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하순 들어 두 권의 주목할 만한 철학 신간이 생산, 등록되었다. 플라톤의 『법률』(2016년 12월) 이후 모처럼 선보이는 천병희의 플라톤 대화편이다.『법률』은 천병희가 번역한 22번째 플라톤 대화편이었다. 예외 없이 이번에도 도서출판 숲에서 펴냈는데, 이번에는 '플라톤전집2'(2019-04-20), '플라톤전집7'(2019-04-24)이란 시리즈번호를 달고 있다. 왜 그럴까?

 

이번엔 '플라톤전집2', '플라톤전집7'이란 시리즈번호를 달고 있어!

특히, 모두 8편의 초·중기 대화편들을 수록하고 있는 플라톤전집2에는 <파이드로스/메논> (중기대화편), <뤼시스/라케스/카르미데스>(초기 대화편들)를 비롯하여, 이전에 소개되지 않은 세 편의 새로운 대화편(번역)을 수록하고 있다. 초기 대화편에 속하는 「에우튀프론」과 중기대화편에 속하는「에우튀데모스」와 「메넥세노스」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에우튀프론」은 작년 1월에 정암학당 플라톤전집20(강성훈 옮김)으로 출간된 바 있으며, 2008년 1월 정암학당에서는 「메넥세노스」와 「에우튀데모스」가 출간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에우튀프론」은 박종현의 주석서로「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과 함께 출간된 바 있다(서광사, 2003년 4월) 이들 네 작품을 소크라테스의 최후와 관련된 4부작으로 분류하는 데에 따른 것이다.
또한 박종현의 「메넥세노스」는 『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서광사, 2018년 12월)으로 세 편이 한 권으로 묶여 작년 12월 30일에 출간되었다. 이번 천병희의 플라톤전집2권에 세 대화편의 신규 번역이 추가됨으로써, 우리는 희랍어-우리말 원전번역을 세 종(種)씩 보유하게 되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축하할 일이다.

 

'플라톤전집2' 천병희 신규번역 「에우튀프론」.「에우튀데모스」.「메넥세노스」 포함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일은 ‘플라톤전집7’인데, <알키비아데스1.2/힙피아스1.2/미노스/에피노미스/테아게스/클레이토폰/힙파르코스/연인들/서한집/용어 해설/위작들>을 수록하고 있다. 위작이란 플라톤이 실제 필자인지 논란이 되고 있는 플라톤의 저작들을 말한다. 옮긴이(천병희) 서문은 "이 플라톤 전집에서 위작까지 다 옮긴 것은 위작도 플라톤의 철학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플라톤전집7'에 수록된 대화편들 가운데, 앞서 번역으로는, 정암학당 플라톤전집3으로 『알키비아데스1,2』(김주일,정준영, 2007년 4월)와 전집8인 『편지들』(김주일,강철웅,이정호, 2009년 3월)이 있다.
위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상당수 작품이 드디어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되는 것이다. 학자들의 논문에서 인용되는 것을 통해 접하던 전체(작품)를 우리말 텍스트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7권 수록작품 중 '위작들'에 묶인 길이가 들쑥날쑥한 대화편은 「정의에 관하여」, 「미덕에 관하여」, 「데모도코스」, 「시쉬포스」, 「에뤽시아스」, 「악시오코스」까지 모두 6편이다.
결국 천병희의 '플라톤전집7'은 모두를 대화편이라고 지칭하기는 좀 그렇지만 ‘알키비아데스’와 ‘힙피아스’를 각각 2권씩으로 보면 19개의 섹션으로 나뉘는 플라톤 저작들이 수록되어 있는 것. 대중 독자들도 직접 위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플라톤의 저작들을 우리말로 읽으면서 논의에 '참전할 수 있게' 되었다. 꼭 필요한 주석만 간명하게 밝히는 천병희 번역의 스타일로 볼 때 플라톤전집 7권은 총 560쪽(양장본)으로 상당한 분량이다.


'위작도 플라톤 철학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플라톤전집7 발행
그런데 오늘은 2019년 4월 25일이다. 알라딘(서점)에 신간이 등재된 날을 기준으로 하면 어제 천병희의 플라톤전집7이 등록됨으로써, 마침내 천병희의 플라톤전집이 전7권으로 완간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한 번역가가 플라톤 대화편 전편을 그것도 위작들까지 완간된 것.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작품들이 플라톤 말고도 헤아릴 수 없기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인터넷으로 천병희 선생의 인물정보를 검색했더니 생년월일이 1939년 3월 12일이다. 이 분 연세에 음력 생일을 세시겠지 싶어 확인하니 오늘 4월 25일이(음력 3월 12일로), 천병희 선생의 80회 생일이다. 80세를 '산수(傘壽)'라고 한다는데, 한자 산(傘)자에 팔(八)과 십(十)이 들어 있어서란다. 우선 축하드린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80회 생일에 마쳐 플라톤전집을 완간하게 된 것. 필자는 이것이 출판사의 거장 번역가에 대한 예우라고 받아드린다(실제로 기념하는 생일이 오늘이라고).

