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뤼시스> 그리고 친(親)하다는 것[2/5]
-천병희 옮김『뤼시스/라케스/카르미데스>』
□힙포탈레스는 뤼시스라는 당시 13세쯤의 소년을 열렬히 사랑하는 10대 후반의 부잣집 도련님이다. 한데 그는 소심한지라 고백하지 못하고, 소년을 연모하는 마음을 시로 짓고 산문으로 쓰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런 힙포탈레스에게는 크테십포스라는 또래 친구가 있다. 그리고 크테십포스의 사촌(동생)인 메넥세노스가 있는데(두 형제는 훗날 소크라테스를 임종한다), 메넥세노스는 뤼시스와 또래로 ‘절친’이다. 때문에 크테십포스는 사촌을 통해 뤼시스와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힙포탈레스와 달리) 뤼시스는 힙포탈레스를 직접 알지 못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사촌간인 메넥세노스-크테십포스 형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이 두 사람이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크테십포스는 뤼시스를 연모하는 친구(힙포탈레스)를 못마땅해 한다. “외모가 출중하여 단지 아름답다는 말뿐 아니라 아름답고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뤼시스를 크테십포스도 연모하기에, 시샘하는 것은 아닐까?
□ 소크라테스까지 다섯 명이 참여하는 <뤼시스>의 대담은 기원전 424년~399년 사이에 진행되었을 것으로 본다(옮긴이).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가 45세~70세이던 어느 날이다. 가령, 기원전 416년 어느 날로 대화 시점을 확정하는 <향연>(비극작가 아가톤이 레나이아 제 비극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해)과 달리, <뤼시스>의 정확한 대담 시점을 추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정에 관하여’ 언제 대화를 나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시의 ‘우정’과 ‘사랑’을 혼용하여 사용하려는 필자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알다시피 <향연>은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어느 날 벼르고 벼른 끝에 자신의 아름다운 몸으로 소크라테스를 유혹했다.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소크라테스에 실망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알키비아데스, <향연> 후반부에서 알키비아데스는 고백한다. 자신이 소크라테스의 연동인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연동인지 모르겠다며, 소크라테스를 향한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뤼시스>의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연동의 눈에 띄지 않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힙포탈레스를 바라본다. 그 모습에서 지난날 레슬링 경기장 한 구석에서 연동인 알키비아데스를 훔쳐보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 이처럼 연동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기까지 두 사람의 메신저가 있음에도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힙포탈레스의 속은 갑갑하고 타들어간다. 시와 산문으로 사랑을 승화시키며, ‘뤼시스 바라기’를 하고 있다. 바로 이런 때에, 소크라테스가 크테십포스의 연애상담자로 등장한다. 근래의 토크콘서트나 인기 팟캐스트의 소재가 연애(심리)상담인 경우가 많은데, 소크라테스도 그런 연애상담자 역할을 맡게 된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연동들을 사랑한 생생한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향연>에서의 알키비아데스의 고발(?)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연모한 연동은 한둘이 아니었다.)
□ 또한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이라는 무기를 가진 사람이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데 자신은 남들이 ‘지혜’를 낳게 돕는 점만이 다를 뿐이라고 <테아이테토스>에서 거드름을 피운다. 그런데 산파는 출산을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알맞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맺어주는 중매자 역할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역할이란다.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해 알 것은 다 안다는 점에서 산파들이야말로 가장 영리한 결혼중매인”(테아이테토스 159d)이라고. 그러므로 <뤼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연애상담은, 상담에만 머물지 않고, 힙포탈레스와 뤼시스의 연인이 되도록 실질적으로 돕는 중매인 역할까지 하는데, 흥미로운 관점 포인트다.
□ 상담은 시작되었다. 뤼시스와 메넥소노스가 대화에 참여하기 전에 나누는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연동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을 사냥과 낚시에 비유하는 등, 연애에서의 ‘밀당’(밀고 당기기)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좋아하면 데시를 해야지 시나 산문 따위로 위안을 삼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크테십포스가 친구 헵포탈레스를 못마땅해하는 것도 그의 우유부단 때문일 수도 있다.)
"여보게, 그래서 연애 전문가는 연동을 손아귀에 넣기 전에는
연동을 찬양하지 않는다네. 장차 일이 어떻게 될지 염려되니까.
또한 잘생긴 소년들은 누가 칭찬하고 추어주면 자만심에 차서
점점 도도해진다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206a) "
나쁜 남자! 사냥을 할 때, 그 무기가 화살이건 총이건 한 방 날리는 결정적인 순간까지 숨을 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낚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대물(大物) 낚시라면 밤을 꼬박 새우고도 붕어의 입질 한번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긴 침묵~ 인내심 잃지 않고 기다릴 것, 그래야 ‘선수’다. 그러하거늘 승리의 송가라도 되는 양 시네 산문입네 하면서 요란을 떠는 크테십포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일침을 놓아 기선을 잡는다.
□ 마침내 자신이 하수(下手)를 인정하고, 연동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고 행동해야 하나요, 조언을 구하는 크테십포스, 그렇게 본 상담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의 상담 조건은 자신이 당사자(뤼시스)와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마침 가까이에 있던 뤼시스와 메넥세노스는 일행들에게 다가오고, 메넥세노스는 사촌형인 크테십포스 옆에 앉고, 뤼시스는 친구를 따라 그 옆에 앉게 되어 소크라테스와 만나게 되는데, 덫을 설치하고 유인하여 사냥감을 포획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우정과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대목에서, 자신의 충고에 따라 그 현장에 배석하고도 없는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 힙포탈레스를 짓궂게 묘사한다.(이 대화편은 훗날 소크라테스가 회고하는 형식이다)
“(뤼시스가 메넥소노스를 보고 따라와서 함께 우리 곁에 앉자. …) 흽포탈레스는 여러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뤼시스가 언짢아할까봐 두려워서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섰네.“(107c)
또한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소크라테스는 그 자리에 힙포탈레스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는(자신의 ‘구라’에 취해) 좌중의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뻔 했다고 회고한다. “힙포탈레스, 연동과 대화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하네, 이처럼 기를 죽이고 위축을 시켜야지, 자네처럼 우쭐하게 만들고 기를 살려서는 안 된단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