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생긴다. 누구나 즐거운 일을 함께 한 사람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318면, <연대의식> 중)


당연하지! 지당하신 말씀이지. 아무렴, 그럴 거야. 우리 마음도 항아리와 같아서 밑바닥이란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의 밑바닥을 채운 뭔가가, 힘겨운 시절을 함께 보내며 쌓은 연대 의식이란 것이 조금은 남아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그들은 왜 이럴까? 여기서 ‘그들’은 우리나라의 제1야당 새정지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 혹은 이해당사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2015년 5월 16일이다. 몇 분이나 지금 이 글을 읽을지, 읽는다 해도 그 때가 언제쯤일지 알 수 없다. 4.29 국회의원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앞세우며  당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는 같은 당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원로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때가 이러한 현 상황, 사태가 분명한 현 국면이 수습된 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꼭 이번 사태에만 맞춤한 제언이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쓴다.


어쨌거나 지금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선거에서 이겨 공(功)을 다투는 것도 아니고, 왜 졌는가? 실패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다가오는 본선(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되풀이되는 패배의 사슬을 끊기 위해 고육책을 내야 하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반성의 과정은 이하생략하고 당 대표 사퇴만이 그 해결책이란 결론을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뽕나무에 올라 든든한 가지를 밟고서 오디 열매를 털듯 당 대표를 흔들고 있다. 이러이러하므로 당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 귀납법의 논증이 필요한 때가 아니었나. 당 대표 사퇴 말고는 길이 없다! 결론을 앞세운 연역의 논증을 하고 있는 듯한데, 내세우는 그 논거라는 것이 빈약하기가 거지 같다. 설득력이란 거의 없다. 이현령비현령이다.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 등 시급하고 절실한 국정 현안들을 미루고 전국 주요도시를 도는 ‘흥행’ 효과까지 거두며 뽑은 당대표가 아니었던가? 그 과정이 그렇고 그런 퍼포먼스일 뿐이었던가? 또한 이른바 당심(당원 투표)과 국민여론을 반영한 후보 경선을 통해 해당 지역구 선거에 나설 네 명의 국회의원 후보자를 뽑지 않았던가. 전략 공천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의 본선(총선)에도 적용될 경선 원칙에 따라 후보를 선출했다. 호재도 있고 예상치 못한 악재도 있었다. 결국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그렇다면 먼저 그러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원인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규명해보시라, 그런 말씀이다. 원칙만 앞세워 유연하지 못하였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인 듯싶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하는 원칙이란 없다. 다가올 총선에서도 국민 여론도 반영하는 경선을 후보자를 결정할 것인데, 그때에도 원칙을 고수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훨씬 유리할 것인데, 의정활동은 물론이고 지역구 살림을 잘 챙기고 민심을 제대로 다독거렸다면 경선 걱정은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경선 과정이 총선 승리 가도에서 차질을 줄 것으로 예견되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가졌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토론을 통해 중지(衆智)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깃발만 꼽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 지역구들의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깃발만 꼽으면 '따 놓은 당상'인 지역구들의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다고요?

'호남민심'이 어떻고 '광주정신'이 어떻고 하는 정치인들의 말을 듣노라면 저마다 아전인수 해석이라 씁쓸함을 느낀다. 언제까지 잡은 물고기 타령을 할 것인가? 내일모레면 5.18 광주민중항쟁 35주기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없다느니, 합창 정도가 알맞다느니 깨알 <보도자료>까지 내며 주장을 일삼는데 그런 억지가 따로 없다. 현행 헌법에는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5월에서 6월로 가는 길 위에서 목청껏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록 제창할 노래까지는 아니라도, 그 의미를 폄하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여야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 노래의 기념곡 지정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이지 않겠나! 내일 모레 5.18추모일에 제1야당의 깃발 아래 모이신 여러분들께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격동의 현장들을 떠올리시기를. 베르베르의 말처럼 힘든 시기에 힘없는 우리를 묶어주는 노래가 아니었던가! 제1야당의 강령에도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연대정신이 깃들어있지 않겠는가? ‘제창(齊唱)’도 여러 사람이 부르는 노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창(諸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두 제(諸)가 아니라 가지런할 제(齊)의 제창이다. 합창(合唱)과 달리 동일한 선율을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같은 음으로 노래하니까 ‘가지런하게 부른다’는 의미의 제창이다(권승호 선생의 <한자어휘사전>을 참고했다).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곡이라면 모를까 제창곡은 될 수 없다고 한 진의가 무엇인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최소한 호남정신 운운하는 제1야당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깃든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창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나마 잘 맞지도 않은 화음으로 합창(合唱)하면서, 그것이 제창((齊唱)인 듯 호도하는 야당의 불협화음을 보고 싶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는 제창(齊唱)을 하세요!

