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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2 - 파이드로스 / 메논 / 뤼시스 / 라케스 / 카르미데스 / 에우튀프론 / 에우튀데모스 / 메넥세노스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9년 4월
평점 :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라톤전집Ⅱ에 수록된 대화편 8편 가운데 첫 번역인 세 대화편을 중심으로 얘기하겠다. 초기 대화편인 「에우튀프론」(Euthyphron)과 중기 대화편에 속하는 「에우튀데모스」(Euthydemos)와 「메넥세노스」(Menexenos)다. 중기 대화편 「파이드로스」와 「메논」은 2013년 5월에, 초기 대화편인 「뤼시스」와 「라케스」와 「카르미데스」는 2015년 1월에 한 권씩으로 출간된 바 있다. 플라톤전집Ⅱ는 플라톤의 초기 4편, 중기 4편의 대화편을 수록하고 있는 것. 기존에 출간된 대화편들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몇 차례 다룬 작품이다. 가능하다면 대화편마다 한두 가지씩 천병희 번역이 가지는 의미를 살필까 한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라톤전집Ⅱ, 초기와 중기 대화편 4편씩 수록
No1「에우튀프론」은 박종현의 주석서로 일찍이 2003년에 번역되었다. 2018년 1월에는 정암학당 플라톤전집(20, 강성훈 옮김)이 오랜 만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천병희의 번역이 나온 것. 박종현은 「에우튀프론」을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과 한 권으로 출간하였다. 이들 네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최후 관련 4부작으로 분류되는 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집필 시점과 무관하게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기 전후, 사형이 집회되는 순간까지 몇 차례 대화를 나누는데,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왜? 재판정에서의 ‘변론’ 이전에 진행된 대화는「변론」의 내용(과정)을 변론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에우튀프론」은 그런 콘텐츠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 단서는 '지식에 관하여' 논한 『테아이테토스』끝부분에서 발견된다.
"나는 지금 멜레토스가 제출한 고발장에 답변하기 위해 왕의 주랑으로 가야 하네."(테아이테토스, 210d)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테오도로스(테아이테토스의 대담자)와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그 대화가 『소피스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진행된 대화가 『정치가』로 집필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중심에 있고, 이후 『크리톤』과 『파이돈』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데, 『테아이테토스』 대화가 끝나고 고발장 관련 예비심사를 위해 왕의 주랑으로 간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을 만나는 것, "기원전 399년 일흔 살쯤 된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앞두고 아르콘 바실레우스의 주랑에서 에우튀프론을 우연히 만나 나눈 대화"가 「에우튀프론」이다.
「변론」이전에 변론을 위한 대화편 하나 추가요,「에우튀프론 」
멜레토스가 고발한 사유를 에우튀프론이 묻자 소크라테스는 대답한다. 1)(멜레토스는) 우리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들이 누구인지 안다(그 '누구'란 소크라테스다) 2)옛날부터 믿어온 신들을 믿지 않고 생소한 신들을 만들어내는 까닭에 나를 고발했다('나'는 소크라테스다). ‘경건에 관하여’ 논의하는 「에우튀프론」는 고발 사유2 곧 '불경죄'와 관련되어 있다. 불경은 경건하지 못한 것,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다. 플라톤은 '변론' 이전에 소크라테스가 결코 불경죄를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며칠 후 「변론」의 ‘변론’으로 기획(구성)한 셈이다. 고발사유 1)은 흔히 '소피스트 혐의'로 불리는데, 「에우튀프론」 대화에 이어 진행된 『소피스트』와 『정치가』가 「변론」을 위한 변론을 하고 있다. 또한 심오하기 그지없는 '지식에 관한' 논의 『테아이테토스』는 「에우튀프론」과는 다른 출발점에서 소크라테스가 불경죄 협의에서 벗어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 최후와 관련해서는, 실제 대화가 이뤄진 순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테아이테토스』-『에우튀프론』-『소피스트』-『정치가』-『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에우튀프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경건이란 무엇이냐, 에우튀프론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하지만 명확한 결론 없이 대화는 마무리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질문이 등장한다.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10a,전집2 362면) 이른바 '에우튀프론 딜레마' 혹은 '에우튀프론 문제'라고 불리는 유명한 질문이다.
