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대 비극작가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데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쓴 작품 가운데 현존하는 비극은 모두
33편.
-이 가운데 신화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은,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
정답은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이다.
이 비극은 패배자의 시각에서 본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이며, 페르시아 군세의 파멸은 분수를 모르는 오만, 곧 히브리스(hybris)의 결과였다는 것이 그 주제이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징벌, 이 관념은 어디까지나 그리스 고유의 전통적 종교관념이었다. <페르시아인들>이 현존하는 비극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비극이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다루는 초기의 영향 탓인지 그 주제에서만은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의 오만도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에 대한 간접적인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5)는 생전에 90여 편의 비극을 썼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7편, 그 가운데 <페르시아인들>이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출세작이다. 기원전 472년 그는 이 작품이 포함된 비극 3부작으로 그는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살라미스해전에서의 페르시아의 패배를 다룬 작품이 있었으니, 프뤼니코스의 <포이니키아의 여인들>(기원전 476년)이다. 두 작품은 모두 무대가 페르시아의 궁전이며 등장인물이나 주제도 비슷하여 아이스퀼로스가 프뤼니코스를 모방해서 극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포이니키아의 여인들>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극의 전개에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이랄까,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두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한 사람을 꼽으라면 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4년경~459년경)일 것이다. 그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막강 함대를 살라미스의 좁은 수로로 유인해 수적 우세를 무의미하게 만듦으로써 살라미스 해전을 빛나는 승리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나중에는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이국을 떠돌다가 객사하는 등 파란이 많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의 <테미스토클레스전>에서 가장 실감있게 그리고 알맞은 분량으로 살필 수 있다. 가령, 헤로도투스(<역사>)는 테미스토클레스를 인성을 폄하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헤로도투스는 그의 부정과 단점을 지적하면서도 그의 공적인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또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삶 자체가 그리스인(아테네)들의 시각에서 공로와 과실이 혼재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저마다의 사료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면면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소중한 것들이다.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와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통해 살라미스해전과 그의 활약을 살피려면 배리 스트라우스가 지은 <<살라미스해전>>을 살펴볼 것을 권한다. 
어쨌거나 김진경 님(<<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에 따르면(아래) 테미스토클레스의 '영광과 몰락'은 앞서 거론한 두 비극작품과 상관성이 깊은 것 같아 흥미롭다.
테미스토클레스가 몰락하는 시점을 기원전 471년으로 보는데, 마지막 기록을 보이는 것은 기원전 476년으로, 그해에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1)그가 올림픽 경기에 참관하게 되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선수들을 제처 놓고 그에게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비록 아테네에서 그의 인기는 하락했지만 아테네 외의 그리스지역에서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테미스토클레스 자신은 이 일을 그의 생애에서 최고의 기쁨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또 하나,
2)그해에 그는 프뤼니코스의 비극 <포이니키아의 여인들>의 코레고스(합창단의 비용을 책임지는 사람)가 되었다.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이었던 그로서는 자기의 명성을 상기시키고 선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아낌없이 그 비용을 후원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현판을 내걸기도 했으니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그런데,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471년에 도편추방(또는 망명)을 당한다. 그가 도편추방을 당한 이유에 대해서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명성과 우월성, 그리고 자신의 공적 선전에 대한 민중의 반감과 질투를 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선전을 하는 그가 그의 정적들에게 곱게 보였을리 없고, 기원전 472년에 상연된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의 흥행(성공)이 그의 도편추방을 결정차였다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사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을 다뤘을 뿐만 아니라-작가 아이스퀠로스 자신이 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직접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그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마라톤 전투에 형과 함께 참전하여(형은 전사하고) 여러 군데 부상을 입었으며 살라미스 해전에도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다.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은 비극이라기보다는 (그리스인들의 입장에서는) 페르시아에 승리를 축하하는 송가라는 느낌이 강하며, 아이스퀼로스의 애국심을 극단적으로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까?
사실 테미스토클레스는 대중과 친밀했다. 1)그가 시민의 이름을 일일이 즉석에서 부를 수 있었고 2)개인적인 거래관계에서 믿음직한 중재자 노릇을 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득세하고 마침내 반대당을 이기고 라이벌인 아리스테이이데스를 도편추방하는데 성공한다.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거니와 아테네의 해군력을 증강하여 전쟁을 대비하는 혜안, 그리스연합군을 결집시키는 설득력, 실제 전쟁에서 정보전을 겸비한 전략가로서의 기질, 축재한 부를 적절하게 국내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근래의 정치가들은 저리 가라할 그의 면모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도편추방을 당하고, 또 사형선고를 받아 망명하며, 종국에는 적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왕에게 의탁하였다가 말년을 보내는, 그가 물질적으로 빈곤하지 않았다고 해도 조국을 등지고 말년을 맞이한 점은 쓸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스스로 후원자가 되었거나 그가 도편추방 되는데 민중의 질시와 경계심을 자극하는 결정타가 되었던 비극 <페르시아인들>은 그 스스로가 경계했어야 할 드라마이고, 그의 비극을 예견한 것이지 않았나싶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820-822행)
그리스 원전고전들의 번역에 독보적인 분이 천병희 선생이라면, 서양고대사 연구와 강의로 평생을 매진했던 작고하신 김진경 교수는 특히, 앞의 책에서 그리스의 고대사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데, 김진경은 이 대목을 "인간은 오만한 마음을 품지 말지어다./오만은 꽃을 붙여 파멸의 열매를 맺게 하며/추수의 계절에는 그칠 길 없는 눈물을 얻게 하리라."라고 번역해서 인용하고 있다.
1)한 인간의 세력이 강해진다. 2)그러면 자기의 분수를 잊고 '미망'(아테)된다. 3)그 미망의 결과로 능력 이상의 의욕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한다. '오만'(히브리스)헤지는 것이다. 4)그러면 신들의 질시라는 신의 뜻에 따라 야욕은 좌절되고 그 자신은 파멸한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신의 심판! 그것은 3대 비극작가 중에서도 가장 선배인 아이스퀼로스 비극들, 특히 여기 <페르시아인들>의 핵심주제이다. 프뤼니코스의 <포이니키아의 여인들>은 남아 있지 않으나 주제는 물론이고 여러 면에서 <페르시아인들>과 유사하다고 했다. 어쨌거나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공적이 두드러지는 살라미스해전을 다룬 비극이라는데에 우쭐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으며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그 비극작품을 자신의 삶을 경계하는 지침으로 새기지 못했던 것일까,
헤겔은 "역사상 살라미스 해전만큼 정신의 힘이 물질의 힘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 적은 없었다."(<역사철학>)라고 했다. 그렇다면 살라미스해전을 다룬 비극 <페르시아인들>이 전하고자 한 진정한 메시지는 무엇이었겠는가! 극이 상연될 즈음, 테미스토클레스는 분수를 지키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극으로 각성된 시민들이 그 비극이 다룬 전쟁의 영웅이면서도 실제 삶은 오만하여 자중할 줄 모르는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추방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게 한 것일까?
그리스인의 입장에서 페르시아가 그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드러내는 비극 <페르시아인들>을 보는 그리스 시민들의 (집단적인) 자기반성의 결과, 테미스토클레스를 도편추방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페르시아인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영광이면서 몰락을 자초한 작품이다. 이것이 이 작품을 읽는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