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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박상익 지음 / 유유 / 2018년 4월
평점 :
정성적으로 일본을 경제에서 이미 따라잡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하면서도, 축구는 말할 것도 없고 한-일전이라면 무조건 흥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분야가 있다면, 번역 분야. 자국어 번역콘테츠 생산 결과와 시스템일 것이다. 이것은 좋은 번역입니까, 라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그런 것 같아요!' 정도이지 해당 언어에 정통한 것도 아니고, 그 우리말 번역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말 번역 콘텐츠를 소비하는 입장에 있지 생산자는 아니라는 것. 생산자이면서 소비자라면 이런 질문에 나름의 '견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번역 환경이 놀라울 정도로 척박하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든, 이런저런 강연 등을 통해서 실감한다. 이 경우,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번역환경을 비교다.
한글이 아무리 과학적인 문자이면 무엇해, 세계는 넓고 숱한 외국어 콘텐츠가 넘쳐 나는데 그것을 번역한 우리말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그것들을 번역할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이런 빈곤함은 더욱 깊어간다. 박상익 선생은 <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에서 12년 만에 다시금 우리 번역환경 개선을 역설하고 있다. 청와대홈페이지 국민청원도 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이 책이 출간된 2018년이니, 4년이 또 흐른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가 소확행(그러나 번역은 기간산업이다) 공약으로 번역청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19대 대선은 촛불혁명으로 갑자기 진행되어 공약에 반영할 수도 없었다고. 이번 당선자의 경우, 인문학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폄하 발언까지 해서, 비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박상익 선생은 번역 콘텐츠는 말할 것도 없고, 번역 환경이 너무도 대조적인 우리 현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비유한다. 근래에 직접 촬영한 사진과 에세이를 엮는 글쓰기를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여 더욱 다가오는 대목이다.
"고가의 최신형 DSLR 카메라(한글)을 들고 폼 잡고 거들먹거리면서 막상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을 줄 모르는 얼치기 아마추어 사진사,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다 낡아 빠진 필름카메라(가나)로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노련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번역 왕국' 일본의 현주소다." -<뛰어난 과학성, 빈약한 콘텐츠>
명칭이 어떻든 국가 주도의 번역 전담기구가 있어야 한다. 시장에만 캍겨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유는 그 시장에 있다. 1)한국의 인구는 남한 기준으로 고작 5,000만 명이다. 일본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게다가 국민 1인당 독서율 역시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수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런 어려움은 번역서 출판만이 아니라 우리 출판시장 전체에 산재해 있다. 국민1인당 독서율이야, 나라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글로 번역되어야만 하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들이 기본 생활을 보장 받고, 실적으로(번역물 자체가 석사학위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게 하는 등) 인정받을 수 있어야, 좋은 번역물을 생산할 수 있다.
끝으로 인용하는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부럽기도 하고 일본을 너무 쉽게 보지 않나 하여 두렵기도 하며, 문화선진국 운운하는 우리의 지금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 교토산업대학교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라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 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어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는 "아이 캰 놋토 스피쿠 잉구릿슈(I cannot speak English)"고 입을 뗀 후 일본말로 강연을 했다. 일본어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모국어만으로도 노벨상을 타는 일본>에서
1)번역은 자국어의 흥망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한국 수준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2)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글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성취가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림도 없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국어 콘텐츠가 턱없이 부실하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