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넥세노스』, 플라톤의 저작 중 위작 논란이 있는 대표적인 대화편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의 우리말 원전번역은 크게 세 흐름― 박종현 교수(서광사), 정암학당 연구원들(이제이북스), 천병희 선생(숲)―으로 진행되고 있다. 천병희 선생의 경우 어떻게 번역가 한 사람이 플라톤의 주요한 대화편들을 연이어 번역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속도감 있게 작업했다. 그 배경이 되는 당대의 전후한 주요 고전들을 번역했기게 가능했으니라. 다른 두 그룹은 철학 전공인 까닭에 해설과 역주에 노고를 보내야 하는 것과도 상관이 있으리라. 어쨌든 천 선생은 거의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들을 번역하면서도 <메넥세노스>는 번역하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위작 논란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다. 반면 다른 두 '그룹'은 최근에(2018년 12월) 박종현의 역주 <메넥세노스>가 추가됨으로써 (이제이북스 이정호의 번역은 2008년 출간) <메넥세노스>가 위작논란에서 벗어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위작 논란 중인 작품이라도 번역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의 연설문(추도사)을 다룬 대화편이다. 연설문을 메인으로 전후에 대화편들이 으레 그렇듯이 대담자(참가자)와의 농담 섞인 편안한 대화가 펼쳐지지만, 연설은 무한정 길어질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그 분량이 짧다. 때문에 번역은 하되 한 권의 책(단행본이라고 하면 흔히 요구되는 볼륨)으로 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정호의 번역은 정암학당 플라톤전집 시리즈가 그렇듯이 연구논문이라고 할 적잖은 분량의 작품해설을 앞세우고, 디테일한 후주가 대미를 장식하며, 그 중간에 본문(텍스트)을 배치하는 형식이다. 해서 <메넥세노스>만으로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물론 부록에는 이 대화편과 연관되어 있는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유명한 연설, '페리클레스가 전몰자를 위한 장례식에서 한 추도연설' 전문과 해설이 실려 있다. 아직 박종현의 역주(『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서광사, 2018년 12월)는 읽지 못한 상태이고, 좀 늦었지만 이정호의 번역은 읽은 상태이다. 두 버전의 번역을 읽어보아야 <메넥세노스>의 본문(텍스트)에 대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박종현의 신간은 앞서 간행된 천병희의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숲), 『이온.크라튈』(숲)와 더불어, 독자들의 선택 폭을 넓히며 풍요로운 독서가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메넥세노스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이 (이하 '소크라테스의 추도연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전몰자들를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과 어떤 식이건 비교되면서 '대립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플라톤(플라톤이 대화편들에 소크라테스를 내세움으로써, 실제 소크라테스의 말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그 자체가 '문제'로 끊임없는 논쟁거리이다. 이런 복합적인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한다)이 이 대화편의 필자가 분명한가 하는, 곧 위작논란과 관련해서 진위를 가리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결정적인 근거(진품임을 확신하는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메넥세노스>는 후학들의 흥미로운 논제(論題)이자 관련된 논문(論文)과 토론의 논재(論材_조합이다)로 텍스트 자체와 집필 배경들이 사용되었고,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숟가락 하나 더 얹고 싶은 마음도 그럴 ‘내공’도 없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소재들을 중심으로 관련 근거들을 대강이나마 살피는 일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스스로 숙제를 내는 일에 머물게 될지라도.

 

플라톤의 대화편들 대부분은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 대화편은 존재 자체에서부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분리해서 살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곧 플라톤이 비극시인이라면 그의 비극 무대에는 소크라테스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화편 제목에 이 주연급 배우가 등장하는 것은 단 한 편, <소크라테스의 변론>뿐이다. 그것도 다른 대화편들처럼 그냥 <소크라테스>도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러므로 여느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역할이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도 그러한가, 난데없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세히 살피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상당수 ‘변론’을 거론하는 글들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다만, 대놓고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 뿐(그런 논문이 왜 없겠는가).  실제로 플라톤은 상당수의 대화편(구성 형식)에서 '인간적인'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기 위해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그런데 어딘지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의 도입부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처럼. 그렇고 그런 설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줄 알고 본론에서 발언하는 소크라테스의 '입'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며, 그러라고 하는 듯하다. 