지금이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면서 당과 당의 대표를 흔들어야 하는 때인가?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연대할 때가 아니겠는가? 2500년도 더 된 오래된 고전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지만, 지금 소개하는 고전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들 모습을 비춰보는 말 그대로의 자숙(自肅)을 하시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는 있다. 이 대화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철인정치를 주장한다. 지금 이 나라가 입헌군주국인 줄 아시는 분이 계시는데, 혹여라도 난독으로 철학자가 통치하는 왕도정치일 뿐이라고, 먼 나라의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고 귓등으로 흘리지 않았으면 싶다. 철인(哲人)이란 철학자다. 통치 철학을 갖춘 국가의 지도자쯤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야당만이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다음 대선 국면이 되면, 우리나라를 제대로 이끌 통치철학을 갖춘 후보자가 나타나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이끄는 말 그대로 행복의 나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가 누구인지는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국가는 없다. 하지만 플라톤의 『국가』는 살아 있다.
『국가』 6권 초반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철인 또는 철학자들이 사물에 대한 지식에 더하여 실무 경험을 쌓는다면 당연히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용기, 정의 같은 미덕(arete)을 구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고 성실하고 절제 있고 도량이 넓고 우아하고 세련되어야 한다.[6권 485a] 이런 자질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을까? (필자는 결코 그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꼬박 꼬박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어느 정당에도 가입해있지 않으며, 가입해본 일조차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고,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자격을 갖춘 철학자(=통치자)가 있다고 치자. 소크라테스(플라톤)은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자질을 갖춘 철학자를 국민들은 알아보지 못한다.”고. 뿐만 아니라, 우수한 자질을 갖춘 철학자들은 국가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여러 척의 배나 한 척의 배 위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비유하여, 국가의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저마다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어지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배는 한 나라(국가), 조타술을 가진 진정한 키잡이는 자격을 갖춘 국가 지도자(혹은 한 조직의 리더), 그리고 배의 주인인 선주(船主)는 국민 혹은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라고 생각해보자. 국회의원은 선출직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입법기관이란다. 이때에 해당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선주’가 될 것이다.

 

”(여러 척의 배나 한 척의 배 위에서 다음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게.) 선주는 배를 타고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힘이 세지만, 귀가 조금 멀고 시력도 약한 편이며 항해술에 관한 지식도 비슷한 형편이네. 또한 선원들은 키 잡는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자기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의 이름을 댈 수도 없으며, 언제 배웠는지 배운 시기조차 밝힐 수 없으면서도 저마다 자기가 키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키 잡는 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네. 게다가 그들은 이 기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하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선주를 둘러싸고는 키를 자기들에게 맡겨달라고 별의별 짓을 다 하며 간청하고 있네. 선주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면 이들은 죽여 없애버리든가 배 밖으로 내동댕이쳐버리고, 마음씨 좋은 선주를 약을 먹이거나 술에 취하게 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묶은 다음 배를 장악하고는 배 안의 물건들을 제 마음대로 써버리네. 그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그런 자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항해를 계속하네. 게다가 그들은 자기들이 선주를 설득하거나 강제하여 지배권을 장악할 때 능수능란하게 도와준 사람을 항해에 능한 사람이니, 키를 잡을 만한 사람이니, 배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네. 그들은 진정한 키잡이가 진실로 배 한 척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면, 해[年], 계절, 하늘, 별, 바람은 물론이요 그 밖에도 이 기술에 속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네. 그가 키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은 그가 키를 잡는 것을 사람들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그들은 이런 기술과 수련, 즉 조타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이런 일이 배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자네는 이런 상태에 놓인 배의 선원들은 진정한 키잡이를 실제로 점성가라든가, 수다꾼이라든가, 무용지물이라 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천병희 옮김, 『국가』 6권 448b~489a)

 

