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뤼시스>와 친(親)하다는 것[5/5]
-천병희 옮김『뤼시스/라케스/카르미데스>』

 

□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의 역사”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아카데메이아를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플라톤의 직계제자이면서 오늘날 학문이라고 부르는 제반분야를 개척한 ‘청출어람 첨어람’이다. 그러나 그의 ‘윤리학’은 <라케스>를 비롯한 스승 소크라테스-플라톤이 대화편들에서 다룬 미덕들에 대한 종합이고 ‘리뷰’이면서 ‘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철학사의 맥락, 그 맨 앞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애의 대상(사랑할만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모든 것이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만한 것만이 사랑받으며, 바로 이것이 좋거나 즐겁거나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그러나 유익한 것은 어떤 좋음 또는 쾌락을 낳는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 같으므로, 목적으로 사랑할만한 것은 좋음과 쾌락일 것이다.”('윤리학‘ 1155b. 17~20)
<뤼시스>에서 우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과 친구들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뤼시스> 214c)는 대목을 읽었다. 여기의 ‘좋음’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뜻이 예사롭지 않고 숭고하기 그지없지만, 범박하게 이렇게 곱씹을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이 친구들일 수 있다. 그러나 (친구가 되는) 모든 친구들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곧 좋은 사람들끼리만 친구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또는 ‘훌륭한’, ‘바람직한’ 친구 관계를 누구나 바란다. 그러나 바로 ‘친(親)’은 선(善)들끼리만 아니라 악(惡)들끼리도 돈독한 사이가 되게 한다.

 

“유용성(有用性)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뭔가 덕을 볼까 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 점은 쾌락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재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윤리학’1156a 10-15)
상대방을 “그의 사람 됨됨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것이나 “유익하거나 즐거운 존재로서”사랑한다면, 그 사랑과 우애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 사랑과 우애는 우연적인 것으로, 어떤 이익이나 쾌락을 ‘서로가’ ‘계속’ 공급하지 못하는 ‘고갈’ 상태에 이르면 소멸된다. 그리고 유용한 것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사랑은 그런 거야, 우애란 것도 한낱 물거품이야, 그런 한숨을 토로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름다운 사랑, 참다운 우정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기가 그런 사랑이나 우정을 찾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 나쁜 친구도 친구다. 그것을 우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개념을 정의(定義)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닌 어떤 것과 그것이 그것인 어떤 것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경계’를 뜻하는 그리스어는 ‘peras'(페라스)다. 페라스에는 ’한계(limit, boundary)‘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페라스‘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다. 존재하는 것들을 다른 것들과 구분 시켜 주는 경계. '페라스'를 지닌다는 것은 곧 다른 것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짐을 의미한다. 사유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계를 명확히 해야만 사유할 수 있다. 사유의 영역에서 한정성을 갖게 해주는 것이 정의(horismos, definition)이다. “경계를 명확히 해야만” 사유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제대로 생각(사유)할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없다’고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선언했다. 우리나라와 사회 곳곳에서 발견하는 ‘대안 없음’과 혼란의 난맥상은 ‘필리아(philia)(혹은 필로스(philos)’라는 말이 가진 의미, 제대로 정의를 하지 못하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 ‘친노는 없다’면서, 제1야당은 왜 선거는 물론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프레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가! 왜 그것을 뛰어넘는 프레임을 설정하지 못하는가, 그러고도 정책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친박’, ‘반박’, ‘비박’, 친박연대, ‘비박연대’ ‘친박 주류/비주류’ ‘친박게이트‘……. 여야를 막론하고 이러한 친소(親疎) 정도에 따라 형성된 저급한 정치지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로 인한 상처를 우리 국민은 입을 대로 입었고, ’회복불가‘라는 진단에 이어 ’파산선언‘을 하고 있다. ‘우정(사랑)’의 ‘boundary’ 안에는 숱한 의미들이 포함된다. 소크라테스가 하고자 한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유교문화권에 사는 우리에게는 ’친(親)‘과 신(新)이라는 말과 개념이 살아 있다.
 

□ 『논어』의 한 대목은 플라톤의 세 대화편 『뤼시스/라케스/카르메디스』에서 배우는 ‘우정’과 ‘용기’와 ‘절제’의 미덕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有子曰 信近於義면 言可復(복)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며 亦可宗也니라
(유자가 말하였다. 약속이 의(義)에 가까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禮)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그 사람을 우두머리로 섬길 만하다.”(『논어』 <학이편學而篇> 13章)) [復: 실천할 복, 宗: 높을 종]

 

『논어집주』에서 성백효는 주자(朱子)를 따라 ‘인因’을 ‘주인 삼을 인’이라고 읽는다. 그 결과 ‘因不失其親 亦可宗也’를 “주인을 정할 때에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으면 그 사람을 끝까지 종주(宗主)로 삼을 만하다.”고 해석한다.

 

□『좌파논어』의 저자 주대환은 이 대목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한다. ‘감히 공자님 말씀에 토를 다는’ 결례를 무릅쓰고, ‘因’을 흔히 쓰는 대로, “바로 그런 연유로, 그렇게 해서, 그리하여”로 해석한다. 그리고 ‘因不失其親 亦可宗也’을 “그렇게 해서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그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을 만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不失其親(부실기친)’을 이 장(章)을 핵심구절로 강조한다.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가까운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래도록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무척 어렵다. 만약 그걸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두머리로 삼아도 좋다.”
어떤 이를 리더(우두머리)로 삼아야 하는가, 그 메시지 또한 담겨 있다. 그리고 ‘失其親’하지 않으려면 “서로 믿고 같이 가기로 약속할 때는 항상 옳은(또 가능한?) 일만을 의논하고 도모하여 (무엇보다-필자) 말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하고, 서로 존경이나 애정을 표현할 때는 반드시 예절에 벗어나지 않고, 지나치게 허물없이 막 대해서 결국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 정의로운 ‘약속(言)’이라야 한다. 그러나 그 공약(公約)이 한때(혹은 그때)의 다짐으로만 끝나면 공약(空約)일 뿐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용기(勇氣)이다. 불의한 일에 앞장서서 나가는 것을 ‘용기’라고 할 수 없다. 사랑에는 늘 증오가 뒤따른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애증(愛憎)이다.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뜻을 모은 이들은 그들의 결사(結社)를 잘 유지야야 한다. 그때에 절제(節制)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 가까운(親) 이들과의 연대를 이어갈 가는 사람, 그가 리더이며 그를 리더로 섬길 수 있다는 얘기다.
□ 숫자로 먼저 다가오는 가까운 현대사들, 4월(19일)은 가고 5월(18일)이 왔으며 곧 6월(10일)이 올 것이다. 지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움 죽음들이 있었고, 측정할 수 없는 피를 흘려야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한마디는 분명한 약속(言)이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과 바람에 ‘참전’하겠다는 약속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위한 약속이다. 그 연대의 든든한 힘은 ‘우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진정한 우정을 실현하는 데서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 이 한마디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끝>

 

 진도 팽목항 등대 아래에서 촬영(사진_타임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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