 

무엇이 A인가, A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때에, 무엇이 A가 아닌가, A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 더 쉽다면, 그렇게 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A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통해 그들이 창안한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대화를 통해 숱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인용할 때 쓰는 통례적인 방식을 따른 것이다. 오늘날 의미에서 A를 '철학자'로 대입하자. '철학자(A)'를 정의하기 위해, 무엇(어떤 것)이 철학자가 아닌가(~A) 그 사례를 자주 드는데, 동네북처럼 소환되는 ~A가 수사학자이다. 그리고 수사학을 기술의 일종인 '수사술'로 취급하는 등 이 분야에 대한 '소크라테스-플라톤'의 태도는 늘 시종일관 근엄하다. 어떤 대화편은 '수사술'의 한계를 입증하는데 거의 전부를 할애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대화편에서는 '수사학'을 조금은 유연하게 '인정'하기도 한다. 전자가 <고르기아스>라면 후자는 <파이드로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것은 철학자(라고 하자) 혹은 철학(이라고 하자)이라고 그 범주(範疇: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를 획정(劃定: 어떤 범위나 경계 따위를 명확히 구별하여 정함)하는데 수사학과 수사학자의 존재가 늘 걸림돌이 되어서였을까? 철학자와 수사학자, 철학과 수사학의 경계가 모호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는 때로는 목숨, 나아가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우려되고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희생양'이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수사술'에 능할 뿐만 아니라(오늘날의 성공한 연설가≒말도 잘하는 정치가라고 하자), 그 기술을 가르침으로써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 그것을 배우려는 젊은 수강생들이 많아 나름의 교육시장(사교육)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이끄는 선생님들을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아테나이 시민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 가운데 대표주자일 뿐더러, 제일 ‘잘나가는’ 소피스트였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중 하나인) '소피스트 혐의'로 기소된다. 때문에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변론’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입증한다. 그렇게 나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소피스트가 아님을 변호한다. ‘변론’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들이 적지 않아 일일이 인용하기가 벅찰 정도다. 어쩌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신탁을 끌어들이는데, 그러다가 문득 또 하나의 기소 이유(아테나이인들의 신을 섬기지 않았다는)까지도 변론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양수겸장 (兩手兼將)의 변론을 펼친 셈이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소피스트 협의야 말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진짜 이유로 보인다. 젊은이들을 선동했다고? 나는 결코 그들로부터 (금전 혹은 물적인) 대가를 받지 않았어, 강조할수록 배심원들은 ‘그렇다면 왜, 무엇으로’ 촉망받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느냐, 더욱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나이 시민들의 고정관념은 그렇게 견고했고, 플라톤-소크라테스는 절망하였지만, 바로 그런 상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며 살았으므로 그런 이유로 기소되는, 딜레마에 (적어도 그의 육신은) 사로잡힌 것이다.

 

플라톤은 그 법정에서 스승의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다. 전언(傳言)에 의존했다는 ‘설정’가 필요 없는, ‘필요해서도 안 되는’ 유일한 대화편이다. 대화가 아닌 형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종일관 소크라테스의 말씀으로 일관한다. ‘배심원 여러분 좀 조용히..’, 변론 중 한마디를 통해, 배심원들의 반응을 엿볼 뿐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여느 ‘수사술’에 능한 그들처럼(소피스트) 변론하지 않았기에, 배심원들은 낯설고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본 것 같다. 다름은 때론 무서운 결과를 부른다. ‘다름’이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서는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는 동안 ‘다름’을 변론한 셈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변론’),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행한 변론이라는데, 어느덧 엄혹한 세월은 갔고, 변론은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인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한 방법으로 크세노폰을 잠시 소환한다. 그가 스승을 나름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소크라테스 회상록>에는 (한 반에 명예와 권력과 부를 획득하는) 현실정치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전공필수’과목으로 수사학을 꼽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친형(글라우콘)이 그런 정치 현장에 투신하려는 것을 말리고(3권 6장), 플라톤의 외삼촌(카르메데스)는 정치가로 나서라고 떠밀기도 한다(3권 7장). 크세노폰의 저작은 요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야 하듯(신림동 고시촌의 요즘 풍경은 잘 모르겠다), 그런 아테나이 젊은이들의 취업현장을 스케치한다. 당시 법정에 있지 않았고 사형수에게는 오래 수감돠었지만 면회할 수도, 스승의 최후를 지켜볼 수도 없었다. 때문에 전언(傳言)에 따라, 당시의 스승을, 그가 아는 당신을 '회상하였을 뿐인데, 거기에 문득 소크라테스의 초상화 한 점이 걸려 있다. 무엇 때문일까?
『메넥세노스』와 『수사학』,  『메넥세노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관련하여, 시작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는 박종현의 <메넥세노스>까지 살펴야할 것 같다. <메넥세노스>는 작품 안팎의 배경들, 작품 안에도 수수께끼가 산재하여 신중함을 요구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투퀴디데스, 로마의 키케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저작뿐만 아니라, 전기들도 감안해야 한다. 플라톤에게 수사학(수사술)은 스승을 죽음으로 이끈 것으로 평생 동안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크세노폰은 정치에 입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플라톤의 친척들 얘기까지 거침없이 다룬다. 플라톤 자신이 정치지망생이었다는 점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수사학』을 저술 가운데 하나로 추가하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은 깊었으리라(물론 그 자신의 생전에 출간되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들은 필사본만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1세기 뤼케이온 학원의 원장이던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로마에서 출간되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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