이상의 인용이면 충분하다. 베르베르는 앞의 글(<연대 의식>)에서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묻는다.(괄호 안은...)
(1)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명절 때의 가족모임을 생각해 보라, 모든 가족들의 만남이 화기애애한 것은 아니다.) (2)성공을 한 다음에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얼마 전에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한 내한공연을 마치고 갔다) (3)얼마나 많은 정치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참여정부 시절의 당신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베르베르는 “벗들과의 우정을 간직하려면, 자기들이 성공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실망한 일, 실패한 일을 자꾸 들먹이는 편이 낫다”고 한다. 지금 아베의 일본을 보면 어느 때보다도 속이 뒤틀리지만,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라는 그들의 책을 읽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하다. 4.29 재보선에서 제1야당은 왜 실패하였는가? 비공개라도 좋으니 끝장토론을 하고, 제대로된 백서 한 권을 낼 의향은 없는 것인가?

 

 4.29 재보선에서 제1야당은 왜 실패하였는가? 끝장토론하고, 백서 한 권을 내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이 말과 글로 제기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반드시 갖춰야할 미덕들을 하나하나 총정리 한 책이다. 그런데 이런 미덕들이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작동하려면 우애(친애)란 덕목이 필요하다. <윤리학> 8권과 9권 그리고 책의 앞부분에서 우애(친애/우정)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애의 개념을 국가경영에 대입한 책이 그의 『정치학』이다. 정치적인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제발 공부 좀 하시라. 

어원적으로 보면, <공감 sympathie>이란 말은 <함께 고통을 겪다>는 뜻의 그리스어. soun pathein)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동정compassion)이란 말 또한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라틴어<cum patior>에서 나온 것이다.”(앞의 베르베르의 책 <연대 의식>)

그레이트 킹 세종은 백성들의 문맹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 당면한 어려움을 공감하여 <연대 의식>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베르베르의 또 다른 글에서 확인하는 시사점도 가슴 저리게 한다. '분봉(分蜂)'이라는 글이다. 분봉(分封: 중국 천자가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하던 일)이 아님에 유의하시라. 늙은 여왕벌은 그동안 쌓은 보물들(비축식량, 잘 건설된 시가, 화려한 궁궐, 곳곳에 저장된 밀랍과 꽃가루와 로열 젤리 등)을 오롯이 남긴 채 일벌들만을 데리고 벌집을 떠난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면 어린 벌들이 버려진 왕국에서 부화하기 시작한다. 그들 가운데 떠난 여왕벌을 대신할 새로운 여왕이 있다. 그런데 차기 여왕벌이 결정되는 과정은 처절하다. 가장 먼저 깨어나 걷기 시작한 암벌이 살의에 찬 행동을 보인다. 다른 암벌들의 요람으로 달려들어 작은 위턱으로 눌러버린다. 밑에 깔린 암벌들을 일벌들이 빼내지 못하게 막고는 독침으로 자매들을 찔러 버린다. (다른) 어린 왕녀(王女)를 보호하려는 일벌이 있으면 제일 먼저 깨어난 암벌은 날개짓으로 호통을 치는데, 보통의 날개 짓 소리와 사뭇 달라,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여왕벌 후보인 암벌의 살생을 방치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이따금 스스로 방어하는 암벌이 있으면, 두 암벌 사이에 전투가 결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서로 대결할 암벌이 두 마리만 남게 되면, 둘 다 상대를 독침으로 찌르는 자세를 취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베르베르, <분봉> 같은 책 316-317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마리 암벌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통치자가 되려는 욕구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둘이 동시에 죽음으로써 여왕 없는 벌집을 만들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 것이다. 마침내 한 마리의 여왕벌은 늙은 여왕벌이 떠난 왕국을 새롭게 통치하기 시작한다는, 그런 얘기다. 사람들의 정치가 다만 곤충일 뿐인 벌들보다 못해서야 쓰겠는가!

 

사람들의 정치가 다만 곤충일 뿐인 벌들보다 못해서야 쓰것는가!

야당에는 다음 대선의 후보가 될 ‘잠룡’들이 많단다. 자랑거리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여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한 후보를 선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당 대표가 비록 지난 대통령선 총선에서 석패했다고 하여, 오는 대선의 후보가 되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가진 정치적 선택에서 보여준 역동성이 이를 입증한다. 통 큰 정치를 보여주는 이가 야당의 대선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내일 모레가 5.18광주민주항쟁 25주기다. ‘광주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추모에 야당 정치인들이 함께 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망월동 구 묘역을 가시거나 국립묘지에 가시거나 무등산을 꼭 한 번 바라보시기를…….

