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란트'는 베를린 대학에서 영어 전공을 하게 된다. 원래 선원이 되고자 하였지만, 대학의 학장인 아버지와 타협 끝에 자신의 꿈에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선택한 진로였던 것.
이러해서 3개월간 그의 허황된 사상누각을 허물고 정신적인 것에 온 힘을 쏟으려는 갈망으로 학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로 맹세를 하고
새로운 대학의 강의실을 둘러보다가 영문학 강의실에서 운명의 그분을 우연처럼 만나게 된 것.
'셰익스피어'에 관한 강의였는데, 자석 같은 마력에 끌려 강의실로 들어서면서 압도적인 힘에 사로잡히고, 전기에 감전된듯한 감동을 받는데, 그 교수의 용모는 정신적 기풍이 베여있는 독일 고딕체 문자의 구성 같았다. 그리고 수강신청을 위해 그 교수와 미팅을 하고, 다음 강의에 들어갔는데
그 수업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그의 용모 또한 평범한 나이 든 남자의 지치고 피곤한 모습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후 세미나 수업에서 그 열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교수의 열정과 역량은 학생들과 벌이는 토론식 수업에서 발휘되는 것이었다.
[중간 생략]
'롤란트'는 40년이 지나도록 그때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결정지어 버렸노라고..
강의에 몰입하고 있을 때면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술을 빌린 그분이 말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면서 그의 음성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다.
교수의 자기 억제 회초리가 너무 가혹하다.
선천적으로 그에게 내재된 어둡고 위험한 곳으로 이끄는 힘에 맞서고자 경련과도 같은 긴장의 연속에서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의지,
그의 도피..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이 이야기는 그런 비밀을 간직한 선생을 향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롤란트'라는 영문 학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바탕으로 한 심리의 묘사를 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를 한눈에 사로잡은 그 교수의 용모가, 정신적인 기풍이, 독일 고딕체 문자의 구성 같았다는 표현이 절묘하여 상상해 본다.
제목이, 처음부터 인상적였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적절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연한 순간, 어떤 대상에게 이끌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감정은 온통 그렇게 혼란으로 찾아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혼란은 묵직하게 남을 수도 있겠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이고 소년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