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말이 있다. ‘삼족의 벌’이라는 형벌인데, 반역죄를 지은 사건의 주모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사극(드라마)이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다. 그런데, 삼족은 본래 아버지·아들·손자를 말하거나(三代), 이처럼 아버지의 형제자매, 자기의 형제자매, 아들의 형제자매를 이르는 동성삼족(同姓三族)을 뜻했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대체로 이성삼족(異姓三族)까지 뜻하고 있다. 외가 처가까지도..

 

삼족(三族)을 멸(滅)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찾은 비극
이성삼족이란 종족(宗族)·본족(本族)·본종(本宗) 등으로 불리는 부계의 친족과 모당(母黨)·처당(妻黨)이라는 모계·처계 친족을 포괄한다(이 범위를 일러 일족이당(一族二黨)이라고도 한다.). 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죄인의 어머니(외가) 집안과 아내(처가)의 집안까지 씨를 말려버린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공동운명체에 속하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그 화가 삼족 전체에까지 미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삼족의 벌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가 삼국시대에도 보인다. 그러나 벌을 받는 범위는 집권자의 뜻에 따라 넓혀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이런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 삼국시대에도
그렇다면 이는 우리나라만의 얘기일까? 양상은 조금 다른데, 그리스 비극을 공간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폴리스 간의 갈등관계에서 살피면 무시무시한 저주가 거기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최근에 주목하는 책,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아테나이가 그들의 자랑인 비극 경연을 통해 어떻게 주변의 경쟁국들을 견제하고, 그리 인식하도록 시민들을 교육했는지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곁들여도 곧이어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아테나이의 인접 국가인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소재로 차용한 그리스 비극 3대 작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비극 작품을 통해 테바이의 역사와 전통을 폄하하는데 기여했다. 비극 경연은 당대 최고의 공연예술로 시민교육의 주요한 도구였는데, 그 내용을 파악하면 일종의 아테나이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식화’였다고 볼 수 있는 것.

 

그리스 비극경연, 아테나이 애국심을 고취 ‘의식화’ 마당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마무리하며, 최혜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한 대목을 인용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야에 코린토스인들이 아테나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스파르타를 설득하는 연설이다. "아테네인은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도 완전히 남의 것인 양 희생하고, 또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는 지적은 매우 상징적이다. 당시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공통의 생각을 갖게 한 기제들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비극 공연이 아니었을까, 책의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아테네인들,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

테바이를 배경으로 하는 비극작품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이는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다.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 시인은 서른이 안 된 나이로 기원전 468년에 비극경연대회에서 아이스퀼로스를 누르고 우승한 뒤로 대 디오뉘소스 제의 경연에서 모두 18번이나 우승한다. 그가 쓴 비극 123편 중 전해오는 것은 7편, 그 중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 왕」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6에서 433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는 기원전 406년경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쯤 쓴 것으로 실제 공연은 죽은 다음인 401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소포클레스는 두 작품보다 오이디푸스 왕가를 다룬 작품을 먼저 썼는데, 「안테고네」(기원전 442년)다. 시건 진행 순으로 정리하면 「안테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이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테바이 왕가를 배경으로 하는 소포클레스의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쓴 것.

 

테바이의 불행은 아테네의 행복? 정점 찍은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가 쓴 테바이 왕가를 다룬 비극들 말고도 당대의 많은 비극작가들이 오이디푸스 왕 관련 이야기를 다루었다. 오이디푸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스퀼로스의 『오이디포디아』는 「라이오스」, 「오이디푸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의 3부작에 <스핑크스>를 포함한 4부작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3부에 속하는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기원전 430~428년 사이)만 온전하게 전한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은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난 다음, 두 아들이 왕권을 둘러싸고 싸우다가 둘 다 죽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도 오이디푸스 왕가의 비극을 다룬 극을 썼다. 「크리시포스」, 「오이디푸스」, 「페니키아 여인들」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페니키아 여인들」(기원전 412~408년 사이?)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크리시포스’는 라이오스 왕이 동성애적 사랑으로 납치한 소년의 이름이고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의 친부인 전(前) 왕이다. 「크리시포스」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오이디푸스 가문이 저주받게 된 근본 이유를 다루었으리라. 망명자 신세였던 라이오스는 자신을 받아준 은인 펠롭스의 아들이자 자기 제자였던 크리시포스를 성추행하고 납치하는 죄를 저지름으로써 신들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의 일종의 '프리퀼(Prequel)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프리퀄(Prequel)은 그 이전의 일들을 다룬 속편.

