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라톤전집 7 - 알키비아데스 1.2 / 힙피아스 1.2 / 미노스 / 에피노미스 / 테아게스 / 클레이토폰 / 힙파르코스 / 연인들 / 서한집 / 용어 해설 / 위작들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9년 4월
평점 :
사단훈련소에서 일정 기간 훈련을 마친 신병들을 여러 부대(자대)로 배치하는 인사담당관의 기분이랄까, 천병희의 ‘플라톤전집 7권’에 실린 플라톤의 저작들을 두루 읽었는데, 글로 정리하려니 난감하다. 처음 읽는 작품들이 상당수가 있어 반가웠지만 몇 마디씩만 얹어도 장문의 글이 될 것이니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구구절절 읽으면서 메모한 것들을 모두 늘어놓을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한두 편만 언급하는 것도 좀 그렇다. '위작들'로 묶였지만 그 안에는 길이가 들쑥날쑥한 6편의 대화편이 있다.「서한집 Epistorai」에는 짧은 편지도 있지만, 플라톤이 직접 쓴 것으로 평가하는 일곱 번째 편지의 경우는 자전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당한 분량이다. 우선 이번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먼저 출가된 원전 번역 사례들을 살핀다.
처음 읽는 작품들 상당수라 반가웠지만, 두려운 스크롤 압박
먼저 『알키비아데스 1,2』(김주일/정준영, 이제이북스)는 2014년에 출간되었다. 앞서 정암학당 플라톤전집 시리즈로 「서한집 Epistorai」은 『편지들』(김주일/강철웅/이정호, 2009년 3월)이란 제호로 출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노스 Minos」와 「에피노미스 Epinomis」다. '법률에 관하여' 논하는 「미노스」와 '새벽회의 또는 철학자에 관하여'가 부제인 「에피노미스」는 플라톤 최후의 역작 『법률』과 관련이 깊은데,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묶일 때 두 작품은 부록으로 『법률』편의 앞과 뒤에 붙여 소개된다는 것, 『플라톤의 법률』(서광사, 2009년 9월) 역주서를 내면서 박종현 선생도 부록으로 두 편을 소개하여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에피노미스(Epinomis)는 '<법률> 부록'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새벽회의'는 『법률』12권에서 언급되는데, 『법률』에서 새벽에 나랏일을 논하는 엘리트집단을 말한다(「에피노미스」는 '그 지혜를 추구하도록 새벽 회의 회원들에게 촉구해야 합니다'로 끝난다). 이 말들을 곧게 펴셔 다시 얘기하면, 「미노스」와 「에피노미스」 읽기는 쉽지 않다는 것. 『법률』과 연계해야 하니 품이 좀 들어가는 독서가 될 것이다.
『법률』과 연계해야 하는 「미노스」와 「에피노미스」
이상은 철학 연구자들의 번역이니, 친절한 해설이나 주석을 참고하시고, 천병희의 텍스트와 간명한 주석들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알키비아데스 I·II」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향연』(후반부)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알키비아데스 전'으로 독립시켜 읽고 싶을 정도로 풍운아 알키비아데스의 전력이 담겨 있어, 역시 필독해야 할 참고서가 아닐까 한다. '비교열전(대비열전)'으로도 불리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알키비아데스는 로마의 장군 코리올라누스(기원전 490년 활동)와 비교되는데, '영웅전'에서 알키비아데스는 후세 사람들이 본보기로 삼지 않아야 할 일종의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대표사례다. 그러나 천병희의 '영웅전'에는 그리스 5인 로마 6인의 영웅들만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어 '알키비아데스 전'은 다루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와 『헬레니카』(크세노폰)를 토대로 '알키비아데스 전'을 썼다고 한다. 『헬레니카』도 좋은 알키비아데스 참고서다.
