 제안하며, 그림의 형식은 나의 자유의사에 맡기겠다고 한다.

IT 관련 회사 경영을 하다가 은퇴한 그는 가족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영국산 고급차를 4대나 소유하고, 고급 진 옷과 잘 가꾸어진 은발의 사람이다.

함께 오페라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면서 초상화를 그려나간다.

'멘시키'에게 15년 전 교제했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딸을 출산한 후 7년 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 딸아이의 나이가 13세이며, 자신의 아이일지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하고,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야마다 도모히코'에 대한 궁금증을 그와 이야기한다. 그 역시 그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한다.

그즈음 한밤중 희미한 방울소리가 들려 매일 일정한 시각에 그 소리 때문에 잠을 깨던 나는 '멘시키'씨에게 털어놓는다.

함께 근처를 둘러보던 중, 돌로 덮인 구덩이를 발견하고, 중장비를 불러 구덩이를 덮은 돌들을 들춰내자 그 속에 있던 방울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60센티미터의 조그만 인간이 나를 찾아온다.

그림 속 칼에 맞은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나는 그에게 당신은 영혼인가 묻는다.

그는 자신이 이데아라고 한다.

영혼은 기본적으로 영묘하고 자유자재한 존재이지만

이데아는 여러 가지 제한을 받으며 존재할 뿐이라고, 일종의 각성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다.

[중간 생략]

 

[1q84]처럼 이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를 궁금하게 하는데

뭔가 급 마무리한 감이 있지만, 나름은 만족한다.

어차피 이데아는 내 마음속에 있는 거 내 마음먹기 달린 거라는 일종의 각성이라는 암시가

그런 두루뭉술한 마무리를 마무리이게끔 하는 것..

나머지는 독자에게 주어진 상상력만큼 해석하면 될 것이다.

난징 학살을 언급한 부분이 있어서 일본 극우익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햐쿠타 나오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기사단장 죽이기' 안에 '일본군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라는 문장이 있는 듯 하다. 이로써 다시 그의 책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겠군. 중국은 일본이 자랑하는 대작가도 '난장대학살'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서도, 무라카미씨한테 노벨상을 타게하려고 응원할지도 모른다."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위안부와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내용의 자신의 책을 호텔 객실에 비치해 중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보이콧을 받은 바 있는 일본의 대형 호텔 체인 아파(APA)그룹의 모토야 도시오 대표는 한 강연에서 “노벨상을 타려면 중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또 (1994년 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가 왼쪽이라 노벨상을 받았으니 자신도 본받으려는 생각에서 쓴 것 아니냐”고 비난했으며 2ch 등지의 넷 우익들도 "하루키가 중국과 한국에 책을 팔아먹으려고 매국을 한다"며 비난하거나 하루키가 재일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루키는 이전부터 소설에 일본의 우익들과 일본 정부에게는 불편한 과거사 문제를 등장시킨 바 있는데 '양을 쫓는 모험'에는 메이지 시대 시작된 홋카이도 개척민 문제, '태엽 감는 새'에는 노몬한 사건이 등장한다. 하루키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는데 지난 2015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며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고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이후에도 인터뷰에서 "역사라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 집합적인 기억"이라며 "따라서 이를 과거의 일로 치부해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일본 우익들의 역사수정주의적인 움직임에 대해 "맞서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소설가에게 가능한 일은 한정돼 있지만 이야기라는 형태로 싸워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무위키

아, 진짜 저런 일본애들은 진짜 어케야 하는지?ㅜㅜ

 

 


 

-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른다 해도.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이지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424-425



- "이데아란 요컨대 관념을 뜻해. 하지만 모든 관념이 이데아는 아니야. 이를테면 사랑 자체는 이데아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사랑을 성립시키는 건 틀림없이 이데아지. 이데아 없이 사랑은 존재할 수 없어. 사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도 정확한 정의 같은 건 몰라. 어쨌거나 이데아는 관념이고, 관념에는 형태가 없지. 그저 추상적인 거야.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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