무등산(無等山)이다. 등(等)은 ‘무리’ ‘같음’ ‘등급’ ‘기다림’의 뜻을 가지고 있다. 등급(等級)이 없는(無) 산(山)이다. 등급을 정할 수 없는 산, 등급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산이 무등산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무등(無等)을 보며 ‘평등’의 가치를 떠올리며 죽음을 무릅썼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 지위가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어려움 앞에서 연대하였고,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켰다. 또한 이 좋은 봄날 5월에 광주에 오시려거든, 어느 방향에서도 바라보아도 그 모습이 그 모습인 무등산의 또 다른 얼굴도 확인하시길. 동쪽(영남 쪽에)서 바라보아도 북쪽(수도권)에서 바라보아도 서쪽과 남쪽(호남)에서 바라보아도 무등산은 그 모습이 그 모습 같다. 고(故)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노풍’의 진원지가 왜 광주였을까? 그대들은 잘 알고 있다. 지역감정을 깊은 골을 넘어서서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되기를 열망하는 시민정신, 그것이 광주정신이고, 어느 쪽에서 보아도 항상 그 모습인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터득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주인이지만 투표지 한 장으로 '주인임을 확인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은 보다 훌륭한 지도자를 보호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병이 나면 의사(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이, 지배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도리다.”(플라톤 『국가』  6권 489c)

 

통치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부름을 받아 그 소임을 맡아야 한다. 그렇게 통치자의 역할을 맡기 위해서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현재 선 자리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지도자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통치할 사람들이 통치하는 일에 가장 열의가 적은 나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조용하게 통치하게 되지만, 그와 반대되는 치차들을 둔 나라는 그와 반대로 통치하게 될 것이오.“(플라톤 『국가』 7권 520d)

그럴 수 있다면 그리 항 수 있게 된다면, 국가는 있는 것이고 그 국가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까?
-다시 맞이한 5월, 먼발치에서 무등(無等)을 바라보며,

 

無等에 올라

 

무등에 올라
그리운 분지 광주가 눈시울에 가득할 때
행복했던 어느 봄 남쪽바다 제주에서 보았던
분화구 산굼부리를 생각했다.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 땅과 하늘을 태우던 용암과
뜨거운 불 토하기를 잊은 채
깊고 깊은 가슴의 끝까지
푸르른 숲과 바람과 안개를 가두고 키우던
적막의 웅덩이
그때 나는 여행중이었고
햇빛과 나의 신부가 따뜻했으므로
둥글게 가라앉은 억 년의 고요가
차라리 평화로와 좋았다.
절망과 희망으로 혼을 놓고 다시 깨어나는
그 후의 몇 년이 지나면서
단단하여 결코 죽지 않는
세상에 흔한 한 풀씨가 되어
어느 날 무등에 올랐을 때
의롭고 귀한 것을 위하여 눈물겹게 아프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침묵 속에 아름다웠으므로 오래 생각했다.
무엇이든 없애고 새로이 일으킬 수 있는
용솟음의 불덩이를 갈무리한 채로도
다만 소리없이 숲과 바람, 벌레를 키우며
참고 견디며 끝끝내 기다리던 분화구
그리고 우리들 무등.
깊은 소용돌이 희망의 화염을 다독이는
넉넉한 사랑과
끝까지 기다림에 드는 아름다움.

 

-<나해철 시집 『무등에 올라』(창작과비평사 1984)에서

 

그리고 한 장의 사진.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동 구 묘역과 인근의 국립묘지 두 곳에서 각각의 추모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더구나 구 묘역의 기념식에는 5.18 유가족들과 4.16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한다. 그들은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齊唱)할 것이다. 지난 2월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출발하여 진도 팽목항까지 도보 순례를 하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광주 금남로 5.18광장(옛 도청 앞)을 찾았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옛 도청 앞 광장에는 마침 시계탑이 돌아와 있었고, 참가자들은 행사 끝 무렵에 분수대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군무를 펼칠 예정이었다. 광장 건너편 커피전문점 3층 창가에서 전경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무대 앞에 나와(작은 사진이지만 '호'와 '를' 사이에 선 분이다) 긴 말씀을 하시는데, 실내에 앉아 있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광주를 대표하여 이귀님 할머니(오월어머니회)가 5.18의 역사와 상처, 그 극복을 위한 투쟁을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증언하신 것이다. 먼발치에서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하였지만 떠올린 네 글자면 충분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여러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사진과 글_타임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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