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무엇보다도 말한 것을 후회한 적은 있어도 침묵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는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23장으로 「수다에 관하여」를 마무리하면서, 앞서 수다를 줄이는 방법까지 처방했음에도 거듭 당부한다. 차라리 침묵하라는 것, 침묵 자체는 자신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이며 경청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소통이 너무 쉬워진 요즘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이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SNS시대, 정치인도 네티즌도 말 때문에 고통, 자초한 것

21장에서는 대답을 해야 한다면 간략하게 하라며,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수다쟁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대답을 하는지 실례를 든다. "질문에는 세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필요한 대답, 공손한 대답, 쓸데없는 대답이다."고 결론부터 제시하고서 위 질문에 대한 다른 대답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
첫째 간결한 대답은 '집에 없소'(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 마지못해)다. 혹은 '없소'(과묵한 라코니케인들[스파르테인들]처럼 대답하려면 '집에'도 빼라는 것. 라코니케인들은 필립보스[마케도니아의]가 서찰을 보내 도시가 자기를 받아들이겠느냐 물었을 때 큼지막하게 '아니오'라고 쓴 서철을 보냈다고 한다)다. 두 번째 공손한 대답은, "집에는 없고, 환전소에 가 있어요."라고 대답하거나 좀 덧붙이고 싶으면 "그곳에서 이방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요."정도다,

 

 

"소크라테스는 집에 있습니까?" 당신의 대답은?

세 번째 쓸데없는 대답은 바야흐로 수다쟁이의 몫이다.

"집에는 없고, 환전소에 가서 이오니아 출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들을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추천했는데, 알키비아데스는 전에는 라케다이몬인들(스파르테인들)을 편들었지만 지금은 알키비아데스의 중재로 아테나이인들의 편이 된, 대왕의 태수 툇사페르네스와 함께 밀레토스 시 근처에 체류하고 있어요. 툇사페르네스가 마음을 바꾸도록 알키비아데스가 주선한 것은 추방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서죠"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폭소를 터뜨릴 지점이다. 거기 소개된 알키비아데스의 행적인데, 플루타르코스는 수다쟁이가 투퀴디데스를 읽지 않았기를 소망한다. 만약 읽었다면 책의 전8권(베개로 써도 충문한 분량의)을 단숨에 읊어 묻는 사람을 말의 홍수에 빠뜨릴 것이라고. "그러면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밀레토스가 함락되어 알키비아데스는 두 번째로 추방당할 것"이라고.

 

침묵이 힘들면, 간결하게 요점만 간단히,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다에 관하여」는 플루타르코스의 6편의 철학에세이가 실린 『수다에 관하여』에 또한  『그리스로마 에세이』에도 수록되어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수다의 근원이 되는 혀에 관해 '해부학적' 지식을 동원한 경구를 남기고 있다. 인체 가운데 자연이 혀만큼  울타리로 둘러친 부위는 없다는 것.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齒)를 배치"(3장) 했다. 그래서 내부의 이성이 침묵의 고삐를 당기는데도 혀가 복종하지 않거나 자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피를 흘릴 때까지 혀를 깨불어 그 불복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 '이빨을 깐다'는 말이 역설로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또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어른거린다. 혀를 깨물기 전에 위아래 입술을 다물면 침묵이기에 하는 말이다. 어쨌든 '세 치 혀'라고 하는데, 각종 민원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하면 그 자신을 가장 먼저 그리고 치명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혀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데, 세 치밖에 안 되는 짧은 혀라도 잘못 놀리면 사람이 죽게 되는 수가 있다는 뜻이다. 계량법에 따르면 한 치는 1.1930inch, 3.0303cm로(백과사전) 세 치 혀란, 10cm쯤 길이의 혀라는 뜻이다.

 

플루타르코스,  "자연은 혀를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이(齒)를 배치"

최근에 발간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하고 구매했다. '돈, 사람, 기회를 끌어당기는 최강의 말습관'이란 부제를 단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오수향, 위즈덤하우스, 2019-04-19)이다. '3마디'라는 말이 좀 불편하다. 이 책에서 심리대화 전문가인 저자는 '세 마디'로 말하라고 주장한다. '세 마디'를 의식해서 필요 없는 말의 잔가지를 없애고, 핵심만 쏙쏙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비지니스와 연관해서 얘기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데뷔작이자 대표작 『장미의 이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권(희극편)이 간직한 비밀 만큼이나 '3'에는 뭔가가 있다. 어쨌든 다양한 예시와 노하우를 담은 친절한 책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일 듯하다. 다만, '수다에 관하여'와 관련하여 이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어느 선사가 한 말이란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한 치도 안 되는 칼 하나만 있어도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지요." (13면)

여기서 살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한마디 정도의 짧은 말로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의미란다. '깨달음에는 수천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막대한 단어가 다 부질없다. 짧은 말 하나면 족하다.'고 부연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했으면 좋겠다.
 

말의 잔가지를 없애고, 핵심만 쏙쏙  '세 마디'로 말하시라

어쨌든 세  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암튼 '세 마디'와 '세 치 혀'는 뭔가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3마디'의 필자는 위 인용문이 속한 꼭지의 글 서두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유명한 카이사르의 말을 인용하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자기계발서의 한계는 생산자는 그렇다치고 소비자들이 늘 뭔가에 기대지 않으면 불안하게 한다는 것. 생산자인 필자가 이런 나약한 독자들의 심리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의 마음처럼 '어여삐' 여겨주면 좋은련만. 사실 알고 보면 서양발(發) 모든 자기계발서의 원조이면서 고전 중의 고전은 『그리스로마 에세이』에 수록되어 있다. 기왕이면 고전을 읽는 동안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한마디를 발견하기를. 더불어 교양도 쌓으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서양발(發) 자기계발서의 원조이자 고전, 『그리스로마 에세이』

카이사르의 유면한 세 마디도 기왕이면 『카이사르의 내전기』(김한영, 사이, 2005)나 『갈리아 전쟁기』(천병희, 숲, 2012) 등 그의 저작을 읽는 동안 발견할 수 있기를. 이것도 힘들면 그에 앞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천병희, 숲, 2010)이나('카이사르 전') 고 이윤기 선생이 기획하고 따님 이다희 씨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영웅전세트(전10권, 휴먼앤북스, 2015) 중 를 '카이사르'를 다룬 책을 찾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3마디로 말한다』를 읽는 독자라면 어쩌면 이 책의 기획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다음 책, '명쾌하게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초간단 훈련법'이란 부제의 『3의 마법』(노구치 요시아키, 김윤수 옮김, 다산라이프, 2009)도 살피시기를.

 

문득 『3국유사』꼭지들의 마무리가 생각나서 시 한 편으로 마무리.

그제 쓴 시는
어제 지웠지요
어제 쓴 시는
오늘 지워요
오늘 쓴 시는
내일 지우겠지요
버드나무는 일 년에 한번 꽃 피워요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지워요
나도 고요히 꽃 필 때가 올까요?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스스로 지며 좋아서 혼자 웃겠지요.

-곽재구 신작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에 실린 시 「버드나무」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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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4-2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올리고 보니 『3의 마법』의 절판 확인일이 2019-04-24이라고 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