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나해철 지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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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시(詩)'는 말(言)의 절(寺)이라는데, 말로 지은 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는 다른 장르의 글들과 함께 '짓는' 행위를 '쓴다'고 표현하는데, 순전히 글씨를 '쓴다'로만 시를 짓는 행위를 묘사한다면, 언젠가 시를 '친다'고 이르게 될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육필 시집 시리즈는 시대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기획 자체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나해철. 시인 나해철, 의학박사 나해철, 오래된 조형물을 사랑하는 나해철, 무엇보다 사람 나해철. 그에 관해서라면, 아주 깊이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여러 면에서 별도의 글을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전부 다 살피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손으로 쓴 시로 먹고 살아가는 시인은 아니다. 이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정도로 시만 쓰고도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시인들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는 낮에는 성형외과 의사다. 그것도 강남 압구정 전철역 부근에 있는 성형외과 의원에서 아름다워지려는 이들의 '니드'를 충족시켜주는 일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그는 손이 하는 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자신의 시편들 가운데 46편을 골라 직접 '쓰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꼈을 소회가 궁금했다.

원고지에 직접 쓴 시인의 시를 받아서 타이핑을 하고 그렇게 입력했던 원고를 사식집에 맡기고, 프린트 된 인화지를 디자이너가 칼로 직접 오려서 조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먹지에 새긴 글씨를 등사판으로 밀어낸 용지로 시험을 보던 시절도 앞서 있기는 했다. 어쨌거나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손글씨로 시를 쓰는 일도, 그런 시를 읽는 느낌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방학이 끝나서 아쉽다는 몇몇 교사 지인들과 정남진 장흥엘 다녀왔다. 천관산의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내려와 일행들이 찾은 곳은 천관산 남쪽 자락에 있는 천관산 문학기념관. 2월 2일에 끝난 것으로 현수막이 붙어 있는 주요 문인들의 시화전이 아직 철거하지 않은 상태로 전시 중이었다, 그런 '방치' 덕분에 참으로 오랜 만에 시화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액자가 고급스럽게 바뀌었을 뿐, 필자가 직접 쓴 글씨의 느낌으로 보고 또 읽는 느낌은 여전히 설레임을 준다고 생각했다.

감히, 위에 소개한 나해철 시인이 직접 쓴 글씨의 느낌을 평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의 시들은 내용을 떠나 잘 읽힌다. <그리운 이에게>는 정평이 난 시로, 대학의 연극영화과 입시나 연기자 오디션에서 독백 과제로 제시되는 작품이다. 나해철 시의 이러한 특징을 간단히 얘기하는 쉽지 않다. 마치 흰 여백에 오로지 검은 글씨 뿐인 일반 단행본의 타이포그라피에 대해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느낌은 있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듯이, 나해철의 시가 매끄럽게 읽히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러한지를 말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어미처리 등 반복 효과, 그러면서도 변용되는 우리말의 절묘한 쓰임이 내는 효과라고 할까, 물론 내용을 떠나서, 라고는 했지만 어찌 내용을 떠나서 매끄러운 읽기가 가능하겠는가. 이번 시집에서 만나는 시인이 직접 쓴 글씨에 대한 느낌도 어쩌면 잘 읽히는 그의 시 특징과 잘 어울르는지 놀랄 뿐이다

 

외로운 사람들의 밤에 드는
햇볕처럼 따사로운 손
병 깊어 쓸쓸한 이들에게
다가가 쓸어주는 손
아름다운 손

새해에는
나의 오른손 왼손 중
하나라도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불의한 사람들을 깨우치는
용기 있는 손
더러운 것을 맑게 씻어주는
깨끗한 손
어여쁜 손

새해에는
아아 나의 손 중 하나라도
그처럼 예쁠 수 있다면

 

시집 <<아름다운 손>>(1993.03.01, 창작과비평)에 수록된 시 <손> 전문. 여기에서 시집 제호 아름다운 손이 나왔다. 그의 손이 이번에는 진짜로 손글씨로 쓴 시를 썼다. 이번 시집에도 수록된 작품이다.

해서, 시인은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다시 쓰면서의 생각한 바를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시를 손으로 흰 종이 위에 쓰면서, 제 스스로 제 글씨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제 살아온 시간들, 제 마음속 깊은 곳, 특히 제 성격이 거기 있었습니다. "

 

위로를 외래어로 번역하자면 근래에 유행하는 '힐링'쯤이 될 것이다. 외모에 대한 고민은 어느덧 마음의 병이 되어버린다. 그런 사람들이 그에게는 고객들이다. 외모에 대한 고민이 정작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 바 있는데, 성형외과 의사이면서 시인인 나해철만이 알 수 있는,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눈을 아름다운 코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다. 누구처럼 된다고 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만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울릴 때에 아름다운 눈이 되고 아름다운 코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이 되기 위해 그를 찾는 고객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낮엔 의사이고 밤엔 시인이 하는 일인데, 그가 직접 쓴 손글씨로 감상하는 이번 시편들에서 받은 느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절제를 시의 내용과도 절묘하게 어울리며 새로운 느낌을 선물하고 있다. 끝으로 그의 시, <그리운 이에게>를 소개한다. 오디션에 나가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낭송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보시기를!

 

그리운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걸
오랜 시간이 흘러가 버렸어도
그리움은 가슴 깊이 맺혀
금강석이 되었다고 말할 걸
이토록 외롭고 덧없이
홀로 선 벼랑 위에서 흔들릴 줄 알았더라면
내 잊지 못한다는 한마디 들려줄 걸
혹여 되돌아오는 등뒤로
차고 스산한 바람이 떠밀려
가슴을 후비었을지라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꽃같이 남아 있다고 고백할 걸
고운 사람에게
그리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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