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방 2개월이 된 드라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아서이다. 드라마 초반의 한 장면 덕분에 나는 이 드라마 전편을 어떤 식으로건 보았다. SBS수목드라마 <가면>(2015.05.27.~2015.07.30) 얘기다. 확인해보니 드라마 2회의 초반부(19분쯤),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시달리는 서은하(수애 분)의 가족들이 사채업자들의 방문으로 곤혹스러워 하는 장면이다. 업자 심사장(김병옥 분)이 하는 말이다.
"심사장: 소크라테스 성님께서 약 먹고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어이 친구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는데, 대신 갚아줄 수 있겠나. 아 감동 아닙니까. 감동! 죽어가면서도 빚을 갚겠다는 이~ 아름다운 마인드. (부하 둘까지 셋이 박수) (이)얘기 듣고 느끼는 것 없습니까?"
이미 주연을 꿰찬 빛나는 조연급 배우들이 더러 있지만,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빛나는 조연으로 주로 거친 역할을 맡아온 배우 김병옥. 그가 누구인지, 얼굴을 연결해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대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려오지 않을까 싶다.
이 에피소드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으면 즉각 처형이 진행되었지만, 축제가 진행중일 때는 처형을 연기한다는 관례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한 달 가까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날은 마침내 처형이 진행되는 날, 여러 대화편에서 보았듯이 친구와 제자들, 말하자면 측근 중의 측근들이 감옥을 찾아와 그들과 더불어,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해 마지막 토론을 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마시고 숨이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구 크리톤에게 부탁하는 말을 하는데, 바로 그 상황을 드라마는 인용한 것이다. 이 대목을 원전번역으로 읽어보자.
냉기가 어느새 허리 있는 데까지 올라오자 그분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을 벗기고-그분께서는 얼굴이 가려져 있으니까요-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사실상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었소.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그분께 빚진 것을 꼭 갚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네"하고 크리톤이 말했소. "그 밖에 달리 할 말이 있는지 살펴보게."(「파이돈」118a)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의신이다. 어쨌거나 성인으로 추앙받는 SO선생께서는 살아있을 때, 자신의 몸을 돌봐준 의사에게 보답하는 마음의 빚을 거론한 것이다. 성인이 최후에 남긴 말치고는 아이러니랄까, 위트가 있다. 처형을 대기하는 동안, 감옥을 찾은 크리톤은 친구 소크라테스에게 국외로 탈출(당시에는 망명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을 권하지만,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요지의 논변을 펼친다.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크리톤」이 그 대화편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날의 대화 「파이돈」은 위에서 보았듯이 극적인 장면으로 마감되지만 필멸의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크리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심오하다. 몸은 필멸이지만 혼은 불멸이라는 혼불멸론, 배움이란 전생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想起)하는 것이라는 상기론, 특정 사물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관여하기 때문이라는 이데아론이 그것이다.
도서출판 숲에서 번역가 천병희의 원전번역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데, 천 선생이 플라톤의 대화편 번역에 몰입하게 만든 첫번째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에 「파이돈」이 수록되어 있다. 소송에 계류되어 재판에 앞서 법정에 출두하는 날 진행된 대화를 담은 「에우튀프론」(경건에 대하여)이 있지만, 한 권으로 묶인 4편의 대화편 가운데 「향연」을 제외한 세 편은 대철학자의 생애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았고,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사랑(우정과 우애 혹은 친애를 포괄하는 개념)에 대해 논하는 「향연」도, 왜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지, 소크라테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화편이다.
앞서 악역 조연으로서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배우 김병옥(만54세)에 대해 언급한 바 있거니와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또한 시청자 중에서도 그런 채무와 관련된 쓰린 기억을 갖고 있거나 현재진행형일 경우를 감안하면, 결코 예사롭지 않는 장면에서 필이 꽂힌 것은 다분히 「파이돈」이란 텍스트를 읽은 사람으로서 역시 해당 텍스르를 읽고 작품에 반영한 독자(드라마 작가와 여러 시청자들)를 만난 것에 대한 반가움, 혹은 동질감이 아니겠는가,
"같은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맺은 우정처럼 빠르게 뭉치는 우정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것."
미국 작가 어빙 스턴(1903~1989)이 남긴 말이다. 고전을 읽는 독서모임을 통해 쌓은 친교가 얼마나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예단해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어빙 스턴은 전기문학의 신경지를 개척한 작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교수하기도 했으나, 고흐에 심취하여 그의 생애를 소설화하여 20세기 전기문학의 획을 그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소설처럼 윤색해 실감을 준 전기 『삶에 대한 열망 Lust for Life』(1934)이 그 작품이다.
결국 사채를 쓸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기구한 사연들이 많다. 그 슬픔과 분노가 너무 크고 깊다. 치솟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사회 생활을 채 시작해보기도 전에 빚쟁이가 되어버리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인 나라, 청년실업의 근본 문제는 해결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무슨 기금을 만든다고 힘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채무를 탕감해서 신불(신용불량자)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국민행복기금 어쩌고 하는데, 그것을 빌미로 보이스피싱이란 독버섯이 무섭게 자라고 있는 나라, 그 상태를 감안하면 기가 막힌 상황에서 드라마의 한 대목을 보고 쓴웃음을 짓는다.(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67편(2부) 2015년 추노(推奴) 이야기(1시간 15분. http://www.podbbang.com/ch/7657) 참고.
드라마 <가면> 극본을 쓴 방송작가 최호철은 사채업자 심사장의 캐릭터를 다음과 같이 설정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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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장(남, 40대) 사채업자:
어릴 적 어머니가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갔다가 결국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죽었고, 그 뒤로 고아로 힘들게 자랐다는 비극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연을 채무자의 배를 갈라서라도 돈을 받아내야 하는 대의명분으로 삼는다. 굉장한 다혈질 성격으로 자기 분에 못이겨 폭발할 때도 있지만 평상시엔 꽤 젠틀하고 진지하다.
가방끈이 짧은 콤플렉스를 명언집을 읽으며 극복했다.
때론 사람들에게 꽤 그럴싸한 명대사를 날리기도 한다. 그게 다 돈과 연관 돼서 문제지만.
어쨌거나 그렇고 그런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슬쩍 보다가 만난 한 대목에서, 시작된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가방끈이 짧은 콤플렉스를 명언집을 읽으며 극복했다."고 하였으나, 사채를 빌미로 괴롭히는 쪽이나 사채에 시달리는 쪽이나 고명하신 소크라테스 선생의 최후를 다룬 「파이돈」의 전체 텍스트를 읽는다면, 좀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 한 자락을 깔아본다. 실제로 명언집(문장백과사전)에 닭 한 마리 어쩌고 하는 부분은 많이 뒤틀린 채로 소개되어 있다. 「파이돈」전체를 읽지 않고서는 칠 수 없는 대사다.
흔치 않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진리 가운데 하나는 생명체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생명체로 불린다는 거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석가모니도 모두 인간으로 살았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다음 책,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세 성인의 최후를 비롯하여 그들의 닮은점에서 배울 것을 잘 짚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