“신들에게 사랑받기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
No2「에우튀데모스」의 부제는 '논쟁에 관하여'다. 액자 형식인데, 액자 밖 주 대담자는 소크라테스와 죽마고우인 크리톤이다. 크리톤(Kriton)은 다른 대화편 『크리톤』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목숨부터 부지하고 후사를 도모하자며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조목조목 그러나 차분하게 반박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우리는 『크리톤』에 이어 두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을 엿볼 수 있다. 심각한 철학 논쟁을 다루면서도 이들 죽마고우는 서로를 배려하고 시종일관 따뜻한 대화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 책 플라톤전집2권에 수록된 「뤼시스」는 '우정에 관하여' 논의하고 우정의 사례가 등장한다. 하지만 『크리톤』에 이어 「에우튀데모스」에서 두 대담자가 나누는 대화의 행간에서는 우정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액자 밖 두 대담자의 대화를 읽는 가운데, 얻는 팁일 뿐이다. 친구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자신이 주도한 논쟁에 대한 이야기기는 첨예하고 때론 잔혹한 정로도 무차별 공격과 방어, 말의 전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각론에서 다루기로 하자) 다만 「에우튀데모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여느 희극보다 내용과 형식에서 조화를 이룬 한 편의 희극 작품으로 대접을 받았고 그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였다.
심각한 철학적 논쟁 다루지만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우정 어린 대화가 돋보여
No3「에우튀데모스」가 한 편의 훌륭한 희극으로 평소의 소크라테스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메넥세노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연설가로 ‘데뷔’한다. 「에우튀데모스」는 내재한 수수께끼가 하도 많아서, 다채로운 논쟁거리가 되며 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천병희의 「메넥세노스」 번역은 어떤 의미일까, 간단하게 언급한다. 천병희는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뷰에서 번역의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처음에 그리스어 텍스트를 대하면 완전히 앞이 캄캄합니다. …… 여러 가지 번역이나 주석 등의 도움을 받아서 손질을 좀 하면 괜찮은 번역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럴 때 어떤 희열 같은 걸 느끼죠."-[네이버 지식백과] 번역가 천병희의 서재(2015. 05. 28.)
원전(작품)의 재료인 해당 언어에 얼마나 정통하느냐와 별개로 번역 과정에서는 풀리지 않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기존 번역(다른 언어권 번역을 포함한다)이나 그 주석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풀린다는 얘기다. 한 단어가 한 문장이 이런 추리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천병희는 자신의 기존 번역을 참고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병희의 「메넥세노스」 번역은 어떠했을까?
연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해서 텍스트는 길지 않다. 해서 관련 대화편들과 묶는 계기가 없었을 뿐, 「메넥세노스」 번역 자체는 수월했으리라. 「메넥세노스」는 전후에 소크라테스와 메넥세노스가 나누는 대화(액자 밖)가 있지만, 대부분이 소크라테스가 행하는 연설(형식)이다. 그리고 이 연설(문)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제2권 아테나이인 전몰자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사(Ⅱ권, 34~46장)를 패러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전)번역가가 천병희(2011년 6월, 숲)다. 소크라테스가 패러디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전쟁사' 본문에 등장하는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부분. 달리 얘기하면 페리클레스의 해당 연설은 번역가 천병희에게 1/n일 뿐이며 여기서 n은 40쯤이 되는 것.
'전쟁사' 페리클레스 추도사 패러디가 「메넥세노스」, 천병희의 빛나는 번역
투퀴디데스는『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역사)의 주요 국면마다 ‘행한 것으로’ 연설문이나 대화를 재구성하여,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창조하여 활용한다. 2008년 1월, 정암학당 플라톤전집으로 『메넥세노스』를 출간할 때 옮긴이(이정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부록으로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문을 옮겨 놓아 소크라테스의 추도 연설과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 것. 일종의 배려다. 그러나 당시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번역이 없을 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메넥세노스」는 관련 작품 해설이나 친절한 주석보다도 ‘페리클레스의 연설’를 읽기 전 혹은 후에 비교 독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대화편이다. 플라톤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인지 왜 그러는지 도무지 감(感)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병희는 2011년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부문)을 받는데, 수상작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이번 플라톤전집 완역도 그렇고 상(賞)을 받으셔야 할 역작이 숱하지만, 그런 번역가 천병희에게 흔치 않았던 수상이다. 어쨌든 그 수상작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였고, 거기 수록된 유명 연설과 관련된 패러디 연설인 「메넥세노스」를 이제야 천병희의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아니 이것이야말로 이번 「메넥세노스」를 읽는 즐거움, 진가(眞價)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