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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번역 일리아스 / 오뒷세이아 세트 - 전2권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1월
평점 :
"‘미망’과 더불어 ‘교만(Hybris: 히브리스)’은 『일리아스』를 읽는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이 서사시에서 가장 먼저 이 교만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킬레우스다. 반면에 '미망(ate)'을 처음 그리고 자주 거론하는 이는 아가멤논이다. 이런 미망과 교만이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보는 데에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현대 서구인들(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데서도 그 DNA가 살아있음을 엿본다."(이 글에 피력한 필자의 의견에 대한 요지입니다.)
『일리아스』 19권 핵심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화해 장면이다. 그리고 19권을 대표하는 핵심어 하나만을 고르라면 ‘미망’이다.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체면치레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미망은 『일리아스』 의 제1주제가 ‘아킬레우스의 분노’임을 고려하면, 이 서사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가급적 관련 언급(텍스트)들을 따라가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9권.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복수하고자 다짐하고, 복수를 하자면 전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아가멤논을 향한 분노 때문에 전투불참을 선언한 그로서는, 그런 선언을 뒤집어야 하고, 그러려면 아가멤논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군 지휘관들과 전사들이 회의장으로 모여든다. 마지막으로 아가멤논이 참석한다. 먼저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향해, 자신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불화한 것을 개탄한다. 이제 상황이 안 좋으니 감정을 억제하자고 제안한다. 분노를 거두겠다. 화해를 거부하고 계속 화를 낸 것은 옳지 않았다고, 그리스 군을 일으켜 전투에 나서자고 권한다. 자기도 싸우겠다고. 그리스 전사들은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둔 것을 기뻐하지만, 아가멤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말을 한다[그러자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그들 가운데로 걸어 나오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19권: 16~77행] 아킬레우스에게 직접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장에 대중을 향해 말한다. 사람들은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나오지 않은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신들의 책임이라고.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이렇다.
"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게 있소이다.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광기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미망(迷妄)은 제우스의 맏딸로 모든 이의 마음을[91]
눈멀게 하는 잔혹한 여신이오. 그녀는 발이 가벼워 결코
땅을 밟는 일이 없지요. 그녀는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다니며
사람들을 넘어뜨리는데 둘 중 하나 꼴로
걸려들게 마련이지요."(19권: 86~95)
아가멤논은 그 책임을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모이라) 그리고 복수의 여신(에리뉘스)에게 돌린다.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여자를 빼앗은 것은 이 신들이 자기에게 ‘아테’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 아테는 보통 미망(迷妄)으로 옮기는데, ‘정신적으로 눈 먼 상태’를, 좀 더 넓은 의미로는 ‘피해, 손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아래 ‘강대진의 책’)
그런데 『일리아스』에서 ‘미망’이란 단어는 2권(아가멤논의 꿈_함선목록) 아가멤논의 발언에 처음 등장한다(이 글의 맨 뒷부분 인용, ‘교만’이란 말을 처음 언급하는 이가 아킬레우스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출전(出戰)에 앞서 관례에 따라 말로 전사들(아레스의 시종들)을 시험하는, 전쟁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슬쩍 떠보는 대목에서다.
"친애하는 다나오스 백성들의 영웅들이여, 아레스의 시종들이여!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나를 큰 미망에 빠뜨리셨소이다."(2권: 110~111행)
이 경우 아가멤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제우스가 보낸 거짓 꿈에 속아 (아킬레우스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는, 출전 준비를 하는 것. 9권에서도 아가멤논은 미망을 언급한다. 전세가 트로이아 군에 밀려 위급한 상황이기에, 여기에서의 ‘미망’은 앞(2권)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런데 그의 '신 탓'은 습관적이며 상습적임을 알 수 있다.
"친구들이여, 아르고스인들의 지휘자들 및 보호자들이여!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나를 큰 미망에 빠뜨리셨소이다."(9권: 17~18행)
역시 9권에서 이번에는 네스토르(제안)에 대답하여 ‘미망’을 언급한다.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의 과오를 지적하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우정의 선물과 상냥한 말로 달래고 설득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 “나는 그러지 말라고/ 진심으로 말렸건만 그대는 자신의 거만한 마음에 복종하여(9권: 108~109)” 아킬레우스를 분노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 많은 원로라고는 하지만 네스토르의 지적은 날카롭다. 이런 네스토르의 말에 아가멤논이 대답한다.
