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이돈 관련된 사실적 질문과 해석적 질문 사이, 굳이 제목 하나를 내세운다면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 두 신 사이에는 여신 헤라가 개입하지만, 『일리아스』 경향 각지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 두 형제는 대립각을 세운다. 당면한 전세에 대한 판단 차이,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 궁극은 권위적인 제우스의 일방적인 주도권 행사에서 태어나는 갈등이다. 그런데, 이들 형제들에게는 해묵은 갈등이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포세이돈은 늘 한 발 물러서는 쪽이지만, 제우스에 대한 불만은 늘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임시 봉합되고 억눌려질 뿐이다. 힘의 우위에서 자신이 열세이기에 포세이돈 스스로 인정하는, 현실적인 처신도 곳곳에 보인다. 이들이 갈등하는 진짜 원인은 호메로스에만 의존해서는 찾기 힘들 듯하다. 호메로스가 펼쳐놓은 갈등을 푸는 데에 그가 아닌 당대의 다른 시인의, 신화를 다룬 작품을 엿보아야 한다. 호메로스는 작품 밖에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겼는데, 이 점에서도 위대한 고전의 저자인 셈이다.

 

포세이돈의 분노, 권위적인 제우스의 주도권 행사에서 나와

일명 '티탄신족과의 전쟁'(Titanomachia)은 10년 동안 진행되었다.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젊은 신들이 신권을 획득하기까지,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하데스 세 형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셋은 제비를 던져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하였고, 다스리고 있다. 티탄신족을 제압해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전쟁을 끝내는데, 무엇보다 제우스의 번개의 힘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못지않게 거친 일을 도맡아했던 포세이돈의 역할도 상당했다. 때문에 포세이돈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삼분(三分)의 일(一)의 분할한 세계에 대한 지휘권에 만족하고 있다. 절차상 분배는 공정했다. 다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고 포세이돈은 생각한다. 그가 제우스에게 가진 불만의 핵심이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다. 

"레아는 크로노스에 눌려 영광스런 자식들을 낳았으니, /헤스티아, 데메테르, 황금 샌들의 헤라, /지하 집에서 사는 무자비한 마음의 /강력한 하데스, 굉음을 울리며 대지를 흔드는 이, /그분의 천둥 아래 넓은 대기가 떠는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 /지략이 뛰어나신 제우스가 그들이다." _<신들의 계보> 453~458행, 66면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하였고, 다스리고 있다.
'계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족보와 같아, 태어난 순서대로 나열된다. 이에 따르면 세 아들은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순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런 헤시오도스와 달리 호메로스(일리아스)에서는 제우스가 이들 형제 중 맏아들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왜 그런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야기의 곁가지를 치자면 끝이 없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의 궁극적인 불만이 무엇인지 살피는데, 『일리아스』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단초랄까? 두 형제 중 누가 형이냐, 하는 문제가 제우스에 의해 거론된다. 헤라는 제우스와 동침하여 속이고(14권), 그가 잠든 사이 포세이돈이 그리스연합군을 도와 전세가 역전된다. 15권 초입, 문득 잠에서 깬 제우스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전투현장에서 트로이아군을 몰아붙이는 포세이돈을 보고 대로하여 그가 철수하게 만든다. 전령 이리스를 보내 으름장을 놓는데,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다.

 

"(제우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나이도 위라고
자부하는 바니까. 그런데도 그는 겁도 없이 다른 신들도
두려워하는 나와 스스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구나.” (165~167)

제우스가 포세이돈에게 전하라는 말이다. '나이도 위라고 자부'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막말로 “나이도 어린 것이…” 하면 될 것을, 결이 좀 다르다. 실제로는 제우스의 나이가 더 어리다(독자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고 봐야 자연스럽다. 호메로스는 신들의 아버지(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우스에게 부여하느라 맏아들로 설정했을 뿐, 신화에서는 포세이돈이 더 연장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이 신권을 획득하는 과정, 곧 신화에 결정적인 근거가 있다.

