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의 신희극 4편이 담긴 희극집과 현존 고희극 11편이 2권의  전집 2권이 번역되어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옛날 아테네에 테세우스라는 용맹하고 고독한 왕이 살았다. 그는 일찍이 비로 맞이했던 아마존 여왕 힙폴리테가 아들을 하나 남긴 채 죽자 크레타 왕의 딸 페드라(파이드라)와 결혼한다. 페드라는 젊은 날의 왕(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의 자매였다. 아테네에 당도한 페드라 공주는 전처 소생의 아들 힙폴뤼토스와 만난다. 그는 아버지의 덕목을 상속한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이야기(신화)는 구애를 거절당한 페드라가 '포세이돈 신에게 복수를 기원해' 바다 괴물이 힙폴뤼토스의 이륜차를 산산조각 내는 것으로 끝난다.  한편 라신의 운문비극 <페드르>에서는 왕의 저주가 아들을 죽이고 페드라도 자살한다.

<위, 알렉시스를 열연한 안소니 퍼킨스, 신화 속 힙폴뤼토스>

<아래, 비극 <힙폴뤼토스>를 수록하고 있는 천병희가 옮긴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1>>

영화 <페드라>(미국, 프랑스, 그리스)는 1967년에 개봉되었고, 1996년에 재개봉되었다. 바하의 토카타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 울려나오며, 과속하는 자동차의 거친 소음 그리고 앨렉시스(안소니 퍼킨스)의 격정에 찬 소리, "페드라~" 곧이어 차가 절벽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 영화 음악이 특히 유명하다. 영화에서 페드라는 선박왕의 딸(멜리나 메르쿠리)이고, 알렉시스(안소니 퍼킨스-신화의 힙폴뤼토스)는 현재의 남편과 헤어진 영국 출신 아내와 낳은 아들이다. 영화에서 알렉시스는 새엄마와 동행한 파리  여행에서 그녀의 유혹에 한 순간 넘어간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방학을 맞아 아버지의 집(그리스)으로 돌아온 아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눈길조자 주지 않는다. 애를 태우는 페드라의 선택은 극단적인 비극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페드라 역의 그리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는 훗날 그리스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다.

'시골의사' 박경철은 작년 이맘때 펴낸 그리스기행 1권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대장정의 첫 여정으로, 영화 페드라의 마지막 장면 배경인 메가라를 지나 해안을 따라가는 옛길을 소개한다.

"이 길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원한 주제였던 '금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신과 어깨를 겨루던 당대의 영웅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는 '나약한 인간의 실제'에 대한 내러티브가 담긴 비디오 가이드인 셈이다.'(29면)

<한겨레>의 종교전문기자 조현은 <그리스 인생학교>에서 그리스 본토를 떠나 크레타 섬으로 여정을 이으며, 젊은 날 테세우스 신화 속 인물들의 비극을 소개한다.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아테네)가 미노스(크레타)에게 해마다 14명의 소년소녀를 조공으로 바치던 관행을 끊기 위해, 그들 중 한 명이 되어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션에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리나드네를 버리고, 아테나이를 떠나던 날, 아버지와의 약속을 깜빡 잊는 바람에 비극을 맞이한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성공했으면 흰 돛을 실패했으면 검은 돛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흰 돛으로 바꿔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게우스 왕은 절망 끝에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다. 오늘날 '에게 해'라는 아이게우스에게서 유래한다. 파이드라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와 파시파에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리아드네와 자매간이다.

이제 파이드라(1)와 휩폴뤼토스(2), 테세우스(3)의 비극을 메난드로스의 희극 <사모스의 여인>과 비교할 차례다. 이들과 대응하는 희극 속 인물은 '사모스의 여인' 크뤼시스(1), 아들 모스키온(2)과 아버지 데메아스(3)다. 신화와 비극에 충실할 것인가, 영화(시나리오)에 충실할 것인가는 고민거리다. 다만, 희극 <사모스의 여인>이 고대 희극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접어두고, 신화(비극)를 비교 대상으로 삼기로 하자.

신화(비극)에서 파이드라(1)는 유모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휩폴뤼토스(2)가 자신을 겁탈한 것처럼 위장하여 테세우스(3)가 아들을 오해하게 만든다. 희극에서도 아버지 데메아스의 오해가 극을 절정으로 이끈다. 선의(善意)에서 꾸민 일인 줄 알지 못한 데메아스(3)는 아이 아버지가 아들 모스키온(2)이라는 말을 엿듣고, 자신의 동거녀 크뤼시스(1)가 자가 아들과 잠자리를 하여 아이까지 낳았다고 생각한다. 신화(비극)와 달리 희극에서는 '아이'라는 너무나 확실한 증거가 있다. 신화(비극) 속 파이드라가 연출한 겁탈의 정황 증거보다는 분명하다. 데메아스(3)의 여행 기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최소한 10개월 이상이라야 자신이 없는 동안 에 아이를 잉태한 것이 된다. 만약, 10개월 이내라면 자신이 여행을 떠나기 전 집에 있는 동안에 불의한 일이 생긴 셈이다.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이냐 집을 떠나 있는 동안이냐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 저지른 불의라면 누구도 용서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없는 동안에 생긴 일이라면 성인이 된 아들과 젊은 여인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또 하나 친아들은 아니므로, '근친상간'이기는 하나 심각성은 덜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를 떠올릴 때, 오이디푸스는 왕비가 자신의 친어머니인 줄 모른 상태였으며, 정식 부부였다. 그러나 혈연 관계였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희극'의 경우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는 상태에서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는 용서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아들과 동거녀는 혈연 관계는 아니다.   

