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었지만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를 주문하다가 생각한 검색어는 '304명'이었다. 내가 스크랩한 글들을 내가 검색어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 여름 『곽재구의 신포구기행』이 출간되었다. 앞서 자료수집용 게시판에 농민신문사의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된 기행수필을 모아놓은 것. 연재는 2016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36회 진행되었다. 내용이야 훤하지만 책으로 해당 페이지를 찾기가 쉽지 않아, 게시판에서 가서 검색한다. eBOOK을 구매했다면 간단한 문제인 것을. 검색어는 '304명'. 글 네 개가 뜬다. 시간 순으로 살핀다.

 

신포구기행 텍스트를 '304명'으로 검색하다
첫 번째가 진도 팽목항을 찾았을 때다. "시인 나해철은 304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시집 한 권을 냈다. 시 304편으로 이뤄진 시집.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 한 편을 옮긴다." 그리고 시집 속 단원고 2학년 2반 양온유(17) 양을 기리는 시를 소개한다.(<전원생활> 2017년 3월호, 책은 2부 네 번째)
두 번째는 '목 놓아 부르는 목포' 편이다. '2017년 4월 9일. 목포에 왔습니다.'로 시작되는 후반부에서, 목포 신항. 세월호 거치소를 찾아간다. '304명'은 사고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거론되지만, 한 유가족 어머니의 인터뷰 장면이 와 닿는다.
"정말 비참한 것은 아이 잃은 우리를 매일 누군가가 감시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지요. 아이를 잃은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었지요.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이래도 되는지 가슴이 찢어졌지요. 그때부터 마음을 다 닫았어요." (2017년 5월호, 책은 2권 다섯 번째)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이래도 되는지"
세 번째는 태안 격렬비열도를 찾았을 때인데, 이번 여행에는 동행이 여럿이다. "신진도 여객선터미널(안흥 외항)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N과 C, Y, <전원생활>의 기자를 만났다. N과 C는 시를 쓰고, Y는 싱어송라이터(가수 겸 작곡가)다." 그들은 등대에 이르는데, 동행인 N시인이 시 한 편을 낭송한다. "국토의 한 끝. 망망대해. 수평선이 펼쳐진 등대 그늘에서 N이 시 한 편을 읽었다. 그는 세월호에서 숨진 304명을 위로하기 위해 304편의 시를 써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이라는 시집을 냈다." N은 나해철 시인이다. 그날 밤 세월호가 이 섬 부근을 지날 때, 모두 살아있었고, 이튿날 아침의 참사를 상상할 수 없었다. (2017년 9월호, 책은 1부 세 번째)
네 번째는, 보성 장도를 찾았을 때다. 이번 여행에서 '중공군 모자'로 거론되는 이가 나해철 시인인데, 여기서는 의사 나해철이다. 고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두 시인이 장도에 지난해(2017년)에 새로 생긴 13km의 산책로를 걷는다. 이번에 친구를 소개하는 내용은 좀 남다르다. "중공군 모자는 지난해 아름답고 슬픈 시집 한 권을 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위로한 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이 그것이다. 304일 동안 매일 한 편의 시를 쓰며 많이 울었고 많이 아팠고 더 많이 그리웠다고 한다. 지난 한 해 나의 큰 자랑은 내 친구가 낸 이 시집이다."(2018년 2월호, 책은 3부 여섯 번째)

 

지난 한 해 나의 큰 자랑은 내 친구가 낸 이 시집
인세의 대부분을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활동비로 기부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세월호 5주기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그렇게 4월이 갔다. 4월 12일, 목포 신항, 거치된 녹슨 세월호 앞에서 진행된 음악회(전남 20개 시군 드림오케스트라 추모음악회)에 다녀오는 것이 올해 나의 추모 행동이었다. 전남 20개 시군 학생들로 구성된 꿈키움 드림오케스트라 단원 1천여 명이 무대에 섰다. 관객들보다 출연자가 더 많은(?) 해서 특별한 공연이었달까? 굳이 하나를 더 거론한다면 영화 <생일>을 본 것. 음악회에 다녀와서 마음이 편치 않던 참에,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영화를 보았다.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피로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한데, 이렇게 다큐도 아니고 정극(형식)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비현실적이었다고 할까? 영화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였다. 화장실에서 좀 전에 마주친 중년의 사내가 탑승한다. 좀 전의 그는 세수하고 1회용 타올로 얼굴과 손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었다. 영화 어땠어요, 힘들었어요, 였던가 정확한 대답(멘트)을  기억은 못하는데 내가 가지는 감정과 유사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생일>이 끝나고, 영화 어땠어요, "힘들었어요!"
절반쯤 읽다가 멈춘 나해철의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 후반부를 읽기 시작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대부분을 읽었기에 익숙하지만 아직 다 읽지를 못하였다. 지난 주 토요일 광화문에서는 집회를 한 모양이다. 유투브에 집회 실황을 다룬 동영상을 보았다.‘다시 촛불, 자한당해산 촛불집회’다.
https://youtu.be/UrfOsjvzHOw
유가족인 어머니 한 분이 무대에 오른다. 호성이 엄마다. 분노와 절규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제1야당의 막말, 광화문 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겠다는 막무가내, 오죽 하면 ‘다시 촛불’이겠나! 동영상 24분에서 34분까지 10분 동안의 발언은 가슴을 후빈다. "이것이 나라냐!" "국가는 없다" 2014년 4월 이구동성으로 던진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
"나라가 뭔가. 대한민국 이 나라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이 부모가 가만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면 알수록(똑바로 들어~) 이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아니었어요. 1%의 저들의 나라." (위 호성 엄마의 연설 중)