 

'나이도 위라고 자부'? '나이도 어린 것이.'하면 될 것을…
(그리스 신화에서) 우라노스(Ouranos 하늘)와 가이아(Gaia 대지) 사이에는 모두 12명의 자녀가 태어난다. 막내(아들)인 크로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 다음 우주의 지배자가 된다. 크로노스는 (자신 또한) 자식들 중 한 명에 의해 축출될 운명임을 알고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린다. 그러나 레아는 지혜를 발휘하여 갓 태어난 제우스만은 빼돌려 크레테 섬 동굴에 감추고, 대신 강보에 싼 돌을 크로노스에게 먹인다. 장성한 제우스는 (첫째 아내가 된) 메티스(Metis)를 설득하여,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이고 그가 삼킨 자식들을 토하게 한다. 제우스는 이들과 합세해 '티탄신족과의 전쟁'을 일으킨다. 만약 제우스가 세 아들 중 장남이라면, 크로노스는 (호메로스에 따르면) 돌덩이를 삼킨 후에도 새로 태어난 아들들(포세이돈과 하데스)을 집어삼켰다는 얘기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신화의 이 대목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제우스가 장남일 뿐이다. 그러나 이미 한 아들을 구했으면서, 이어 태어난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변고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한 아들을 구한 레아, 하데스와 포세이돈의 변고를 지켜만 봤을까?
또한 막내아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한 것처럼 자신이 당할 것 같아,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 '신들의 대권 삼세'인 제우스 또한 막내라야 자연스럽고, 막내 아들이라야 한다. 또 하나 제우스도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누군가(또 하나의 아들)를 극도로 경계한다. 신들의 왕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한 제우스는 테티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리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는 비밀(프로메테우스가 알려준)에 시달린다. 때문에 여신을 별로 대단치 않은 인간 남자(펠레우스)와 결혼시키는데,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킬레우스다. 이런 선택 덕분에 제우스는 영원한 신들의 왕으로서 자리를 보전한다. 같은 맥락이고 신화는 공식처럼 반복된다. 트로이아, 인간들의 10년 전쟁에도 제우스의 선택은 개입되어 있다. 인간남자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를 받지 못하고,‘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새겨진 사과를 연회장을 흘려보내는 것이니까(파리스의 선택).

 

크로노스처럼, 태어날 자신의 아들을 경계하는 '막내아들' 제우스
15권. 앞서 인용에 이어, 여신 이리스는 포세이돈을 설득하면서 "그대도 아시다시피 복수의 여신들은 항상 연장자를 돕지요.”(15:204행)라고 한다. (필자가 너무 예민한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내세워 이리스가 슬쩍 거드는 모양새다. 제우스가 더 연장자임을 거론하면서 압박하는 것. 이에 포세이돈은 자신이 양보하겠다고 하지만, 그 대답에 제우스에 대한 진짜 서운함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와 동등한 몫을 운명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나를 
그가 노기를 띠고 꾸짖으려 할 때마다
나는 마음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오." (15:218~210)

모욕감이다.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했다. 그런데 자신을 주식 1/3을 가진 주주로 대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화를 내어 꾸짖고, 무엇보다 ‘가르치려’한다. 포세이돈은 늘 '심한 모욕감'에 시달린다. 아마도 제우스는 그러면서도 그런 줄을 모르고, 해서 포세이돈을 더 화나게 할 것이다. 정리해보면 포세이돈은 제우스 때문에 '명예'가 손상되었고, 손상되곤 하며, 손상될 예정이다.

 

제 인간들을 보자.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분노하는 것은  눈앞의 전리품(브리세이스)을 빼앗긴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기간 내내, 아가멤논의 역할과 처사에 그의 불만은 쌓였고 마침 그때(1권) 폭발한 것일 뿐. 제우스가 형이라고 하자. 그런데 포세이돈은 사실은 내가 제우스의 형이라는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서열 때문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제우스=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야 한다. 제우스에게 필요한 이미지들 때문에, 포세이돈은 위화감(소외)을 느끼는 것. 호메로스의 뜻이다. 『일리아스』 부록, 주요신명 '제우스'에서 옮긴이(천병희)는 ‘아버지 제우스’를 정리한다.

