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불법사찰 폭로 뒤 생활고 '장진수 돕기' 모임 꾸린다>(한겨례, 2014.02.26)는 기사를 읽었다.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돕기 위한 모임이다.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자들이 폭로 이후의 삶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우리 사회 이런 세태가 슬프게 한다. 떠오르는 이름들이 적지 않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이병, 김용철 변호사, 표창원 교수.. 

나는 이런 소식을 듣을 때마다, 북해의 청어잡이 어부 이야기을 떠올리곤 한다. 생산지의 청어를 살려서 최종 소비지역까지 옮길 때, 청어가 가득한 어항에 메기 한 마리씩을 넣어서 옮기니 거의 대부분이 살아있더라는. 이 아이디어는 동료 어부들도 공유하게 된다. 작년 이맘 때, 안철수 의원 귀국을 두고, 서울대 조국 교수는 SNS에 '한국 정치판의 살찌고 게으른 청어를 긴장하게 하는 메기의 귀환'이라고 올려 화제가 되었다. 과연 그의 새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낼 것인지?


천병희 선생의 플라톤 대화편 신간이 나왔다. 대표 소피스트들과의 문답을 담은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다. 두 대화편 원전번역으로 나와 있는 상태고, 둘 다 읽었음에도, 새로운 느낌으로 읽었다. 플라톤과의 새로운 그리고 생생한 만남이다. 작년 이맘때 출간된 플라톤국가원전번역이 호평을 받은 바 있거니와 두 대화편을 묶은 파이드로스/메논과 더불어, 플라톤 철학의 정점인 국가를 이해하는 '징검다리'다. 현재 우리말로 잘 풀어놓아, 새로운 모습의 소크라테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말 그대로, 대화를 담은 것들이다. 때론 연극 대본처럼 대화자의 이름이 있고 대화만을 고스란히 담는가 하면, 그래서 내가 말했네. "~~~"와 같이 대화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담의 기록이기에,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말맛'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이 맞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천병희 선생이 단독으로 번역출간한 첫 책일 것이다. 이처럼 시학의 번역가답게, 그 시학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 작품 전편을 번역했는데,  그리스 비극 전집(전4권),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전2권), 메난드로스희극(1권, 2014년 2월)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실제 연극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기도 하고, 새롭게 각색되어 국내외 무대에 오르는 희곡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들 희곡들은 '레제드라마(상연보다는 읽힐 목적으로 쓴)로서 손색없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지 않고 읽히게끔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드라마들을 우리말로 고스란히 옮긴 번역가의 노하우가 플라톤 대화편 번역에서도 빛나고 있다.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와 그의 추종자들인 폴로스와 칼리클레스까지 세 사람과 1대 3의 토론대결을 벌인다. 거기에다 고르기아스의 추종자들이 대화마당 곳곳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고르기아스가 청중들을 의식하는 멘트를 날리다가 자신의 발목이 잡는 경우가 있는데, 달리 말하면 대화에 임하는 소크라테스의 스트레스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나는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논쟁을 재밌게 읽었다. 앞서 제시한 내부고발이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부패를 추방하고, 투명한 사회를 이루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수사학'은 의술로 분장한 '요리술', 체력단련으로 분장한 '치장술'과 같은 '아첨'일 뿐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단언한다. 이런 수사학이 제대로 사용되는 때는 어느 때인가, 불의에 관한 논의에서 구체화된다. 소크라테스의 논변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1)불의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

2)불의를 당하는 사람,

3)불의를 행하고 처벌을 받은 사람,

4)불의를 행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들이 각각 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더욱 불행한 사람이다. 폴로스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의를 행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불의를 당하는 자가 있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는 것은[위 3)과 4)] 불의를 당하는 것[2)]보다 나쁘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고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4)]은 본성상 가장 나쁜 것이자 나쁨의 으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보다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사는 동안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불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런 불의를 행했더라도 마땅한 대가를 치름으으써 가장 큰 악에서 벗어날 길은 열려 있다. 다만 그 길을 걷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불의를 행했다면, 그 자신이든 자신이 돌보는 사람이든, 최대한 빨리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자진해서’ 가야 한다. 아프면 의사를 찾아 병원에 가듯. 그는 재판관에게(우선 경찰서에 가서 자수해야) 가야하며, 불의라는 질병이 고질이 되어 그의 혼(魂)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곪게 하는 일이 없도록 서둘러야 한다. 바로 이 순간이, 불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첨쯤으로 여겼던 수사학(연설술)이 제 역할을 할 때다. 수사학이 제대로 쓰일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수사학의 쓰임은 통설을 벗어난다.

 

“자신이나 부모나 동료나 자식이나 조국이 불의를 행할 때 그 불의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수사학은 우리에게 쓸모가 없네. 폴로스.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네. 누구보다도 자신을 맨 먼저 고발하고 두 번째로 가족이든 다른 친구든 수시로 불의를 행하는 자를 고발하되 그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건강해지도록 우리는 그들이 행한 불의를 은폐하지 말고 공개해야 한단 말일세.”(480b 94면)

 

충격을 받은 폴로스~ 그를 통해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도 소크라테스의 이런 주장이 실상과는 달랐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환부를 도려내는 시술이 두려워 병을 키울 것인가? 병은 조기에 발견하여 마땅한 시술을 받을수록 빨리 그리고 오롯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잠시 동안의 고통이 따르는 수술이 두려워 병을 키우지 말라. 소크라테스는 질병에 비유하여 폴로스가 받은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 방은 아직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그 적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재판관에게 가지 않도록 말과 행동으로 온갖 대책을 강구해야 하네. 그리고 그 적이 법정에 나타나면, 우리는 그가 방면되고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네."(481a~b, 95-96면)

 

역설이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 밉거든 그가 저지른 불의에 마땅한 처벌을 결코 받는 일이 없이 살아가도록, 오히려 말솜씨를 발휘해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도록 수사학을 사용하라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자들의 행위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따르면 결코 해당 조직과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것일 수 없다. 불의를 행하고 그 불의에 대한 적절한 댓가를 치르라고 말하는 이들은 <고르기아스> 소크라테스가 폴로스에게 제시한 역설에 따른다면, 상(賞)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일 수 없다.


2400년 전 플라톤을 읽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다. 2012년 대선과정에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등으로 야기된 문제가 해소되고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후손들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사실은 더욱 힘들 것이다. 해방(독립)은 되었지만 그 독립운동이 실패한 운동이기 때문이기에 그들의 삶이 힘든 것이다. 내부고발자의 이후 삶이 힘겨운 것은, 우리사회가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는 잘 읽힌다. 그래서 당면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보이고, 그래서 슬프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필독하기를 바란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듯이 어려운 세상일수록 고전의 가치는 더욱 빛나며 상대적으로 그 힘은 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imeroad 2022-03-2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이며, 천병희 선생의 역작 중 하나 플라톤의 대화편 전권을 완역한 플라톤전집 3권에 수록되어 있다.

timeroad 2022-03-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문장만 좀 매끄럽게 다듬는 수즌으로, 당시의 정황을 그대로 전달한다. 카테고리만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