 

해철은 304편의 추모시편들의 맨 앞에 '서문'을 앞세웠는데, 일종의 서시다.
"우리 국가를 믿고 있다가,/ 우리 사회를 믿고 있다가,/ 우리를 믿고 있다가,// 가만 있으라는/ 지도자의 말을 따르다가,// 산 채로 수장되신 분들에게,/ 세상에 남겨진 그분들의 가족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우리 사회는 산산이 깨져 있었고, /우리는 없었다.// 그분들과 함께 하고자,/ 그분들이 되어 보고자,/ 울고, 외치고, 몸부림한 일 년 동안의 기록을 그분들께 바친다. // 영원한 죄와 / 영원한 슬픔을 / 벗어날 수 없을 것이나/ 더 나은 우리 민족공동체를 꿈꾼다.” (서문 전문)

 

"알면 알수록 이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2017년 1월, 『천만 촛불바다-촛불혁명기념시집』(실천문학사, 2017-01-25)이란 시집이 나온 모양이다. 신경림, 강은교, 박노해 등 '블랙리스트' 시인 61명 참여했다. '2016년 겨울 천만 촛불집회에 대한 시인들의 서정적 응답'이라는데, 거기 수록된 박노해의 시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게 나라다」전문이다.
"눈발을 뚫고 왔다/ 추위에 떨며 왔다/ 촛불의 함성은 멈추지 않는다/ 100만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어둠의 세력은 포위됐다/ 불의와 거짓은 포위됐다/ 국민의 명령이다/ 범죄자를 구속하라// 눈보라도 겨울바람도/ 우리들 분노와 슬픔으로 타오르는/ 마음속의 촛불은 끄지 못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멈춰서지 않는다// 나라를 구출하자/ 정의를 지켜내자/ 공정을 쟁취하자/ 희망을 살려내자//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나는/ 백만 촛불 중의 하나가 아니라/ 백만 촛불의 함성과 한몸이 된/ 크나큰 빛이 되어 나 여기 살아있다// 이게 나라다/ 이게 민주다/ 이게 역사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박노해의 「이게 나라다」, '다시 촛불' 국면에 새로워    
최근에 완간된 번역가 천병희의 플라톤전집 전7권 중 4권이 『국가』다. 첫 번역판은 2013년 2월에 나왔다. 한 고전모임에서 간사 역할을 할 때 얘기다. 교사들 모임과 엄마들(학부모) 모임의 토론회가 주1회씩 진행되었는데,  2014년 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1년에 걸쳐서 읽고 토론했다. 필자는 각각 다른 날 진행된 두 모임에 다 참석했는데, 바로 그 시기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텍스트는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데, 특히 뒷풀이(3교시)에서 벌인 열띤 그리고 격앙된 토론을 기록해놓았으면(녹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2015년에는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 중 중요 대목들을 필사하는 고전 필사다이러리북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플라톤의 대화』다. 이 책에는 「향연」,「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의 변론」, 「파이돈」, 「파이드로스」 그리고  「국가」에 수록된 천병희의 번역 중 중요 대목들을 필사하게 해놓았다. 이 책에 수록된 「국가」는 509d~521c로, 『국가』의 제6권 후반부에서 제7권 전반부에 해당한다. 구매만 해놓고 '활용'하지는 않았는데, 며칠 전에야 「국가」부분부터 필사하기 시작했다.

 

2014년 1년동안 『국가』토론하는 동안 참사 일어나
철학자가 통치자이거나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플라톤이 주창한 『국가』의 핵심이다. 플라톤전집 7권에 수록된 <서한집>을 보면, 플라톤이 시칠리아 시라쿠사이 시를 두 차례 더 방문하여 이론을 실천하려 했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플라톤이 쓴 것으로 인정되는 일곱 번째 편지에 주목한다. 그러나 「국가」에서 이 주장은 철학에서 최고 경지에 이른 이가 곧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교육받은 적이 없어서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교양 쌓는 일에만 일생을 바치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 자들 역시 국가를 능히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럴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전자들의 경우는 공과 사를 불문하고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생활의 유일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고, 후자들의 경우는 자신들은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축복 받은 자들의 섬들'에 가서 살고 있다고 믿으므로 자진해서 일을 떠맡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네.” (『국가』519d)

 

「국가」의 이론을 실현하려 했던 플라톤의 실험
그만큼 교육을 통해(곧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지도자(오피니언) 그룹이 기반이 되고 제 역할을 할 때 철인 통치는 가능하다. 그러나 일정한 반열에 오른 철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통치권을 맡지 않으려고 애를 쓴단다. 인생 도처에 상수(上手)가 있다지만 그들이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맡기란 쉽지 않다, 그런 얘기로 들린다. 그러므로 아래 인용한 것과 같은 기이한 일이 발생하는데, 이를 오늘날 우리나라에 적용해서 살펴보면 와 닿는 것이 많다. "이게 나라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국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호성이 엄마의 절규가 귓전에서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하여 우리 것이자 여러분의 것이기도 한 이 국가는, 오늘날 그림자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가 하면 정권이 무슨 대단한 선이라고 되는 듯이 정권을 둘러싸고 당파싸움을 일삼는 자들이 다스리는 많은 국가들처럼 꿈속에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제정신으로 통치하는 국가가 될 것이오. 그러나 사실은 다음과 같소, 통치할 사람들이 통치하는 일에 가장 열의가 적은 나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조용하게 통치되지만, 그와 반대되는 치자들을 둔 나라는 그와 반대로 통치될 것이오,” (『국가』520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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