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문학동네 시인선 117
곽재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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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발한 감자밭, 순풍을 받고 달리는 범선, 아기를 낳고 난 뒤의 여인.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광경이다', 이것은 에이레의 속담이다. '(이거) 왜이래!'가 아니고, 에이레다. 이 나라의 정식명칭은 아일랜드공화국(Repubilc of Ireland)으로, 게일어로 에이레(Eire)다. 수도는 더블린(Dublin). 에이레라고 할 때는 낯설더니 검색하자마자 '아일랜드'에 이어 '더블린'이 나타나고, 곧 익숙해진다. 대서양의 영국 서부에 아일랜드 해를 사이에 두고, 동북쪽 북아일랜드와 접하여 있는 도서국가로, 해안선의 길이는 1448㎞라고. ‘속담’이란 그 민족 그 국가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앞에 '세상에서'를 앞세우진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이러하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러한지 알려면 최소한 이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정도는 참고해야 한다. 아이를 낳은 여인이야 어딘들 아름답지 않겠나. 이제 '감자(꽃)'와 '바다(범선)'가 남는데, 두 가지는 경제활동 곧 '풍요'와 관련 깊은 듯하다.

 

에이레의 속담에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광경은 풍요..

필자는 농촌에서 자랐음에도 몇 년 전까지 감자꽃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풀꽃들의 이름과 생태를 좀 안다고 자부하였기에, 놀라운 발견이었다. 감자가 주식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은데,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주요 식량자원인 듯하다. 또한 해안선이 1448㎞라니 그들의 바다는 또한 '어장'이다. 식민지를 개척하든 해상무역을 하든 수산자원을 채취하든, 바다는 경제 활동의 주무대이니 어찌 순풍에 달리는 범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쨌든 아일랜드의 속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생산'과 관련되어 있다. 누구든 몇 가지를 손에 꼽는다면 그것은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도 No1, No2, No3 순으로 꼽는다.

'세상에서 가장'은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시인, 곽재구 시인의 기행수필에서 자주 접하는 '어구'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창작동화집)을 오래 전에 펴낸 적도 있으니, 그렇고 그런 구절을 예시하지 않아도 되리라. 『와온 바다』(창비, 2012)에 이어 7년 만에 신작 시집을 펴내면서(『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 2019. 1.)에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강은 흐르고/ 바람은 불고/ 새들은 노래한다

시인은 여섯 줄 가운데, 강과 바람과 새들에게 한 행씩 분양했다. 이 세 (개의) 행을 줄이면 '세계世界'가 된다. 그리고 세 행이 이어진다. 

인간인 나는 강을 따라 걷는다/ 지난 10년 내가 제일 잘한 일이다/ 시여, 푸른 용과 함께 날자

'2019년 1월 순천의 샛강 동천에서'에 쓴 시인의 말이다. 나는 곧 자아(自我)다. 10년(시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담겨 있으며, 시업(詩業)의 정진을 스스로 응원한다. 시를 정의하여 '자아의 세계화'라고 하는데, 시인은 '시인의 말'에 으레 포함해야 할 항목들을 두루, 간명하게 시로 담았다.

 

한 행씩 분양받은 강과 바람과 새들은 '世界'가 된다

작년 여름에는 포구기행 후속편인 『신포구기행』을 낸 바 있고, 이 시집 출간에 이어 『곽재구의 포구기행』 개정판을 펴냈다(이번에는 출판사가 바뀌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세계 몇몇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기행수필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만났을 때의 소회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제는 시인 본인도 '그러려니 한다는데', 시인은 시보다 기행수필(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 바람에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글을 다른 기행수필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곽재구 시인께 "행복한 고민을 하고 계시네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시와 산문, 시인과 산문가의 경계가 적어도 곽재구 시인에게는 오래 전부터 의미 없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있을 뿐이라고. 유려한 문체의 그의 기행수필들은 어느 한 대목 시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문 상태에 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가진 작가로서의 성취라고. 이번 시들 몇 편을 예를 들어 보자. 

이번 시집에서 필자가 주목한 시 가운데 하나가, <사이_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이다. (전문은 알라딘 <미리보기>에서 읽을 수 있다.)

 

사이_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

 

당신이 사랑한 사람과
당신이 미워한 사람 사이
눈이 나린다

(중략)
당신이 사랑한 사람과
당신이 미워한 사람 사이
자작나무는 자란다

(후략)

-시 <사이> 부분

이 시는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하나는 시인이 7년 전에 펴낸 『와온 바다』에 수록된 한 편의 시와 연결되어 있달까, 느낌이 겹쳤다. <사랑이 없는 날>이다. 당시 필자는 그 시집 가운데 이 시가, 이  시 가운데 아래 구절이 가장 와 닿았다.
"생각한다/ 눈 오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남과 북 사이에/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세탁소 사이에/ 홍매화와 목련꽃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또 무슨/ 병은 없는지"
-시 <사랑이 없는 날> 일부.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세탁소'가 어디에 있는 가게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문득 시 속에 등장하는 두 간판 '사이에'를 읽는 동안 나의 미간에는 눈물이 흘렀다. 시 <사이>는 <사랑이 없는 날>과 '사이에'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만 연관성이 있다, 할 수 있을까? 어딘지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다른 하나는, <사이>를 읽는 동안 필자의 눈길은 시 본문보다는 부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에 대한 설명(주석)에 더 오래 머물렀다는 것. 눈덩이 세 개를 쌓아서 만드는 눈사람, 또 그렇게 하는 이유. 나는 오히려 이것을 시로 느꼈고, 와 닿았다.