현대의 ‘나쁜 남자’의 신화 알키비아데스 읽기 지도
「알키비아데스I·II」, 특히 「알키비아데스I」에서 소크라테스는 애증(愛憎) 관계인 알키비아데스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치계로 나서려는 것을 만류한다. '사람의 본성에 관하여'란 부제가 심상치 않다. 알키비아데스는 기원전 404년에 살해당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사랑받는 제자였다. 이점이 소크라테스의 사형 선고와 무관하지 않다. 양부였던 페리클레스의 사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 시민들과도 원망관계에 있던 인물이다.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 회상록」6장에는 20세도 채 안된 플라톤의 형 아리스톤이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대중연설가가 되려고 나서는 것을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설득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반면 같은 책 7장에서는 노 글라우콘(플라톤의 외할아버지)의 아들인 카르테미스가 이미 저명인사이고 당대의 정치가들보다 유능함에도 정치에 입문하려 하지 않아 소크라테스가 이를 설득하고 있다. 「알키비아데스I·II」와 함께 살피면 흥미로운 텍스트다.
정치가의 꿈 접은 플라톤의 속마음 엿보기
「힙피아스I Hippias meizon」(아름다움에 관하여)에서 소크라테스는 ‘잘나가는’소피스트 힙피아스를 만나 '무엇이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를 집요하게 묻는다. 흥미로운 미학논쟁인데 정의가 일단락되었다 싶으면 다시 뒤집는, 힙피아스를 괴롭히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논쟁술이 흥미롭다. '사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과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플라톤이 쓴 것으로 확실시되는「힙피아스II Hippias elatton」의 부제는 '거짓에 관하여'다. 힙피아스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힙피아스가 아테나이에 출장올 때면 머무는 집의 주인 에우디코스가 등장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아킬레우스)와 『오뒷세이아』(오뒷세우스)를 읽은 이들을 위한 ‘작품토론’이랄까, 두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등장인물들의 품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피게 될 것이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능력자이며 좋은 사람냐, 현재의 상식과는 이반되는 역설이 왜 가능한지, 논의의 결과를 내는 흥미로운 대화편이다. 길지 않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
「테아게스」(Theages)의 부제는 '지혜에 관하여'인데, 데모도코스-테아게스 부자(父子)와 소크라테스 셋이 나누는 대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참주라도 되겠다는, 그래서 최고의 선생님(소피스트)을 만나게 해달라는 아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데모도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맡기고……. 앞서 거론한 알키비아데스를 설득하는 듯한 소크라테스의 논리가 등장하는데, 결국 소크라테스는 테아게스를 문하생으로 받아들인다. 정치란 무엇인지 복잡하지 않게, 소크라테스가 왜 젊은이들을 선동한 죄목을 받게 되었는지, 실감나게 당대의 소크라테스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화편이다. 「클레이토폰 Kleitophon」(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클레이토폰의 도발은 통쾌하며, 「힙파르코스」(이득을 사랑하는 사람)는소크라테스와 그의 학우가 나누는 대화인데, '(셜령 그 과정이 사악하더라도) 이득을 사랑한다고 남을 나무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힙피아스II」에서 이미 맛본 현대의 상식과 부합하는 역설을 나름의 논리로 입증하고 있다. ‘악용(惡用)’은 금물.
현대의 상식과는 다른 역설을 입증하는 논쟁, 악용은 금물
(arete)미덕: 최선의 성향; 사멸하는 생명체의 그 자체로 칭찬받을 만한 상태;
그것을 가진 자가 그 때문에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마음가짐; 법률을 준수하는 것;
그것을 가진 자가 그 때문에 더없이 탁월하다고 일컬어지는 상태; 준법정신을 낳는 마음가짐.
미덕(arete)에 대한 이와 같은 풀이처럼「용어 해설 Horoi」에는 184개의 개념에 대한 간명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수사학/시학』)에서 다루는 풀이들과 비교하면 흥미롭지 않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아도 사람의 마음(감정)은 거기서 거기, 많이 달라진 것은 없더라.
184개 용어 간명하게 정리「용어 해설」,『수사학』과 함께
6편의 「위작들 Notheuomenoi」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자. 수록된 어느 작품이라도 얘기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작품 자체보다는 위작 논란으로 더욱 주목받은 작품들이 천병희의 ‘플라톤전집 7권’에는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특유의 산파술도 그렇고, 주요 대화편들에서 복잡하게 논의를 전개하는 것에 비해 간명하게 논쟁의 기술을 엿볼 수 있어, 플라톤 대화편 읽기의 개론서라고 할까, '그리고 플라톤전집 7권'(의외로 7권이 보물일 수 있다)이 가지는 의미는 현재로선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