“실제 그렇지 않음에도 사실 제우스는 "모든 신들의 아버지는 아니며, 인간을 만든 것도 그가 아니라 데우칼리온 또는 프로메테우스라고 한다. 이 별명은 그가 통치자 및 보호자란 의미에서 아버지(Pater)이며, 그런 의미에서 또 가정의 보호자(Herkeios)이자 재산의 보호자(Ktesios)이기도 하다."
결국 제우스의 (본래) 계획(트로이아가 그리스군에 멸망하는)과 포세이돈은 바람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테티스가 '국민청원'을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 1)그리스군은 트로이아군에 밀려 멸망 직전에까지 이르고, 2)아가멤논은 전투파업 중인 아킬레우스에게 구원을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 3)트로이아의 멸망은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다만, 제우스는 변경된 계획도 다른 신들과 공유하지 않고, 헤라나 포세이돈과의 불필요한 대결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애를 태운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는 곧 아킬레우스의 승리’라는 상식만으로 신들은 제우스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명예회복'이라는 자신만의 또 하나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제우스와 테티스와 아킬레우스 자신과 독자 여러분들뿐이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포세이돈은 을(乙)의 입장에서, 갑(甲)인 제우스에게 그때마다 '속내'를 드러내고야 만다. 아킬레우스(가 속한 그리스 군이)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의리파 포세이돈,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마음은 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보 불균형, 을(乙) 포세이돈 갑(甲) 제우스에게 '속내' 털려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권위 때문에 자기 잘못을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고, 교만한 행동을 이어간다. 때문에 그리스군의 희생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제우스가 포세이돈을 대우하는 방식도 닮아 있다. 곧 '아가멤논 : 아킬레우스 = 제우스 : 포세이돈'이라는 방정식이 어떤 면에서는 유효한 셈이다. 호메로스의 뜻이다. 이제 호메로스의 창의력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와 상담하고, 제우스에게 청원이 접수된 후,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만을 먼발치에서 관망한다. 이런 아킬레우스에게 포세이돈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사건건 상황 상황마다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신들(특히, 헤라와 아테네)의 뜻대로 그리스군의 승리를 위해, 불철주야 활동하는 포세이돈을……. 사사건건 제우스에게 대항하는 포세이돈의 행동과 격정에서 '아킬레우스'는 대리만족을 하였을까? 호메로스는 1권에서 여신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베푼 호의가 있다고 하고, 아킬레우스도 알고 있다. 헤라, 포세이돈, 아테네가 제우스를 포박하려 했는데, 테티스가 구해줬다는 것(『일리아스』에만 나오는 전승이다)도, 포세이돈과 제우스 사이의 갈등 원인(개연성을 높이는 역할)이 되고 있다.

 

'아가멤논:아킬레우스=제우스:포세이돈' 가능한 방정식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젊은 신들이 티탄신족들과 10년 전쟁을 할 때, 그들을 돕는 퀴클롭스들(호메로스에서는 외눈박이 거한들일 뿐이지만)이 세 형제에게 하나씩 특별한 무기를 만들어준다. 제우스에게는 번개,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 하데스에게는 '쓰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주는 모자'다. 이들은 자신의 무기에 맞는 역할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셋은 제비를 던져 우주를 삼분(三分)한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저승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들 세력권의 사이에 있는 '대지는 공유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올륌포스 신족의 시대가 시작된다.
*제우스는 천둥, 번개, 바람, 구름 같은 모든 기상 현상을 주관하는 하늘의 신으로서, 구름이 모여드는 높은 산들에 머문다.  *포세이돈의 거처는 아이가이(Aigai) 근처의 바다 속에 있으나 신들의 회의가 있을 때는 올륌포스에도 올라간다. 그는 바다의 지배자로서 폭풍이나 순풍을 보내주며, 지진의 신으로서 '대지를 흔드는 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대지를 떠받치는 이'라고도 불린다.  *하데스는 그야말로 은둔의 신으로, 아내 페르세포네와 함께 저승의 사자(死者)들을 지배한다. 하데스는 가혹하고 무서운 신이나 인간들과 다른 신들에게 적대감을 품지는 않는다. 하데스(Haides)는 '보이지 않는 자'란 뜻이지만, 『일리아스』 23권 244행(내가 하데스로 내려갈 때까지 말이오._아킬레우스의 말)에서는 유일하게 그가 다스리는 영역 즉 '저승'(자체)을 가리킨다. 그러나 20권. 

 

"이렇게 축복 받은 신들은 서로 싸우도록 양군을 격려했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20: 54~55)

‘케세라 세라(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상황이다. 제우스의 뜻대로, 모든 신들이 출동하여 신들끼리 전투할 때에는 하계의 왕 하데스까지 ‘깨워’ 거론한다.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는 위에서 무섭게 천둥을 쳤고", "밑에서는 포세이돈이 끝없이 넓은 대지와/ 가파른 산꼭대기를 뒤흔들"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 산의 기슭들과 등성이들이 모두 흔들렸고, 트로이아인들의 도시와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도 흔들렸다. 그러자,

 

