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2.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음력으로 15일. 굳이 오늘이 정월대보름임을 언급하는 이유는, 음력 1월 1일 설날부터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스스로) 수소폭탄(이라는) 실험에 이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위성발사, 남측에서는 개성공단(사업) 중단으로 대응하여 나라 안팎이 혼란스럽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런 정국이 코앞으로 다가온 4.13총선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둘러싼 것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되고, DJ 정부에서 본격화된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한 정책의 기반이 흔들린 상태이고, 현 정권은 이러한 흐름을 집권기 내내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잖아도 분열한 야권의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선전하기가 버거운 상태인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햇볕정책이란 말의 출처가 된 원전 이솝우화를 찾아보았다.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알고 있는 이야기다. 희랍어 원전번역으로 358개의 우화를 우리말로 옮긴, 천병희의 정본 이솝우화가 그것이다. 73번째 이야기 <북풍과 해>는 다음과 같다.  

 

 

073 북풍과 해

 

 

북풍과 해가 서로 제가 더 힘이 세다고 다투었다.

그들은 둘 중에서 누구든지 길 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쪽이 이긴 것으로 하기로 정했다.
먼저 북풍이 세차게 입김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옷을 졸라매자 북풍은 더 세차게 공격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사람은 옷을 껴입었다.

그러자 북풍이 지쳐서 사람을 해에게 맡겼다.

해는 먼저 알맞게 비추었다. 사람은 껴입은 옷을 벗었다.

해가 더 따가운 햇살을 쏘자 사람은 더위를 견디다 못해

드디어 옷을 벗고 근처 강에 멱 감으러 갔다.

 

 

그리스 신화에서 북풍은 Boreas이고 해는 Helios다. 이 이야기의 공식 교훈은 "때로는 설득이 강요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때로는'이라는 말을 갈무리한다. 북풍이 필요할 때도 있고, 햇볕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글에서 "해는 먼저 알맞게 비추었다."라는 대목이 와 닿는다. '알맞게'다. 그리고 이어 "해가 더 따가운 햇살을 쏘자" 사람들은 드디어 옷을 벗고 멱을 감으러 강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처음에는 '알맞게' 그 다음에는 '더 따가운 햇살을' 쏘았다고 한다. 한 나라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간 공조하여 펼치는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말이 맞다면, 한번 시행한 정책은 그 효과를 내오기까지 진득하니 추진해야 한다.

개성공단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거나, 현지에서 사업을 담당했던 학자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난 이후, 개성공단사업에 두 정부는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사업은 민주정부 10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단기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민주 정부 10년이 '알맞게'에 해당한다면, 이후 정부는 '더 따가운 햇살'을 쏘지는 못할망정 일정한 기조는 유지했어야 하지 않았나.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하는 이전 정부의 치적이라고 여겼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5년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사업은 당근과 채찍 두 트랙으로 대북한 정책을 펼치는데 있어 대표적인 유화책이었다. 관계에서는 강요도 필요하고 설득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대화와 소통의 방법이다. 투 트랙 중 하나를 놓아버린 일은 두고두고 뼈아픈 후회할 일로 남을 것이다.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다. 우화 속에서는 그저 '찬바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북한과의 연관 관계에서 남한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바람으로서의 북풍(北風)과는 좀 다르다. 햇볕정책 폐기선언이라고 할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북풍을 선택한 것은 우리 정부다. 북한에만 북풍이 분 것이 아니라, 공단의 사업자와 그 가족들, 협력업체들 그리고 우리 경제의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 불안 요소, 대중 무역에서 예견되는 데미지를 고려하면 북풍이 불고 있는 것은 맞다. 그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그 다음 문제다. 남반구에서의 남풍은 북반구에서의 북풍에 해당한다. 그냥 속이 상해서 해당 우화를 한 차례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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