 

"동그라미 셋이 나와 너, 우리를 상징하다니" 중에서 뒷 문장만 빼면 그대로 한 편의 시가 아니겠나.

 이 시집에 첫 번째 수록된 시, <길>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시를 일종의 <서시>로 보는데 곁에 있고, 함께 하니 좋은 것들이 나열된다.

무신론자의 종교/ 가을의 꽃향기/ 종탑의 아기 종에게 하늘의 음계를 알려주는 초승달/ 호숫가의 나무의자/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좋았다 -시 <길> 전문

'시인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번에도 주석이 필요하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대강 누군지는 알겠는데, 여행 중에 만난 새롭게 만난 그녀에 대해 또 한 편의 깨알 주석이 등장하는데,

 

곽재구 시인에겐 산문과 시의 경계가 따로 없다

한 편의 이야기 시다. 한 개의 물음표(?)는 (다른 시들이 그렇듯) 남기고 모든 마침표(.)들은 제거할 것, 그러면 한 편의 시다. 제목은 <속기사>쯤으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속편'의 시와 본편의 시 <길>을 하나로 묶으면, '당신'이라는 단어로 초점이 맞춰진다. 당신이란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주석)를 말하는가? 다섯 가지 모두를 의인화하여 이르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소중한 누구에게 드리는 헌시인가? 열아홉 살에 스물다섯 살 연상인 남편과 살다가 16년 만에 혼자가 되었는데, 왜 재혼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 말이다. "내가 도스토옙프스키와 살았는데 다른 누구와 또 살 것인가?"  관련하여 세 번째로 언급할 시는 2부 첫 번째 <징검다리>다.

 

평생 강물의 노래를 들었으나
자신의 노래를 부른 적이 없는 이가 눈보라는 맞는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이 하얀 눈보라 속에 묻힌다

-시 <징검다리> 전문

자신은 한 차례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고 평생 듣기만 한 (개천에 가로놓인) 징검다리는 ‘검은 건반’으로 그것을 둘러싼 이미 내린 눈은 ‘하얀 건반’으로, 눈보라가 거세지자 ‘검은 건반(디딤돌)’이 사라지는 정황이다.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에도 제목 '징검다리*'에 시인의 말이 붙어 있는데, 두 면에 걸쳐 긴 이야기다. 근황과 일상을 담은 한 편의 수필이다. 앞서 언급한 두 편가 ‘주석’이면서 주석만은 아닌, 두 편의 시를 각각 품고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필자가 문득 주장했던 시와 산문의 경계를 오가는 실험인가? 앞서 시와 기행수필의 경계의 흐릿함에 대해 주장했거니와 이번 시집에서 특히 와 닿는 흐름은 시와 동시의 경계도 시인 곽재구에게는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거론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달빛>이라는 시는 절묘하여,

 

누비 홑이불 배에 덮였다
까끌까끌하고 시원한
가을 물살 같은
징검다리 곁 물고기 몇 마리가 이리 와 함께 춤추자 말할 것 같은
그런 이쁜 꽃은 지금껏 보지 못했네
누비 홑이불 밖으로
두 발을 가만히 빼본 것은 생의 우연한 일
누군가 가만히 발바닥에
고운 자기 발바닥을 대보는 이가 있었다

-시 <달빛> 전문

누군가라닌 누구이지?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는 시의 제목 '달빛'이 가장 중요한 모티브다. 곧 달빛 때문에 생긴 발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순간 비로소 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합니다. "

이례적으로 시집 끝에는 다른 누군가가 덧붙인 해설 대신 시인의 산문 한 편(<강은 노래하고 푸른 용은 춤추네>)이 실려 있다. 시인이 시업을 쌓기 시작한 계기와 현재,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최근에 모처럼 TV에 출연해 근간 작품들에 대해 얘기했다. 관련해서는 tbs교통방송 TV책방 북소리(3월 20일, 2019,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전하는 '포구에서 찾은 따뜻한 위로'> 곽재구 시인편)을 참고하시기를. 본 시집에 앞서 작년에 출간된 『신포구기행』은 월간 <전원생활>에 3년 동안(2016.1~2018.12.) 연재한 기행수필들 대부분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인데, 본 시집 출간까지 포함하여 지승호 작가의 인터뷰를 일부 소개한다. 3년간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인터뷰다. 지승호 작가는 좋은 시는 뭐냐고 묻자 시인이 답한다.
“좋은 시는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합니다. 그런데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따뜻해야 하고 촉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어떤 것이 좋은 시인지 스스로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뭐냐 하면 눈물입니다. 울면서 쓴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나 시인이 눈물을 백 방울 흘리면서 써야 독자는 한두 방울 흘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혼을 다해서 쓴 작품을 보고 아침에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그게 진짜 좋은 시인 거죠. 제가 쓴 것 중에 아끼는 작품이 있어요. ‘아기 참새 찌꾸’라는 동화를 쓰고 마침표를 찍는데 그 위에 눈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잉크가 번지는데,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_월간 <전원생활> 2019년 1월호 곽재구 시인 인터뷰 <삶이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시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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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3-3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로 소개한 주석들은, 이 책 (알라딘) 미리보기를 히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시 전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