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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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읽었어요. ‘이솝 우화’를 읽고 이야기 속에 담긴 교훈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십대가 될 때까지도 쭉 이어져 영화 쪽으로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지요."
『이야기의 힘-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황금물고기, 2011년 9월)에 실린 전설적인 시나리오 닥터 '로버트 맥기'와의 특별 인터뷰(스토리텔링 공식)의 일부다. 실제로 EBS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녹취록이다. 어떻게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특히 어떻게 스토리닥터로 활동하게 되었나,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의 초반부다. 그의 대표작으로 시나리오 작법의 교과서인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전2권)의 책 소개는, 난데없는 퀴즈로 시작된다. "<반지의 제왕>, <디어 헌터>, <X파일>, <슈렉>, <프렌즈>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정답은 이들 작품을 쓴 사람들 모두가 '로버트 맥기'의 제자라는 것. 그는 아홉 살 때 처음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고, 극단원으로 10대 시절을 보냈다. 프로필이 예사롭지 않다. '이야기 의사'라는 그의 직함을 살피노라면, 어린 시절부터 (관객 반응을 직접 확인하는) '현장'을 경험했기에 살아 있는 이야기의 힘을 실감했으리라, 여기게 된다. 

 

10대 시절을 극단원으로 보낸 '이야기 의사', 로버트 맥기

그런데, 작가로서 명성을 쌓은 이들이 인터뷰에서 으레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할 때,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처럼,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읽은 『이솝 우화』를 꺼낸다.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것, 하나의 이야기(STORY)의 최소 단위를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이솝 우화』이고,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에도 또 하나의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대화, 번역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한 편 한 편의 우화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는 아버지에게 질문하였을 것이고, 아버지는 아들의 질문을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받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고, 가능하다면 이런 변화를 객관적하여 관찰할 수 있다면,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생산)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들이 던진 질문은 '해석적 질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기다린 질문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텍스트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 그 질문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 그런  질문이, '해석적 질문'이며, 이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독서토론이나 독서지도(‘지도’라는 말이 좀 그렇지만)의 방법을 다루는 '교육학'에서 중요하게 취급하지만, 가령, 자녀와 함께 같은 책을 읽는 부모들을 위한(해석적 질문을 유도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깊이 있는 그리고 친절한 안내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핵심 포인트는『이솝 우화』를 읽고,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

어쨌든, 『이솝 우화』>는 가장 짧은 시간에 읽고(미리 읽어올 필요도 없다), 해석적 질문을 할 수 있는 그런 텍스트다. 그 질문에 참가자들이 나름대로 의견이 발표하고, 그것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다른 의견을 낳는 등 각종 독서토론의 '오프닝'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필자 또한 실제로 실행해보고서 하는 말이다). ‘청소년과 성인들을 위한 정본’ 『이솝 우화』(천병희 옮김, 숲)에는 현존하는 이솝 우화 전편(258편)이 (그리스어→우리말) 원전번역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편을 이솝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은 사실이라, 논란이 이어진다. 그러나 수록된 우화들이 가진 일관성은 논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또한 (앞서 강조한 해석적 질문 활용과 관련) 몇 편을 제외하고 우화마다 덧붙여진 '교훈'이 걸림돌이 된다. 가령, 아래 인용한 <살인자>의 경우 교훈은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죄지은 사람에게는 뭍에도 공중에도 물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교훈'은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더러 추상적이고 고지식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우화의 요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많다. 필요한 경우에 참조하되 굳이 '교훈'에 얽매이지 않고 읽기를 바란다."
옮긴이 서문‘(재미와 교훈을 갖춘 명작’)에서 번역가는 '교훈'을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장한다. 아마도  『이솝 우화』란 제품에 관한 사용설명서가 있다면, 맨 위에서 고딕체 등으로 강조하여 언급해야 할 사항이지 않을까?

 

교훈을 어떻게? 『이솝 우화』란 제품에 관한 사용설명서

다시 로버트 맥기의 인터뷰다. 이야기의 힘, 그 생명력은 '플롯, 플롯,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갈등 구조'에 대해 묻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한다. 『시학』을 말하고 있는 것. "극장이든 책이든 이야기 작업의 규모와 크기에 따른 필수적인 반전의 개수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출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고 우리말로 옮기는데, 특히 비극과 관련하여 플롯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들을 요약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장이든'이라고 할 때 비극경연(연극이란 공연예술)의 ‘대본’으로서의 비극을, '책이든'이라고 할 때는 읽는 것(곧 책으로)만으로도 ‘비극(작품)’이 소비됨을 포함하고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시학』) 이 점을 짚고 있거니와 오늘날에도 비극은 공연으로, 책(작품)으로 저마다의 완결성을 갖추고 ‘소비’되고 있다.
그리고 로버트 맥기는 '한마디로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말라'며 이야기의 핵심을 강조한다. 이야기의 1번 법칙을 지켜야 하는데, '반전'이며,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반전의 개수(個數)가 있다는 것. "극장이나 공연, TV, 영화에서 2시간 정도(120분) 분량이면 최소 3회의 역전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서 역전이란 ‘반전’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작품의 플롯에는 (반전은 기본이고) 반드시 '급반전'이 있음을 역설한다. 로버트 맥기가 말하는 ‘역전’은 (보통 '막'이라고 부르는데) 인물의 인생에서 중차대한 변화를 말하는데, "최소 3회, 많게는 4회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공연으로 책(작품)으로, 저마다의 완결성을 갖추고 ‘소비’되는 비극