 

현존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에서도 ‘테바이 공격’ 흔적 역력
「페니키아 여인들」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과 소재가 비슷한데 난데없이 페니키아 여인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테바이를 건국한 시조인 카드모스가 알파벳을 창조한 페니키아 출신, 곧 외지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당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아테네인들은 물론이고 각 나라에서 온 대사들이나 방문자, 거류민들 등-에게 테바이 왕족은 페니키아 출신의 이민족이 세운 축복받지 못한 국가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라, 라고 최혜영은 쓰고 있다.

 

프레임 전쟁: 테바이 건국 카드모스가 페니키아 출신이라 「페니키아 여인들」

현존하는 작품들로만 치면, 그나마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중심으로 위아래 3대에 이르는 비극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주요 수호신들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 신을 무대에 올린다. 테바이는 디오니소스 신의 탄생지로, 실제로 디오니소스 신전이 테바이인들 삶에서 비중이 컸음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 디오니소스 신은 테바이 공주를 어머니로 태어났지만, 테바이를 싫어하고, 곧잘 테바이를 적대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대표 비극이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이 죽은 이후,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들도 비극으로 만들어졌다. 전사한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성장하자 크레온은 그에게 왕위를 물러준다. 하지만 라오다마스 치세에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이끄는 아르고스 일곱 장수들의 아들들, 즉 에피고노이(후손들이라는 뜻)가 아버지들의 복수를 위해 다시 테바이를 공격한다. 이번에는 아르고스의 페리고노이가 승리하고 테바이 왕 라오다마스가 전사함으로써, 마침내 폴리네이케스의 아들이 테바이의 왕이 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비극이 소포클레스의 「에피고노이」 혹은 「에리필레」라는 것(현존 비극은 아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손자들 간의 골육상쟁까지도 다뤄, 삼족의..

오이디푸스나 그의 아들들, 카드모스나 펜테우스 같은 테바이 왕은 아니었지만, 테바이 왕가와 결혼을 통해 연계된 이들을 소재로 한 비극도 있다. 보이오티아 지역의 왕 아타마스를 소재로 삼은 비극이 대표적이다. 아타카스는 보이오티아의 오르코메노스 왕으로서,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결혼했던 인물이다. 디오니소스 신의 이모이기도 한 이노는 아타마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이들의 결혼으로 인한 비극사는 아테네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포클레스는 아타마스와 그 아들 프릭소스 등 아타마스 집안의 가정사를 소재로 한 세 편을 비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의 아타마스 비극은 정말 단편적으로 전하고, 에우리피데스의 「이노」 역시 현전하지 않는데, 비참한 결말을 가진 비극이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테바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유포하는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글머리에서 정리한 ‘삼족의 벌’을 떠올리게 하는 아테나이와 테바이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을 현존 비극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추할 수 있다. 아테네 비극에서 테바이 왕가의 이야기가 왜 이처럼 집요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이 공연된 기원전 5세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아테네의 역사적 관계를 살피며 나름의 답을 찾고 있다. 헤로토토스의 『역사』(페르시아 전쟁 중 테바이는 ‘반그리스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를 다시 읽어야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펼쳐야 한다. 바쁘다. 현존 작품들을 다시 읽는 것은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이니……. 비극경연을 통한 아테나인들의 그들의 주변국들에게 대한 견제는 집요하고 철저하다. 너무나도 현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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