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라도 너무 많이 읽거나 자주 듣노라면 잔소리로 다가와 싫어질 때가 있다. 해서 『문장대백과사전』(이어령 편저)을 읽되, 내키는 대로 페이지를 펴서 서너 페이지를 읽다 잠의 나라로 가곤 한다. 그러다가 다음 일화를 발견했다. 괄호 숫자는 필자가 임의로 부여한 것이다. 

 

"(1)옛날 인도에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다. 이 공주는 무척 새를 사랑해서 세계에서 예쁘다는 새들은 모두 사들여서 궁전 속이 온통 새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모든 대신도 서로 다투어 공주의 눈에 들려고 다른 일은 않고 새 기르기에만 열심이었다. 그 때문에 나라의 정사는 엉망이 되어 백성들의 불평은 자꾸만 높아졌다. 

(2)그런데도 아직 비어 있는 새장이 하나 남아 있었다. 공주는 지금까지 이 새장보다 아름다운 새를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비워두고 한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새장 속에 넣을 만큼 아름다운 새를 구해 오면 많은 상과 여기 있는 새를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다. 

(3)그런데 어느 날 한 늙은이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새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공주가 새를 보니 과연 기막히게 아름다운 새였다. 공주는 많은 상금을 그 늙은이에게 주고 자기의 모든 새는 날려 보냈다. 모든 새가 미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새의 깃털은 매일 낡아 가고 울음소리도 흐려져 갔다. 

(4)그러던 어느 날 이 새가 목욕하고 온 것을 보니, 그것은 제일 미운 까마귀였다. 까마귀에 아름다운 색을 칠하고 목에는 은방울을 달아서 좋은 울음소리를 내게 한 것이었다. 공주는 너무도 기가 막혀 그만 울화병으로 죽어 버렸다. (5)개나리는 그 무덤에서 돋아난 나무였다. 까마귀에게 빼앗긴 새장이 너무 아까워 가지를 쭉쭉 뻗어 금빛의 꽃으로 장식할 새장 같은 꽃나무로 변한 것이다."

 

('개나리'50P-5)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본문 내용으로 보아 인도의 전설 가운데 하나인가 보다. 『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에 수록된 여러 글들, '현재의 생명체 B는 사실 이런저런 사연에 얽힌 A의 다른 모습이다'라는 변신 공식에 충실한 얘기다. 어쨌거나 이 이야기를 조금 살펴보자. 왕국인 듯한데, 살아있는 새들을 수집하는 공주의 취미 때문에, 나라의 정사가 엉망이 되었다. 왕도 아니고 왕비나 여왕도 아니고 공주가 다스리는 나라도 있나보다. 왕이 무남독녀 외딸인 공주 하나를 남겨놓고 급히 세상을 떠났나 보다. 그리 이해하자. 그리고 공주는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거나 독신주의자인갑다. 공주가 세상을 떠난 이후는 어떡하지, 선거로 왕을 뽑는 것 아닌 것 같은데.. 둘째, 최고로 가치 있는 하나가 아니면 나름 우수한 다른 새들은 의미가 없다. 이 부분에서 공주는 대(代)를 이를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새는 어쩌면 공주의 배필이 될 남자이고, 최고의 사랑(연인)을 찾는 과정의 상징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공주는 사기꾼이 기획-연출한 제비족을 만났고, 그 충격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공주가 죽어 '개나리'라는 꽃나무로 변신했다는 전설인데, 여기에서의 포인트는 새가 아니라 '새장'에 있으므로, 나무 개나리의 줄기가 곧은 듯 하면서도 교차하는 그래서 새장처럼 보이는 바로 그 줄기의 생김에 있지, 황금색 개나리꽃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미운 까마귀'와 아주 닮은 사례를 찾아보자. 이솝우화의 '갈까미귀'다.

 

162. 갈까마귀와 새들

제우스는 새들의 왕을 정하려고 새들에게 전원 출석할 날짜를 정해주었다. 제우스는 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새들의 왕으로 정할 참이었다. 새들은 모두 강가에 가서 목욕을 했다. 갈까마귀는 제가 못생긴 것을 알고는 강가로 가서 새들에게서 떨어진 깃털들을 모아 제 몸에 붙이고 입혔다. 그리하여 갈까마귀는 모든 새들 중에서 가장 잘생긴 새가 되었다. 정해진 날이 되자 새들은 모두 제우스에게 갔다. 갈까마귀도 알록달록하게 치장하고 제우스에게 갔다. 그의 아름다운 외양을 본 제우스는 갈까마귀를 새들의 왕으로 뽑으려 했다. 그러자 새들이 화가 나서 갈까마귀에게서 저마다 제 깃털을 뽑았다. 그래서 그는 깃털을 벗고 도로 갈까마귀가 되었다.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정본)이솝 우화』(숲 펴냄) 162번째 이야기다. 훗날 어느 편집자가 덧붙인 이 우화의 교훈은 *이와 같이 사람도 빚쟁이는 남의 돈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대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남의 돈을 돌려주고 나면 자신이 도로 옛날의 자신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버린 것을 주웠을 뿐인데(일종의 재활용) '빚'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다른 경쟁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거나 민의를 반영한 절실한 공약을 자신의 깃털인 양 몸에 붙여  화려하게 '연출'해낸 갈까마귀... 첫 이야기나 둘째 이야기나 모두 까마귀의 일종들이다. 그리고 앞 얘기의 상징을 언급하였듯이(20년 동안 왕 오뒷세우스를 기다리는 『오뒷세이아』의 페넬로페와 그 구혼자들을 떠올려보라) 인도의 공주는 어쩌면 아버지 왕의 유지를 받들어 왕권을 잇기 위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으리라.

 

언제 다시 오려나, 바야흐로 내년 총선 이듬해 대선이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이 왔다. 시끄럽다. 까마귀와 갈까마귀들의 치장이 한창이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유력 대선주자도 아니지만, 할 말을 하는 정치인, 어느 지방도시의 시장이 얼마전 자신의 책 발행 기념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을 우연히(동영상으로) 보다가, 와 닿는 대목이 있어 옮긴다.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요. 정치인들의 수준, 의식수준이 국민의 정치의식을 결코 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의 정치의식을 기반으로 (해야)하는 정치인이 훨씬 수준이 낮은 거죠. 대중을 안 믿어요. 오히려 훨씬 수준이 낮아요.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정치를 하되 이것을 농사처럼 해야 되는데,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김 메고 그리고 그 성과를 가을에 거둬야 되는데, 이런 농사를 짓는 게 아니고, 정치를 하는데 남 농사지은 것을 훔치려고 다니거나 가을 되면 여름 내내 팽팽 놀다가 대중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뭔가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아. 그러다가 딱 때만 되면 그것을 훔치려고 해, 아니면 농사 안 짓고 있다가 가을 되면 어디 혹시 열매 맺힌 거 없나, 약탈경제 이런 거 하고 있는 수준인 것 같아요, 평소에 투자해야 해요. 저는 이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2015년 9월 5일. 성남시청 어느 공간에서 진행된,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발간에 따른 행사, “카페트(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친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한 말('팩트TV' 동영상을 보며 해당 부분을 옮김)이다. 까마귀와 갈까마귀의 차이는 '검색'해보기로 하고, 암튼 인도에는 한때 공주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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