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최혜영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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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천병희의 플라톤전집(7권) 완간은 그 자체로 사건인데, 2권에서 처음 선보이는 세 편의 신규 번역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메넥세노스」다. 「메넥세노스」는 대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연설문으로 보아야 하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2권의 유명한 연설, 전몰자를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패러디하고 있다.

 

천병희의 번역까지, 세 가지  「메넥세노스」 원전번역을 만날 수 있어
가장 먼저 이정호의 원전번역(2008, 이제이북스)이 있었고, 2018년 12월에 박종현의 번역이 그리고 이번에 천병희의 번역까지, 세 가지  「메넥세노스」 원전번역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시간에 두 종의 번역이 추가된 것이다. 이정호의 번역만이 존재할 때, 이 대화편을 다룬 논문을 읽었다. (인터넷 보기 가능) 장지원의 논문, <플라톤의 대화편 『메넥세노스』의 교육적  해석>(2015)이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01751
초록을 잠시 살피자.
"『메넥세노스』에서 플라톤은 페리클레스와 대조적으로 신적 질서에 따라 자족할 수 있는 덕 있는 시민들의 폴리스를 아테네의 이상향으로 제시하며 시민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회와 희극, 비극 작품과 같은 방식을 통해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매체가 발달해 있었는데, 전몰자 추도 연설 역시 시민들의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

 

시민들에게 영향 미치는 매체가 발달, 추도연설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
페리클레스는 전몰자 추도 연설에서 아테네는 전 그리스인의 학교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폴리스는 실제로는 델로스 동맹의 기금과 시민들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플라톤이 구상한 아테네의 이상적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읽은 후에 「메넥세노스」를 읽어야 플라톤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의 핵심(새로움) 주장은 추도식, 전몰자를 위한 추모 의식 자체가 시민 교육마당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그리스 비극 공연이 시민(교양) 교육의 일환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데, 추도식 또한 그랬으며 특히, 당대의 가장 유력한 인사가 행하는 추도사는 그 자체가 뚜렷한 교육 목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을 읽은 후에 「메넥세노스」를 읽어야
반공이 거의 국시처럼 여겨지던 시절,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주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국적인 차원의 반공궐기대화를 하던 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장년과 노년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 상담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을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는데, 성인들을 대상으로 가치관을 변화시키느니 하는 강연이나 계발서 등은 거의 대부분은 허구라고 단정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어떤 식이건 성인이 될 즈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이 형성되고(머리가 굳어지고), 이를 바꾸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 그러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글짓기를 반공 글짓기로 시작했던, 기성세대가 이념갈등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논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만큼 청소년기에 접하는 교육이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것, 추도연설 형식을 빌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플라톤의 「메넥세노스」에서, 추도식마저 교육의 일환이었음을 앞서 소개한 논문을 짚어내고 있는 것.

 

추도식마저 시민교육의 일환이었음을  「메넥세노스」 분석으로 밝혀
때문에 비극 공연이 시민교육의 일환이었음은 당연한 것, 그런데, 최혜영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그리스 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그리스 비극의 공연 의도(집필 목적)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리스 신화에 뿌리로 하여 인간의 고뇌, 욕망, 운명, 복수, 저주 등 인간 심연의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시공을 초월하여 인기를 끈다. 그리스 비극이 그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을 문학 작품으로만 이해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는 것. 특히, 1부에서는 비극 작품들의 공간 배경을 중심으로, 주요 비극작품들을 살피는데, 궁극적으로 아테나이 입장에서 아테나이 시인들이 쓴 작품을 아테나이 시민들을 관객으로 공연되었다는 점, 그러므로 거기에 아테나이 중심의 세계관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장 테바이 배경 비극, 2장 아르고스, 3장 스파르타, 4장 코린토스 그리고 5장 아테네 배경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문학작품으로만 이해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 풀어
아테나이와 테바이는 인접한 국가이지만, 한일관계가 그러하듯이 오래된 갈등관계를 유지하며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테바이를 페르시아 전쟁 즈음에 가장 먼저 페르시아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인다거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에는 스파르테와 협력하며 아테나이를 코앞에서 괴롭히면 긴장하게 만든다. 아르고스는 친아테나이 정책을 펼치지만 필요시 '중립'을 선언한다거나 등거리 외교가 기조였다. 코린토스는 시종일관 아테나이와 적대관계일 뿐만 아니라 스파르테 펠로폰네노스 동맹의 주도국으로 오랜 전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페르시아 전쟁 발발 이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비극작품들이 공연된 시기의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작품을 교육적 목적을 읽는 일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하고 있다.

 

아테나이 입장에서 대립·협력 관계 나라(비극 공간배경)와 친소 관계 반영
"아테네 비극작가들은 사회의 교사이자 공인된 유행어의 입안자, 공인된 전통의 생산자이기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의 녹을 먹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작품을 조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비극시인들이란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요, 국가에 유용한 조언자들이라고 평가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27면)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이처럼 테바이를 폭군이 지배하는 사회, 신들의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명예로운 행동이 짓밟히는 사회, 남자와 여자가 전도된 사회, 왕가 여성이 결혼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되지도 못하여 왕실의 후손이 끊어지는 사회로 그려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테네는 민주정의 나라, 신들을 경외하는 나라, 남성이 남성다운 사회, 자손이 번창하는 사회로 그려지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60면)

 

아리스토파네스, “비극시인들이란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요, 국가에 유용한 조언자들”
비극 공연은 공동체 디오니소스 제전에 바쳐진 전체의 종교 행사였다. 뿐만 아니라, 테바이 등 '적국'의 기세를 꺾기 위한 심리전의 도구이기도 했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치적인 행사이기도 했다. 추도식까지, 「메넥세노스」를 교육적 효과 차원에서 해석하는 논문을 소개한 것은, 비극은 오죽했겠나 하는 것이었는데,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이러한 측면에서 비극 작품의 탄생 배경을 밝히는 흔치 않은 국내 비극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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