신화(비극) 속 테세우스는 젊은 날을 총기을 잃은 상태로 정황을 분별하지 못해 오해한다. 아마도 '희극'의 아버지 데메아스의 경우도 앞서 '여행 기간'을 추정해본 것처럼 사실은 10개월 이내로, 자신과 동거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수 있다는 점을 깜빡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를 아버지의 아들인 것처럼 꾸미는 과정이 별다른 고민(갈등)이 없기 때문이다(일부 누락된 대목 때문에 생긴 작품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고, 작품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신화(비극)와 희극이 아버지가 자신의 여자와 아들 사이를 '오해'한 데서 갈등을 촉발된다는 점에서, 아버지들의 오해된 성급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극(신화)과 희극, 둘이 달라지는 지점은 사태를 파악한 아버지들의 반응과 후속 조치다. 테세우스나 데메아스나 아들 사랑은 극진했다. 일반적인 아버지들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각별한 것이었음을 강조되고 있다. 

테세우스는 기도를 올리는 정도로 대응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의 또 다른 아버지(헬레네가 제우스의 딸이기도 한 것처럼)인 포세이돈 신이다. 포세이돈이 자신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사용한 것이니, 강력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포세이돈은 아들의 소원을 곧이곧대로 들어줌으로써, 오해에서 비롯된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아들의 아들을 죽인 셈이다. 또 다른 비극이다. 테세우스의 아들에 향한 증오는 애증(愛憎)이 발생한 것으로, 이런 감정의 복잡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희극의 아버지 데메아스는 지체하지 않고 아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응한다. 아들에 대한 분노는 거의 없고 동거녀와 아이를 집에서 쫓아낸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지만,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낳은 아이라면, 어쨌거나 자신의 손자가 아닌가. 아들은 보호하고 동거녀는 내치는 행동은 순간의 흐려진 판단력 때문에 또 하나의 아들인 손자까지 버린 셈이다. 의도와 달리 결과는 포세이돈과 데메아스가 닮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손자의 존재는 사는 동안 아들에 대한 분노를 끊이지 않게 할 것이므로,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아들이 친아들이 아닌 점도 혈육에 대한 정을 벗어난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오해'로 곧 풀리는 상황이지만 선택하는 동안에는 '진실'이다)

또 하나,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인과의 결혼식이 코앞인데,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해외용병으로 합류하려는 모스키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의 사랑이 극진했으므로, 실제는 아님에도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오해했다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떠난다는 것이다. 신화(비극) 속 휩폴뤼토스의 경우도 사실이 아니므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될 것을, 거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일까?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그의 결벽성과 데메아스의 선택은 닮았다.

 

<사모스의 여인>은 왜 '사모스의 여인'일까? 희극에서 사모스의 여인, 크뤼시스의 비중은 제목에 배해서 높지 않다. 그녀의 선의에서 시작된 제안이 극의 주요한 갈등을 만든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아이 엄마인 것으로 하자는 제안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동거녀'일 뿐 데메아스의 정식 아내가 아니다. 둘 사이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상태였다면, 곧이어 정식 아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도 감안해야겠지만, 자신의 지위 변화에 '속도 위반'으로 태어난 예비부부의 아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희극 속 크뤼시스는 신화 속 파이드라와 공통점은 1)외국에서 온 2)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이라는 점만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희극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저 '착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실감'과 그것을 채우려는 불순한 '의도'를 고려할 때, 그저 '착한 여자'라고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파이드라 못지 않은 집요함이 엿보인다. 두 여자의 가장 큰 공통점이 새롭게 추가되는 셈이다. 

 

이상으로 유사 주제를 다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신화)과 메난드로스의 희극의 사건과 인물들을 비교해보았다. 영화 <페드라>가 파이드라를 중심으로 비극 <힙폴리토스>을 각색한 결과라면, 희극 <사모스의 여인>도 '문제의 여인'을 중심에 놓고 새롭게 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신화(비극)은 아버지의 그 오해가 풀리지 않은 채 비극으로 치닿고, 희극은 곧이어 오해가 풀림과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사모스의 여인'의 의도를 비롯, 그저 화기애애한 마무리가 되는 듯하지만, 메난드로스의 희극은 그 안에 그리스의 신화(비극)을 품고 있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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