 

2019년 4월 25일, 천병희 선생 80세 생일 맞아 플라톤전집(전7권) 완역 출간
플라톤(기원전 427년경~347년).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에 사형당하는 것을 본 28세에 큰 충격을 받는다.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 철학을 통해 사회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을 굳힌 그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기 전에는 사회가 개선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기원전 387년경(34세) 영웅 아카데모스(Akademos)에게 바쳐진 원림(園林) 근처에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고 할 아카데메이아(Akademeia) 학원을 개설한다. 그리고 시칠리아에 있는 쉬라쿠사이(Syrakousai) 시를 두 번 더 방문해 그곳 참주들을 만난 것 이외에는 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와 강의와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347년 아테나이에서 세상을 떠난다.
향년 80세다. 이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크라테스가 대담을 주도하는 30편 이상의 철학적 대화편과 소크라테스의 변론 장면을 기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Sokratous)을 출간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80세까지 50년이 넘는 기간을 플라톤이 집필한 대화편을 80세 천병희가 완역
인터뷰 기록에 따르면 천병희가 『국가』 번역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의 대사상'이란 시리즈를 출간하던 한 출판사가 급한 일정으로 번역을 의뢰했는데, 당시 1~5권은 박종현 교수가, 6~10권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했다. 천병희 선생이 33세쯤이던 해다. 물론 이것이 플라톤 대화편의 첫 번역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당시 천병희 선생은 투옥과 자격정지 등으로 생계 걱정을 해야 했고, 번역은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일 수 있었으니까.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이 있다. 이른바 동백림사건(The East Berlin Affair, 東伯林事件)이다. 천병희 선생은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해직되고 10년간 자격 정지를 겪어야했다. 당시 29세, 서울대사대전임강사(불문학석사) 시절의 얘기다. 이 사건은 2006년 1월 26일,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 접촉과 동조 행위를 국가보안법과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여 확대·과장한 사건으로 재해석했다. 천병희 선생은 당시 윤이상(무기징역에서 감형) 등과 함께 10년형을 받는다. 잠시 윤이상 선생 얘기를 하자면, 그는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다. 그 뒤 그는 죽을 때까지 고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1974년 도쿄에서 김대중 구출운동의 일환으로 윤이상 음악회를 열 때 유명한 말을 남긴다.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철학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고민한 젊은 플라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28세에 스승의 죽음을 맞이한 플라톤, 유학 시절의 일로 지옥을 경험한 28세의 천병희, 서양 나이로 치면 천병희 선생도 당시 28세였다.

 

만 28세에 동백림사건으로 인생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천병희, 28세의 플라톤처럼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뷰에서 번역가 천병희는 (자신의) ‘서재는 작업장’이라고 정의했다.
"나에게 서재는 그리스 신화에 비유하자면 '다이달로스'라는 기술자가 있는데 다이달로스의 작업장과 같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름있는 영역본이나 독역본 등을 한 4~5가지 이상 참고해야 되고 또 주석도 봐야 됩니다. 그걸 전부 참고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우리말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를 번역하는 것을 일종의 작업에 비유한 것입니다."(2015. 05. 28. [네이버 지식백과 번역가 천병희의 서재)
지금도 꾸준히 서울 송파의 한 아파트, 집안의 서재에 머물며 하루에 일정량씩 번역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날마다 인근 야산을 산책하는 일도 거르지 않는다. 100세 시대인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아직도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읽고 싶은 고전들이 숱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라 참 다행. 아직도 천병희를 통해 읽고 싶은 고전들이 숱하기에
다른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연구와 강의와 저술 활동에 전념하던 플라톤이 기원전 347년 아테나이에서 세상을 떠난다. 80세다. 철학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이후 50여 년을 자신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플라톤의 나이쯤에 천병희는 뜻하지 않은 공안사건에 휘말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해직되고 10년간 자격정지를 견디면서 어느 때보다 희랍어-라틴어 원전번역에 집중하게 된 것. 28세의 플라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천병희 선생은 이후 50여 년 학업과 번역에 정진하면서 마침내 한 번역가가 플라톤의 대화편 전체를(그것도 위작논란 중인 작품들까지) 7권으로 번역해 천병희표 플라톤전집을 완간하게 된 것이다.
2019년 4월 25일 오늘은(80세를 '산수(傘壽)'라고 한다는데 낯설고) 어쨌든 천병희 선생의 80세 생신이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건필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 플라톤전집4『국가』, 플라톤전집5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테아이테토스/필레보스/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파르메니데스국가』,  플라톤전집6 『법률』. 천병희의 플라톤전집(전7권) 완간은 선생에게도 독자들에게도 큰 선물,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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