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는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러할까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얘기가 있습니다. 또 나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마도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비극 <안티고네>에 나오는 대사일 것입니다. <오뒷세이아>를 촘촘하게 살펴 읽고 있습니다.

 4권. 메넬라오스는 바다노인에게 형의 소식을 듣다 모래밭에 뒹굴며 애곡을 합니다. 이 남자들, 참 와 닿죠, 한류열풍을 얘기할 때, 일본 여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남자에 반응을 했다지요? 메넬라오스는 파리스, 헥토르는 아가멤논 그런 장남과 차남의 대입과 비교가 가능한데, 어쨌거나 차남인 메넬라오스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립니다. 멋집니다. 모양이 좀 구겨져도 진심으로 한 사람의 떠남을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저런 마음씀씀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서 자기 마음을 억제하는 그들의 모습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일리아스>를 읽건, <오뒷세이아>를 읽는 중이건, 아이스퀄로스나 에우리피데스가 쓴 그리스 비극을 읽는 분이건 간에, 정리가 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체 이 사람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먼저 펠롭스가의 족보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제우스->탄탈로스->아들인 펠롭스가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세 아들
아트레우스(1),

튀에스테르(2),

핏테우스(3)를 낳았죠.
핏테우스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의 아내로, 테세우스를 낳는 아이트라의 아버집니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테세우스 전'에서 핏테우스의 지혜로,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와 자고, 테세우스라는 후사를 이를 소중한 영웅 자식을 낳게 되는 것, 이 부분은 딸들 쪽이니 그렇다치고,

 

아들로는 아트레우스(1)와 튀에스테르(2)가 대권 경쟁을 싫든좋든 하게 되겠지요. 더구나, 튀에스테르는 형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형수 아에로페를 유혹하다가 발각되어 추방됩니다(오뒷세이아 부록 576~577면 아트레우스). 나중에 형 아트레우스는 화해하자며 동생을 불러들이고 잔치를 벌입니다. 튀에스테르의 두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한 것인데,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튀에스테르는 질겁하고 달아다며 형을 저주하지요. 이후 튀에스테르는 모르고 자신의 친딸 페로피아와 교합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데, 바로 이 아이기스토스가 사촌 형제 둘이 트로이아와 원정 간 사이에 사촌 형수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고, 정부가 된 상황.
<오뒷세이아> 3권에서 왕홀이 펠롭스->아트레우스->튀에스테르를 거쳐 아가멤논에게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지는, 이 집안에 피의 복수가 점철되는 갈등관계로 보아,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왕위 경쟁도 심상치 않았으리라는 것. 그 피가 어디 가것습니까? 메넬라오스가 그대로 뮈케네에 머무는 상황이라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우리의 조선시대 왕위 계승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경쟁에서 최종 선출됨으로써 헬레네의 남편이 되는 점도 행운이지만, 튄타레오스의 사위가 될 뿐만 아니라 데릴사위로서 스파르테의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점, 바로 이 덕분에 아가멤논은 순조롭게 왕위를 지킬 수 있는 득을 본 셈이라는 것이죠. 헬레네가 없는 스파르테는 끈이 떨어진 갓인 셈이니, 헬레네가 제자리에 돌아와야 메넬라오스도 왕다운 것이지요. 해서, 헬레네에게 늘 부드러운 남자라야 해요. 그것이 그의 행복이면서 슬픈이지요. 메넬라오스만으로는 왕위를 지키기란 힘든 것, 더구나 헬레네에게는 제우스 핏줄이건건, 사람 튄타레오스 딸이건 남자 형제가 둘씩이나 있는 상황입니다. 트로이아 원정에 이 남자 형제들 둘이 왜 오지 않았지 하고 헬레네가 스카이하이에서 찾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말입니다.

 

<오뒷세이아> 4권.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기기스토스가 공모하여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바다노인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지만,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결국 귀향이 늦어지고, 오레스테스와 그 누이가 복수를 끝낸 상태에서 돌아오는데, 가만 보면 메넬라오스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독거리기만 하는 상황. 텔레마코스는 그냥 전우의 아들만은 아닌 조카인데, 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을 듯한데, 선물을 주고 환대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도에 머물지요. 그런데, 메넬라오스의 입장에서 비록 형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헬레네와 동행하여 집(메넬라오스의 집은 뮈케네)으로 돌아가는 입장인데, 처형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여야 하는 상황. 헬레네는 언니를 죽여야 할 것인데, 헬레네의 입장에서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언니의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지요. 메넬라오스도 난처한 입장이고요, 그러나 꼭 나서야 한다면 메넬라오스는 다른 관계를 떠나 형의 복수를 할만한 위치에 있지만(앞서 <안티고네>를 언급했지요), 신의 핏줄을 받은 헬레네 덕분인지 '영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4권에서 메넬라오스가 들려주는 아이귑토스 부근에서의 환상여행을 저승에 다녀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죠. 앞서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가 지옥을 다녀왔고 이후에 오뒷세우스도 저승여행을 할 참인데, 이곳에 다녀오면 사람이 이전과는 달리 정상이 아니라네요. 한 번 죽은 사람이 두 번씩이나 저승에 가야하니, 암튼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요. 말하자면 4차원. 바다노인이 들려주는 메넬라오스의 앞날, 헬레네와 함께이겠지만 암튼 만사를 떠나서 행복한 노년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있습니다. "그가 잘나서라기보다는 부인을, 장인을 잘 만나서, 제우스 사위로서의 덕을 톡톡히 보는 메넬라오스!

