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으면 늘 이 노래만 부르는 군대의 선임이 있었다. 그가 이 노래를 썩 잘 부른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지간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그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랄까. 아직 굳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이 노래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해서 그렇고 그런 시간이면 선임은 부대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똑똑똑. 적어도 이 오래된 가요에서 이 세 음절은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또옥~ 똑 똑,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하이힐을 신은 여인이 내딛는 발걸음 소리다. 그런데 그 구두가 빨간 색이란다. 이제 소리만 듣고도 그 색깔을 안다. 이처럼 삼박자(단장격 3절운율)가 절묘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공식 같은 노래가 세상에 또 있을까?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1964년)의 가사는 이렇다. 재즈가수 말로(Malo)의 <빨간 구두 아가씨>도 들을 만하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밤밤밤 밤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종소리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모른 척 가네.

 

 

=남일해 앨범, <오아시스 패라다이스 제1집>(1966.01.01)
 

<A Red Shoes Miss> 5행씩으로 구성된 가사의 행마다 가락은 삼분되어 노래된다.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똑똑똑'이나 '솔솔솔' 그리고 '밤밤밤'은 그런 삼박자의 묘한 힘을 활성화하는 주문에 가깝다. 내용상 빨간 구두 아가씨와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심리적인) 설정에서 통통 튀는 맛이 있다.

1절에서 나는 앞서 걸어가는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다. 해서 빨간 구두인 것은 알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가씨다. 그러나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해서 한번쯤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녀가 야속하다. 구두소리는 내 마음을 ‘즈려밟고’  가는 듯하다. 아직은 그렇게 느낀다,
2절에서는 밤, 골목길을 지나는 구두소리의 그녀를 만난다. 골목길로는 창이 하나쯤 있는 나 있는 그런 방에 나는 살고 있을까? 이젠 구두 발 소리만 들어도 그 아가씨인 줄 알고, 그것이 빨간 구두인 것도 안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선을 넘으면 스토킹이 될 만한…….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답답하다. 울리는 종소리도 성가시다. 내 마음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간다는 것. 그것은 바람인가? 

어쨌든 이 노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여인을 향한 마음, 그 마음의 문을 여는 두드림 '똑똑똑'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10월, 한 방송(KBS '여유만만')에서 남일해는 "당시에 빨간 구두 아가씨로 히트로 온 동네 여성들이 빨간 구두를 신고 다녔다"며 "그 당시는 검은 구두 아니면 백구두인데"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첫사랑 마도로스」라는 그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앨범을 사랑한 팬들이 많았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똑똑똑, 구두 발자국 소리는 사라지지만 흔적을 남긴다. 똑똑똑. 뭔가 말하기 위해 문(門)을 두드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책들 사이에서 발견한 세 가지 소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유사한 구성(내용)의 아티클들을 모은다면, 잠정적으로 <똑 똑똑 구두소리>라고 이름을 붙이며, 썼다.

 

*대화의 독립 그리고 단장격3절운율의 탄생

『시학』에서는 비극의 대화에 사용되는 3절 운율(trimetrom)을 이야기하는데 단장격 3절운율(영/iambic trimeter)이다. 중복된 단장격 운각(?─)을 다시 세 번 반복하는 운율이다(?─?─??─?─??─?─). 처음 비극에서는 단장격 4절 운율이 사용되었다.  ─?─?? ─?─?? ─?─?? ─?─?(이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중복된 장단격 운각(─?)이 네 번 반복된 운율), 이 운율은 격렬한 흥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운율이다.(4장 주39)" 초기의 비극에는 사튀로스 극의 요소와 무용적 요소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도입되자 자연히 적합한 운율을 찾게 되었다. 대화에는 단장격 운율이 가장 적합한 운율이니 말이다. "단장격운율(=단장격3절운율)은 그리스비극의 대사에 사용되던 운율이다. 대화의 탄생에 따른 변화의 시작이다. (4장 주39) /깨지네요, 운율표기는 나중에 보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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