"노인장! 그대는 내 미망을 거짓 없이 사실대로 지적해주었소. [115]
내가 어리석었음을 부인하지 않겠소. 제우스께서는 지금
그 사람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아카이오이족 백성들을 무찌르시거늘
그분이 그토록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야말로 실로 만군(萬軍)의 가치가
있소이다. 내가 사악한 마음에 복종하여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상금을 기꺼이 바치겠소."(9권: 115~120행)
흥미로운 것은 『일리아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미망’(이란 개념)은 9권과 19권에서 보듯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그 중에서도 아가멤논의 ‘과실’과 연관되어 등장한다는 것이다.『일리아스』의 제1주제가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점, 그 분노를 유발한 이가 아가멤논이며, 분노는 한 여인(브리세이스)을 빼앗은 데서 촉발되었음을 생각하자. 물론 아가멤논이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신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아니다. "희랍인들은 늘 인간의 결정이 두 가지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의 영향이기도 하고, 자신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강대진,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452면) 9권에서 약속한 바 있는 보상금을 언급하는 아래 인용에서 그러함을 읽을 수 있다.
"먼저 내 마음을 눈멀게 한 미망의 여신을 잊을 수가 없었소. [136]
하나 내가 이렇게 마음이 눈멀고 제우스께서 내 지혜를
빼앗으셨으니 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보상금을 내놓겠소." (19권: 136~138행)
아킬레우스에게 주기로 약속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인정이다. 자신의 ‘지혜를 빼앗은’ 제우스에게도 잘못이 있단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흔쾌히 인정하면 될 것은 결코 그러는 법이 없다. 물론 이 전쟁 전체를 지휘하는 총감독은 제우스이고, 앞서 2권에서 살폈듯이 제우스는 아가멤논에게 ‘거짓 꿈’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지만 아가멤논은 인간들의 왕(왕중의 왕)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한다. 아킬레우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9권에서도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화해를 청하기 위해) 보낸 사절단(오뒷세우스)의 말을 들으며, 아가멤논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그 맥락에서 읽어낸다. 그럼에도 19권에서 아킬레우스는 대중들이 모두 듣는 자리에서 ‘미망’을 언급하며, 제우스가 준 ‘시련’ 때문에 아가멤논이 자신을 분노하게 했음을 '보란듯이' 언급한다.
"아버지 제우스여! 그대는 인간들에게 엄청난 미망을 주시나이다. [270]
그렇지 않았던들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내 가슴속 마음을
격분시키지 않았을 것이며, 내 뜻을 거슬러 고집스레
소녀를 데려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이는 결국 제우스께서
많은 아르고스인들에게 죽음이 닥치기를 원하셨던 탓이오.
자, 우리가 어우러져 싸울 수 있도록 그대들은 가서 식사하시오!" (19권: 270~275)
아가멤논 스스로가 미망을 언급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소녀(브리세이스)를 데려간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아킬레우스가 전적으로 아가멤논을 용서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소녀 때문에 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왕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두에(1권) 호메로스가 그리는 트로이아 전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다. 아가멤논이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을 맡게 된 것은 여러 참가자(국) 중에서도 ‘실세’였음을 언급한다.
"아가멤논은 이 왕국을 물려받은 데다 누구보다도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트로이아 원정군 모병에는 충성심보다는 위압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호메로스의 증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 아가멤논은 누구보다도 많은 함선을 이끌고 갔고, …(중략)… 내륙에 살던 그에게 상당 규모의 함대가 없었다면, 바닷가에서 가까운 소수의 섬들 말고 다른 섬들까지 지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1권: 9(3), (투퀴디데스/천병희/숲)
‘호메로스의 중언이 믿을만한 것이라면’을 전제하고 하는 기술이지만, 그가 당시 가장 유력한 통치자였기에 아가멤논은 이런 대군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슬려 오르면 아가멤논은 펠롭스의 자손이며, 펠로폰네소스(반도)라는 지명은 ‘펠롭스의 섬’이란 뜻임을 상기한다. 19권 맨 앞에서 인용한 부분에 이어 아가멤논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마저도 한때 미망(아테)에 눈이 먼 적이 있었다(신화)고, 하물며 인간은 나는 오죽하겠는가,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한 발언을 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진심으로 아가멤논을 화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23권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를 마무리할 무렵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19권)은 절친이자 시종인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투에 나서야 하며, 전투는 혼자서만 치를 수 없는 것, 결국 아가멤논이 나서야만 하기에, 내심이야 어쨌든 화해하는 모양새를 갖추는데, ‘미망(ate: 아테)’이란 개념은 절묘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미망’과 더불어 ‘교만(Hybris: 히브리스)’은 『일리아스』를 읽는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이 서사시에서 가장 먼저 이 교만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킬레우스다. 분노가 치밀어 아가멤논을 죽이려하자 이를 제지하는 아테네 여신에게 하는 말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따님이여!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교만을 구경하기 위함입니까? [202]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하는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즉,
이제 곧 그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일리아스』: 1권 201~205행.
그런데, 이런 미망과 교만이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보는 데에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현대 서구인들(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데서도 그 DNA가 살아있음을 엿본다. 과연 자리를 박차고 떠난 그 회담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의견과 해설이 분분하지만,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그 참모진들이 보인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오나 했더니, 한반도의 평화의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