 

아가멤논의 귀향과 사망, 그 복수극, 어쩌면 할아버지인 펠롭스의 결혼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아트레우스 가의 그늘진 이야기는 작은 트로이아 전쟁, 혹은 트로이아 전쟁의 속편으로까지 이야기할 정도이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화, 서사시, 비극을 관통하는 고전읽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이 편해진달까,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펠롭스가의 저주"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펠롭스의 섬이란 뜻의 이 지명은 펠롭스에게서 유래했다) 반도로 가서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아버지 엘리스의 왕 오이노마노스와의 전차 경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함, 그는 오이노마노스의 마부 뮈르틸로스를 매수해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다. 그러나 펠롭스는 약속한 보수를 주기는 커녕 마부를 바다에 던져 죽인다.  

위위 도표에서 보듯이,, 암튼 약속을 지키지 않아, 펠롭스 가의 저주가 시작된 겁니다. 
파리스의 사과에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사랑했으나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결혼식에 다른 신들은 모두 초대 받았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받지 못하자, 그녀는 앙심을 품고 거기 모인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황금 사과를 던집니다. <일리아스> 723면 파리스 소개 부분입니다.
서운함이 없게 하라!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서운한 사람이 생기면 그 원한이 깊게 아로새겨지는 모양이니다. 아로새겨진다, 쉬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 일단 대접을 하고, 댁은 누구시오, 라고 나그네를 접대하는 그들의 접대문화가 그가 고귀한 신일 수도 있으니, 소홀함을 원천적으로 방지하자는 데서(물론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위한 ..)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제 동양신화로 잠시 여행을 할 시간.  

<산해경>에는 서왕모에 대한 여러 기록이 있습니다. , 서왕모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반은 짐승이고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여신,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곤륜산에 산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돌림병이나 재앙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과 더불어 코를 베거나 손발을 자르는 등 다섯 가지 잔인한 형벌을 다스리는 여신, 그러한 책무 더하기, 서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어둠과 죽음의 땅, 고대 중국에서 동쪽은 서쪽과 반대로 생명과 탄생의 땅이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서쪽에는 감옥과 처형장 등 형벌과 죽음에 관련된 기관을 배치, 한양 서쪽의 고태골은 처형장, 고태골로 간다, 골로 간다 골로 보낸다. 1970년대까지 서울 시내의 서쪽에 형무소(감옥), 소년원, 화장터 등이 지속된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전농동은 '설농탕'의 어원에서 보듯이 농업 장려 곧 생명산업과 관련된 것, 동쪽과 관계가 있죠.
그러나 극은 극과 만나는 법이라, 서왕모는 죽음의 신만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기도 했습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는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열매가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천도)복숭아 얘깁니다.
-주나라 때의 목왕, 주목왕은 여신 서왕모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러스스토리,
-한나라 때는 동왕공이라는 서왕모의 남편 신을 만들어내기도, 여성에게는 보호자인 남성이 있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관념의 침투가 가져온 결과, 음과 양이 평형을 이뤄야 한다는 음양오행설에 의한 짝짓기 산물,
그런데, 서왕모의 열렬한 팬은 바로 한무제입니다. 장수를 열망한 그는 서왕모의 강림을 기원, 칠월칠석날 서왕모가 아홉가지 빛깔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천상에서 내려와 선물로 불사의 복숭아 선도(仙桃)를 선물합니다.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이라는 복숭아밭에서 딴 것으로 이곳의 복숭아나무는 3천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년 만에 열매를 맺으며 그것을 한 개라도 먹으면 1만 8천년까지 살 수 있답니다. 바로 선물을 주고받는 이곳에 한무제의 신하이던 동박삭이 있었으니, 그는 서왕모의 귀한 열매를 훔쳐먹은 재담꾼으로(나쁜 남자!) 한무제를 즐겁게 해주던 그는 이미 신이었던 것, 그렇게 오래살았다 해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얘기 속에 그는 양생하네요.


*반도원은 이후에도 크게 도둑을 맞는데, 명나라 때 지어진 유명한 환상소설 <서유기>,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오공이 홧김에 반도원의 선도를 거의 다 따먹어버렸다네요. 그래서 벌을 받고 삼장법샤가 조건부로 해제를 해주고 부리고? 일할 기회를 주고, 비정규직 같아..

바로 이 대목에서, 에리스가 앙심을 품고 던지는 파리스의 사과와 비교해 볼 만하죠. 그것이 펠롭스의 저주의 연장선인지 알 수 없으나 세 아들 중에서 핏테우스 쪽의 가계에도 흥미로운 사건, 다사다난한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흥부전> 제비 다리를 고치는 흥부는 무엇을 바라고 그리 하지 않았지요. 힘들고 치친 그리고 다친 나그네를 없는 살림이지만 잘 대접하여 보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내리게 된다. 반대로 의도를 가지고 제비 손님을 맞이한 놀부는 도리어 잃고 망하게 된다. 유사성이 있습니다.

펠롭스와 그의 손자 메넬라오스는 신부를 차지하는 경쟁에서 어쨌거나 우승하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네요. 그러나 당첨은 순간, 이후 댓가가 너무 크네요.  <오뒷세이아> 4권을 읽으며 너무 생경하게 생각하지 말지니,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고뇌랄까, 이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거이고, 그들은 필명의 인간이었던 것 아닐까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의 표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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