전설적인 시나리오 닥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훌륭한 이야기를 창작(생산)하고자 하는 이들일 것이다. 가령, 소설가나 시인이 되는 데 대학과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말로 작품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를 알아야 한다. 때문에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거치는 것이 유리하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필요하니까. 다만, 국어국문학과라고 할 때, '국어학'과 '국문학'이란 두 갈래의 학문이 결합된 것임을 ‘나중에야’ 깨닫는 것 같다. 국어학은 언어학의 영역으로 (지금은 다른 대학에도 개설되어 있겠지만), 서울대의 경우 ‘언어학과’로 (국어국문학과와) 독립되어 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기 때문에 ‘언어학과’는 ‘국어학’을 위주로 다루지만, 세상의 모든 언어 자체가 본위의 연구대상임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한국 문학은 한국어를 재료로 한다는 것 말고는(거칠게 말하자면), 두 분야는 연관성은 깊지만 한데 묶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창작을 위해서, '국어국문학과'에 가는 것이 나은가, '문예창작학과'를 가는 것이 나은가도 해묵은 고민이다. '문예창작학과'를 얼른 떠올릴 것이나,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다. '문예창작'이 글을 쓰는 기술(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작시술作詩術‘)을 우선하여 가르치고 배운다는 데서 그러한데, 가령, 시(詩)를 쓰는 법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원스럽게 답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대답이 『시학』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이 좋은(훌륭한) 작품인가(what)를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how) 하면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 구분하지 않고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를 생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창작을 준비하는 이에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시학』만큼 좋은 가이드북이 없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how) 무엇(what)이 좋은 작품인지 알아야.. 

자주 인용하거니와, 『시학』을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개념 하나가 바로 '전체'이다. 작품에서 이 '전체'란 방대한 서사시 『일리아스』 한 권일 수 있고, 『이솝 우화』의 수록된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아직도 '여우와 신 포도'로 옮기는 번역이 존재한다), 세 문장으로 이뤄진 우화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전체'란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다. 참으로 간명한 정의다. 그런데, 중언부언처럼, 이 '처음'과 '중간'과 '끝'을 설명한다. 처음과 끝을 먼저 정의하고, 끝으로 '중간'을 정의하는 데 주목하자.

 

"'처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 또는 대게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은 필연적으로 존쟈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다음에도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_『수사학/시학』 중 '시학' 제7장(''는 필자)

 

이야기가 하나로서 생명을 부여받으려면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야기의 최소(기본) 조건이다. '처음'과 '중간', '중간'과 '끝' 사이에 끼어드는 이야기 단위가 에피소드다. 그런데 어떤 에피소드도 허용하지 않는, 이야기의 최소 단위를 『이솝 우화』는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의 기본을 살피는 데 필독서가 된다. 언제든 어디서든 사전 준비(텍스트 읽기) 없이도 즉석에서 독서토론을 나눌 수 있는 텍스트인 것이다. 다음 우화는 단 두 문장으로 이뤄졌지만, 처음과 중간과 끝을 지닌 하나의 이야기다.

 

"새끼를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고 여우가 암사자를 헐뜯자 암사자가 말했다.“한 마리이지만 사자야.”"
-『이솝 우화』, <194.암사자와 여우>

 

로버트 맥기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해서 강조한 역전(반전)을 포함하고 있는 우화도 적지 않다. 이 짧은 우화에 '있어야 할 것들이 다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인 뒤 피살자의 친척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살인자가 나일 강가에 이르렀을 때 늑대가 다가오자 겁이 난 그는 강가의 나무 위로 올라가 숨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큰 뱀이 자기를 향해 기어오는 것을 보고 살인자는 강물로 뛰어내렸고, 그러자 강물 속에 있던 악어가 그를 먹어치웠다."
-『이솝 우화』, <045.살인자>

 

'전체'를 이해하는 데 『이솝 우화』, 처음과 중간과 끝을 지닌 이야기의 최소 단위

늑대와 큰 뱀과 악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피할 곳이 없다(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뭍에도 공중에도 물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 하늘과 땅과 물(바다와 강), '어디에도' 마땅한 피난처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은 제우스가, 땅(지하)은 하데스가, 바다는 포세이돈이 분할 통치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라. 온 지구, 온 우주라고 해야 할까?
새 학년 새 학기다. 특히, 신입생 가운데 어떤 장르이건 글쓰기를 직업으로 희망하는 이들이라면, 이 글에서 소개한 몇몇 책들을 평생의 교과서로 삼기를. 특히,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또 다른 저서 『수사학』과 한 권으로 묶여 있는데, 번역가 천병희가 ‘시학’을 처음 번역한 해가 1975년이다. '시학'을 개론으로 읽고 ‘수사학’을 읽든, '시학'을 원론으로 읽고 ‘수사학’을 부록으로 읽든 『수사학/시학』(천병희, 숲, 2017)은 문학을 창작하거나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주는 교과서 중의 교과서이며, 인류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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