"하계(下界)의 왕 하데스가 밑에서
겁에 질려 고함을 지르며 옥좌에서 뛰어올랐으니,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그의 위에서 땅을 찢어
신들조차 싫어하는 무시무시하고 곰팡내 나는 그의 거처가
인간들과 불사신들 앞에 드러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20:61~65)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그렇게 되’기 마련이지만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戰場). 때문에 죽은 그들이 가는 곳과 관련하여 '하데스'는 숱하게 언급되나 하데스의 등장이 직접 예고되는 경우는 여태 없었다. 이 순간에도 하데스는 자기 영역을 고수한다. 하계(下界)가 파손되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할 뿐. 그런데, 제우스의 계획 때문에 '은둔의 신' 하데스마저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그는 자기 영역이 침범되거나 훼손되는 것은 결코 방치하지 않을뿐더러 방어에 나선다. 앞서 삼형제가 우주를 삼분하여 제 영역을 설정하고는 '대지는 공유하게 함으로써'라는 대목을 떠올린다. 대지는 그 특성상 '공유하는' 것으로 할 수밖에 없고, 세 형제들 관할권의 경계가 된다. 하계(下界)가 곧 대지 아래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물리적으로 그 아래인 것은 맞다. 그런데, 포세이돈 이름 앞에 붙는 공식구(정형구)는 '대지를 떠받치는 이' 혹은 ‘대지를 흔드는 이'다. 고유 영역인 바닷물이 '대지를 감싸고 있'어 붙은 이름이지만, 해일이 대지를 침범하게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까지도 그가 제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성상 '공유'하는 대지, 삼형제 신들 관할권의 경계
이처럼, 이들 삼형제 신이 공정하게 관할권을 나누었지만, '대지'와 같은 경계에서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 하데스도 포세이돈처럼 일희일비하지 않았을 뿐(때론 포세이돈에게도, 그래야 하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기도 하니까), 관할권과 그 경계와 관련된 해묵은 민원은 가지고 있다. 더구나 포세이돈은 영역 다툼에 특히 예민한 신이다.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와 앗티케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다투지만 승리하지 못한다. 헤라와의 아르고스 영유권 다툼에서도 패배. (아르고스의) 강물을 모두 말리고 해일이 일어나게 하여 복수한다. 이런 포세이돈이기에 제우스의 권위와 계획(방침)과 늘 맞설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게 거의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 반복되는 '트라우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무렵 활동한 시인으로 추정한다.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740년경~670년경)는, 기원전 720년경에 활동한 음유시인으로, '당시 개최된 시인경연대회에서 호메로스를 이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프로필).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그리스인에게 신을 만들어준 것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라고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양문화의 위대한 창시자가 되었다. 이쯤에서 확인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신화 이야기는 한참 후에야 집대성된 책일 뿐이다. 이들 시인들이 다룬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훗날의 신화집에 수집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포세이돈이 형이냐, 제우스가 장남이냐, 하데스가 장남이냐의 문제는, 작품의 시인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다른 것으로 달라질 뿐이다.

호메로스는 하데스나 포세이돈이 제우스보다 형이라는, 이런 위계의 흐트러뜨림으로 갈등을 유발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들 삼형제의 ‘우주(宇宙) 삼분지계(三分之計)'는 『일리아스』에서는 제우스 중심으로 흘러가, 공정성 문제는 야기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때그때 반응하는 포세이돈,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영역만은 침범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하데스의 뜻도 그렇다. 호메로스도 삼형제가 한 약속을, 그리고 공유 공간에 대한 제우스의 지배권 남용을 경계하는 포세이돈의 이의제기를 인정하고 있다.

 

"(포세이돈: )그러나 대지와 높은 올륌포스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공유물이오.
따라서 나는 결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것이니,
그는 비록 강력하지만 몫으로 주어진 삼분의 일에 조용히 머물러야
할 것이오.나를 겁쟁이처럼 완력으로 겁주려는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13:188~193) 193

 

'삼지창'은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포세이돈의 시위용품?
[맺으며] '삼지창'은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이는 또한 그의 소박하고 일관된 주장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사실 이런 해석적 질문을 던지고, 자문자답으로 이 글을 시작했고, 마무리한다. 「정치·경제」라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삼권 분립을 생각한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과 투옥, 최근의 사법농단까지, 입법기관인 국회는 국민의 마음이 오래 전에 떠났음을 아직 모르는 눈치다. 강적들이다. 검찰과 경찰의 역할을 잘 분리·조정하고, ‘기소권 있는'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립하라는 국민여론이 2/3가 넘는데, 이를 가로막는 이들은 누구인지? 검찰과 경찰과 공수처가 '삼지창'의 세 날 역할을 하여야만 하는 때가 온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더 이상의 적폐 생산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삼권분립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 설치는 선행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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